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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백석서선미 그림
고인돌 20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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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2

BAEK SEOK,白石,白奭,백기행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전 천재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오산소학교, 오산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오산고보 졸업 후,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춘해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어사범학과에 입학하였다. 김소월을 동경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으며,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1934년에 귀국하여 8·15 광복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영어교사로, [여성사], [왕문사] 등에서 근무하며 시작 활동을 했다.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시작 활동 외에도 많은 외서들을 번역했다고 전해진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였으며 같은 해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1939년 [여성]지 편집 주간 일을 사직하고 고향인 평북 지역을 여행하였다. 1940년 만주의 신징(지금의 장춘)으로 가서 3월부터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씨개명의 압박이 계속되자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1942년 만주의 안둥 세관에서 일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다.

1946년 북조선예술총동맹이 결성된 후 1947년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 번역에 매진했다. 1949년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을 맡으며 안정적인 창작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간행하였으나 1958년 ‘붉은 편지 사건’ 이후 격렬한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대부분의 문학적 활동을 중단했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국영협동조합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으면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고 농촌 체험을 담은 시들을 발표했으나, 1962년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 활동을 접었다. 1996년까지 삼수군 관평리에서 농사를 짓다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드러났지만 정확한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백석은 일제 강점기에도 모국어를 지키고자 하였다.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이 있다. 북한에서 나즘 히크메트의 시 외에도 푸슈킨, 레르몬토프, 이사콥스키, 니콜라이 티호노프, 드미트리 굴리아 등의 시를 옮겼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수록된 시 「통영」, 「적막강산」, 「북방」 등 백석의 대표작들은 실향 의식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인 언어로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한국의 대표 모더니즘 시인으로 평가받는 백석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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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서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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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났습니다. 섬진강에 몰려가 다슬기도 잡고, 먹성 좋은 오빠들 따라 무서리, 땅콩서리 하며 아홉 살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세종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꿈을 펼칠 기회만을 엿보다가 대학 졸업 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시민 미술 단체 ‘늦바람’에서 활동했고 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 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HiLLS)를 마쳤습니다. 그동안 『부마를 잡으러 간 두 왕자』, 『박씨전』, 『셰익스피어』, 『범아이』, 『아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났습니다. 섬진강에 몰려가 다슬기도 잡고, 먹성 좋은 오빠들 따라 무서리, 땅콩서리 하며 아홉 살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세종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꿈을 펼칠 기회만을 엿보다가 대학 졸업 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시민 미술 단체 ‘늦바람’에서 활동했고 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 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HiLLS)를 마쳤습니다. 그동안 『부마를 잡으러 간 두 왕자』, 『박씨전』, 『셰익스피어』, 『범아이』, 『아기장수 우투리』, 『아이고 시끄러워』, 『나도 따라 가요』 등에 그림을 그렸고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에 함께 그림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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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8쪽 | 366g | 218*264*15mm
ISBN13
9788994372907
KC인증
kc마크 인증유형 : 적합성확인

출판사 리뷰

어른이 된 지금도 세수할 때에 눈을 감으면 무서울 때가 있어요. 누군가 바로 옆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럴 땐 빨리 눈을 뜨려고 후닥닥 물을 끼얹어요. 우습지요?
‘이 세상에 정말 귀신이 있을까? 귀신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오빠, 작은오빠, 할머니와 시골에서 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요. 엄마 아빠는 서울에서 일하느라 바빴어요. 어느 날 아침이었어요. 잠을 자다가 눈을 떴는데 할머니가 안 보였어요. 부엌에 가봤더니 할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놓고 가마솥에 밥을 짓고 있었습니다. 밥에 뜸이 드는 동안 부엌 한 귀퉁이에 물을 한 사발 떠다 놓고 두 손을 모으고 “ 우리 식구 모두 아무 탈 없이 지내게 해주세요.” 하면서 기도했어요. 부엌에 사는 조왕님이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길 바라면서요.
나는 백석의 시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를 읽고 어린 나와 귀신들의 숨기 놀이라고 상상하며 그림책으로 그렸습니다. 나는 할머니 몰래 시렁에 걸린 메주에서 콩알을 떼어먹거나 차려놓은 밥상의 음식을 집어먹으며 장난을 칩니다. 그러면서도 귀신에게 혼날까 봐 눈치를 보며 집안 이곳저곳으로 피해봅니다. 하지만 집안 어느 곳에나 신들이 지키고 있어서 또 다른 장소로 달아납니다. 그러다가 얼떨결에 마을 밖으로까지 나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정말 무서운 달걀귀신을 만나 마을을 향해 젖 먹던 힘을 다해 되돌아옵니다.
마을 밖에는 무서운 귀신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짝을 맺지 못하고 죽었다는 처녀귀신과 몽달귀신, 물에 빠져 죽은 뒤로 지나가는 사람만 보면 물속으로 잡아끈다는 물귀신, 돌처럼 발길에 차이다가 점점 커져서 앞서가다가 홱 뒤돌아보면 얼굴이 없다는 달걀귀신, 빗자루에 붙어있다는 도깨비, 무덤가에 나타나 머리 위로 휙휙 날아다니며 사람 혼을 빼놓는다는 구미호(꼬리가 아홉 개 달려있는 여우)까지 온통 무서운 귀신 세상이었지요. 하지만 이 그림책에 나오는 귀신들은 사람을 해치지 않아요. 사람을 지켜주는 수호신들입니다. 달걀귀신 만 빼놓고요.
귀신을 어떻게 그려야 할까요? 한참 고민했어요. 그중에서도 디운구신 집터를 지켜주는 신이니까 집 전체를 떠받치는 모습으로 그리려고 했어요. 하지만 집에 깔려 있는 느낌이 나서 디운구신이 불쌍해졌지요. 그래서 댓돌 옆에 숨어서 몰래 지켜보고 있다가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나쁜 귀신들을 물리쳐주는 모습으로 그려봤어요. 성주님은 집안의 할아버지처럼 인자할 것 같아 수염 나고 나이 지긋한 모습으로 그렸어요. 털능구신(철융귀신)은 뒤뜰의 장독과 우물을 지켜주니까 물을 다스리는 용의 모습으로 상상해보았답니다.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물속에 사는 용을 이무기라고 하지요? 집 앞에서는 수문장이 지켜주고 집 뒤쪽은 재주가 많은 용이 지켜준다면 정말 든든할 것 같아요. 제석신은 보통 세 명이나 열두 명이 함께 다닌다고 해요. 어린이들은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잖아요? 한창 클 때니까요. 그래서 꿀이며 곶감이며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고방에는 열두 명의 어린이 제석님으로 그려보았습니다. 굴대장군이 화가 나면 연기와 티끌을 마구 뿜어 낼 거예요.
조왕님은 물에 빠진 적이 있어서 추위를 많이 탄대요. 그래서 부엌의 따뜻한 부뚜막에 머무르며 몸을 녹인다고 해요. 곡식을 빻는 연자방아에는 엄마가 자주 가니까 연자망귀신은 엄마처럼 그렸답니다.
고향이란, 집이란 언제나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겠지요. 또 든든한 마을신들이 지켜주기에 안심이 되는 곳입니다. 섬진강이 흐르는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화가는 평안도의 산자락 속에서 자란 어린 백석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추천평

집안 곳곳에도, 마을 여기저기에도 그곳을 지켜주는 귀신이 있습니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마술처럼 꿰고 엮어 감칠맛 나는 노래로 빚어낸 백석 선생님의 대표작입니다. 시에도 일렀듯이, 우리네 옛사람들은 어딜 가나 귀신이 있다고 여긴 듯합니다. 집안 곳곳에도, 마을 여기저기에도 그곳을 지켜주는 귀신이 있다고 믿은 게지요. 그러고 보면 우리네 귀신은 마치 이웃집 할아버지나 아주머니처럼 친근한 존재처럼 보입니다. 시인은 짐짓 무섭다고 엄살을 떠는 것이지만, 속내는 오히려 재미있어하며 즐기는 것 같기도 하네요.
이 구수하고 재미난 시가 서선미 화가의 아기자기하고 따스한 그림과 만나 읽는 맛, 보는 맛을 몇 곱절 늘려 줍니다. 시에 나타난 예쁜 우리말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볼거리 풍성한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십시오. 겨레의 정서로 가득 찬 행복한 상상의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 서정오 (옛이야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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