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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
감독으로서 만들고 싶은 영화
신변산화身邊散話
운규의 이상理想의 길은 지금부터
영화 시감時感
부활한 신일선, 그리고 극계와 영화계의 이 일 저 일
‘개화당’의 영화화
‘개화당’의 제작자로서

2부 아리랑
영화소설 「아리랑」
「아리랑」을 만들 때-조선 영화감독 고심담
「아리랑」과 사회와 나

3부 한평생 영화에 몸을 던져
조선 영화인의 투지와 경제
현실을 망각한 영화 평자들에게 답함
「철인도」 평을 읽고-제작자로서 일언

4부 내 작품은 이러합니다
채플린과 그 예술을 보고자
당대 인기스타 나운규 씨의 대답은 이러합니다
명우 나운규 씨, 「아리랑」 등 자작 전부를 말함
나의 러시아 방랑기

저자 소개 1

1902년 두만강 강변의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남. 회령 3·1만세운동을 주도하고 독립군 비밀조직에 가담해 2년간 옥살이를 하였으며, 감옥에서 춘사라는 호를 얻음. 1924년 23세 때 영화계의 문을 노크해 1925년 〈운영전〉을 통해 배우로 데뷔. 1926년 극본, 연출, 주연을 도맡은 영화 〈아리랑〉으로 일약 한국 영화의 중심인물이 되었으며, 그 후 십 년간의 나운규 시대, 우리 무성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음. 보잘것없는 장비로 일껏 찍어놓으면 뭉텅이 가위질을 당하는 게 일과였던 식민지 영화인의 비애와 채울 수 없는 예술혼에 대한 고뇌로 마지막 영화 〈오몽녀〉를 찍을 때는 객혈
1902년 두만강 강변의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남. 회령 3·1만세운동을 주도하고 독립군 비밀조직에 가담해 2년간 옥살이를 하였으며, 감옥에서 춘사라는 호를 얻음. 1924년 23세 때 영화계의 문을 노크해 1925년 〈운영전〉을 통해 배우로 데뷔. 1926년 극본, 연출, 주연을 도맡은 영화 〈아리랑〉으로 일약 한국 영화의 중심인물이 되었으며, 그 후 십 년간의 나운규 시대, 우리 무성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음. 보잘것없는 장비로 일껏 찍어놓으면 뭉텅이 가위질을 당하는 게 일과였던 식민지 영화인의 비애와 채울 수 없는 예술혼에 대한 고뇌로 마지막 영화 〈오몽녀〉를 찍을 때는 객혈과 졸도에 이를 만큼 육신이 망가져 끝내 서른여섯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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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238g | 120*200*20mm
ISBN13
9791187949169

책 속으로

돈으로 꾸며놓는 화려한 작품은 만들기 어려워도, 단 두 사람이 출연하고 오막살이 세트 하나라도, 실력만 있으면 사람의 가슴을 찔러줄 작품은 만들 수 있다. 이런 작품의 감독이 되고 싶다. 출연 말고 감독만 10년을 두고 생각해도 가슴에 꽉 차는 이런 각본을 누가 써줬으면, 각본은 말고라도 이야기만이라도 해주었으면, 한 작품으로 끝이 된대도 이런 작품이 하고 싶다. --- p.15

K군아, 너는 의외로 알았으리라. 내가 이곳에 와서 이러한 편지를 쓰게 될 것을.
세상에서 알아주는 벗이라고는 몇 아닌 중에 하나인 너에게까지도 알리지 아니하고 별안간 이곳으로 뛰어온 것은 일대모험이었고, 또 대용단이었다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K군아, 여기는 별 곳이 아니라 활동사진을 박는 곳이란다. --- p.19

병인病人의 심중은 병인이라야 안다. 이것이 마지막 작품이 아닐까 하는 무서운 결심이, 혈맥을 매일 찌르는 주사의 힘으로 억지로 땅을 밟는 내가, 여윈 몸에 말소리까지 힘없는 그를 마주보고 앉았다. 나는 내가 병인이란 말을 차마 못했다. --- p.24

〈아리랑〉을 촬영할 때에 나 자신은 전신이 열에 끓어오르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 작품이 세상에 나아가 돈이 되거나 말거나, 세상 사람이 좋다거나 말거나 그러한 불순한 생각은 터럭 끝만치라도 없이, 오직 내 정신과 역량을 다하여서 내 자신이 자랑거리될 만한 작품을 만들자는 순정이 가득하였을 뿐이외다.
그래서 이 한 편에는 자랑할 만한 우리의 조선 정서를 가득 담아놓는 동시에 ‘동무들아 결코 결코 실망하지 말자’ 하는 것을 암시로라도 표현하려 애썼고, 또 한 가지는 우리의 고유한 기상은 남성적이었다, 민족성이라 할까 그 집단의 정신은 의협하였고 용맹하였던 것이니, 나는 그 패기를 영화 위에 살리려 하였던 것이외다. --- p.96

무성영화도 아직 수준까지 끌고 가려면 천리 길이나 남았는데, 외국 영화는 발전이 완전히 되었다. 이 커다란 문제 앞에서 조선 영화인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우리도 한 개의 조선 영화인으로서 이에 응전할 준비를 구비하게 되었으니, 다만 승패는 기예의 문제다. 외국물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물건을 만들면, 외국 시장도 우리의 시장이다. --- p.103

배우 한 사람에게 출연료를 못 주었기 때문에 중도에 퇴사해 버려서, 한 역을 두 사람이 맡아서 출연하므로 비극이 희극이 되고, 12권이 9권이 되었다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여배우 때문에 딸이 아들이 되고, 어머니 대신 아버지를 시키는 것쯤은 문젯거리도 못되는 형편이다. 피눈물을 흘려야 될 장면을 웃음거리로 넘겨버린다. --- p.114

지금까지 우리들이 만들고 있는 영화는 영화가 아니요, 영화 비슷한 장난감이다. 우리는 이 장난감을 영화란 수준으로 끌어가야 된다. 그때에야 조선 영화도 없지 못할 큰 존재일 것이다. --- p.117

전에는 독일로 퍽 가고 싶었는데, 히틀러Adolf Hitler 씨의 나치스 광풍이 떠도는 판에 재주 있는 사람이면 거반 외국으로 가버렸다는 말을 들은 다음에는, 독일 영화계도 쓸쓸할 것 같습니다. 한 시절 제일 좋아하던 콘라트 파이트Conrad Veidt도 지금은 영국에 가 있다니, 독일 갈 마음이 더욱 없어졌습니다.
그래도 할리우드는 그리운 사람이 꽤 많아요. 채플린Charles Chaplin 같은 사람은 꼭 한 번 만나보겠습니다. 제일 먼저 묻고 싶은 이야기가 수십 년 공을 들여 전매특허권을 얻은 수염을 히틀러에게 뺏기고 왜 가만 있느냐고, 그 일이 제일 궁금합니다.

--- p.134

출판사 리뷰

한국영화의 전설 나운규 감독의 글 전부를 묶은,
나운규 이름으로 펴내는 첫 저서!

초창기 우리 영화계의 아이돌, 나운규


나운규는 한국 영화사상 가장 빛나는 별이다. 데뷔 초에 언론은 그를 오늘의 ‘아이돌’에 해당하는 ‘화형’(花形)이라고 묘사하였으며, 같은 시대를 함께 살며 경쟁하고 질시하던 사람들도 그가 ‘조선 영화계에 제일인자로서 활약하였던 만큼 명성(明星)같이 빛나는 존재’([매일신보] 1937.10.23)임을 인정하였다.

나운규는 돌연변이 같은 존재다. 영화가 무엇인 줄도 모르던 스물세 살 두만강변 변방 시골 청년이 영화계에 몸을 들인 지 1년 만에 주연으로 얼굴을 내미는가 싶더니, 다시 한 해 뒤에는 극본, 연출, 주연을 도맡은 영화 [아리랑]으로 한국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아리랑] 이후 10년은 나운규의 시대였고, 더불어 우리 무성영화의 황금기였다.

[아리랑]이 선풍을 일으킬 때 [동아일보](1926.10.14)에는 ‘한평생 영화계에 몸을 던지겠다’는 나운규의 결심이 실렸다. 그의 말마따나 그는 질풍노도의 삶을 영화에 바쳤다. 10년이 조금 더 되는 기간 동안 그의 손을 거쳐간 영화가 30여 편에 이르니 그가 얼마나 영화에 몰입했는지 알 수 있다. 심한 객혈에 졸도까지 해가면서 그는 마지막 영화 [오몽녀]를 찍고,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홀연 세상을 떴다. 보잘것없는 장비로 일껏 찍어놓으면 뭉텅이 가위질을 당하는 게 일과였던 식민지 영화인의 비애와 채울 수 없는 예술혼에 대한 고뇌, 그리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지독한 가난이 원인이었다.

뜨거운 논쟁이 나운규에게 붓을 들게 하다

나운규가 언제나 박수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열정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자본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영화 산업의 특성으로 인해 그 역시 숱하게 좌절하고 방황하였다. 그럴 때마다 한쪽에서는 현실을 무시한 평론가들의 비판이 거세게 몰아쳤다. 1930년대 초의 논쟁은 뜨거웠고, 나운규는 그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나운규도 붓을 들어야 했다. 이 책의 3부에 실린 두 편의 글은 그런 상황 속에서 나온 글이다.

2부는 [아리랑]을 주제로 묶었다. 우리 영화사에서 보석 같은 작품이지만, 지금 우리는 [아리랑]의 전모를 알 수 없다. 불가피하게 나운규 원작 시나리오를 토대로 쓰인 문일의 영화소설을 수록하고, 나운규가 회상한 [아리랑] 촬영의 뒷이야기를 덧붙였다. 1부는 영화에 대한 풋풋한 열정을 보여주는 수필류의 가벼운 글이다. 나운규의 영화에 대한 생각을 가감없이 만날 수 있다. 4부는 잡지 매체와의 대담이 중심이면서 나운규 작품세계의 얼개를 보여준다.

이 책은 나운규가 직접 쓴 글 모두를 한 권으로 묶어낸다는 취지 아래 기획되었다. 유감스럽게도 나운규가 저자 이름으로 되어 있는 책을 우리는 서점에서 단 한 권도 만날 수 없다. 전기와 평전이 몇 권(주로 어린이 대상), 자료집이 두어 권 있을 뿐이다. 그런 만큼 몇몇 연구자를 제외한 대다수 우리의 나운규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도 짐작하게 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영화감독, 배우뿐 아니라 이론가 나운규를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문장을 다루는 솜씨가 영화 못지않게 맛깔스러움에 놀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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