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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도쿠나가 스스무 4
들꽃 진료소의 아침 조회 도쿠나가 스스무 11 밤의 장소 다니카와 슌타로 21 라운지 이야기 도쿠나가 스스무 25 라운지에서라면 다니카와 슌타로 37 아무 의미 없음의 의미 도쿠나가 스스무 41 수신 감도 양호합니다 다니카와 슌타로 50 화해란 무엇입니까? 도쿠나가 스스무 56 곤란합니다, 도쿠나가 씨 다니카와 슌타로 65 3호실 학생들 도쿠나가 스스무 71 사라지려 할 때 다니카와 슌타로 82 누구나 카멜레온 도쿠나가 스스무 88 정원 매화나무에 다니카와 슌타로 102 꾸벅 머리를 숙이는, 다만 그것뿐인 도쿠나가 스스무 109 샛길로 빠지는 명상 다니카와 슌타로 119 자문타답 도쿠나가 스스무 126 도쿠에게 질문 다니카와 슌타로 138 죽음과 악수 도쿠나가 스스무 146 마음이 쓰이는 말 다니카와 슌타로 156 여름이 왔고 도쿠나가 스스무 163 첫 손주 탄생을 축하합니다 다니카와 슌타로 172 두 개의 등대 도쿠나가 스스무 180 고향은 어디? 다니카와 슌타로 191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도쿠나가 스스무 198 시드는 것과 싹트는 것 다니카와 슌타로 210 대담 _ 처음 시작은 217 출간에부쳐_7년 뒤 오간 편지 |
Shuntaro Tanikawa,たにかわ しゅんたろう,谷川 俊太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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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기 노리코 시인의 작품 중에 “기대지 않고”라는 명쾌한 시가 있습니다. 이바라기 씨는 그 시에 “이제는/어떠한 권위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 (…) 기댄다면/그것은/의자 등받이뿐”이라고 쓰셨지요. 저는 진료소 라운지에서라면 소파는 물론이요 가까운 사람에게 기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다면 “죽음”에 기대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죽음은 권위가 아니니 말입니다. --- p.39
“선생님, 눈 말인데요, 안 감겨서 다행이었어요. 고향도 보고 집도 보고, 마을 사람들도 만나고, 눈이 뜨여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사후 드라이브라니,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죽은 사람에게 시력이 있다는 가설도 처음이고요. 그런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수도 있지만 그의 아버지는 야마구치 간호사가 제기한 가설에 만족한 모습이었습니다. --- p.45 의료인은 ‘죽음을 앞둔 상황이니 환자와 가족이 서로 마음을 크게 먹고 화해했으면’ 하기 쉬워요. (…)어쩔 수 있나요. 저는 그걸로 됐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죽음이 온다 한들 죽음을 명분으로 “화해”가 이루어지지는 않거든요. --- p.64 노하거나 벌하거나 복수하거나 죽거나 하는 신은 이제 됐습니다. (…)죽음을 거부하지 않고 평온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신 또는 우주와의 화해가 아닐는지요. --- p.67 도쿠나가 씨가 계속 기록하고 있는 것은 “사라지려 할 때만 존재하는 삶”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로는 더욱 충실하고, 더욱 드라마틱한 찰나의 삶. --- p.83 사람의 의지는 변합니다. 변하는 게 자연스러워요. 다들 그때 그 자리의 마음 정도면 충분합니다. --- p.131 “떠나기 전에 아드님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셨는데,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이미 몇 번이나 하신 이야기였어요. 딱히 다른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아드님이 온순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저는 병실로 돌아가서 나쓰노 씨에게 여쭈었습니다. “별다른 말씀은 안 하셨다고 아드님이 그러시던데요.” “그냥, 마지막으로, 아들 손을, 잡고 싶었어요.” 그로부터 사흘 뒤 나쓰노 씨는 타계하셨습니다. --- p.155 암 말기. 옛날에는 하루라도 오래 살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 방식이 정석이었습니다. 지금은 고통을 제거하는 약물과 투여 기법이 발전하면서 생명을 포기하고 편히 떠나는 방식이 주류로 올라서고 있지요. 일련의 흐름 속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든 하나의 등대만 쳐다봐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등대와 차차 포기하는 등대. 두 개의 등대를 모두 주시하며 환자, 환자 가족과 함께 바닷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바닷길은 뒤돌아봤을 때에야 비로소 보입니다. 그것이 어떤 길이 될지는 불분명하지만요. 음, 인생도 마찬가지이려나. 그저 두 개의 등대를 바라보며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 p.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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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접하는 죽음을 늘 처음처럼 대하는 사람,
들꽃 진료소의 도쿠나가 스스무 책은 도쿠나가 스스무가 들꽃 진료소의 아침 조회 시간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병원에서 간밤에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을 이야기하는 그 자리에서는 직업적인 건조함도, 죽음의 비통함도 아닌, 늘 죽음 곁에 머무는 사람들의 잔잔한 분위기가 흐른다. 도쿠나가 스스무는 환자를 섬세하게 관찰하여 기록하는 사람이다. 그는 의사 생활 40년이 가까워지도록 마음을 어느 한쪽으로 고정하지 않아서, 환자를 보며 애통해하다가 기뻐하다가 웃기도 하고 냉정해지기도 한다. “조회 전에 병실을 찾아갔는데 침대에서 “독살 런치, 잘 먹겠습니다”라고 하시지 뭐예요.” 하나타니 간호사가 안경 너머로 눈을 치켜뜨며 말했습니다. 다들 다혹스러운 표정이더군요. 저는 웃었습니다. 돌아가신 소아과 의사 마쓰다 미치오 씨가 한 말이 떠올랐어요. “누구나 꽃밭이 떠오르는 주사를 맞고 안락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그런 약을 개발해주게나.” _19쪽 말의 힘에 의문을 갖는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 시인은 여전히 마음속에 시어가 넘치고 세상의 이야기에 깊이 감응하지만, 막상 말의 힘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는다. 그리고 시의 세계 밖에서는 이런저런 감정들과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이다. 도쿠나가 스스무와는 결이 달라 보이기도 하고 막상 시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서로 딴소리를 하기 일쑤다. 두 사람이 나눈 편지들 초반에는 이런 대비가 눈에 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은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끌어안게 되며, 점차 한 점으로 만나게 된다. 도쿠나가 씨에게 불려가 자작시를 낭독한 일은 정말이지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 도대체 어떤 시를 들려주어야 하나. 도쿠나가 씨가 이걸 읽어라, 저걸 읽어라 주문해주셨기에망정이지 제 마음속은 시의 힘, 나아가 말의 힘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했습니다. 시를 들려주기보다 잠자코 손을 잡고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었지요. _21쪽 제가 미움 혹은 원망을 사거나 용서받은 경험은 많습니다. 타인의 감정은 억측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많이 겪었고, 여전히 겪고 있어요. 그런데 저에게는 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사람에게 용서받고 싶고, 화해하고 싶다는 마음도 희박합니다. 옛날에 누가 말하기를 “나를 내버려 둬”가 타인을 대하는 저의 기본 태도라고 하더군요. _66쪽 두 사람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서 시와 죽음이, 삶과 죽음이 이어진다 도쿠나가 스스무는 병원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병원 라운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회에서는 죽어가는 사람의 ‘죽을 뻔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죽음이 코앞인데 ‘꿈이 무엇인가’ 생각하는 노인이 있다. 죽어서 눈이 감기지 않는 젊은 환자의 사체를 싣고 고향 드라이브를 다녀와서는 “눈이 뜨여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말하는 간호사가 있는가 하면, 죽어가는 부모를 보면서도 화해의 손길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식이 있다. 죽음이라고 해서 비통한 완결이 아니고, 모든 게 죽음을 이유로 정리되지도 않는다. 도쿠나가 스스무는 그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사람이지만, 어떤 틀에도 그들을 고정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의료 현장은 드라마틱해도 좋고 드라마틱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문제는 누가 그렇게 느끼는가겠지요. 어떤 의료인이건 처음 겪는 환자의 죽음은 드라마틱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은 드라마틱함을 담담히 넘어서는 심오한 드라마겠지만요. 현장에서 드라마틱함이 사라지고 남아 있을 단 하나의 장면이 무엇인지 떠올랐습니다. 의료인이 고인과 유족에게 꾸벅 머리를 숙이고 가족 또한 꾸벅 머리를 숙이는, 다만 그것뿐인 장면이. _118쪽 다니카와 슌타로는 편지 잇기가 마무리될 쯤, 죽음을 더욱 적극적으로 껴안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죽음이 우리는 천국이나 지옥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우주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해방시켜준다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_214쪽 그리고 두 사람은 마침내 이런 결론에 다다른다. 죽음의 곁에 머무를 수 있어 감사하다니, 도쿠나가 씨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로군요. 저도 시의 곁에 머무를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시 또한 죽음 곁에 머무르는 방향으로 나아간 느낌이고요. 언어가 침묵에 다가가는 중이랄까요? _24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