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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인도 유람
그리운 옛날 학창시대-스웨덴 대학생 생활 인도 유람 간디와 나이두 회견기 2부 여성들이 자유로운 세상을 김산 형, 아뢰옵니다 여성들이 자유로운 세상을 귀국 소감과 포부 역경에 처한 조선 여성을 위해 일할 결심으로 대중의 단결 스웨덴 가정의 감복할 시간경제 영구성과 단결 위해 경제생활의 토대를 구비하자 어떠한 경제학이 정당한가 금강산이 보고 싶다 외국 여성의 삶과 여성 문제 3부 어여쁜 처녀여! 최영숙 일기 4부 청춘에 요절한 최영숙 애사哀史 스웨덴에서 사회학을 배우려고 하얼빈 시를 통과한 최영숙 양 구십춘광九十春光을 등지고 청춘에 요절한 최영숙 애사哀史 경제학사 최영숙 여사와 인도 청년과의 연애 관계의 진상 인도 청년과 가약 맺은 채 세상 떠난 슬픈 사랑 애도哀悼 최영숙 씨 최영숙 지하 방문기, 명부행 열차를 추격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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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간디 씨를 몹시 숭배했던 만큼 누구보다 먼저 간디 씨를 만나려고 했습니다. 인도에 들르면 간디 씨 댁에 가서 머물겠다는 생각까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들렀을 때에 간디 씨는 콩그레스 회의 때문에 몹시 분주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자세한 이야기까지는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간디 씨를 만난 것만 해도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간디 씨를 만나 보니 씨의 연세는 60 고령이 머지않은 듯 싶었습니다. 그러나 간디 씨는 퍽도 원기가 있어 보였 습니다. 몹시 여윈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반갑다는 인사를 몇 번 이나 반복하던 간디 씨의 얼굴이 아직껏 그리울 뿐입니다. 또 다시 간디 씨를 만날 기회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41쪽
김산 형! 이제 한 주일만 지나면 이곳 시민회관에서 제가 ‘동양 여자의 해방운동’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것은 아직 제가 원치 않는 일이나 부득이 경제적 도움을 얻기 위하여 약간의 글을 스웨덴 신문에 게재하게 되었으며, 변변치 못한 말솜씨로 연단에 올라서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53쪽 그는 불쌍한 조선 사회를 위하여 한 조각 붉은 마음을 가지고 발버둥치 는 여성이니, 그가 고국에 돌아오는 날은 반드시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비칠 것입니다. -55쪽 꾸밈없는 단발에 복성스러운 얼굴, 미소를 머금고 곱게 보내는 부드러운 목소리, 말마디마다 조심성스러워하는 빛을 보이면서도 매우 쾌활하게 이야기를 꺼내주는 최영숙 씨(26)는 북유럽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 경제과를 마치고 아홉 해 만에 고국 땅을 다시 밟아본 이다. … 씨는 스웨덴에서 공부하고 온 것으로도 조선에서 처음이지만, 이보다 여자 혼자 고학의 힘으로 스웨덴어, 독일어, 영어, 중국어, 일어까지 다섯 나라 말을 통하고 또 철저히 경제학 연구를 하였다. 물론 우리 조선 여성 활무대에 처음 나타난 명성明星이겠다. 최영숙 -58쪽 그러나 S군아 네 사랑 아무리 뜨겁다 한대도 이 몸은 당당한 대한의 여자라 몸 바쳐 나라에 사용될 몸이라 네 사랑 받기에 허락지 않는다. -93쪽 10년간의 외국 유학에서 얻은 지식을 팔기로 나섰으나 조선 사회는 아직 인텔리 여성을 수용하기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어학 교수 노릇을 하려고 애썼으나 그도 불가능하였고, 서울 어느 학교에 교사로 취직하려다가 문부성의 교원 면장免狀 관계로 그도 불가능하였고, 나중에 모 신문사 기자로 입사하려고 운동하다가 그도 여의치 못하였습니다. 마지막에 할 수 없이 낙원동에 있던 여자소비조합을 인계하여 사람의 내왕이 많다 하는 서대문 밖 교남동 큰 거리에 조그마한 상점을 빌려서 장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배추포기, 감자, 마른 미역줄기, 미나리단, 콩나물을 만지는 것이 스톡홀름 대학 경제학사 최영숙 양의 일상직업이 되었답니다. -156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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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불쌍한 조선사회를 위하여 한 조각 붉은 마음을 가지고 발버둥치는 여성이니 그가 고국에 돌아오는 날은 반드시 한 줄기 희망의 불이 비칠 것입니다.”(《조선일보》)
일제에 의해 나라가 강점되었던 시절, 이처럼 기대를 모으며 당시로는 이름도 생소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스웨덴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한 여성이 있었다. 최영숙, 그는 이땅의 여성 가운데 경제학을 전공한 첫번째 인물이다. 기대에 부응하듯 그는 5개국어에 능통한 재원이 되어 식민지 조선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배운 지식을 제대로 써먹을 수 없었다. 아무 곳에도 취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대문 밖에 조그마한 점포를 내고 배추, 감자, 미나리단, 콩나물을 팔았다. 최고의 인텔리를 이렇게 대우한 것이 식민지 조선의 현실이었다. 최영숙은 여성들이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다. 무엇보다 노동여성의 삶을 바꾸는 데 일생을 바칠 결심이었다. 파산한 집안의 살림살이를 책임져야 했음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여자소비조합을 인수해 채소 장사에 나선 이유다. 가난에 시달리며 과중한 업무를 떠맡았던 최영숙은 돌연 영양실조와 스트레스로 쓰러져 귀국한 지 6개월 만에 불귀의 몸이 되고 말았다. 뜻을 펴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최영숙에게 세상은 잔인했다. 죽음과 함께 드러난 임신을 두고 스캔들을 부풀리기에 혈안이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을 위해 몸 바치려 했던 최영숙의 삶은 이국 남성과의 통속적인 연애사 울타리에 갇히고 만다. 최영숙은 윤색되고 희화화된 울타리 속에 한 세기 가까이 갇혀 있었던 셈이다. 그의 삶 속에는 1920년대부터 30년대 초를 상징하는 식민지 조선의 시대정신과 어그러진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은 한 시대 역사의 격랑 속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산 한 선각자를 재조명하기 위한 기획이다. 그의 생각을 가감 없이 엿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가 남긴 기록이다. 이 책에는 최영숙이 쓴 모든 글을 한데 모았다. 기사 속에 들어 있는 글이라 할지라도 최영숙의 육성이 담긴 것이라면 추려내었다. 최영숙의 삶과 죽음을 다룬 주요 잡지 기사도 모두 모았다. 비록 흥미 본위의 글이라 할지라도 최영숙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다. 최영숙의 글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인도 기행문이다. 그는 마하트마 간디와 사로지니 나이두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천신만고 끝에 인도를 찾았다. 그에게 인도는 조선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출구였다. 귀국길에 인도뿐 아니라 유럽 각지를 두루 둘러 본 것도 학문 연구를 넘어 ‘실지적 생의 싸움을 실험’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3·1운동 직후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중국 유학을 떠나고 여성운동의 세계적 지도자 엘렌 케이를 찾아 다시 스웨덴 유학길에 올랐던, 자신의 학문과 지식이 나라와 겨레에 소용되기를 간구하며 짧지만 치열한 삶을 살다 간 한 선각자의 초상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한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발굴하고 새로 쓰기 위한 ‘일제강점기 새로읽기’ 시리즈의 하나다. 그동안 출간된 ‘일제강점기 새로읽기’ 시리즈는 영화감독 나운규의 영화론을 묶은 《조선영화의 길》과 작가 나혜석의 페미니스트 산문집 《나는 페미니스트인가》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