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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Heidegger (1889~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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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하이데거는 이렇게 묻는 것, 즉 철학의 영역에서의 물음과 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유해서 말하면 산을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평지에 가만히 서서 산에 관해서 떠드는 식으로 산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서는 등산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곧바로 올라가기 시작함으로써만 우리는 등반과 등정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등산 중에 산의 정상이 시야에서 사라지지만 우리는 올라감으로써만 정상에 가까이, 더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등산 중에는 뒤나 아래로 미끄러지는 일도 있습니다. 철학을 할 때는 심지어 추락하기까지 합니다. 진정으로 올라가는 사람만이 추락할 수 있습니다. 추락하는 사람들이 정상과 산 그리고 그 험준함을 가장 깊이 있게 경험하고 싶다면, 즉 정상에 겉핥기로 도달해서 곧바로 그 높음을 제거해 평지와 평범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들보다 더 깊이 있게 그리고 더 뛰어나게 경험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편리하게 계산하는 건전한 지성과 건전하다고는 하지만 오래전부터 이미 잘못 길들여져 오도된 ‘본능’의 도움으로는 철학 및 예술에 대해서도 그리고 존재자와의 어떤 창조적인 대결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판단하거나 평가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식자’의 공허한 명민함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창조적인 대결의 독특한 매력은 행함으로써만, 즉 애써 올라감으로써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참됨의 본질에 대한 근본 물음 이 책의 본론의 제목은 “참됨에 대한 물음의 원론”이다. 참됨에 대한 전통 규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부터 유래한다. 그 유래로 되돌아가는 것은 역사적 숙고로, 하이데거는 미래의 것에 대한 역사적 숙고와 과거의 것에 대한 역사기록학적 관찰을 원론적으로 구분한다. 참된 것의 본질인 맞음에 대한 물음은 본질의 참됨에 대한 물음으로, 즉 본질의 본질성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규정에 대한 물음으로 변화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참됨의 본질을 명제의 맞음으로 규정했을 때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은 존재자의 숨김없음(알레테이아)이었다. 그리스인들처럼 생각하면 본질 파악의 “참됨”은 존재자의 무엇임의 숨김없음이고, 존재자의 숨김없음은 존재자의 보임이고 이것은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이다. 존재자를 그 자체로 파악하는 것은 숨기지 않는 것(숨김으로부터 끄집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개별적인 것에 대한 인식은, 즉 사실에 대한 참된 표상은 본질 인식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사실 인식의 참됨도, 다시 말해서 명제의 맞음도 나름대로 본질 인식의 참됨에 근거해야 한다. 맞음(호모이오시스)으로서의 참됨은 숨김없음(알레테이아)으로서의 참됨에 근거한다. 숨김없음은 존재자의 존재성(본질)이 바깥으로 나오면서 이미 시야 속에 있는 것이다. 참됨을 명제의 맞음으로 전제할 때 그 명제의 근거로 가져와 보이면서 받아들여진 것은 알레테이아로서의 참됨이다. 알레테이아, 즉 숨김없음은 존재자가 그 자체로 덮여 있거나 닫혀 있지 않다는 것을, 그러니까 드러나 있다는 것만을 뜻한다. 존재의 드러남은 맞음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로 입증된다. 따라서 그리스인들은 존재자의 숨김없음인 알레테이아를 참된 것의 본래적 본질로 받아들였다. 이미 그리스인들에게 참된 것은 숨김없는 것이었고, 참됨은 존재자의 숨김없음과 같은 것이었다(따라서 그들에게는 명제와 표상이 같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물음의 대상이 아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다만 알레테이아로 시선을 향하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존재자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과 근본 입장을 반영하는 그들의 언어 습관이 로마인들과 그 이후 서양인들의 것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알레테이아는 라틴어 베리타스(veritas)로, 독일어 참됨(Wahrheit)으로 번역되었다. 이런 번역을 통해 명제의 맞음을 참됨으로 파악하는 지금의 확고한 규정이 전해졌다. 동시에 그뿐만 아니라 알레테이아를 베리타스(혹은 독일어 참됨)로 번역한 것을 통해 알레테이아라는, 즉 숨김없음이라는 참됨의 근원적 본질과의 유사점이 모두 파괴되었다. 그 이후 참됨의 본질 규정에 따르면 알레테이아는 명제의 맞음과 같은 것을 뜻한다. 이렇게 번역됨으로써 이전에 그리스인들이 참됨에 대한 근원적 본질로 가져와-보며 경험했던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즉 매몰된 것이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서 있는 곳은 참됨의 역사의 첫 번째 시작의 끝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다른 시작을 준비하기 위해 첫 번째 시작을 역사적으로 숙고해야 한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존재의 참됨 앞에 서서 철학의 근본 물음을 끊임없이 물어간다. 이 책의 형식 본래 하이데거가 강의를 할 때는 장과 절을 구분하지 않았지만, 원서의 편집자인 프리드리히-빌헬름 폰 헤르만은 장과 절을 구분하고 각 부분의 내용을 요약해 장과 절의 제목을 달았다. 하이데거는 매주 강의를 시작할 때 전주의 강의를 요약한 후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한다. 이 책에서는 이런 강의의 요약을 ‘반복’이라고 표기한다. 원서의 편집자가 장, 절을 구분하여 편집함으로써 같은 주의 강의가 장, 절로 나뉘어 있는 점을 감안해 이 책에서는 ‘반복’과 함께 새로운 주의 강의가 시작되는 부분에 역자 부연 괄호를 넣어 ‘[○주차 강의 시작]’이라고 표시하고 ‘반복’ 부분의 서체를 본문과 구분하였다. 장과 절의 구분을 넘어서 이 책을 읽는다면 하이데거의 사유와 물음의 연속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이데거의 강의를 직접 듣는 것과 같은 경험 실제로 이 책의 강의가 이루어진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하이데거의 철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옮긴이는 전 세계가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가기 직전에 존재의 참됨(진리) 앞에 선 한 철학자가 수많은 학생을 상대로 ‘철학의 근본 물음’을 끊임없이 물어가는 강의 분위기를 살려 이 책을 번역하였다. 한국의 독자들은 온전하게 1937-1938년 겨울학기에 프라이부르크대학교의 강의용 건물의 5번 대형 강의실에서 하이데거의 강의를 직접 듣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