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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 해제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저자의 글
명제분류표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 해제 2: 진리함수
인과율에 대한 믿음은 곧 미신이다

사유와 언어(뜻을 지닌 명제, 뜻이 없는 명제) : 4 ~ 4.0031
표상형식(그림형식, 논리형식) : 4.01 ~ 4.032
명제의 뜻과 그 의미 : 4.04 ~ 4.0641
관계와 형식개념 : 4.1 ~ 4.128
요소명제와 그 성격 : 4.2 ~ 4.26
진리 가능치 : 4.27 ~ 4.442
항진명제, 일반명제, 모순명제 : 4.45 ~ 4.5
진리함수 : 4.51 ~ 5.101
논리추론 : 5.11 ~ 5.132
인과율(논리추론과 과학법칙) : 5.133 ~ 5.143
논리와 수학적 확률 : 5.15 ~ 5.156

저자 소개 1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재학 중 프랑스로 유학하여 파리 제3대학에서 서양문화사와 서양철학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미국 예일대학에서 서양예술사(미술사·음악사·문학사)와 수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캐나다 토론토대학 부설의 시각예술대학 교수로 미술사를 강의하면서 새로운 예술사 집필에 대한 포부를 키웠으며, 그때부터 그와 관련한 연구에 몰두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쓴 논문으로는 「Nominalism in Mediaeval Era」, 「Mannerism; Metaphysical Interpretation」, 「고딕; 현상과 이념」 등 30여 편이 있으며, 저서로 『열정적 고전읽기』시리즈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재학 중 프랑스로 유학하여 파리 제3대학에서 서양문화사와 서양철학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미국 예일대학에서 서양예술사(미술사·음악사·문학사)와 수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캐나다 토론토대학 부설의 시각예술대학 교수로 미술사를 강의하면서 새로운 예술사 집필에 대한 포부를 키웠으며, 그때부터 그와 관련한 연구에 몰두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쓴 논문으로는 「Nominalism in Mediaeval Era」, 「Mannerism; Metaphysical Interpretation」, 「고딕; 현상과 이념」 등 30여 편이 있으며, 저서로 『열정적 고전읽기』시리즈(총10권), 『서양예술사; 형이상학적 해명』시리즈(총5권), 『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키치, 달콤한 독약』, 『죽음과 새로운 길』, 『비트겐슈타인 논고 해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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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2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472g | 140*195*30mm
ISBN13
9791186761236

책 속으로

4.01 A proposition is a picture of reality.
명제는 실재의 그림이다.
우리는 그림이론에 대해 살펴봤다. 명제는 실제에 대한 그림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림이라고 할 때에도, 그것은 우리의 규약이다. 즉 가장 자연주의적인 그림이라 할지라도, 그 그림은 세계에 대한 하나의 기호로서 작동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명제도 세계의 기호라는 것, 그림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플레밍의 왼손 법칙과 오른손 법칙, 이것도 전자기에 대한 하나의 그림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실재에 대한 그림과 실재가 서로 공유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것이 실재에 대한 그림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 안에 내재해 있어야 하는 것은 논리, 형식이다. 특히 양쪽의 내적 속성을 공유하거나 내적 관계를 공유한다. 예를 들어 ‘그 개는 뛴다’를 x라고 할 때, ‘그 개는 뛴다’라는 명제함수는 세계에 대한 하나의 그림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개가 뛴다’라는 실재와 ‘개가 뛴다’라고 하는 명제는 서로 내적 속성을 공유한다. 그 내적 속성이 논리다. 만약 그 내적 속성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한다면, 설명할 수 없다. 이 역시 say-show distinction(말해질 수 있는 것-보여야 하는 것)에 대한 구분과 관련되어 있다. 내적 속성은 보여야 하는 것에 해당한다. --- p.23-24

4.022 A proposition shows its sense.
명제는 그것의 의미를 보여준다.
명제가 그 의미를 보여준다는 것은 명제가 스스로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개가 뛴다’고 말하면 어떤 그림이 떠오르는데, 그 그림이 어떻게 떠오르는지에 대해서 누가 물어보면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알지도 못하면서 저절로 어떤 명제의 뜻에 대해 떠올린다. 명제는 뜻을 보여주는 것이지, 명제 스스로가 어떻게 그런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를 스스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명제는 명제 스스로를 포함할 수 없다. 함수도 함수 스스로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또한 수학적 체계는 체계 스스로의 완결성에 대해서 말할 수가 없다. 이것이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이다. 우리는 어떤 시스템을 사용한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해서 그 시스템이 완결되는지, 그 시스템의 가능성의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들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되어 있다. 보여주는 것이다.--- p.39-37

The negating proposition determines a logical place different from that of the proposition which is negated. The negating proposition determines a logical place with the help of the logical place of the proposition which is negated.
부정하는 명제는 논리 장소를 결정짓는다. 부정하게 될, 부정되고 있는 그 명제의 논리 장소와는 다른 것이다.
‘논리 장소’가 다른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까 부정하는 명제는 부정되는 명제의 논리 장소의 도움을 받아서 논리 장소를 결정한다. 우리가 ‘비가 오지 않는다’의 논리 장소, 논리 영역은 반드시 ‘비가 온다’는 명제의 도움을 받아서 알게 된다. ‘비가 온다’가 전제되어야 ‘비가 오지 않는다’가 성립된다. 즉 ~p는 p를 이미 전제로 하고 있다. 부정하게 될 명제(p)의 도움을 받아서 ~p의 논리 장소가 결정된다. 서로 반대되기 때문이다. --- p.81

4.113 Philosophy sets limits to the much disputed sphere of natural science.
철학은 혼란스러운 논란이 많은 자연과학의 영역에 한계를 그어준다.
제일 큰 문제가 이것이다. 실증적인 사실에만 적용되어야 하는 명제를 실증적이지 않은 곳에 들이댄다. 예를 들어 자연과학을 다루는 언어를 신에 대해 사용하고, 윤리와 아름다움, 사랑에 대해 말한다. 철학은 그것에 한계를 긋는다. ‘이것은 명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 것이다. --- p.92

Two propositions are opposed to one another if there is no proposition with a sense, that affirms them both.
그 둘을 긍정시켜주는 유의미한 어떤 명제도 없을 때, 우리는 서로 상반된다고 말한다.
그 명제를 충족시키는 어떤 명제도 없을 때, 만약, 유의미한 두 명제를 충족시키는 명제가 서로 상반된다고 말하고, 그 둘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명제를 긍정한다고 말한다.
둘 다를 긍정해주는, 예를 들어 (p∧q)가 참이 되려면, p도 참이고, q도 참이어야 한다. 이 둘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그런 명제가 없다면, 이 둘은 서로 상반된다고 말한다.

--- p.279

출판사 리뷰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
전문을 최초로 해제하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의 전문 해제는 꿈도 꿀 수 없다고들 한다. 이 책을 편집하며 때때로 구글을 검색해야 했지만 거기에서도 유의미한 참고 자료를 구할 수는 없었다. 구글에 없다면 어디에 있겠는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흥미를 지닌 사람들 혹은 그의 철학을 전공한 모든 철학자가 물론 ‘논고’를 탐구했다. 그러나 논고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해제에 있어 진공상태이다. 특히 결정적인 부분에 있어 그렇다. 여기에서 “난 그렇지 않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이것은 왜일까?
이유는 비트겐슈타인에게도 있고, 또 그의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 쪽에도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얼음처럼 투명하며 날카롭고 차갑다. 그는 단지 골조만으로 그의 철학을 구성한다. 마치 고딕건축물이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하나하나의 구조를 더해나감에 의해 건축되듯이, 그의 철학 역시 하나하나의 견결하고 냉담한 명제만의 중첩에 의해 전개되어 나간다. 거기에는 어떤 군더더기나 살집이 없다. 예증도 물론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물론 전통적인 철학이 다뤄온 모든 주제를 다룬다. 존재론, 인식론, 논리, 윤리학 등. 그러나 그는 골조를 제시하는 가운데 다른 모든 것들을 증발시켜버린다.
이것이 그의 철학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는 구차하지 않다. 읽을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 이해해달라고 애원하지 않는다. 우리를 계도하려는 오만도 없다. 그는 스스로에게만 충실하다. 이러한 냉담함이 오만한 것일까? 많은 사람이 그렇게 느낀다. 그러나 한 명의 편집자로서 많은 책을 접해온 나의 입장에서는 그의 철학의 독창성과 그 제시방식에 두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싶은 심정이다. 얼마나 많은 저자가 독자들에게 치근거리며 끈적대고 아부를 떠는가! 자기를 알아주기를 간원하며. 비트겐슈타인에게는 이런 모습이 없다. 아마도 그의 이러한 귀족적이고 초연한 문체가 그의 철학에 다가가기 어렵게 만든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또한 그의 철학을 우아하고 시적이고 강렬하게 느끼게도 만든 이유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그러나 매우 따뜻한 사람일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우리가 공통으로 겪는 우매한 중생으로서의 운명을 스스럼없이 수용했으니까. 냉소와 차가움은 그 안에 오히려 불길을 숨기고 있으니까.
비트겐슈타인 철학이 난해한 두 번째 이유는 제시되는 어떤 철학적 주제를 이해하는 것은 철학적 탐구에 있어 일차적인 것은 아니다. 일차적인 것은 그 주제가 왜 철학적 주제가 되어야 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쉽다. 이것은 그의 대화편을 몇 개(파이돈이나 심포지움 등의)를 읽으면 충분하다. 그러나 이데아가 왜 철학에 있어 근원적인 주제가 되어야 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어렵다. 철학의 학습과 관련한 이러한 내재적 어려움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있어서는 거의 극단에 이른다. 그는 모든 철학적 주제를 단지 기호와 진리함수로 환원시키기 때문이다.

신이 선택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은 영국 철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논리철학과 언어철학에 대한 가장 독창적이며 중요한 사유체계를 제시했다. 『논리철학논고』를 출간한 이후 학계를 떠나 방랑과 수행생활을 했던 그는 자신의 명제에 오류가 있음을 깨닫고 다시 학계로 돌아왔다. 이때 학계에서는 ‘신이 돌아왔다’라고 표현했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는 출간되자마자 철학계의 판도를 바꾸었다. 이전까지 서양 철학사상을 지배해왔던 ‘의식의 문제’는 비트겐슈타인에 의해 ‘언어의 문제’로 자리바꿈했다. 극도로 간명한 문장으로 제시된 명제들을 통해 진정한 세계의 본질을 사유하기란 쉽지 않다. 이 책은 총 4권으로 기획되어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의 전문을 최초로 해제한다. 또한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중심이 되는 명제분류표를 함께 수록했다. 끊임없이 비트겐슈타인을 탐구해온 저자 조중걸에 의해 재해석되고, 새롭게 비트겐슈타인이 조명되고 있다. 그의 모든 명제를 해석함으로써 비트겐슈타인의 사유방식과 언어의 본질을 통해 세계와 자아의 진정한 모습을 탐구할 수 있다.

그동안 어렵게만 느껴졌던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의 개념을 명확하게 재번역하고, 분석하고 해석하여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해준 저자 조중걸의 역량이 이 책에서 모두 발휘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이 책만큼 훌륭한 책은 지금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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