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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가스가 다케히코 & 요시노 사쿠미
제1화 절망감 제2화 상실감 제3화 혐오감 제4화 허무감 제5화 고독감 제6화 초조감 제7화 무력감 제8화 과대감 제9화 죄책감 제10화 불안감 제11화 피해감 제12화 공허감 제13화 위화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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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희망'이나 '구원'일까? 아마도 전자가 맞겠지만 '구원'이라는 말도 버리기 아깝다. 절망의 한가운데에 있을(거라고 느낄) 때 나는 항상 상상도 못한 구원의 손길이 찾아오는 상황을 그린다. 몽상이라고 해도 좋다. 걱정스럽고 괴로운 것은 전부 쓸데없는 고민이고, 착각과 장난이 뒤섞인 상황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나는 그런 자기최면이 굉장히 심해서 절망감이 극에 달하면 누가 "아냐, 장난이야, 장난."이라고 하면서 웃으며 나타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남극점 근처에는 각국 깃발이 꽂혀 있고, 입간판 같은 것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극점에 어떤 표시가 되어 있지는 않다. 자석의 극점은 물리상 극점에서 살짝 '벗어나' 있고 나침반 바늘이 직립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몸으로 지구의 자전을 체감할 수 없으니 남극점에 서봤자 아무 실감 나지 않는다. 낮은 고생을 해가며 겨우 극점에 도달한들 드라마틱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아, 드디어 내가 남극점에 도착했구나, 하고 스스로 대견해하면서도 어딘가 허무한 기분이 계속 따라다니지 않을까? 막연하게 굉장히 기쁠 것이라 예상했으나 생각보다 덤덤하지 않을까? 돌아가는 길에는 피곤함까지 더해 좀 '우울'해질지도 모르겠다. 아주머니는 "저런, 저런." 하고 혀를 끌끌 차더니 핸드백에서 화장지를 두 장만 꺼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토사물 위에 (마치 장난감 낙하산을 떨어트리듯) 화장지를 떨어트렸다. 팔랑팔랑 내려오던 얇은 종이는 토한 자리에 착지하자마자 수분 때문에 투명해졌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였다. 그러나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천정에 붙은 차내 광고를 쳐다봤다. 나는 아주머니의 기묘한 무심함에 구원받은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밀려오는 무력감에 일어서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전용 볼링공은 있어도 전용 볼링장을 소유한 사람은 그 사장 말고는 들은 적이 없다. 꽤 널찍한 공간이 필요하고, 거기다 기계를 유지하고 보수하거나 레인 표면을 정비하는 데도 적지 않은 비용과 수고가 들 것이다. 어지간한 볼링 마니아가 아닌 한 그런 것이 갖고 싶을 턱이 없다. 재력을 자랑하고 싶은 목적이라고 해도 자택을 찾아온 손님에게 "저희 집에 볼링장이 있는데, 어떠세요? 모처럼 오셨는데 한 게임 치시죠?"라고 자랑하는 것이 자기만족으로 이어질까? 야밤에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냉장고를 뒤져 두 조각 남은 케이크를 발견한다. 얼른 한 조각을 먹었지만, 여전히 공복은 채워지지 않는다. 늦은 밤에 그걸 다 먹어버리면 모조리 살로 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알고 있는데도 한 조각 남은 케이크가 신경 쓰여 견딜 수 없다. 결국, 참지 못하고 남은 케이크를 전부 먹어 치운다. 이럴 때도 나는 역시 죄책감에 휩싸인다. 가장 큰 죄책감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특히 공부) 것이 분명하다. 이제 와서 되돌릴 방도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 이유로 기껏 방구석에 틀어박히거나 일부러 낙제한다. 모든 체제를 부정할 만큼의 배짱은 없으면서 어중간한 자존심만 남아 새 출발을 할 시도조차 못한다. 그런 한심한 부분이 이번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고개를 쳐든다. 이제 이들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다. 부모를 향해 "누가 낳아달라고 했어요?"라고 외치는 것이다. 감기에 걸려 대낮부터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은 정말 꿀맛 같다. 라디오를 켠 채 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꾸벅꾸벅 졸면 구근식물을 심는 법이나 여배우의 추억담, 오래된 가요가 드문드문 귀에 들어온다. 당연했던 일상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느껴진다. 날마다 반복적으로 일어나던 지루한 일들이 애틋하다. 아마 내일은 다 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전신에 퍼진 이 위화감은 어떠한 구원처럼 느껴진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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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정말 괜찮은 걸까?
이 시대 우울남 절망녀를 위한 공감 백배 심리 에세이 왠지 우울하고, 뭔가 어긋난 것 같지만 딱히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어 답답했던 당신, 별 볼 일 없는 인생에 입문한 것을 환영합니다! [별 볼 일 없는 인생 입문]은 정신과 의사와 만화가 콤비가 13가지 '우울'에 대해 써내려간 심리 에세이다. 불안감 ? 상실감 ? 혐오감 ? 허무감 ? 고독감 등, 누구나 느끼지만 지극히 사소해서 모른 척했던 시시한 감정들을 일상에서 포착해낸 위트가 돋보인다. 평소에는 무뚝뚝한 주제에 생일 카드는 꼬박꼬박 보내는 친구에 비유해 위화감을 설명하고, 목 빠져라 기다린 아버지의 선물이 고작 매직펜이었던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허무감을 묘사한다. 상상선거를 통해 '궁극의 보잘것없음'을 느끼고, 우유 속 잡균을 어찌 셀지 몰라 피해망상에 걸린 환자도 있다. 저자는 이처럼 우울한 심리 이면에서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상황들을 공감 가게 그려내, 독자들로 하여금 불유쾌했던 감정들을 유쾌하게 대면하고 인생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일본의 인기 만화가 요시노 사쿠미가 각 장마다 덧붙인 단편 만화는 이 책을 두 배로 즐기는 또 다른 묘미다. 처음인데도 익숙한 세상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학점 관리에 토익 공부, 면접 스터디, 각종 자격증 취득으로 꽤 괜찮은 스펙을 완성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서류전형부터 우수수 들려오는 불합격 소식. 자신감은 점점 떨어지고 취업게시판에 하루 종일 붙어 있는 내가 한심해진다. 그래도 1~2번씩 돌아오는 면접 기회를 붙잡아 천신만고 끝에, 어쨌든 '당당히' 회사에 입사했다.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 입고 ID카드를 목에 걸고 장밋빛 꿈에 부푼 당신, 이제부터 펼쳐질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사무실에는 신경질적인 김 부장과 어딘가 음침한 동기 녀석이 버티고 있고, 야심찬 자기계발 계획은 밥 먹듯 하는 야근에 물 건너 간 지 오래. 내 '수고로움'은 대체 누가 알아주는 거지? 허무한 기분이 든다. 국민연금은 또 이렇게 많이 뗄 줄이야! 월급이 들어오는 족족 카드회사와 보험사에 '퍼가요~♡' 당할 때면 상실감이 크다. 나보다 잘난 친구들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장가 갈 수 있을까 남들처럼 그렇게 장가 갈 수 있을까" 노래하는 인디밴드의 덤덤한 목소리에 왠지 모를 초조함을 느끼고 말았다. 불안, 상실, 고독, 허무, 초조... 소심해서 더욱 가련한 청춘들에게 바치는 '우울어천가' 하지만 지금 청춘들이 꼭 88만원 세대라서 우울한 것은 아니다. 청춘이라고 다 '아픈' 것도 아니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보다는 오히려 일상에서 부딪히는 아주 사소한 감정들이 말썽을 일으킨다. 세금을 많이 떼어 억울한 기분, 사람 많은 곳에서 별안간 터진 코피가 멎지 않을 때의 초조함, 특이한 사람을 마주쳤을 때 느끼는 위화감, 아름다운 어머니를 전혀 닮지 않은 못생긴 나에 대한 자책. 모두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약간씩은 느끼는 감정이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이러한 13가지 우울한 감정을 일상 속에서 절묘하게 건져 올린다. 초등학교 시절, 저자는 '유히 하키'라는 갈색의 고급과자에 쓰인 한자가 '석양'이라고 확신 했고 이 과자를 먹을 때면 저녁놀이 자아나는 아련한 느낌을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과자 이름은 석양이 아니라, 발음이 같은 웅비라는 늠름한 뜻의 한자였다. 이 사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저자는 상실감이란 얼마나 실체가 없는 허구적인 감정인지 묘사한다. 절망감을 살펴보자. 저자는 높은 빌딩 창틀에 두 손가락만으로 매달린 상황을 상상한다. 지금 가장 괴로운 것은 손가락의 고통이다. 더는 싫다, 이 고통에서 얼른 편해지고 싶다. 추락이나 죽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렇게 진짜 절망까지 한 걸음 남은 곳에서 이미 절망하고 만다. 실제로 일상에서 우리가 절망이라고 느끼는 감정 가운데 많은 것들이 어쩌면 이처럼 진짜 절망의 전 단계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다룬 13가지 감정들은 전부 사라지면 인생이 잘 고른 길처럼 평평해져서 시시하겠지만, 끌어안고 있자니 괴롭기만 하다. "이상은 높지만 현실은 시궁창"인 청춘들에겐 더욱 그렇다. 이런 미묘한 위화감을 대수롭지 않다고 그대로 두느냐, 불유쾌한 감정들을 끄집어내 유쾌하게 풀어내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이건 그저 평범한 일상일 뿐인데 문득 나만 우울한 걸까 궁금했다면, 기대에 부풀어 희망의 문을 활짝 열고 보니 막상 별 것 없었던 경험에 실망한 기억이 있다면, 이제 '별 볼 일 없는 인생'에 입문할 시간이다. "아, 그렇구나. 나도 그런데!" 하며 절로 공감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시시한 인생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소년은 황야를 달린다]로 80년대 일본 순정만화계를 주름잡았던 만화가 요시노 사?미가 13가지 주제를 함축적으로 담아낸 단편 만화들도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묘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