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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지금이 바로 좋은 시절이다
식량 위생 기대수명 빈곤 폭력 환경 문해력 자유 평등 다음 세대 에필로그: 그런데 왜 아직도 확신하지 못하는가 |
Johan Nor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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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실상이 어떠했는가를 알게 되자 더이상 그 좋았던 옛날을 낭만적으로만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연구의 초점을 맞추었던 국가들 중 한 나라는 만성적인 영양부족 상태에 있었다. 그 나라는 현재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평균보다 더 빈곤하고 기대수명이 짧으며 영아사망률은 높았다. 그 나라는 바로 150년 전 나의 조상들이 살았던 나라, 스웨덴이었다. 사실을 알고 보면 좋았던 옛날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 전쟁과 범죄, 재난, 빈곤은 고통스러운 현실이다. 지난 10년 동안 글로벌 매체들은 새로운 방식, 즉 생생한 화면으로 매일 24시간 이런 사실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어디에나 있는, 지금까지 늘 존재해왔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던 일부 문제들이다. 지금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런 문제들이 빠르게 줄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예외이지만, 한때는 일상이었다. *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과거를 재창조하고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기억을 재배열한다. 두 여행자 라세 베리와 스티그 칼손은 사람들의 생활이 엄청난 규모로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이 다시 찾아갔던 사람들은 스스로 늘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1990년대에 인도의 여성 사토스는 인생살이가 예전보다 더 힘들며 자녀들을 위해 고되게 일해야 한다고 푸념했다. 그녀는 어렸을 적에 훨씬 편했다고 그들에게 말했다. 어릴 때는 종일 놀기만 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베리와 칼손은 실제 20년 전에 그곳에 갔었고 그들이 이제 들은 것과 과거 마을 사람들이 억압과 문맹, 그리고 가족들이 배불리 먹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에 대해 말했던 것을 기록한 노트를 비교할 수 있었다. 사토스는 그녀가 기억하는 것처럼 매일 놀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논밭에서 힘들게 일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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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진보에 확신하지 못하는가, 누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가
우리 시대의 주요한 흐름을 꼽자면 그 어느 때보다 인류의 삶이 많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빈곤, 영양실조, 문맹, 아동노동, 유아 사망률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출생 시 기대수명은 20세기에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개인이 전쟁에 노출되거나 자연재해를 당해 죽거나 독재에 신음할 위험이 다른 시대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끔찍하고 우울한 뉴스들에 항상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어느 작은 마을의 일간지에 실린 ‘만사가 잘 굴러가고 있다’라는 제목의 머리기사는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뉴스는 언제나 전쟁과 살인, 자연재해처럼 극적이고 놀라운 것을 추구한다. “치즈에 난 구멍(문젯거리와 분쟁)에 대해 보도하지만 치즈 자체(사회의 진보)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4~15년 에볼라 사태는 미디어와 관련기관들이 협력해 공포심을 조장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국 질병관리센터는 140만 명에 달하는 많은 환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 시나리오는 대부분의 환자가 전혀 치료를 받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위험한 행동을 계속하리라고 가정한 것이었다. 미디어에서 ‘최악’을 강조하는 동안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엄연한 사실은 잊히고 말았다. 게다가 좀 더 근본적으로는 민족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치인들, 좀 더 극단적으로는 테러리스트들과 독재자들이 지금도 계속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다. 그들은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고 국가 간에 다시 장벽을 쌓고 싶어한다. 그들은 세계는 위험하며, 그래서 통제불능의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은 익숙하고도 안전이 보장되는 것처럼 보이는 곳으로 도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개방과 자유를 선택하는 대신 안전을 약속하고, 쉽게 지목할 수 있는 ‘희생양’을 제공해주는 정치를 따르게 된다. 결국 ‘현재에 대한 공포’와 ‘과거에 대한 향수’가 만들어낸 최근의 역사는 미국이 다시 위대해져야 한다는 슬로건을 내건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그리고 오늘의 삶이 30년 전보다 후퇴했다고 믿는 영국인들이 지지한 ‘브렉시트’였음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