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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 루터와 종교개혁 2. 개혁가가 되기까지 3. 개혁을 위한 노력 4. 루터의 성경 5. 새로운 그리스도교 6. 정치 개혁 7. 수도사에서 가정적인 남편으로 8. 천사와 악마 후기 참고문헌과 더 읽을거리 | 웹사이트 | 책과 기사 루터 연대표 | 인물 및 용어 해설 개정판 역자 후기 | 초판 역자 후기 | 도판 목록 |
Scott H. Hendr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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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또는 철학 사상가로서 마르틴 루터는 최초의 근대적 인물이기보다는 최후의 중세적 개혁가였다. 다른 이들이 유럽의 지형을 바꾸는 데 실패했던 곳에서 그의 개혁은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 p.22~23 루터가 선대 개혁가들을 뛰어넘어 가장 영향력 있는 개혁가가 된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면, 그가 사형을 피했기 때문이다. 선대 개혁가들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기만 해도 이러한 사실은 분명히 드러난다. 그 어떤 중세 개혁가도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향유한 지리적 범위와 정치적 지원을 얻어낸 종교운동을 일으키지 못했다. --- p.24 에르푸르트로 돌아오던 길에 목적지가 가까울 즈음 사나운 폭풍을 만나 겁에 질린 나머지, 루터는 아무 탈 없이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수도자가 되겠노라 맹세했다. 죽음을 마주한 상황에서 그렇게 일생을 바꿔놓을 맹세를 한 것을 보면, 법률 관련 직업에 대한 불안감이 이미 있었으며 이전에 엄격한 의미의 종교 생활, 곧 수도원 입회도 고려해봤음이 틀림없다. --- p.44 95개 논제는 대사 판매자들뿐 아니라 로마의 성베드로대성당 신축 비용을 충당하고자 대사를 허용한 교황도 공격했다. 어떤 논제들은 뻔뻔할 만큼 대담했다. 루터는 이렇게 썼다. ‘교황이 자신의 영혼을 담보로 내놓는다 해도, 대사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은 헛되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왜 교황은 가난한 신자들의 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돈으로 성당을 짓지 않는가? --- p.52~53 ‘여전히 수도자이면서 이제 수도자가 아니다’라는 모순된 감정에 걸맞게, 루터는 복음주의 운동의 지도자이면서 1524년까지 수도복을 입고 있었다. 그에게는 혼자서 개혁을 성취하리라는 환상 따위는 없었다. --- p.62 루터에게 지체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의 역사신학에 따르면, 개혁의 순간은 움켜잡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하느님 말씀과 은총은 언제나 지나가는 소낙비와 같아서, 원래 왔던 자리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는 썼다. --- p.64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란 말은 어떤 이들에게는 프로테스탄티즘의 표어가 되었지만, 루터에게는 성경이 모든 쟁점에 대해 배타적 권위를 지닌다거나 모든 질문에 대해 명백하게 객관적인 해답을 제시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었다. 다만 교회 안의 쟁점에 관해 성경이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는 의미였다. --- p.94 ‘루터의 대담함은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 〔그는〕 그 원문에서 욕설로 비난할 수 있는 최초의 작가이며, 필시 마지막 작가였다.’ 전기 작가 헤일(H. G. Haile)은 루터가 말년에 쓴 욕설과 지저분한 말들이 한편으론 그의 법률주의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했으며, 다른 한편으론 노(老)전사의 슬픔과 후회와 실망으로 유발된 것이라고 암시함으로써 루터의 거칠 것 없는 발언들에 대한 경탄을 누그러뜨렸다. --- p.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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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가 가장 영향력 있는 개혁가가 된 이유는 그가 사형을 피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수도자이면서 이제 수도자가 아니라고? 로마가톨릭교회의 수도자였던 마르틴 루터는 당시 교회의 문제점들을 공개적으로 질의함으로써 종교개혁의 불꽃을 터뜨렸고 그리스도교 역사뿐 아니라 서구 역사의 한 분기점을 이루었다. 그러한 엄청난 역사적 사건을 촉발한 인물이긴 하지만, 실은 그가 신앙의 자유라는 서구 전통을 확립시킨 것도 아니고, 근대적 개념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교황과 황제에 맞서 저항을 시작한 것도 아니며, 그가 의도적으로 논쟁의 장에 돌진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성공이 전부 루터에게서 직접적으로 비롯하지는 않았어도, 루터 없이도 광범위한 개혁이 일어났을 거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며, 반면에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루터는 이 ‘첫 단추’ 시리즈에 등장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종교개혁은 루터의 상상을 뛰어넘는 혁명이었고, 선대 개혁자들이 의도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나아간 결과들을 근대 사회에 남겼다. 루터는 여러 가지로 모순된 인물처럼 보이는 일화도 많이 남겼다. 수도자였다가 결혼을 했고, 폭력 사용에 반대했다가 용인을 하고, 농민들 편에 섰다가 영주들 편을 들었으며, 고결한 신앙생활을 강조하면서도 자신의 적수들에게는 거친 욕설을 퍼붓는 등, 루터의 이러한 모순은 종교개혁에도 그대로 반영되었고, 종교개혁을 두고 엇갈린 평가가 이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루터 자신이 복잡한 인물이었으며 그가 살았던 시대 또한 종잡을 수 없는 격변의 시기였다. 그런 모순들을 넘어서 오늘날 루터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는, 진정한 종교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일 것이다. 루터의 유산 중 가장 훌륭한 부분은 근본주의를 멀리한 것과, 종교란 다만 신들을 달래어 그들의 호의를 얻는 수단이 아니라 이 세상과 세상에 필요한 것들을 이기적인 욕망들보다 우위에 둘 것을 항시 상기시켜주는 것이라 주장한 점이다. (200쪽-201쪽) ※ 이 책은 2016년 뿌리와이파리에서 출간한 ‘그리스도교를 만든 3인의 사상가’ 『마르틴 루터 -그리스도교 개혁의 기수』로 일부 오류를 수정하여 재출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