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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사유의 길을 따라 떠나는 여행 안내문
제1부 문명 진화의 길-문명 DNA의 힘과 흠 길에 관한 명상 / 문학과 이데올로기 / 예술이란 무엇인가 / 인간의 Metabolism의 3형식 / 기술과 예술에 관하여 / 작가와 현실 / 소설과 희곡 / 소설을 찾아서 / 문명과 종교 / 문학과 현실 / 바다거북이 철갑 구성체 제2부 근대 세계의 길-문명 DNA의 빛과 어둠 완전한 개인이 되는 사회 / 주석의 소리 / 상해임시정부의 소리 / 외설이란 무엇인가 / 아메리카 / 혁명의 변질 / 제국의 몰락 / 감정이 흐르는 하상 제3부 한국 역사의 길-문명 DNA의 앎과 꿈 상황의 원점 / 한말의 상황과 오늘 / 문학사에 대한 질문이 된 생애 / 식민지 지식인의 자화상 / 총독의 소리 / 「광장」의 이명준, 좌절과 고뇌의 회고 / 역사와 상상력 / 통일, 그리고 파라다이스 /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우리가 바라는 삶 / 경건한 상상력의 의식을 / 현대인이 잃어버린 것 / 돈과 행복 / 사회적 유전인자 / 세계인 / 사고와 시간 / 코끼리와 시인 / 공명 제4부 바다의 편지-사고실험으로서의 문학 바다의 편지 해제-최인훈의 사유에서 역사의 길을 만나다 찾아보기 |
崔仁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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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남아 있는 또 하나의 길이 있다. 그것은 환상의 길이다. 이 길을 전통적으로 우리는 종교, 예술 따위로 부른다. 종교와 예술은 첫 번째 길도 아니고 두 번째 길도 아니다. 첫 번째가 아닌 것은 종교나 예술은 자연이 아니기 때문이며 두 번째가 아닌 것은 그것은 인간 문제의 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해결을 위한 수단’이나 기술이 아니라 ‘해결’ 자체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해결’은 환상의 해결이다. 마음속의 길과 마음속의 지도를 현실의 길인 양 걸어가는 환상이다. 여기서는 마음=자연이라는, 관념의 실체화가 의도적으로 실천된다. …… 종교나 예술의 길을 인간이 가지고 있는 까닭은 자명한 것 같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우주의 움직임이다. 우주 쪽에서 보면 우주는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인간은 그 길 위에서 또 자기 길을 가고 있는 2차적인 존재이다. 그런데도 그가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를 1차적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다. 이 2차적 존재가 자기 자신을 1차적인 존재로 착각할 수밖에 없는 이 근원적인 모순의 길이 표현되는 방식이 예술이나 종교라는 환상이다._‘길에 관한 명상’에서---pp.37~38
한국의 개화가, 민족사가 안에서 곪아 터지는 방식이 아니고 수술당한 형식이었다는 것은 이 역사의식의 연속성을 끊긴 것이 된다. 수술의 고통에서 깨어나 보니 상처는 아물었는데, 자기 자신이 누구였던가를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어떤 사회적 변화가 그 사회의 오랜 역사의 여러 요소가 어울려서 이루어졌을 때는 그 사회는 스스로 운동하고 조종한다. 역사라는 것은 한 개인은 물론이요, 한 세대나 한 시대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모든 시간의 힘으로 밀려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거의 시간 혹은 전체적 직관, 혹은 연속 감정과 단절되었을 때는 그 사회는 자기 행위를 유기적 연속의 형식으로 진행시키지 못하고, 기계적 가산, 미봉, 찰나적 반사, 모방의 연속으로써 하게 된다. _‘소설을 찾아서’에서---pp.129~130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이 있다. 중요한 장기가 병들었든, 손끝에 가시가 하나 박히든 인간은 똑같이 사로잡힌다. 인간의 육체는 심장이 손가락을 소외시키는 일이 없다. 육체라는 것은 상당히 이상적으로 우정과 사랑, 나와 너가 하나인 대단한 사랑의 조직체이다. 그러나 어떤 국가ㆍ사회ㆍ제국도 그렇게 순수한 육체의 조화로운 통일과 같은 유기성은 없다는 데 문명의 모순이 있다. 가령 어떤 사회에도 ‘천국이 따로 없다’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기본적인 물질적ㆍ정신적 보장조차 못 받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그 사회에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나머지 부분인데 그 부분을 어떻게, 어느 정도 아파하느냐 하는 것이 인류 역사 발전의 척도라고 할 수 있다. _‘완전한 개인이 되는 사회’에서---p.176 역사란 수학 문제가 아닙니다. 머리만 좋아서 풀리는 문제가 아니라, 풀리면 밑지는 사람들이 방해하기도 하는?그것이 보통인 그런 현상입니다. …… 형제끼리도 싸우고, 같은 신앙자끼리도 싸우고 동맹국끼리도 싸운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데 우리는 해방 후 30년의 세월을 들였습니다. 이것은 그리 어려운 진리도 아니고, 이 지구 위에 지금 현재까지 살아남은 종족이면 다 알 법한 일이지만 인간 사회의 특수성은 이 진리의 터득을 가끔 어렵게 합니다. 특수성이란 다름이 아닙니다. 한 개인의 기억과 인류의 역사가 기록한 집단적 기억은 언제나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이 그 특수성입니다. ……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개화라는 시기를 시점으로 해서 그 전에 보지 못한 세계와 마주친 다음에, 모든 문명과 역사에 따르게 마련인 보편적인 현상과 그에 대처할 태도를 배워온 셈인데, 거기서 잠정적으로 요약할 수 있는 교훈은 조건이 붙지 않는 무조건의 진리를 사람이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아닐까 합니다. _‘상황의 원점’에서---p.334 짐승들 가운데 인간만이 의식의 힘을 써서 ‘먹는 것’과 ‘먹는 것을 얻는 방법’을 자꾸 바꿔왔다. 최인훈은 ‘바꿈’을 문명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문명은 “타고난 재주”인 생물적 DNA의 지시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다. 물론, 생물적 조건이라는 데서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차이는 없다. 인간의 몸놀림, 소리나 말과 같은 기호의 구성, 기계를 조작하는 행동 등도 물리적으로는 생물적 행동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을 변화시키는 의식적 행동이라는 점에서 확연히 구별된다. 그래서 최인훈은, 문명을 “인간의 개체들이 무리 지어 살면서 그들 사이에서 진화시킨” 일종의 “제2의 생체항상성”, 또는 “인간 존재의 제2의 발전 단계”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인간은 의식의 축적과 그것의 계승을 통해서 ‘동물적 삶’(최인훈의 다른 표현으로는 “인간의 생물적 자기 동일성”)이라는 원 밖에 ‘문명적 삶’(“인간의 문명적 자기동일성”)이라는 바깥의 원을 붙여왔다. 그리고 외원外圓의 두께가 자꾸 두꺼워지면서 부피를 지닌 원주圓周는 어떤 주기를 가지고 부득불 그 앞뒤의 원주하고는 서로 갈라져서 나뉘게 되었는데, 이런 문명적 삶의 진화가 바로 인간의 역사다. _해제 ‘최인훈 사유에서 역사의 길을 만나다’에서---p.549 그의 설명모형은,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생물적 탄생 ?문명적 탄생」이라는 “이중발생”이 있어야만 자기 정체성을 쌓고 다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수사적 강조의 표현이 아닌 다음에야, 육신의 생물적 수명이 다한 뒤에도 살아서 움직이는 정신이란 존재할 수 없고,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하겠노라’는 철석같은 맹세도, 연심이 아니라 연인이 영원히 살 수 없기 때문에 지켜질 수 없다. 제아무리 빼어난 인간도 먹고 자고 배설해야 한다는 생물적 조건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다. 그래서 최인훈은 자연의 변화, 도태와 돌연변이와 유전 등의 “복합적인 자연의 선별 과정”을 통해서 생명이 발생, 변화, 개선, 완성되는 생물적 인간의 탄생을 “제1기의 진화”라고 부른다. 이것이 없다면 인간의 역사는 애당초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생물로서의 생명 정보인 생물적 DNA는 알지 못하고, 따라서 지시할 수도 없는 능력을 스스로 길러냈다. 그것은 “도구를 사용해서 환경을 극복하는 능력”이다. _해제 ‘최인훈 사유에서 역사의 길을 만나다’에서---p.5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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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사가 불러낸 작가, 최인훈
역사의 길, 인간의 길을 말하다 최인훈은 ‘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는 대표작 『광장』이 워낙 각광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최인훈이 평생에 걸쳐 일궈온 문학적 성과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부각하는 수식어다. 최인훈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이면서 소설, 희곡, 비평에 걸쳐 거대한 사유의 산맥을 형성해온 독창적인 사상가이기도 하다. 고려대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오인영 박사는 최인훈의 사유가 어떤 점에서 독창적인지를 소개하고자 이 책을 기획했다. 이 책은 1부에서 3부까지 단행본으로 나온 작품 가운데 ‘작가’ 최인훈을 넘어 ‘사상가’로서의 최인훈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골라 엮고, 마지막 4부에는 2003년 『황해문학』에 발표한 「바다의 편지」를 단행본으로는 최초로 수록했다. 최인훈의 소설과 수필에 담긴 비평들은 대개 문학(예술)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끌어낼 목적으로, 대개 역사와 문명, 인간의 존재조건 등을 분석하고 검토한 후에 그것을 자기 대답의 전제와 논거로 활용하는 논지 전개를 구사한다. 그러나 이런 논의 과정에서 최인훈이 구사한 역사와 세계에 대한 분석과 해석은 그 자체로 충분히 독립적인 가치를 지닌다. 이는 최인훈의 문학론이나 예술론의 결론을 위한 참고자료로서만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이론모형으로서 우리 문화를 두텁게 만드는 중요한 ‘사상의 문화재’가 된다. 더구나 그 이론모형은 한국 문화의 바깥에서 수입되거나 이식된 것이 아니라 자생적이고 독자적인 모형이다. 또한 역사의 진화 과정을 문명사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거시적 관점을 지니고 있으며, 그런 문명사적 진화 과정에 따라 인간의 의식과 심리에서 일어나게 된 변화, 즉 인류의 내면세계에 대한 정신사적 탐구까지도 아울러 설명하는 종합적인 이론모형이다. 1부 ‘문명 진화의 길―문명 DNA의 힘과 흠’에는 인류 문명의 역사적 진화 과정에 대한 최인훈 특유의 거시적 접근법과 통찰력이 드러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글들은 명시적으로는 문학과 예술의 성격과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해 답하는 형태를 취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삶에 대해 어떤 방향감각을 갖추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 “인간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학에 대한 자의식’”은 문인만의 질문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에게 던지는 고유한 자기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 글들을 통해서 고유한 개체로서의 자신(‘나’)이 문명세계의 보편적 문제들을 인간적으로 해결하는 데 필요한 논거를 습득할 수 있다. 2부 ‘근대 세계의 길―문명 DNA의 빛과 어둠’에는 21세기 현대 문명의 굵직한 문제들, 예컨대 현실사회주의의 몰락, 역사의 종언, 미국의 세계 지배 형태, 현대 문명의 모순 등에 대한 견해가 담긴 글들이 실렸다. 특히 최인훈은 현재 우리가 지닌 역사적 역량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긍정적 판단 위에서 “과거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내부의 반역자들에게 그것을 횡령당하지 않도록” 현명하게 행동하느냐에 우리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한다. 3부 ‘한국 역사의 길―문명 DNA의 앎과 꿈’에는 ‘한국의 어제와 오늘’에 관한 역사적 고찰이 담긴 글들과 ‘우리의 미래와 태도’가 창조적 희망을 꿈꿀 수 있도록 제언하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우리의 역사와 오늘의 문제를 보는 최인훈의 기본적 관점은 생물적 동포애나 소박한 민족감정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나’라는 개인은 한국인이면서 근대인이고, 동시에 세계인이며 문명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의 복합 구성체임을 자각할 때에만 인간다운 삶과 사회를 꿈꾸고 누릴 수 있다는 의식에 근거하고 있다. 4부 ‘바다의 편지―사고실험으로서의 문학’에는 2003년 발표한 단편소설 「바다의 편지」를 수록했다. 이 소설은 지금 현재 최인훈 사유의 지평과 좌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부에서 3부까지가 최인훈의 거시적이고 역사적인 사고실험 궤적을 차분하게 따라가는 과정이라면 4부 ‘바다의 편지’에서는 그의 사고실험을 추체험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최인훈이 직접 낭독해 CD에 담아 초판에 넣었다. 이는 최인훈이 독자(타자)에게 활자화라는 수단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는 시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