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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편지 / 밥 밥이 당신이고 밥이 아기입니다
두 번째 편지 / 씨 저 아득한 처음의 씨로부터 이어진 생명 세 번째 편지 / 별 우리는 모두 별들의 부스러기입니다 네 번째 편지 / 봄 봄은 돌봄입니다 다섯 번째 편지 / 물 물 한 모금도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여섯 번째 편지 / 불 당신은 생명의 불씨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 편지 / 흙 흙을 닮은 엄마가 되어요 여덟 번째 편지 / 바람 넘치는 곳에서 모자란 곳으로 바람처럼 그렇게 아홉 번째 편지 / 나무 ‘아기 나무’를 만들어 보세요 열 번째 편지 / 잠 아기는 자면서도 당신을 느낍니다 열한 번째 편지 / 몸 아기는 지금도 스스로 몸을 만들고 있어요 열두 번째 편지 / 숨 우리는 우주와 하나로 연결된 목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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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너에게 쓰는 첫 편지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무슨 이야기부터 할까. 그래, 네가 엄마 몸속에 깃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부터 알려 줄게. “고맙습니다!” 누구에게든 상관없이 엄마는 먼저 감사 기도를 올렸단다. 그리고 들뜬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네 소식을 알렸지.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뛰어. 그리고 나서부터 엄마에게는 밥을 먹는 일이 아주 중요해졌단다. 내가 먹는 밥이 우리 아기가 되는구나. 엄마가 먹는 밥 한 술, 물 한 모금이 너의 피와 살과 뼈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깨달은 거야.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엄마 온몸의 기운들이 배 속 깊은 따스한 곳에 자리 잡은 너에게 쏠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니까. 온 마음이 너를 위해 온전히 힘쓰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엄마는 오늘 먹는 밥 한 그릇에 고마워한단다.
- 첫 번째 편지 ‘밥’|아가에게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에는 3,000~4,000개의 쌀알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벼 세 포기에서 나오는 낟알의 수라고 해요. 논에서 이 벼 세 포기가 자라는 공간에는 물벼룩 5,093마리, 투구새우 4마리, 올챙이 35마리, 풍년새우 11마리 등 무수한 생명들이 함께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쓰지 않는 건강한 논에서 말이죠. 논에 사는 뭇 생명들과 함께 햇볕과 별빛, 바람과 비를 공유하며 자라난 벼를 생각하면 ‘밥 한 그릇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는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세상을 다시 배워 가는 일이랍니다. 늘 먹던 밥 한 그릇에서부터 말이죠. - 첫 번째 편지 ‘밥’|엄마에게 우리가 바다에서 왔다는 것은 고래를 보면 알 수 있단다. 고래와 우리는 아주 가까운 친척이거든. 고래는 사람들이 아기를 낳는 것처럼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기른단다. 물고기들이 알을 낳는 것과는 사뭇 다르지. 아가야, 엄마 몸속에 샘물처럼 솟아난 물이 어느 순간 네가 헤엄칠 수 있는 작은 바다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참 신기하구나. 엄마의 바다, 이렇게 불러만 보아도 기분이 참 좋아지는 말이야. 그래서 엄마는 자랑하고 싶단다. “보세요. 공처럼 부풀어 오른 제 배 속에 바다가 있어요. 우리 아기가 고래처럼 헤엄치고 있어요. 제 몸 안에 물의 나라가 있거든요.” - 다섯 번째 편지 ‘물’|아가에게 사실 “우리는 물이다!”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에요. 심지어 아기는 수정란 상태일 때 99%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지요. 그러니 아직 배 속에 있는 아기를 직접 느껴 보고 싶다면 생명이 살아 있는 물을 만나 보세요. 깊은 산 속 옹달샘을 찾기 어렵다면 야트막한 시냇물에라도 직접 손과 발을 담가 보세요. 송사리가 헤엄치고 물풀이 숨을 쉬는 냇물이 손가락 발가락 사이로 흘러가는 것을 느끼며 아기에게 말해 보세요. “아가, 우리는 모두 물이란다!” - 다섯 번째 편지 ‘물’|엄마에게 생명을 가진 씨앗 하나가 자라서 우리 아기의 살이 되고 피가 되고 뼈가 되고, 머리와 가슴, 배, 팔과 다리를 만들지. 또 예쁜 너의 얼굴에는 세상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이야기할 수 있는 눈과 귀와 코와 입을 만들지. 네 작은 몸속에도 엄마와 아빠처럼 우리 몸에 꼭 필요한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차근차근 만들어지고 있단다. 정말 놀라운 일이지. 모두 네가 한 일이란다. 엄마는 그저 배 속에 방을 만들어 돕고 있을 뿐이야. 그러니 너야말로 세상 누구도 돈을 주고 대신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엄마 배 속에 있는 고작 열 달 동안 완벽한 사람의 몸 하나를 만들어 낸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지, 새삼 놀라고 있단다. - 열한 번째 편지 ‘몸’|아가에게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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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배 속에서 생성되는 건강한 자아
태교에는 태어날 아기가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도록, 그리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간절히 기원하는 부모의 마음이 담긴다. 그렇다면 배 속 아기를 위해 부모가 주어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태아에게까지 조기교육 세례를 퍼붓는 우리의 조급증이 태교의 이름으로 쏟아 내는 책들에서 볼 수 있듯 똑똑한 뇌? 영어 능력? 아니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보배롭고 가치 있는 존재임을 스스로 인식하여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갈 수 있게 하는 자아존중감이다. 그리고 그 자아존중감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의 건강한 관계 맺기에서 생성된다. 이 책 《사랑하는 아가에게》는 새 생명의 의미를 저 아득한 역사로부터 짚어 보고, 온 우주의 축복을 전하며, 생명을 만드는 갖가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배 속 아기가 건강한 자아를 가진 존재로 세상에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자연과 멀어진 생활 탓에 생명의 의미를 실감하기 어려운 엄마들의 생태적 감수성을 일깨움으로써 자연과 새 생명 사이에서 가교가 되도록 이끄는 내용들도 신선하다. 이를테면 ‘불’을 얘기하면서 지은이는 후배 엄마들에게 이렇게 슬쩍 제안한다. “(…)아기를 위한 특별한 촛불 하나쯤은 꼭 준비해 주세요.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도 가끔은 집안의 전깃불을 모두 끄고서 촛불 하나에 의지해 어둠 속에서 조금씩 동공을 열어 보는 일에 익숙해져 보세요. 천천히 또 고요하게 어둠과 친구가 되는 경험을 통해 아기가 엄마 배 속에서 보내는 시간들을 같이 음미해 보는 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재미나고 독특하며 정성이 담뿍 담긴 이미지들 이 책의 참신성은 주제와 내용뿐 아니라 책장을 넘길 때마다 시선을 붙드는 빛그림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들풀과 나뭇잎, 열매, 꽃잎, 나비, 달팽이 등의 자연물을 비롯하여 숟가락, 별사탕, 종이비행기, 곰 인형 등의 사물을 활용하여 열두 가지 주제 글자를 표현한 이미지는 단연 뛰어나다. 주제 글자를 구성하는 사물들을 이끌어 낸 방식은 작가의 의도를 곰곰이 되짚어 보게 하는 의외성과 깊이를 지녔다. 무엇보다 재미나고 아름답고 독특하며 정성이 담뿍 담겨 있다. 이 열두 가지 이미지는 열두 가지 이야기가 담고 있는 추상성을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이야기로 풀어내 주는 역할도 한다. 배 속 아기가 태어나 그림에 눈을 뜨고 언어의 울림에 귀를 쫑긋거리기 시작할 때 이 책을 다시 꺼내 들면 엄마는 밥과 별과 바람과 봄 등등에 대해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이며, 아기는 눈앞에 보이는 재미나고 아름다운 이미지에서 언어를 시각화하는 즐거움을 몸으로 익히게 될 것이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손글씨에 담는 뜻 이 책에는 독자인 부모가 사랑하는 아가에게 편지를 직접 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책에 쓰인 내용을 읽어 주는 태담을 넘어서 직접 편지를 쓰는 행위는 배 속 아가와의 교감을 더욱 깊게 해 줄 것이며, 나아가 엄마 아빠가 손수 쓴 편지는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뜻 깊은 선물이 될 것이다. 훗날 아이가 사춘기 열병을 앓을 때 엄마 아빠의 사랑이 손글씨에 담긴 이 책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을 써야 할지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을 위해서는 ‘아가에게’ 보내는 지은이의 편지 내용을 손글씨로 필사할 수 있도록 궁리해 놓았다. 필사는 그 자체로 정성을 바치는 행위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