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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왕의 상징
정재훈
현암사 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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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문화총서

책소개

목차

머리말
서론_국왕과 상징

1부 국왕의 시공간적 좌표
1. ‘왕’ 제도의 역사적 변천
1) 중국에서의 변천
2) 한국에서의 변천
2. 조선시대 동서양 ‘왕’의 상징
1) 조선
2) 명과 청
3) 유럽

2부 ‘왕’의 사상적 기반과 상징
1. 원시 신앙
2. 유교
1) 성인(聖人)을 목표로 공부하는 국왕 - 경연(經筵)
2) 국가 의례의 중심으로서 국왕 - 의례(儀禮)
3. 불교
4. 도교

3부 하늘〔天〕?땅〔地〕과 국왕의 상징
1. 천문 역법의 제왕학과 국왕
2. 천변재이(天變災異)와 국왕
3. 궁궐에 표현된 하늘과 땅
4. 땅과 곡식을 관장하는 국왕 - 사직제(社稷祭)
5. 농업의 모범과 국왕 - 선농제(先農祭)와 친경례(親耕禮)

4부 사람〔人〕과 국왕의 상징
1. 왕통(王統)의 계승자
1) 왕의 초상, 어진(御眞)
2) 왕의 신주(神主), 종묘(宗廟)
3) 왕의 족보, 『선원록(璿源錄)』
2. 도통(道統)의 담지자
1) 성학(聖}學)의 수련, 서연(書筵)
2) 성학의 실천, 조선의 제왕학(帝王學)
3. 치통(治統)의 주체
1) 군대와 관료의 수장
2) 외교와 교화의 주체
3) 민본 실현의 주체

5부 의식주와 국왕의 상징
1. 국왕의 복식
2. 국왕의 음식
3. 궁궐 건축

맺는말
참고 문헌

저자 소개1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마쳤다. 조선 전기에 유교정치사상이 어떻게 이해, 수용되고 자기화하였는지를 검토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조선의 사상과 문화의 정체성과 특성, 동아시아에서의 위상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며, 현재 경북대학교 사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은 『조선전기 유교정치사상연구』(태학사), 『조선시대의 학파와 사상』(신구문화사), 『조선의 국왕과 의례』(지식산업사), 『조선 국왕의 상징』(현암사) 등과 다수의 공저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동호문답』(아카넷), 『동사』(소명출판, 공역), 『대학연의(상)』(서울대 출판문화원), 『대학연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마쳤다. 조선 전기에 유교정치사상이 어떻게 이해, 수용되고 자기화하였는지를 검토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조선의 사상과 문화의 정체성과 특성, 동아시아에서의 위상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며, 현재 경북대학교 사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은 『조선전기 유교정치사상연구』(태학사), 『조선시대의 학파와 사상』(신구문화사), 『조선의 국왕과 의례』(지식산업사), 『조선 국왕의 상징』(현암사) 등과 다수의 공저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동호문답』(아카넷), 『동사』(소명출판, 공역), 『대학연의(상)』(서울대 출판문화원), 『대학연의보』(세창출판사) 등이 있다. 이 밖에 「18세기 연행과 정조(正祖)」 등 다수의 논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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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524g | 152*216*20mm
ISBN13
9788932319094

책 속으로

임금을 가리키는 일상적인 호칭 외에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임금의 이름은 주로 ‘세종(世宗)’, ‘정조(正祖)’와 같은 묘호이다. 묘호는 묘에 붙이는 이름이라는 뜻인데, 여기에서의 묘는 임금의 사당에 해당되는 종묘이다. 따라서 묘호는 종묘에 모신 임금의 신주에 쓰인 이름을 가리킨다. 임금 사후에 붙이는 이름이므로 엄밀하게 보면 사후에 붙이는 시호(諡號)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p.54

이러한 사실은 조선 왕이 갖는 이름의 상징성에 곧 조선의 복합적인 지향이 담겨 있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중국과의 관계가 우선되는 공식적인 면에서는 중국에서 부여한 시호를 앞에 두지만, 바로 이어서 황제에게만 적용되는 ‘조?종(朝?宗)’의 명칭을 묘호로 사용함으로써 주체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p.55

조선시대 국왕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사상은 유교 사상, 특히 성리학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국왕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어진 임금’이라는 이미지 역시 성리학에서 유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조선의 국왕에게 최고의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은 ‘성인(聖人) 국왕’이었으며 신하들은 국왕에게 끊임없이 성인이 될 것을 요구하였다. ---p.75

흔히 조선시대의 국왕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예가 용과 봉황이다. 용과 봉황은 조선시대 궁궐을 장식하였으므로 자연스럽게 유교적인 상징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용과 봉황은 유교적인 상징 이전에 오래도록 원시 신앙적인 요소를 가진 상징물이다. ---p.88

조선 왕실의 궁궐에서도 용은 궁궐 장식의 최고 정점에 위치해 있었다. 국왕의 능력과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 잡았으니 궁궐의 정전(正殿) 천장 중앙은 바로 용의 자리였다. 특히 경복궁과 덕수궁의 정전 천장에 그려진 용은 황룡(黃龍)인데 덕수궁의 천장에 그려진 발톱이 5개인 황룡은 황제국이 되었던 고종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p.91

조선시대 궁궐에 봉황 장식이 많은 이유는 바로 이런 성군(聖君)의 상징을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봉황의 등장은 곧 성인의 출현을 의미한다. 궁궐의 정전인 경복궁의 근정전, 창덕궁의 인정전, 창경궁의 명정전 등 정전(正殿) 계단 중앙에 있는 답도(踏道)에 봉황이 새겨진 것은 바로 이곳에 요순과 같은 성인이 출현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했던 것이다. ---p.95

경연은 결국 임금을 성인(聖人)으로 만들기 위해 고안된 제도적 장치였다. 더불어 유학의 경전과 사서라는 고전에 기대어 올바른 정치를 위해 고민하는 장이기도 했다. 경연을 주도한 사람은 대체로 국왕보다는 유학?성리학에 능통했던 학자 관료였다. 중종 대 이후 학덕을 갖춘 명망 있는 학자들이 산림(山林)으로서 경연관에 등용된 것은 현실의 권력 관계가 학문에 의해 도치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p.116

국왕이 국가를 대표하면서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것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의례였다. 의례는 조선시대 국왕의 행사를 표준화하여 만들어놓은 것이며, 국왕권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였다. ---p.130

영조와 정조 같은 탕평 국왕들은 특히 이에 관심을 가져서 능행 후에 열무를 시행하였다. 이러한 예는 탕평 국왕들이 거둥을 통해 국왕의 권위를 회복하려고 했던 것과 비슷한 사례로서 국왕의 권위를 드러내고, 국왕 중심의 군사 질서를 확립하려는 의도와 관련이 있었다. 특히 정조의 경우 제도 정비까지 염두에 두고 국초의 오위제(五衛制)를 회복하려고 한 것은 이 시기 다른 분야에서 나타났던 현상, 즉 국왕 내지 국가의 제도를 재정비하려던 지향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p.134

임금의 모습을 직접 그린 어진(御眞)의 경우 임금에 대한 표현으로서는 최고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어진 자체가 불교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 어진을 모셨던 진전(眞殿)이나 진전에서 제례를 수행한 것은 불교적인 의례였다. 조선에서는 국왕에 대한 제사만이 아니라 모든 제사는 위패를 중심으로 지내게 되는데 이것은 성리학적인 제사 방식이다. 따라서 국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그리고, 이를 제사에 직접 활용하였던 전통은 유교적인 방식이라기보다는 불교의 영향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p.140

조선시대에 국왕이 하늘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고가 있었기에 하늘의 변화를 읽어내는 천문 역법에 대한 관심 역시 조선 초부터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의 제작, 서운관(書雲觀)을 관상감(觀象監)으로 개편, 천문 관측 기구의 제작과 운영, 달력의 편찬 등이다. ---p.159

특히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의 경우에는 당시 서울의 궁궐 바깥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하였다. 동서를 관통하는 큰길에 설치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시각을 알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는 하늘의 대행자로서, 하늘을 상징하는 국왕이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의미가 있었다. 천명을 대행하는 왕을 확실하게 인식시킨 행위였다. ---p.165

종사(宗社)가 왕조나 국가를 상징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직은 종묘와 더불어 조선왕조와 국왕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국가는 백성을 근본으로 하는데, 백성은 토지를 기반으로 그곳에서 나오는 곡식으로 살아가므로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곳인 사직은 국가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나라를 다스리는 국왕은 반드시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서 백성들의 민생을 해결해주는 토지와 곡식에 대해 보답할 책임이 있었다. ---p.176

어진은 임금의 초상화로서 다른 어느 것보다 국왕을 표현하는 상징성이 크다. 국왕을 최고의 지엄한 존재로 인식한 조선시대에 임금의 초상화는 국왕의 다른 분신으로서, 그 자체로서 임금과 동등하게 존중되었다. ---p.189

국왕이 입는 의복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입는 공식 의복과 일상적인 생활에서 입는 비공식 의복으로 나눌 수 있다. 공식 의복은 다시 종묘와 사직 등의 제례에서 입는 가장 공식적인 의복인 면복(冕服)과 신하들을 만날 때 입는 공식적인 의복인 원유관복(遠遊冠服)이 있다. 또 일상적으로 입는 시사복(視事服) 역시 공식적인 의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의 임금이 착용하는 익선관과 곤룡포가 바로 이 시사복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p.275

‘수라상’이 지금도 진수성찬의 대명사이듯이 임금의 밥상은 다른 이들의 밥상과 다른 특별한 상이었다. 수라상은 밥과 밑반찬인 기본 찬품을 제외하고 12가지의 반찬이 차려지는 12첩 반상이 기준이었다. 이는 오직 왕과 왕비만이 받을 수 있었으며, 일반적인 사가에서는 9첩 반상이나 7첩 반상 또는 5첩, 3첩 반상을 사용할 수 있었다.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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