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난중일기
1594일의 분노와 눈물, 한숨, 불패의 기록 임진장초·서한집·이충무공행록까지 완역 양장
글항아리 2018.03.30.
베스트
역사 top100 2주
가격
65,000
5 61,750
YES포인트?
1,300원 (2%)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변경
배송비?
무료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책소개

목차

서문 이순신 장군 순국 7주갑, 420주년을 맞이하며
일러두기

제1부 이순신의 일기
Ⅰ. 난중일기
1592년(임진년) 『이충무공전서』 「친필본」
1593년(계사년) 「친필본」
1594년(갑오년) 「친필본」
1595년(을미년) 『이충무공전서』 「을미일기」, 『충무공유사』 「일기초」 「을미일기」
1596년(병신년) 「친필본」
1597년(「정유년 Ⅰ」) 「친필본」
1597년(「정유년 Ⅱ」)
1598년(무술년) 「친필본」, 『이충무공전서』 「무술일기」, 『충무공유사』 「일기초」 「무술일기」

Ⅱ. 일기 속 메모
1. 편지 관련 글
2. 감결 관련 글
3. 장계 관련 글
4. 독후감 1597년(「정유년 Ⅰ」) 10월 8일 일기 뒤
5. 독서 관련 글
6. 시 관련 글
7. 기타 메모

제2부 이순신의 장계
- 전략가·행정가·경영자 이순신의 땀과 피, 눈물, 승리의 기록 -

Ⅰ. 『임진장초』 『이충무공전서』 속 공통 장계
Ⅱ. 『충민공계초』 『이충무공전서』 속 공통 장계
Ⅲ. 『임진장초』에만 있는 장계
Ⅳ. 『이충무공전서』에만 있는 장계
Ⅴ. 『선조실록』 『선조수정실록』에만 있는 장계
Ⅵ. 『선조실록』 『선조수정실록』 속 이순신이 쓰지 못한 노량해전 장계
Ⅶ. 이분의 『이충무공행록』과 최유해의 『(이충무공)행장』 속 장계
Ⅷ. 이순신 전사 관련 기록

제3부 서한첩 이순신의 편지
- 시인 이순신, 친구 이순신, 장수 이순신의 편지 -

제4부 이충무공행록 조카 이분이 저술한 최초의 이순신 전기
- 탄생부터 노량의 별이 될 때까지, 삶의 모든 기록 -

제5부 참고 자료
1. 이순신에 대한 평가
2. 판옥선
3. 조선과 일본의 주력 함선 전투력 비교
4. 이순신의 주요 해전 일람표
5. 거북선
6. 조선시대 관직표와 오늘날 관직 비교
7. 이순신의 척자점擲字占
8. 불멸의 삶, 이순신의 날들
9. 참고문헌

저자 소개 2

李舜臣, 본관 : 덕수(德水), 자 : 여해(汝諧), 시호 : 충무(忠武)

이순신(1545-1598)은 1643년(인조21년) 3월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진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그의 본관이 덕수德水이며 서울 건천동(을지로 4가와 충무로 4가 사이), 넉넉하지 못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22세 때 처음으로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576년 32세에 무과 시험에 합격하여,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등 주로 함경도 등지에서 관직 생활을 했다. 1589년 한때 정읍 현감이 되어 지방관 생활을 했으며 임진왜란 직전에 당시 재상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어 48세때
이순신(1545-1598)은 1643년(인조21년) 3월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진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그의 본관이 덕수德水이며 서울 건천동(을지로 4가와 충무로 4가 사이), 넉넉하지 못한 양반가에서 태어나 22세 때 처음으로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576년 32세에 무과 시험에 합격하여,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병사 군관, 발포 수군만호, 함경도 건원보 권관 등 주로 함경도 등지에서 관직 생활을 했다. 1589년 한때 정읍 현감이 되어 지방관 생활을 했으며 임진왜란 직전에 당시 재상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어 48세때 임진왜란에서의 활약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중요한 해전을 치루며 왜선 320척을 격파했다. 49세 때 그는 한산도로 진을 옮겨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으나 53세 때 원균 일파의 모함과 상소로 서울로 압송되어 투옥되던 중 우의정 정탁의 변호로 출옥하게 되었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대패하자 삼도 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어 남은 12척의 배와 120명의 군사로 130여척의 왜선과 맞서 싸웠고(명량대첩), 54세 때 명의 수군과 연합해 왜선 500여척과 싸우다 노량해전에서 11월 19일 새벽에 전사하였다. 6년 후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덕풍부원군에 추봉됨에 이어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15년 뒤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란 시호가 내려져 역사에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다.

이순신의 다른 상품

이순신연구가, 역사비평가이다.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무엇이 되고자 하는 삶 대신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고등학교 3년을 보냈다. 그 해답을 찾아 코 베가는 세상인 서울로 올라왔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아리랑TV의 공채 1기로 입사해 아리랑TV의 개국을 준비했고, 이후 정책전문가의 길을 걸으며 정치권과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10여 년을 일했다. 법을 만들고, 행정을 감시하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일들, 또 스스로 타협해버리는 일들도 많이 하면서 삶을 돌아보았
이순신연구가, 역사비평가이다.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무엇이 되고자 하는 삶 대신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고등학교 3년을 보냈다. 그 해답을 찾아 코 베가는 세상인 서울로 올라왔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아리랑TV의 공채 1기로 입사해 아리랑TV의 개국을 준비했고, 이후 정책전문가의 길을 걸으며 정치권과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10여 년을 일했다. 법을 만들고, 행정을 감시하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일들, 또 스스로 타협해버리는 일들도 많이 하면서 삶을 돌아보았다.

그 즈음 어렸을 때 읽었던 『난중일기』를 몇 번이고 다시 정독하며 인간 이순신의 매력에 흠뻑 빠져 삶의 태도를 바꾸었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큰 힘을 얻었다. 이후 이순신의 말과 글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알리는 활동을 하는 한편, 주요 일간지와 주간지에 칼럼을 기고하고, 이순신을 다양한 측면에서 재조명한 책들을 출간했다. 『이순신, 꿈속을 걸어 나오다』, 『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 『이순신 이기는 원칙』 등은 대한출판문화진흥재단의 우수학술원고 및 문화관광체육부에서 선정한 우수교양도서가 되었다. 이순신의 지독한 열정을 배워 노력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몇 권의 책을 쓰는 과정에서 이순신으로부터 얻었던 그의 지독한 낙관주의, 포기하지 않는 정신, 아름다운 눈물과 분노,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등을 모두와 나누고자 다시 몰입했다. 그리고 그의 새로운 진면목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 영향을 끼친 다양한 스승들을 발견했다. 덕분에 인생 후반전을 다시 뛸 수 있는 힘을 얻어 오늘도 이순신처럼 새벽을 맴돌고 있다.

박종평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3월 3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232쪽 | 150*217*60mm
ISBN13
9788967355074

책 속으로

1595년 1월 1일
맑았다.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았다. 나랏일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또 80세의 병드신 어머님 생각에 애태우며 밤을 새웠다. ---p.305

1597년 8월 5일
맑았다. 아침을 먹은 뒤, 옥과 땅에 도착했더니, 피란하는 사람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기가 막힐 일이다. 기가 막힐 일이다. 말에서 내려 앉아 알아듣게 타일렀다. ---p.553

1597년 9월 16일 (「정유년 Ⅱ」)
맑았다. 이른 아침에 특별히 높은 곳에서 적을 감시하는 군사가 나와서 보고하는 내용에, “얼마나 되는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적선이 명량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바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곧바로 여러 배에 명령을 내려, 나무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갔더니, 적선 130여 척 이 우리의 여러 배를 둘러쌌다. 여러 장수 등은 스스로 적은 수로 많은 적과 싸우는 상황이라고 계산하고, 편안히 살고자 회피할 계획이었다. (…) 나는 부드럽게 논하며 설명하면서 말하기를, “적선이 비록 많아도 직접 덤비기 어려우니, 조금도 불안에 떨지 말라! 더욱 온 정성과 힘을 다해 적을 쏘고, 적을 쏘아라!”라고 했다. 고개를 돌려 여러 장수의 배를 보았더니, 물러나 먼 바다에 있었다. ‘배를 돌리라’고 군령을 내리고 싶었으나, 여러 적이 물러나는 틈에 기어오를 수 있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명령을 내린다는 의미의) 각(소라)을 불게 하고, 중군에게 명령을 내리는 깃발을 세우게 했고, 또 (장수들을 불러 모으도록) 초요기를 세우게 했더니, 중군장 미조항 첨사 김응함의 배가 점차 우리 배로 가까이 왔다. 거제 현령 안위의 배가 먼저 도착했다. 나는 배 위에 서서 직접 안위를 불러 말하기를,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들 어디서 살 수 있겠느냐?” 안위가 몹시 당황해 허둥지둥 적선 속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또 김응함을 불러 말하기를, “너는 중군인데도 멀리 피해 대장을 구하지 않는구나. 그 죄를 어찌 벗을 수 있겠느냐? 처형하고 싶으나 적의 상황이 또한 급하니, 먼저 공이라도 세워라!” ---p.588~590

계사년(1593)과 갑오년(1594) 사이에 전염병이 크게 번져 진 안의 군사와 백성 중에서 죽는 자가 잇따랐다. 공은 차사원을 정해 유골을 수습해 묻게 하고, 글을 지어 제사를 지내게 했다. 하루는 또 글을 지어 여제를 지내게 했는데, 제삿날 새벽에 공이 꿈을 꾸었다. 꿈에서 한 무리의 사람이 앞으로 와서 원통하다며 호소했다. 공이 그 이유를 묻자 공에게 말하기를, “오늘 제사에서는 싸우다 죽은 사람, 병들어 죽은 사람이 모두 제삿밥을 먹을 수 있으나, 우리만은 그들과 함께 먹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공이 “너희는 어떤 귀신이기에 그런가?”라고 묻자, 그들이 말하기를 “물에 빠져 죽은 귀신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공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문을 가져다 자세히 읽었는데, 과연 그들은 제문에 적혀 있지 않았다. 마침내 명령을 내려 함께 제사를 지내주게 했다.

---p.1134~1135 『이충무공행록』

리뷰/한줄평9

리뷰

9.0 리뷰 총점

한줄평

9.5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
61,750
1 61,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