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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 인식과 존재의 변증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01 인식의 뿌리에 대한 이해 02 존재의 인식론적 기초 03 인식과 존재의 변증법적 이해 제2부 - 동양사상에 나타난 인식과 존재의 변증법 01 생명은 전일적인 흐름이다·마고麻姑의 삼신사상과 그 연맥連脈 02 브라흐마가 곧 아트만이다·힌두사상 03 존재감은 깨어 있음에 비례한다·고타마 붓다 04 마음을 깨뜨리지 않으면 자신을 볼 수 없다·보리달마 05 온전한 삶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노자·장자 06 국가의 기원은 공리가 아니라 인륜이다·공자·맹자 07 화쟁의 주체는 일심이며 일승一乘이다·원효·의상 08 왕도정치의 비밀은 격물치지에 있다·주자·왕양명 09 사단칠정논변의 핵심은 도덕 심성과 도덕 실천이다·이황·이이 10 '모심'(侍)은 참자아의 자각적 주체가 되는 것이다·최제우·최시형 제3부 - 서양사상에 나타난 인식과 존재의 변증법 01 자연(physis)에서 인위(nomos)로, 상대적 진리에서 보편적 진리로·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들·소피스트·소크라테스 02 국가의 최고선은 정의의 덕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03 신국神國은 신앙과 이성의 조화적 기반 위에 성립한다·아우구스티누스·아퀴나스 04 모든 인식은 경험으로부터 시작된다·영국 경험주의 : 베이컨·로크·흄 05 이성이 지식의 원천이다·대륙 합리주의 : 데카르트·스피노자·라이프니츠 06 이성과 감성의 연합체로서 역사에 대항하다·프랑스 계몽주의 : 몽테스키외·볼테르·루소 07 세계는 보편적 이념의 자기실현이다·독일 이상주의 : 칸트·피히테·헤겔 08 국가의 기초는 계약이 아니라 최대행복의 원리이다·영국 공리주의 : 벤담·J. 밀·J. S. 밀 09 현대 복지국가로의 이행 : ‘소극적 자유’에서‘적극적 자유’로·옥스퍼드 이상주의 : T. H. 그린 10 생명은 필연적인 자기법칙성에 따라 스스로 생성되고 변화하여 돌아간다·포스트모더니즘과 현대 과학의 생명사상 |
Choi, Min Ja,崔珉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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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과 존재의 변증법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뿌리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사실상 동서고금의 사상과 철학은 모두 인식의 뿌리에 대한 이해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다. 인식의 뿌리는 참자아와 연결된다. 스스로가 누군지, 어떻게 해서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하고서는 인식과 존재에 대한 논의는 한갓 공론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우주의 본질인 생명의 뿌리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그 어떤 논의도 실재성을 띨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로 참자아에 대한 자각이야말로 모든 진리의 중추中樞를 틀어쥐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일찍이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는 “너 자신을 알라”(Know theyself)고 외쳤던 것이다. 진리가 주관의 늪에 빠져 신음하던 그 시대에 존재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 규명을 통하여 참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자 했던 소크라테스. 제자가 소크라테스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선생님 자신을 아십니까?”그러자 소크라테스는“나도 나 자신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바로 이 무지無知에 대한 자각, 즉‘무지의 지’知야말로 참자아로 가는 출발점이다. --- p.30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데 따른 인식과 존재의 괴리에 기인한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세 중심축’인 천·지·인 삼재의 연관성에 대한 자각 부재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생명의 본체인 하늘과 그 작용인 우주만물의 합일을 표징하는 천인합일에 대한 인식 부재 때문에 진정한‘봄’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생명 과정의 전일성을 파악하지 못하는 영적무지로 인해 전체와 분리된‘나’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고 그에 따라 선과 악이 생겨나며 행과 불행이 그림자처럼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삶은 선도 악도, 행도 불행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에고ego라는 분리의식에서 오는 것으로 에고의 해석일 뿐이다. 이 세상에 ‘나’가 사라지면 ‘나’아닌 것이 없게 되므로 악은 사라지고 불행 또한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야말로 불길할 것도 해로울 것도 하나 없는, 매일매일이 참 좋은 날이 되는 것이다. --- p.89 인류의 집단무의식 속에는 인류의 시원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가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 하나는 동양 사상과 문화의 원형인 마고성麻姑城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서양 사상과 문화의 원형인 에덴 동산 이야기이다. 동양의 마고성 이야기는 지소씨支巢氏가 포도를 따 먹은 ‘오미五味의 변’ 이후 잃어버린 참본성과 잃어버린 마고성에 대한 복본復本의 맹세를 담고 있다. 서양의 에덴 동산 이야기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善惡果를 따 먹은 것이 원죄가 되어 낙원에서 추방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선과 악이라는 분리의식의 작용에 따른 참본성의 상실이 곧 낙원의 상실로 이어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마고성 이야기와 유사하다. --- p.125 달마의 가르침의 요점은 이치로 들어가는 이입理入과 실천행으로 들어가는 행입行入의 이입二入이고, 구체적으로는 네 가지 실천행을 통해 궁극적 진리에 이르는 것이다. 이는 앎[理]과 삶[行], 즉 인식과 존재의 변증법적 관계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치와 실천행의 두 가지 문은 이치에 의하여 행을 일으키고 행에 의하여 이치에 들어가는 상즉상입의 관계로 둘이면서 하나인 이문일심二門一心의 법을 이룬다. 이처럼 이입 없이 행입이 없고 행입 없이 이입이 없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이법의 본질과 구체적인 행위의 작용이 긴밀히 연계되어 있는 까닭이다. --- p.212 유학의 사상적 생명은 그것이 도가사상과 더불어 불교의 선종禪宗과 화엄종, 그리고 도교의 우주론을 회통시켜 공맹孔孟의 정신을 밝힘으로써 신유학을 발전시킨 데 있다. 이처럼 유학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신유학으로 거듭남으로써 송宋·원元·명明 약 700년에 걸쳐 노장老莊·불교를 압도하는 세력을 형성했던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경향의 유학인 성리학(性理學또는 朱子學)의 사상체계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송대(宋代, 960~1279)에 들어서이다. 주자(朱子, 이름은 熹, 1130~1200)의 사상체계로 대표되는 송대 이후의 신유학은 일반적으로 주자학, 성리학, 정주학程朱學와 朱子의 學問, 이학理學, 도학道學등으로 불린다. --- p.295 생명의 본체가 스스로의 작용을 통하여 우주만물로 현현하는 것이니, 생명의 본체인 신神은 우주만물 속에도 내재한다. 만유가 신(天主)을 모시고 있는(侍天主) 것이다. 생명의 본체의 측면에서는 절대유일의 하나이니 유일신一神이지만, 작용의 측면에서는 우주만물로 화생化生한 것이니 다신多神이다. 따라서 유일신이 곧 다신이다. 일즉다一卽多요 다즉일多卽一이니, 유일신이 곧 우주만물이요 우주만물이 곧 유일신이다. ?주의 실체는 의식이므로 유일신은 곧 신성이며 우주만물의 참본성이다. 이러한 생명의 본체와 작용의 관계적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결코 생명의 전일성과 자기근원성, 만유의 근원적 평등성과 유기적 통합성을 파악할 수가 없으며, 그 당연한 귀결로서 정의와 평화의 실현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스 초기의 자연철학자들이 전일성과 다양성, 일원론과 다원론의 문제에 천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로 생명의 본체와 작용의 전일적 본질을 꿰뚫으면 이는 곧 진리의 정수를 관통하는 것이다. --- p.397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원리를 필자의 ‘생명의 3화음적 구조’(the triad structure of life), 즉 본체-작용-본체와 작용의 합일에 조응시켜 보기로 하자. 플라톤의 철학 체계는 생명의 본체[본체계, 의식계]인 형상[이데아계, 실재계], 그 작용[물질계]인 현상[현상계, 존재계], 그리고 모든 이데아의 근원이며 지식의 최고 단계로서 양 차원을 통섭하는「선의 이데아」로 구성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체계는 생명의 본체인 형상, 그 작용인 질료, 그리고 형상 자체의 동력인이자 목적인으로서 양 차원을 통섭하는 ‘부동의 동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하자면 필자가 말하는 생명의 본체-작용-본체와 작용의 합일의 구조가 플라톤의 경우 형상[실재]-현상-「선의 이데아」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형상-질료- ‘부동의 동인’으로 나타난다. 여기서「선의 이데아」나 ‘부동의 동인’은 진리와 존재를 통찰할 수 있게 하는 근본 원리다. 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 불교에서 말하는 법신-화신-보신의 삼신불, 동학에서 말하는 내유신령-외유기화-각지불이의「시」侍의 3화음적 구조, 그리고 9,000년 이상 전부터 전해진 천·지·인 삼신일체의 삼신사상의 구조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모두 우주의 본질인 ‘생명의 3화음적 구조’를 밝힌 것이다. 다만 이들의 경우 이러한 ‘생명의 3화음적 구조’를 명료하게 제시하지 못한 한계가 있기는 하다. 이렇게 볼 때 서양 철학은 동양의 천·지·인 삼신일체의 삼신사상의 구조를 그 출발점으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다. --- p.456 유럽의 근대사는 인간적 권위와 신적 권위의 회복을 각기 기치로 내건 르네상스Renaissance와 종교개혁(Reformation)에서 시작되었다. 르네상스는 14~16세기에 걸쳐 유럽의 전통문화인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의 재생 또는 부활을 통하여 중세에서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의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 정신을 극복하려는 운동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를 선구적 지도자로 하여 프랑스·독일·영국 등 북유럽 지역에 전파되어 교회로부터 독립된 새로운 인간관·자연관을 낳고 인간 중심의 세속적 인생관을 추구함으로써 근대 유럽 문화를 태동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 p.499 칸트에게 있어 우주론적 문제는 인간학적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별이 빛나는 하늘’과 ‘도덕법칙’은 우주와 인간의 관련성과 두 가지 법칙의 관련성, 즉 자연법칙과 도덕법칙의 관련성의 표상이다. 그는 도덕 법칙의 범형範型을 자연법칙에 두고 인간의 행위와 격률(格率準則)이 보편적 자연법칙과 일치하도록 자연법칙과 도덕법칙의 통일을 기하고 그 근거를 이성에서 찾았다. 자연법칙이 지배하는 존재의 세계(현상계)는 순수이성의 인식 대상으로 과학의 세계이며, 그 세계에 대한 인식은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다. 반면, 도덕법칙이 지배하는 당위의 세계(가치의 세계)는 실천이성의 인식 대상으로 도덕의 세계이며, 도덕적 의지와 목적으로 구성된 이성체계의 영역이다. --- p.649 문명의 대전환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시대적 과제는 우주 만물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신성이 바로 신의 실체이자 우리의 참본성임을 직시함으로써 전일적 패러다임에 기초한 지구생명공동체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제 성직자의 마지막 사명은 종교의 성벽 속에 가두어 놓은 하늘(‘하늘’님, 유일신)을 만인의 하늘로 되돌려주고 사라지는 것이다. “현대 물리학이 물리적 세계의 구조가 마야[幻影] 또는 ‘유심’唯心이라는 것에 대해 동양의 현자들과 견해를 같이하기 위하여 머나먼 길을 걸어온” 것도 우주가을의 초입初入에서 동서양이 통섭하는 진정한 문명을 개창하기 위한 것이다. --- p.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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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세계를 넘어설 근본적인 처방을 찾아라
현재의 세계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생태계 교란, 생물종 감소, 에너지 위기 등의 자연과학적인 범주로 보든,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나 빈익빈부익부의 심화와 같은 사회과학?인문과학적인 범주로 보든 간에 현재의 위기가 환상이 아닌 실제 상황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위기에 대하여 여전히 ‘성장과 발전’ ‘좀더 나은 정치 체제’ ‘민주주의의 진전’이나 ‘정의의 확대’ 등을 부르짖는 것은 구급처방은 될지언정 파국을 돌이키는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는 것 역시 자명해지고 있다. 그러한 ‘대안의 마련과 실행’을 위해 투입되는 ‘총 에너지(물질과 정신)’에 비해, ‘생명계’가 되돌려 받는 성과는 지극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날 세계의 위기는 모두 ‘인식의 왜곡’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직시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우리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기만 하면, 우리는 우리의 세계관과 사고방식, 가치체계들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지금도 우리는 ‘안다’고 말하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싶은 대로 알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식의 오류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따라서 “동굴에 갇힌 포로가 된 지식인들이 동굴 밖으로 나와 동굴 벽에 드리운 그림자의 실체를 직시하는 것”이 제대로 된 출발점이다. 오늘날 세계가 ‘위기의 심화’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그러한 인식의 오류 위에 구축된 세상에서 기득권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그 전체 숫자는 미미하지만, 현재 세상의 주류를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원히 이대로’를 외치고, 또 획책하고 있다. 둘째는 그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사람들 역시 인식의 오류와 그 위에 구축된 허위의 세상을 ‘정시’하고 ‘정립’하는 것보다는 그 ‘주류’와 ‘기득권’의 일부가 되는 데만 궁극적인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둘 다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무한대로 확장되는 사막 위를 걸어가다가 결국 목마르고 허기져서 쓰러지는 사막 위의 여행객들처럼, 오늘날 ‘분리의식’과 ‘에고 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허위의식’의 토대 위에서, 그 찻잔 속의 세계에서만 발버둥 치며 문제해결을 모색하는 것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근본적 처방-바른 인식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책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 오늘날 현대 과학의 ‘전일적 실재관’을 반영한 인문사회과학으로서의 ‘새로운 인식론과 존재론’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수많은 구성요소들이 유기적으로 링크되어 있는 복잡계임을 직시해야 한다. 둘째, 지난 100여 년간 현대 과학은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이 폐기된 새로운 차원의 우주에 접근하는 혁명적인 진보를 이룩함으로써, 정신·물질 이원론에 입각한 기계론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사실 그대로의 세계 이해를 통한 현실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새롭게 열리고 있다. 셋째, 인문사회과학은 학문의 분과화에 따라 이질화된 학문분야간의 소통을 통해 인문사회과학의 지체 현상을 극복하고, 현대 과학의 전일적 실재관을 반영한 새로운 인식론과 존재론을 정립하여 오늘의 시대적 및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앎은 우주의 본질인 생명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인류가 도덕적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지식의 빈곤 때문이 아니라 참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체계[의식계]와 현상계[물질계]를 회통하는 전일적인 생명의 역동적 본질을 아는 것, 즉 생명의 본체와 작용, 전일성과 다양성, 영성과 물성이 ‘한맛’(One Taste)임을 아는 것이 참 앎이다. 참 앎은 분리의식[에고 의식]에서 일어날 수 없다.”(저자 서문 중에서) 이 문제-생명의 본질에 대한 참 앎의 성취-를 위하여 이 책에는 역대 종교의 성자나 신앙대상(신, 궁극적 진리)은 물론이고 동서고금의 숱한 철학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독자는 자칫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언설에 휘둘리며 길을 잃기 쉽지만, 이 책은 단순명료한 진리를 알기 쉽게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전 세계에 걸친 사상과 철학들을 망라하여 그것들이 이러한 전일적 실재관을 반영한 새로운 인식론과 존재론의 정립에 어느 정도로 접근하고 있는지 고찰하는 “세계철학사상사”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찰되고 서술되는 대상-철학자와 사상-의 목록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철학자-최민자의 일관된 시선이다. 이 시선에 의해 동서고금의 철학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개개 철학 사상의 ‘변증법적 지평’이 새롭게 열리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강조한 것도 바로 인식이 ‘존재계 번화의 출발점’임을 전제로 한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후에도 ‘무지에 의한 진리의 살해’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 책은 다시 한 번, 이 우주가 통일성인 동시에 다양성이며, 전체성인 동시에 개체성이며, 우주의 본원인 동시에 현상 그 자체로서 절대적 조화를 보이는, 대우주(macrocosmos)-소우주(microcosmos)임을 설파하고 있으며, 모든 철학사상이 이러한 진리의 정점을 향하고 있음을 논증하면서 우리들을 “새로운 세계로의 전망과 가능성”에로 인도하고 있다. 생명학-새로운 세계 전망 혹은 인식과 존재의 변증법적 합일 이 책을 발간하기에 앞서 저자는 [통섭의 기술](2010), [생명에 관한 81개조 테제](2008), [생태정치학](2007), [천부경](2006) 등의 일련의 저작을 발표해 왔다. 이들은 모두 ‘생명학’이라는 큰 학문적 지평을 열어 가는 과정이었다. ‘생명학’이란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제시하는 학설이자, 그 인식을 기반으로 기존의 왜곡된 인식들을 재조명하는 ‘치유적 학설’이다. 그것은 ‘지식을 통섭하여 넘어서는 지성’이며, ‘어제와 그곳’, ‘내일과 거기’를 내포하는 ‘지금 여기’의 담론이다. 이러한 저술들을 통해 저자는 끊임없이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여는 일에 성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저작들은 다분히 제도권 대학의 교육 체계에 따라 분화된 것이 분명한 분과학문의 틀을 넘어서 생물적·심리적·사회적·환경적 현상이 상호 연결되어 있는 오늘의 실제 세계를 반영하고, 실질적으로 유효한 대안을 제시하는 ‘전일적인 사상’을 추구하고 있다. 지성계는 물론 인류 전체를, 전일적인 세계관에 입각한 새로운 세계로 인도할 통합적 비전(integral vision)을 제안하고, 나아가 그것에 의해 세계를 재해석해 나가는 노력들을 호시우행(虎視牛行)의 자세로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학문적 역정(歷程)을 그려낸 그의 또다른 저작 [삶의 지문](2008)에서 느낄 수 있는 바와 같이, 이는 종교적 수행자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서는 다음 몇 가지 특징적 방법론을 거쳐 이러한 성취에 도달하였다. 첫째, 미시세계에 대한 자연과학적 실험 결과를 거시세계에 적용시킬 수 있는 인식의 토대 구축과 더불어 현대 과학의 전일적 실재관에 조응하는 새로운 인식론과 존재론의 정립을 시도하였다. 둘째, 인류의 정신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동서고금의 사상의 진수眞髓를 한 권에 담아서 원전原典에 대한 정치精緻한 분석과 더불어 전일적 시각으로 재해석을 시도하였다. 셋째, 동서고금의 사상을 인물을 중심으로 유형별로 분류하고, 사상적 계보를 적시摘示하며, 시대적·사회적·사상적 맥락 속에서 비교론적으로 고찰함으로써 동서고금의 문명을 통섭하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넷째, 제2부와 제3부에서는 각 장마다 ‘예비지식’란을 두어 각 장의 핵심주제를 파악하고 전체로서의 역사적 세계를 조망할 수 있게 하였으며, 각 절의 초입에 인물과 관련된 일화를 소개하였다. 이로써 본서는 전일적 패러다임(holistic paradigm)에 기초한 새로운 인식론과 존재론의 정립을 통하여 지구촌의 난제를 해결하고, 동서고금의 사상과 철학, 과학과 종교를 통섭하는 진정한 신문명을 개창하자는 제안을 이 세상에 내놓기에 이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