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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서론 1 행하기, 느끼기 그리고 생각하기 2 인지노동의 성별 분업 3 “성별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인 것 같아요” 4 성별에 따른 투자, 성별에 따른 활용 5 비전통적인 경로들 6 “당신들 중 누가 ‘여성’인가?” 결론 감사의 글 방법론에 관한 부록 주 참고문헌 |
Allison Dam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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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슈의 가사 기여도가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남성 대다수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사실은 주목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나 가사와 육아에 쓴 시간의 양만으로는 가정 내에서 매슈와 재키가 어떻게 함께 일하는지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이 집에서 수행되는 다수의 인지노동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인지적 가사노동이란 가족의 필요와 요구가 무엇인지, 가족이 가족 외부의 타인과 사회에 대해 어떤 의무를 지는지, 그러한 가족의 필요와 의무가 충족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수행되는 일련의 사고 과정이다. 이러한 사고 과정은 주로 가족구성원의 욕구를 예상하고, 그 욕구를 충족할 방안을 확인하며, 선택한 방안의 실행 방식을 결정하고, 사후 결과를 확인하고 처리하는 형태를 취한다. 매슈가 야채와 고기를 볶고 청소기를 돌리는 동안에도 재키의 머리는 돌아가고 있다.
--- p.12 그들은 인지노동 활동들을 쉽게 하거나 어렵게 하는 것은 성별과 무관한 개인의 본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여성은 우연히 더 조직적이며 미래지향적이고, 남성은 그저 우연히 더 산만하고 현재에 더 집중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살펴보면 이러한 설명은 성립될 수 없다. 탁월한 인지노동 능력은 타고난 역량이기도 하지만 습득된 기술이기도 하다. 나는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힘들이 어떻게 여성을 몰아가서 가정이란 맥락에서 그러한 기술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하는지 밝혀 보이고자 한다. --- p.19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그것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우리의 문화적 강박은, 초인 유형 여성에게 갑자기 즉흥성을 수용하라거나 허당 유형 남성에게 두세 수 앞을 내다보며 계획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비합리적이라고 느끼게 만든다. 인지노동의 배분을 학습된 기술이 아니라 타고난 자질의 결과로 이해하는 방식은, 커플들이 자신들의 이상과 어긋나는 관계 패턴에 갇혀 있도록 만드는 데 일조했다. --- p.31 “이제 목록까지 쥐여 줬는데도 왜 당신 눈에는 안 보이는 거지? 그래서 저는 그냥 목록을 버렸어요.” 콜린의 마지막 말은 밑줄을 그어 강조할 만하다. 남편이 바닥에 방치된 공기 주입기 같은 것들을 보지 못한다는 콜린의 확신은 그녀의 좌절을 누그러뜨렸다. 만약 그가 할 일을 선제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게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다면” 그의 한계 때문에 그를 비난하는 건 공정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손에 목록이 들려 있을 때는 이러한 이해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 그때부터는 남편이 일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기질 때문이라기보다는 노력의 실패로 보였다. 콜린에게는 기질을 탓하는 게 마음이 더 편했다. _156~157쪽 그녀는 “계획자”로 행동했는데, 랜들의 표현대로라면 “작업반장” 역할이었다. 캐시는 자신을 “통제광”이라고 하면서 남편 랜들에 대해서는 사랑스럽게 “엉망”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농담 삼아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일생에 걸쳐 거둔 성공은 전부 할 일 목록을 기초로 한 거예요. 늘 랜들한테 농담처럼 말해요. ‘내가 죽으면 당신은 곧바로 다시 결혼해야 해.’ 저는 그 사실을 알 수도 없겠지만. 왜냐면 한 사람이 그 많은 것을 다 관리하는 게 수월하니까요. 예산을 짜고 공과금을 납부하고 하는 그 모든 일을 제가 하나의 과학으로 줄여놓아서 남편도 마음을 놓게 됐죠.” --- p.167 대부분의 영역에서 그러하듯이 정신 사용 영역에서도 실천이 완벽을 만든다. 인지노동을 함으로써 인지노동을 잘하게 된다. 여성 주도 커플에 속한 레아 같은 여성은 더 일찍, 더 일관되게 시간과 에너지를 써서, 인지적 가사노동을 완수하는 데 도움이 되는 관계를 구축하고 지식(예를 들어 발달단계에 따라 아기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관리하는 법)을 축적했다. 그 결과 여성의 역량은 더욱 커졌고, 이는 여성이 계속 집안일을 책임지도록 장려했다. 마테오가 표현한 대로 여성이 “모든 지식을 다 갖고 있을” 때, 인지노동의 재배분은 불가능하거나 무분별한 일로 보인다. 반대로 남성은 상대적으로 그러한 투자에 덜 참여했기 때문에 역량 역시 더 제한적이었고, 이는 다시 그들이 집안일에서 계속 부차적인 역할에 머무르는 것을 정당화했다. --- p.175 응답자들은 육체적인 집안일은 번갈아 할 수 있었지만 인지적 과업에서는 균형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육체적인 집안일에도 기술과 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기술은 관계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지 않고, 지역의 육아 환경에 대한 깊은 이해에도 덜 의존하기 때문에, 한 파트너에게서 다른 파트너에게로 비교적 쉽게 넘겨질 수 있었다. 누군가가 아기에게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보디수트를 입히는 걸 보고 몇 차례 연습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 일을 어렵지 않게 하게 된다. 반면 많은 인지적 과업을 효율적으로 완수하는 데 필요한 지식은 요약하고 흡수하기가 더 어렵다. 이는 응답자들이 파트너들 사이의 능력 격차를 매울 수 없이 크게 느끼는 이유가 된다. --- p.176 겉으로는 모성적 ‘문지기 행동(남성의 육아 참여 기회를 통제하거나 제한하는 행동)’처럼 보이는 것들의 상당수는, 집안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결과를 자신이 불균형하게 떠안게 될 것이라는 여성들의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여성이 가정 생활에 필요한 기술과 인간관계에 투자하는 것은 어느 정도 자기방어를 위한 시도였다. _183~184쪽 문제는 집안 문제들을 예측하거나 한 프로젝트를 끝까지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던 바로 그 남자들이, 직장에서는 바로 그런 능력을 필요로 하는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자주 이야기했다는 사실이다. --- p.189 남성 주도 커플의 여성 파트너인 섀넌 또한 서비스 제공자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 아이들의 치과 진료를 담당하고, 예약 알림 메시지를 받는 쪽은 남편 리처드였다. 그런데 리처드가 업무상 갈등이 생겨서 섀넌이 대신 아들을 데리고 치과에 간 날, 그녀는 거기서 꾸지람을 들었다고 느꼈다. “리처드가 치과에서 보낸 메시지 한 개를 놓쳤는데, 우리 아들이 치과 오기 전에 뭘 먹으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치과의사가 이러는 거예요. ‘아무것도 먹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러고는 ‘어머님이 메시지를 챙기셔야 하지 않겠어요?’라더군요. 정말 무례해요.” --- p.214 더욱이 이들은 ‘평등’을 좋은 것으로, ‘불평등’을 나쁜 것으로 여기는 손쉬운 이분법적 사고에 문제를 제기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공유 커플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수집한 자료들은 인지노동 공유 정도와 만족도 사이에 약간 더 복잡한 관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아네트와 크레이그의 경우, 인지노동 공유는 그들의 상호 존중과 가정생활에 대한 공동의 투자를 반영하는 듯했다. 그러나 다른 공유 커플의 경우에는 같은 행동이 서로 권위를 차지하려 다투는 듯한 적대적인 기운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 p.221 레슬리와 카트리나는 자신을 묘사할 때 ‘부치’나 ‘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여성 모두 고정관념상으로 레슬리가 좀 더 남성적인 사람이고 카트리나가 좀 더 여성적인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구분은 다소 이례적인 것이었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응답자가 자신과 파트너가 비슷한 젠더 표현을 한다는 점을 굳이 강조했다. 또한 여성 동성 커플 가운데 부치와 펨 역학을 어느 정도 나타나는 경우에도, 펨 파트너가 반드시 인지노동을 주도하는 것은 아니었다. --- p.251 개별 가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인지노동 불평등이 주로 개별 가족에 의해 만들어지는 문제라고 보아서도 안 된다. 우리는 또한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생계부양자 한 명과 가사 전담자 한 명의 가족 모델을 전제로 설계된 사회 정책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미래를 불안해 하고 걱정하게 만드는 만연한 불평등 역시 주목해야 한다. 또한 남성과 여성을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본질적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서로 다른 존재로 묘사하고 ‘성격’을 사회적이고 가변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고정된 것으로 기술하는 문화적 메시지들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 p.294 모순적이게도, ‘여성 역량 강화’를 내세우는 메시지들조차 미묘하게 성별 차이의 관념을 강화하고 초인 여성과 허당 남성이라는 전형을 강조할 수 있다. 이런 메시지들은 표면적으로는 여성을 치켜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정에서 여성을 관리자로, 남성을 서투른 보조자로 설정하는 문화적 구조에 일조하기도 한다. 성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문화적 산물들조차 의도치 않게 본질주의적 사고를 지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의 개별성과 개인의 본연성을 널리, 그리고 거의 의심 없이 찬양하는 문화는 ‘우리가 누구인가’가 사회적으로 매개된 구성물이 아니라 고정된 사실이라는 생각을 강화하는 데 일조한다. --- p.300 인지노동은 반복적인 실천을 통해 길러지는 기술과 역량에 바탕을 둔다. 따라서 역할을 재배분하려면, 처음에는 관련 지식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가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관계까지도 옮겨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수년에 걸쳐 벌어진 역량의 격차가 하루아침에 좁혀지기는 어렵다. 한동안은 비효율도 감수해야 한다. 아마도 그 일을 늘 해오던 사람이 계속 맡는 편이 더 빠를 테지만, 당신이 이미 이 단계까지 왔다면, 공정성이나 두 사람 모두의 정신 건강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 역시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이미 인정했을 것이다. --- p.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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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층 진일보한 여성주의 교과서의 등장” _정희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작가, 여성학 박사
“여성들이 잃어버린 양말과 더러운 접시 같은 일상의 걱정에 짓눌려 있는 상황이 왜 모두의 문제인지 보여주는 책” _『사이언스』 서평 “머릿속 노동의 불균형을 인식하고 그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하는지 이해하며 이를 바로잡기 위한 실질적인 단서를 제시한다. 온 가족이 읽기에 완벽한 책” _『뉴 사이언티스트』 ‘평등한 우리 집’에서 왜 꼭 한 명은 ‘통제광’이 될까? 기억하기, 계획하기, 챙기기… 쉬는 중에도 다음 일을 계산하는 ‘머릿속 노동’의 불균형을 탐구한다! 1999년 한국에서 처음 생활시간조사가 실시되었을 당시, 기혼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남성의 약 7.5배에 달했다(270분 대 36분). 20년 뒤인 2019년에는 그 격차가 약 3.5배로 줄었다(225분 대 64분). 평등한 가사노동 분담으로 향하는 고무적인 흐름으로 보였다. 적어도 여성들은 자신의 어머니보다는 더 나은 환경에 있다고, 남성들은 자신의 아버지보다 가사노동에 더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고 느꼈다.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가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사노동의 기계화와 서비스화가 확산되면서 가사노동의 부담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의아하다. “집안일은 함께하는데, 왜 내 머릿속만 이렇게 바쁠까?” 함께 청소하고 설거지하며 아이를 돌보지만, 가족을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일을 기억하고, 예측하고, 계획하고, 조율하는 일은 여전히 한 사람에게 치우쳐 있다. 그런 한편, 학교 알림장 앱과 학부모 단체 대화방, 병원 예약, 체험학습 신청, 각종 일정 관리 등 갈수록 늘어나는 조율과 관리의 요구, 그리고 크게 확대된 상품·서비스의 선택지는 현대의 가족생활에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머릿속 노동’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 책은 육체적 가사노동이 줄어드는 동안 인지적 가사노동은 더 복잡해지고 늘어난 현실을 포착하며, 그동안 제대로 가시화되지 않았던 인지노동 불평등에 관한 사회학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연다. 자녀를 양육하는 이성애·퀴어 부모 172명을 심층 인터뷰하여 각 가정의 가사노동 분담 양상과 그들 각자가 이를 설명하는 방식을 조사한다. 그 결과 저자는 커플 대부분이 그들의 가사노동 분담 양상이 평등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육아·돌봄 관련 육체적 가사노동과 인지적 가사노동에 있어서 특히 뚜렷한 성별화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한 축으로는 ‘시간 사용’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노동 측정 방식에 인지노동이 포섭되지 않는 문제를, 다른 한 축으로는 가사노동의 성별화를 은폐하는 뿌리 깊은 문화적 각본들을 짚으며 이 책은 “성차별이 젠더 갈등으로 둔갑한 시대”(추천의 말)에 사라지는 대신 가려지게 된 ‘인지노동의 성별화’ 문제를 새롭게 대두한다. “성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예요” 인지노동 불평등을 가리는 문화적 각본들 책에 등장하는 이성애 커플 중에는 여성이 인지노동을 주도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들은 대체로 계획과 체계 조직, 관리에 능한 ‘초인’ 유형 여성과 계획과 조직화에 서툰 ‘허당’ 유형 남성의 관계 역학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 여성들은 자신의 인지노동 부담을 성별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143쪽)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즉, 인지노동의 불평등은 다수의 인지노동이 ‘여성의 일’이고 나머지가 ‘남성의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 내가 계획을 잘하는 사람이라서’, ‘파트너는 원래 그런 걸 잘 못해서’ 각자의 성향에 맞게 분담하기에 벌어지는 상황일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성격 본질주의’적 설명은 언뜻 성차별과 무관한 설명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성별화된 불평등을 효과적으로 감추는 문화적 각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나다운’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믿는 순간에도, 사실 우리는 성별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30쪽). 다시 말해, 자아가 가정 내 관계 역학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 내 관계 역학, 역할 수행 들이 축적되며 자아가 만들어지고 강화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개인의 성격은 타고난 것이며 쉽게 바뀔 수 없다는 믿음은 이러한 불평등한 분담을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며, 갈등을 봉합하는 동시에 변화를 가로막기도 한다는 점도 짚는다. 경제학은 이와는 또 다른 설명을 제시한다. 소득이 적거나 유급노동시간이 짧은 사람이 가사와 돌봄을 더 많이 맡는 경향이 있고, 이는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 역시 이러한 요인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도 미처 설명되지 않는 사례들에 주목한다. 여성의 소득이 더 많거나 노동시간이 더 긴 경우에도 인지노동은 여전히 여성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직장에서의 유능함이 가정에서도 ‘더 잘할 사람’이라는 기대를 낳아 인지노동을 더욱 떠맡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일부 남성은 직업적 성취가 상대적으로 뚜렷하지 않을수록 가정에서 전통적인 성 역할을 더욱 고수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 책은 성격도, 경제적 효율성도 인지노동의 성별화된 불평등을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비춘다. 인지노동의 불평등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누가 가족의 문제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길러지는가와 관련된 문제이며, 그 과정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성별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신 사용 양상을 개인의 타고난 특성과 연결하면, 학습을 통해 익힌 기술과 갈고닦은 역량이 한 사람의 인지노동 능력을 길러내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놓치게 된다. … 여성이 교사와 관계를 형성하거나 젖을 떼는 가장 좋은 방법을 책에서 찾아보는 일에 투자할 때, 그들은 이를 본능처럼 보이게 하는 역량을 연마하는 셈이다. 남성이 직장에서 문제 해결과 계획 작성들의 기술을 활용할 때, 그들은 똑같은 기술이 집에서도 유용하리라는 걸 인식하지 못한다. 이러한 ‘선택들’은 오직 부분적으로만 개인적이다. _4. 〈성별에 따른 투자, 성별에 따른 활용〉 중에서 “누가 ‘여자’ 역할인가요?” 퀴어 커플을 통해 바라보는 ‘성격’의 사회학 “모두가 저희에게 결혼식 준비를 어떻게 분담할 거냐고 물었어요. 마치 둘 중 한 사람이 그 모든 일을 다 맡을 거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처럼요. ‘두 사람 다 여자라면서? 그럼 둘 중 누가 ‘여자 역할’을 하는 거야?’라는 물음이 깔려 있는 거죠. 제 대답은 둘 다라는 거예요.” 올가는 이성 커플의 불평등한 관계 역학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집안의 인지노동 “대부분”을 자신이 담당한다고 말했을 때 다소 놀랐다. …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던 시점, 안드레아는 출산휴가가 끝나가고 있었고 업무에 얼른 복귀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기를 돌보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던 탓에 심각한 산후우울증을 겪은 뒤 이제 회복 중이었다. 올가는 안드레아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노력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첫 3개월 동안 제가 혼자 책임질 수 있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제가 했어요.” 올가가 설명했다. _6 〈“당신들 중 누가 ‘여성’인가?”〉 중에서 흥미롭게도 퀴어 커플에서도 인지노동의 불평등은 흔했다. 그러나 이들이 스스로 불평등 양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이성애 커플과는 달랐다. 이성애 커플은 대체로 ‘원래 내가 더 계획적인 사람이라서’, ‘파트너는 원래 그런 걸 잘 못해서’라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설명했다면, 퀴어 커플 역시 각 파트너의 성향을 언급했지만 그것을 훨씬 유연하고 덜 본질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은 계획과 관리를 한 사람이 더 잘하지만, 상황이나 조건이 달라지면 다른 사람도 이를 충분히 익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이들에게 성격은 타고난 기질이라기보다 상황과 조건의 반영, 현재까지 축적된 경험과 역량의 결과에 가까웠다. 이러한 차이를 통해 저자는 이성애 커플에서 ‘성격’이라고 불리던 것의 실체를 더 선명하게 포착한다. 결국 이 책이 독자에게 건네는 질문은 단순히 누가 인지노동을 더 많이 하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인지노동을 잘하고 못하는 사람은 정말 그렇게 태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하는 것에 가깝다. 저자는 후자에 맞닿아 있는 답을 내놓는다. 사람들은 가정과 직장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각기 다른 기술과 관계를 쌓기 위해 노력하며, 그러한 기술과 관계를 맺는 방식과 기반은 사회·문화적으로 촘촘하게 성별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가운데에서 이뤄지는 노력과 수행 들이 남성과 여성의 인지노동 역량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본다. 이를테면 직업과 육아를 병행하는 과정에서 동네 부모들과 관계를 맺고 품앗이 돌봄을 조직하거나, 학교·병원·돌봄 기관과 지속적으로 소통한 경험은 인지노동을 수행하는 중요한 역량과 기반이 된다. 이러한 관계와 경험은 여성들에게 훨씬 더 빈번하고 수월하게 축적되는 반면, 남성들은 직장에서 발휘하는 계획과 조율 능력을 가정에서 충분히 활용하거나 발전시킬 기회를 상대적으로 적게 갖는다. 물론 개인의 성향이 이러한 성별화된 기반들과 상호작용하며 역량의 범위를 넓히거나 제한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보다 더 강력한 것은 사회적 맥락이라고 말한다. 집안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엄마와 아빠 중 누구에게 책임을 묻는지, 학교와 병원은 누구를 주 양육자로 전제하는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누구에게 더 높은 돌봄 기준을 요구하는지와 같은 사회적 기대가 여성으로 하여금 가정 운영에 필요한 기술을 쌓고 인간관계를 맺는 데에 더 많이 투자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축적된 행동은 어느 순간 이들을 ‘원래부터 꼼꼼한 사람’, ‘타고나길 계획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이며, 누가 될 수 있는가” 관계를 다시 쓰는 언어들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는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남성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무능력을 무기 삼는 악당으로 일축하거나 여성을 자신의 포부를 너무 쉽게 포기하는 사람으로 치부”(200쪽)하는 책도 아니고, 모든 커플이 인지노동을 기계적으로 반씩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도 아니다. 이 책이 지향하는 미래는 성별이 인지노동 분담 양상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지 않는 사회다. 각자의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맞는 분담 양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이 책은 무엇보다 먼저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고 이야기할 언어를 제안한다. 그래서 이 책은 무엇보다도 실용적이다. 가족의 일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인터뷰는 독자로 하여금 이 문제를 곧바로 ‘우리 집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한다. 막연한 피로와 답답함으로만 남아 있던 경험은 비로소 이름을 갖게 되고, 말하기 어려웠던 갈등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문제가 된다. 저자는 인지노동의 불평등을 개인의 성격이나 선의의 부족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문화적 기대 속에서 이해할 때에만 관계 역시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변화는 커플 사이의 대화에서 시작되겠지만, 이 책은 거기에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결론〉에서 저자는 인지노동을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으로 남겨두는 제도와 문화까지 시야를 넓힌다. 학교는 학부모가 수시로 공지와 알림장을 확인해야 하는 방식 대신 예측 가능한 일정과 명확한 소통 체계를 마련할 수 있고, 직장은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을 줄이고 업무량을 미리 공유함으로써 가족이 돌봄을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할 수 있다. 관리자들이 돌봄 친화적 제도를 사용하는 직원에게 낙인을 찍지 않도록 교육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더 나아가 공적 기관과 미디어는 돌봄과 인지노동을 특정 성별의 ‘천성’과 연결해온 오래된 고정관념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인지노동의 평등한 분배는 결국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가족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지원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가시화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노동인 동시에, 그 노동을 둘러싸고 형성된 우리의 자아 감각이다. 저자가 말하는 평등한 인지노동은 단순히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누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이며, 누가 될 수 있는지”(45쪽)에 대한 오래된 믿음을 다시 구성하는 과정이다. 마찬가지로 학교와 직장, 공공제도가 가족에게 떠넘겨온 인지 부담을 다시 설계하는 일 역시 그러한 변화의 일부다. 모든 커플이 인지노동을 50 대 50으로 나누게 되는 것이 나의 목표는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좋게 들리겠지만, 실제적으로는 개인과 커플을 특징짓는 믿을 수 없이 다양한 환경, 기호, 기술, 신념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오히려 나는 각 커플이 그들의 이상과 실제 인지노동 분업을 조화롭게 일치시키는 미래를 꿈꾼다. 다시 말하자면, 성별이 인지노동 양상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꿈의 세계에는 여성 주도 커플만큼 남성 주도 커플도 많을 것이다. 또한 가정 내 인지노동 자체가 전반적으로 더 적은 발자국을 남길 것이다. 다시 말해, 가정생활을 꾸려가는 것이 정신적으로 그렇게 고되지 않을 것이다. _〈결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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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 이슈는 자본주의 사회의 재생산 문제부터 돌봄 이론까지, 인간의 삶 전반을 아우르는 매우 중요한 의제이다. 두 사람 이상이 모여 생활하면 필연적으로 노동이 발생한다. 때문에 가사노동은 젠더를 ‘넘어서는’ 인간의 조건이지만 동시에 젠더 관점으로 분석할 때 가장 설득력을 가진다. 왜일까?
오늘날 성별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고, 지하로 숨어들어서 인식하고 맞서 싸우기가 더 어려워졌다. 여성의 지위는 당대 남성의 지위와 비교되지 않고 과거 여성의 지위와 비교되어, 사람들은 ‘여성의 상황이 나아졌다’고 말한다. 당대 한국 사회의 일부 시민들은 성차별의 실제를 부정한다. 심지어 ‘여성 우위’시대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이들의 논리 중의 하나는 ‘우리 집은 엄마가(아내가) 왕’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번역’하면,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과 노동이 많다는 의미다. 공사 영역에 걸친 여성의 이중, 삼중 노동이 왜 ‘여성의 목소리가 크다, 남성이 억압받고 있다’는 사고방식으로 연결될까.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는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다. 성차별이 젠더 갈등으로 둔갑한 이 시대에 필수적인 책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우리를 일깨우고 위로하고 힘을 준다. ‘나의 좋은 남성 파트너’들이 모두 이 책에서 분석되고 있다. 이 책은 가사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을 기존의 기계적 분담 논리에서, ‘가사와 육아가 누구의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동시킨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대개 가사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이들 남성들은 가사노동을 평생 ‘머리에 이고’ 살지는 않는다. 반면 여성은 여전히 치약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기가 식전에 먹어야 할 간식은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 집에 남아 있는 우유의 유통 기한은 언제까지인지를 기억하고, 때로는 가사 도우미와 협상도 해야 한다. 여성들은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에서 울리는 이 ‘알람 소리’에 시달린다. 남성들은 그렇지 않다. 남편들은 가사에 ‘참여하되’ 생각하기를 거부한다. “그냥 아내가 시키기만 했으면 좋겠어요” “나도 ‘돕고’ 싶어. 그냥 나한테 명령만 하면 안 될까?” 남편들은 굴복하는 척하면서 파트너에게 더 많은 노동을 자연스럽게 떠넘긴다. 왜 남성에게는 가사노동이 ‘보이지 않을까’ 이 책은 이러한 남성의 태도를 ‘전략적’이라고 본다. ‘무기화된’ 무능력이라는 것이다(공적 영역에서는 이러한 태도를 가진 남성이 도태되겠지만 가정에서는 부인에게 복종하는 ‘좋은’ 남편으로 간주된다!). 남성들은 자신이 가사노동에 서투른 모습을 반복적으로 증명함으로써, 가사 책임을 회피한다. 그리고 여성들은 보통 자기 남편의 ‘무능력’을 남편의 비겁함보다는 그의 천성 탓으로 돌리곤 한다. 오늘날 가시화되지 않은 가사노동 시간은 더 늘었다. 이 책은 인지노동이라는 개념으로 가사노동을 조직하고, 정리하고, 인식하는 데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는지, 얼마나 많은 감정노동을 하는지를 이성애 커플, 퀴어 커플을 망라하여 심층 인터뷰의 진수를 보여준다. 흥미진진하고 기시감에 무릎을 치게 만든다. 단숨에 읽힌다. 한층 진일보한 여성주의 ‘교과서’의 등장이다. 너무 중요한 책이다. - 정희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여성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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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잃어버린 양말과 더러운 접시 같은 일상의 걱정에 짓눌려 있는 상황이 왜 모두의 문제인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머릿속 노동'을 논의의 중심에 놓아야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 리어 러패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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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노동이라는, 우리 모두가 수행하지만 이름조차 붙이지 못했던 중요한 가사노동을 밝혀낸 획기적인 연구. 가사노동에서 '머릿속 노동'을 이해하지 않는 한 성평등은 요원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벌써부터 고전이 될 책처럼 느껴진다. - 케이틀린 콜린스 (『Making Motherhood Work』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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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제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커플이 의미 있는 대화를 시작하고 더 공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해법까지 제시한다. 머릿속 노동을,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떠맡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새롭게 보게 만드는 책. - 이브 로드스키 (『페어 플레이 프로젝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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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 노동의 불균형을 인식하고, 그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하는지 파악하며, 이를 바로잡을 방법을 제시하는 설득력 있는 책. - 뉴사이언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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