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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SF 소설가 윌리엄 깁슨은 리믹스를 21세기를 특징짓는 특성으로 보았다. 리믹스는 디지털 자체의 본질이다. 오늘날 끝없이 재조합되고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과정을 통해 창조적 산물은 무한히 생성된다. 창조적 산물이라는 말 역시 또 다른 구식 용어에 불과하다. 부틀렉, 리믹스, 매시업과 같은 재조합이야말로 우리가 직면한 두 세기의 전환기를 특징짓는 중심점이 되었다. --- p.18
철학의 주된 목표는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 자체와 우리의 탐구 양식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데 있다. “비판”은 특정 체계의 근본적인 작동과 가능성의 조건을 밝히고 그 조건을 노출시키고자 하는 검토로 구성되며, 이를 통해 처음에는 의문시되지 않고 전적으로 명백한 것으로 여겨지던 것이 실상 얼마나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해결책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지만, 어쩌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철학의 과제는 정답이나 해결책을 제공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 자체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제출하는 데 있다. 즉 우리가 문제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 p.28~29 이 책의 제목인 『리믹솔로지에 대하여』는 독창적인 것이 아닌데, “리믹솔로지”라는 말이 이미 여러 원천들에서 전유되고 차용된 것이기 때문이다. 『리믹솔로지에 대하여』가 대상으로 다루는 것은 “리믹스”라고 불리는 어떤 사물이나 실천, 현상이 아니라, 리믹스가 개념화되고 연구되며 논쟁되는 방식 그 자체이다. 그래서 논쟁되는 문제와 그 방식을 묘사하고 서술하는 데 활용되는 말들이 이미 항상 문제 자체의 본질을 이루고 있음을 인식하고 다시 재구성한다. 우리가 어떤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장소를 지속적으로 개념화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생산되는 조건과 그 지식을 규명해주는 용어법에 계속 주의를 기울이면서 조율하려고 한다. --- p.80~81 리믹스라는 양식에 대한 반대자들과 옹호자들은 모두 플라톤의 『파이드로스』 이후의 오래된 형이상학과 가치론으로 비판하고 재배치해 이해한다. 상반되는 의견들처럼 보이는 것을 규명함에도 불구하고 논쟁의 양측 모두는 원본과 복사본의 대립구조와 위계라는 동일한 가정과 가치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것들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충실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얽매이지 않는 제 3의 대안이다. 충실성의 신념을 작동시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충실하지 못하는 혐의를 받을 수 있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성모독’이라는 가장 충실한 윤리적-이론적 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 p.165~166 리믹스는 문화 속의 혁명적 변화와 새로운 패러다임 출현에 대한 전주일까? 매시업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매우 다른 두 개의 음악 텍스트들이 융합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활용해 대중문화의 네트워크 내에 예측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교란을 일으키는 충격적인 결과들을 만들어낸다. 매시업은 아무런 실체적인 밀도도 없지만, 한편에서 다른 한편으로 관점을 이동시킬 때 출현하며,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자료들 사이의 간극으로부터 나타난다. 이는 개념적 대립의 전도이면서, 동시에 기존 개념이 포착할 수 있는 것을 초과하고 기성 체제의 모든 요소를 의문에 부치는 새로운 개념의 돌발적인 나타남 둘 모두로 구성되어 있는 데리다의 “해체구성”과 유사하다. 지젝에게 핵심적인 “시차”라는 개념이 문제의 진실은 하나의 관점에서 다른 관점으로 이동할 때에만 등장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처럼 말이다. ---「6장」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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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리믹스된 시대의 새로운 사유와 미학
기존의 권력을 해체하기, 새로움을 조합하기 어떻게 새로움을 사유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영어권에서 기술철학과 커뮤니케이션학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데이비드 컨켈(David J. Gunkel) 노던 일리노이 대학 커뮤니케이션학 교수의 『리믹솔로지에 대하여: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사유와 미학(Of Remixology: Ethics and Aesthetics after remix)』를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건켈 교수는 데리다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커뮤니케이션, 철학, 컴퓨터 사이언스 등을 가로지르는 상호 학제적 연구와 출판물로 주목받고 있으며, “국제 지젝 연구”의 공동 창립자 겸 기획자이기도 하다. 그의 다재다능하면서도 다학제적인 연구의 이력이 잘 보여주듯, 건켈은 철학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리믹스된 현대사회에서 기존의 학문 분야들이 다루기 힘든 다양한 분야에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영역과 문제를 사유할 수 있는 “리믹솔로지”라는 문화적 개념을 새롭게 창안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뒤섞여버린 리믹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은 이미 항상 복잡하게 얽혀있고, 기원과 종결점, 원본과 복제물이 끝없이 재조합되고 무한히 생성되는 디지털 시대에는 리믹스가 오히려 본질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이미 무엇이 오리지널이고,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혼돈으로 가득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오리지널 창조자/예술가와 그 작업”이라는 권위와 이해, 통제를 추구하며 그 본질을 밝히려 하고 있다. 서양의 사유는 플라톤의 『파이드로스』 이후, 항상 기원과 기원을 밝혀줄 수 있는 신(조물주)과 같은 창조적인 “저자(성)”을 추구해왔다. 모든 것은 창조성, 독창성, 혁신성을 지닌 원본과, 그 원본을 반복하고 재현하며 표절하는 복사물로 구분되고, 위계적으로 배열된다. 이러한 대립구조의 위계는 평화로운 공존처럼 자연적인 것으로 포장되고 은폐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긍정/부정으로 나누어져 어느 한편은 충만한 것으로, 다른 한편은 그에 비해 부재하거나 결핍된 것으로 폭력적이고 위계적으로 구분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우리가 사는 이 위계적 구조의 문화가 급격하게 혼란스러워지게 된 것은 근대에 접어들면서 기술이 발전하면서부터였다. ‘기술복제의 시대’에 복제물들은 원본과 구분하기 어려워졌고, 원본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치열해질수록 원본과 복제물의 구분은 불투명해지거나 그 필요성 자체가 사라지게 되었다. 원본이 아닌 복제물이 만들어낸 허상(simulacre)은 더욱 원본과 구별하기 힘들어질 뿐만 아니라, 원본과 독립적으로 부유하면서 원본보다 좋은 무엇, 아니 원본이 어떠한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존재를 탄생하게 만들었다. 포스트모던 시대 이후 우리는 오리지널한 원본이라고 알고 있던 존재가 어쩌면 복제와 반복 속에서 사후적으로 만들어진 환영이 아닐지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원본을 원본으로 만드는 존재는 무엇일까? 어쩌면 플라톤 이후 의문의 여지없이 받아들이고 있던 원본과 복제라는 이분법 속에서 원본은 무엇일까 질문하고 추구해 온 바로 그러한 행위를 통해 존재하지 않았던 원본이 재귀적으로 파생되어 나온 것은 아닐까? 저자는 서양 대중음악에서 턴테이블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탄생한 리믹스라는 음악 양식이 이러한 서양의,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 양식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리믹스 음악은 그저 원본 음악의 일부분을 표절하듯 가지고 와서 변주하는 손쉬운 양식이 아니다. 리믹스 음악은 원본에서 자신의 모태가 되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오되, 원본 음악(과 예술가)의 모티브와 핵심 주제에 종속됨 없이, 아니 원본이라는 창조적 저자를 신경 쓰지 않을 뿐 아니라, 다시금 재배열해 새로운 자신만의 양식을 만들어낸다. 나는 원본 음악들에게서 모티브들을 가지고 와서 다시 다르게 배치한다. 그런데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원본 음악들에서 무엇인가를 가지고 왔지만, 내가 재배치하지 않는다면 그 원본들 자체는 이제는 식상한 옛날 음악에 불과한 존재일 뿐이라고 말하는 리믹스(remix)라는 존재의 탄생. 지금 여기에서 원본과 다르게 배치한, 그렇지만 원본도 아니고 복제물도 아닌 이 “사생아”와 같은 음악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예술 양식이자 사유 방식이다. 우리는 창조적 저자가 만들어내는 예술뿐만 아니라, 모든 것들이 사후의 재배치에 따라서 새롭게 변형되는 새로운 예술이 탄생하는 시대를 살고 있으며, 살아가야만 한다. 인간의 능력보다 더 뛰어난 학습능력을 가진 알파고의 존재와 같이, 인간이 창조주였으며, 새로운 원본을 창조한다는 능력이 의문에 부쳐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리믹스의 시대에 우리에게 닥쳐온 문제들은 우리가 얽매여있는 기존의 문화와 사유의 한계에서 연유하며, 그 사유의 한계는 우리가 던지는 물음의 한계와 정확히 일치한다. 우리는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캐물으며 해결하려고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문제가 아닌 가짜 물음들을 제기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한다는 자기기만에 의해 우리가 스스로를 성찰하고 인식해야만 한다는 칸트적인 자기비판을 생략하거나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를 혼란에 빠트리는 것은 우리에게 닥쳐온 풀기 어려운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기존의 사유의 방식 자체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거나, 벗어나지 못하는 기만에 빠져 오히려 문제들을 잘못 인식하고, 그로 인해 스스로 더욱 미궁에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리믹스라는 음악에 내재한 원본과 복제의 대립구조가 사라진 문화의 양식에 대해 새롭게 고찰하며, 현대 문화를 새롭게 진단할 수 있는 ‘리믹솔로지’라는 새로운 사유 양식을 제안하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