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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의 표정
정영훈
민음사 201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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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의 비평

책소개

목차

책 머리에

1부 훤화하는 소리
문학의 전통과 비평의 자리
2000년대 비평의 존재 방식
비평 공론장의 꿈
본격문학과 장르문학의 구분을 넘어
윤리의 표정
앓는 시대의 소설과 윤리

2부 윤리의 시험대
나르시시즘의 윤리학―김영하론
윤리의 기원―이승우론
망각하지 못하는 자의 우울―권여선론
부재의 흔적들―한유주론
보르항에 이른 길―이윤기론
속악한 현실을 포회하는 문학의 언어

3부 세속의 신학
역병의 징후와 기우의 윤리학―편혜영 『사육장 쪽으로』
부재를 위한 알리바이―한지혜 『미필적 고의에 관한 보고서』
법 앞에서 ―한지혜 「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재론
어떤 방황, 소수자의 통과의례―김이듬 『블러드 시스터즈』
춤추는 가족, 그리고 이후―안보윤 『우선 멈춤』
욕망의 변증법, 소설을 읽는 세 가지 방법―이승우 『지상의 노래』
불의 신학, 칼의 미학―조성기 『라하트 하헤렙』
전쟁과 기억, 그리고 윤리―전상국 ?남이섬?

저자 소개 1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하여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다. 최인훈 소설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된 이후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윤리’를 키워드로 한 평론들을 다수 발표했고, 계간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을 지냈다. 최근에는 최인훈이 쓴 평문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에 힘을 쏟는 한편, 우리 시대의 문학이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일지 성찰하고 있다. 저서로 『최인훈 소설의 주체성과 글쓰기』, 『윤리의 표정』, 『한평생의 지식』(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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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2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498g | 152*225*30mm
ISBN13
9788937412295

책 속으로

윤리를 이야기하는 비평들도 결국은 이와 같은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윤리라고 명명한 것들은 기실 자기연민에 빠져 스스로를 위로하고 돌보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물론자기를 단장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것을 윤리라 부르는 것이 꼭 잘못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가령 푸코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기원을 갖는 윤리에 논의를 위한 정당한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레비나스가 보기에 예술은 주체를 모든 책임성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는 즐거움의 원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주체는 예술 속에서 타자뿐 아니라 그 자신에 대한 책임성으로부터도 자유로운데, 왜냐하면 예술은 주체를 비인격적 익명적 ‘있음’의 상태, 즉 책임질 수 있는 인격이 없는 상태로 되돌려 놓기 때문이다. 오직 비평만이 타자의 관계라는 윤리적 조망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작품에 인격성을, 주체를 지반으로만 성립 가능 한 책임성을 부여할 수 있다. 레비나스의 이런 생각대로라면 우리의 비평은 비평이 떠맡아야 할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물론 누구나 여기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타자로부터 촉발되고 타자에 의해 매개되며 타자를 향해 반응하고 타자를 책임지는 윤리에 대해 사유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으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 비평은 좀 더 “윤리적 불면”에 시달려도 좋을 것이다. --- p.91~92

자기 고통을 전시할 때 그 고통은 타자로서의 타인의 고통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 최근 소설에 점증하는 고통에 공감하는 대신 우려를 표하게 되는 이유이다. “아무것도 당신을 슬프게 하지 않을 때 불행을 흉내 내는 것이 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가. 그 이유는, 그럼으로써 진정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 자들의 위치를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

--- p.107

출판사 리뷰

책머리에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적인 문제 앞에 문학은 얼마나 무력한지. 하도 자주 인용되어 이제는 너덜너덜해진 옛 문장을 다시 꺼내 읽어 보자면,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그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 준다.”(김현, 『한국문학의 위상』) 문학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지 않느냐고 물어 올 때, 딱히 돌려줄 적당한 말이 없고, 문득 문학의 가난함이 깨우쳐질 때 흔히들 끌어다 쓰는 문장이다. 그런데 이 말은 위안을 줄 수는 있어도 누군가를 설득하는 데는 별로 힘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배고픈 거지가 있다고 쓸 시간에 차라리 배고픈 거지를 구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어 할 것이다. (중략)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런 감각 속에서 내가 문학에 대해 발언하고 작품들에 관해 이야기해 왔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문학이 무력하다는 자각은 문학이 현실 속에서 지닐 수 있는 힘보다 문학을 손에 쥔 대가로 방기해야 했던 것들에 눈길이 가게 했고, 어떻게든 그것들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면서 문학을 하게 했고, 무력함 자체를 조건으로 하는 어떤 문학적 가능성을 타진해 보게 했다. 작품을 읽고, 읽은 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끼적거리면서 ‘윤리’라는 단어를 그토록 자주 써야 했던 것도 사실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윤리에 대한 사유는 이미 마련된 삶의 자세들을 회의하는 데서 오고, 회의는 현실에서 패배한 자들, 무력한 자들에게 어울리는 몸짓이며, 문학은 이들이 들어와 살기에 가장 어울리는 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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