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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1. 존경받는 바리새인 가말리엘 2. 할례 논쟁 3. 유월절 어린 양 4. 주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라 5. 세례요한 6. 마리아와 요셉 7. 예수의 동생 야고보 부록: 시편 119편의 오해를 바로잡음 맺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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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저자의 말대로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왔고’, ‘주를 위해 예비된 백성이 준비되었다면’, 또 예수의 말대로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면’ 한 가지는 분명하지 않을까?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서 죽지 않았을 것이다. 유대 민족이 예수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 하는 일은 결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복음서가 묘사한 대로 유대 민족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일은 결코 발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엘리야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온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이, 주를 위해 예비된 그 백성이 메시아 예수를 그렇게 죽도록 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합리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세례요한이 이룬 게 무엇인가, 그가 예수를 위해 미리 준비한 것이 무엇인가? --- 「5장: 세례요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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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를 찾아서를' 읽으면서 난 신약성경의 주인공 '예수'와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살았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떠올랐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남긴 글이 없다. '소크라테스 자신과 생애, 철학에 대한 지식은 그의 제자들과 당대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그래서 역사가들은 소크라테스의 삶과 업적에 대하여 정확하고 일관성 있는 역사를 쓰기 위해 당대 인물들이 쓴 여러 사료들을 일치시켜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반드시 사실적이지는 않으며 다만 일관성을 갖추었을 따름이다.' '야고보를 찾아서'가 내게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신약성경이, 특히 복음서가 아무 글도 남기지 않은 소크라테스의 역사를 추적 기록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도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으니 복음서 저자들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복음서는 예수의 죽음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증인들마저 죽고 없을 때 저술한 것이다.?그래서 사실성이란 전제는 비가역적 상황인 것은 확연하고.?그렇다면 좀 더 정확한 역사를 쓰기 위해 '일관성을 갖추었는가?'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복음서 저자는 예수를 인류 전체의 구세주라는 확실한 목적으로 서술했고 그것이 그들이 가진 '특별한 목적을 위한 일관성'이다.그러다보니 당시의 시대적 상황, 특히 1세기 로마 제국의 폭압적 지배 아래 있던 유대 땅과의 괴리가 발생했다. 그 점에서 '야고보를 찾아서'의 저자는 복음서 저자들의 '특별한 일관성'에 현미경을 갖다 댄다. 그리고 저자는 예수를 철저하게 1세기 유대인으로 파악하고 이 책을 써내려갔다. 그게 저자가 가진 예수에 대한 '일관성'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가 더 설득력 있을까? 복음서일까??아니면 그로부터 무려 이천 년이 지난 지금 쓰인 '야고보를 찾아서'일까? 기독교인에게 내 질문은 일고의 여지도 없을 것이다. 감히 성령이 썼다는 성경과 일개 인간의 글을 비교하다니... 그러나 기독교인이 아닌 나는 다행히 그 부분에서 자유롭다.무엇이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가 하는 기준으로만 판단하면 된다. 보다 많은 기독교인이 '야고보를 찾아서' 책 속으로 들어가 색다른 여행을 해보길 바란다.?잠시라도 교리라는 도그마를 버리고 시간 여행자가 되어 진실의 문 앞에 도달해보길 바란다.?저자의 말 그대로 그건 매우 흥미로운 여행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