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정염 情炎
가족소풍 운수 좋은 날 언더 더 씨 알록달록 빛나는 지음소사이어티 전말기 치애 痴愛 해설 _ 박형준 작가의 말 |
강동수의 다른 상품
|
약용의 망막에 벗은 몸을 겹쳐 안고 서로 어찌할 바를 몰라 버둥거릴 때에 폭약 터지듯 삽시간에 몸뚱이에 확하고 불길이 치솟는 장면이 떠올랐다. 평생을 억누르고 억눌렀던 그리움이 일시에 폭발했을 터이니. 정염(情炎), 욕정의 불꽃이란 말이 있기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유인줄 알았더니 정말로 제 몸을 태워버리는 욕정이 있었단 말이던가. 약용은 아무리 생각해도 서로의 몸뚱이까지 태워버린 그 사랑과 절망의 깊이를 잴 수는 없었다.
---「정염(情炎)」중에서 “우리는 현대인의 고독을 치유하는 힐링산업 종사자라구. 우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의 희망을 찾느냐고. 자칫하면 풍비박산할 뻔한 가정도 우리가 구해주잖아. 뿐인가? 아빠 없는 아이들에게 웃음을 찾아주고, 헤어질 뻔한 연인들도 우리 때문에 사랑을 다시 꽃피운단 말야. 마, 뭐랄까. 우리는 열매를 맺지도 못하고 시들어가는 꽃나무에 싹을 틔워주는 사랑과 평화의 전령사란 말야. 자, 건배!” ---「가족소풍」중에서 온몸이 불길에 휩싸인 채 허공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던 한 사내의 몸뚱이는 하늘을 날다가 갑자기 총에 맞은 작은 새의 몰골이었다. 아니, 화덕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참새의 몰골이었다. 화염과 그을음에 뒤덮인 5층 빌딩에 매달린 ‘용산 세입자 생존권 보장하라!’고 쓰인 플래카드……. 신 새벽 어스름을 뚫고 소방차들이 황급히 달려왔고, 크레인에 올라탄 소방관들이 불타는 망루에 물대포를 마구 쏘아댔다. 차가운 대기에 섞인 시너 냄새가 코를 찌르던 그 새벽. ---「운수 좋은 날」중에서 은수와 헤어진 것은 여드레 전쯤이었다. 아마 보길도 앞바다쯤일 것이다. 어쩌면 제주도 근처일지도 몰랐다. 은수와 나는 해류를 따라 깊은 바다를 함께 흘러 다녔다. 때로는 바위 속 암초에 걸려 하루 이틀쯤 휴식을 얻기도 했다. (... 중략) 땅 위에서도 늘 붙어 다녔던 것처럼 우리는 물속에서도 함께 있었다. 은수와 함께 일 년이 넘도록 갇혀 있었던 여객선의 삼층 선실은 춥고 어둡고 무서웠다. 은수와 나는 손을 꼭 마주 잡고 물속에 잠겨 있었다. ---「언더 더 씨」중에서 짚신은 아직도 잔물결 이는 바다에 동동 떠 있다. 저 짚신을 따라가면 서천서역국에 닿을 수 있을까. 엄마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일 년이나 지났으니 나를 잊었을지도 모른다. 퇴근길에 장 보러 갈 생각이나 하며 하품을 깨물고 벽시계를 흘끗흘끗 바라보고 있을까. 아빠는 젊은 아내와 함께 얼굴도 모르는 이복동생의 양손을 나눠 쥐고 패밀리레스토랑으로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진 않을 것을 알면서도 공연히 억하심정이 든다. 울컥 서러워진다. ---「언더 더 씨」중에서 이렇게 놓고 보면 우리 네 사람 다 제대로 된 가족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다. 하긴 집안 꼴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미쳤다고 가출을 했을까. 어른들은 우리더러 결손가정 출신이라고 부른다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도 다르고 부모도 다 다르고 만난 것도 넉 달밖에 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우리 네 사람이야말로 진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뭐 가족이 별건가. 이렇게 모여 함께 밥 먹고 함께 잠자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 가족인 거지. ---「알록달록 빛나는」중에서 어쨌거나 이윤미가 사라지고, 박준기가 잘 비치지 않은 데다 피상태까지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고 보니 지음소사이어티는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된 셈이었다. 나 역시 악단원의 치다꺼리나 하는, 미래가 없는 계약직 일자리가 슬슬 불안하기도 한 참이어서 무슨 다른 수가 없나 하고 머리를 굴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음소사이어티 전말기」중에서 왜 모든 이야기들은 ‘그들은 그리하여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을 맺는 것일까. 섬광과 같은 짧은 미혹의 순간이 지나면, 삶이란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의 누더기처럼 통속적이고 누추한 것을. 아니, 지금 이 밤에 천지에 미만해 있는 황사처럼 정처 없고 헛된 것을. ---「치애(痴愛)」중에서 |
|
한국 사회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
반어적 감수성(sensibility)를 통해 새로운 저항의 가능성을 타진하다 첫 번째 작품「정염」은 강동수 소설가의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문해력을 바탕으로 현대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쟁점화하고 있다.「정염」의 사후 담화처럼 보이는「치애」는 익명화된 개인의 건조한 일상을 담담하게 서술함으로써, ‘헛된’ 사랑(illusion)을 좇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심리적 결여를 드러내고 있으며「가족소풍」과「알록달록 빛나는」은 예쁜 제목과 달리,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관계적 결핍을 드러내는 반어적 텍스트로 두 작품 모두 가족 공동체가 붕괴된 시대의 우울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지음소사이어티 전말기」는 소설을 비롯한 예술작품이 정말로 제 기능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인지 되묻고 있으며 마지막으로「언더 더 씨」와 「운수 좋은 날」은 실제로 일어났던 사회 참사를 모티브 삼아 수많은 이들의 죽음과 고통을 마주하고 묘사한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공동체의 우울을 어떻게 애도하고 치료할 것인지를 질문하고, 자본/권력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서술하며 증언한다. 특히 표제작「언더 더 씨」에서 확인할 수 있듯, 소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라 사실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의 소재나 제재가 실제 사건이나 사연에 입각한 것이라 하더라도, 작품 속 내용은 진짜가 아니라 허구이다. 그러나 가짜 이야기(fiction)가 인간 삶에 무용할 것이라는 판단은 섣부르다. 소설은 허구와 현실의 공모를 통해 성립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종종 리얼한 것이 발설하지 못하는 ‘생(生)의 진실’을 발화한다. “강동수의 세 번째 소설집 『언더 더 씨』는 리얼리즘 소설이 추구하는 확고부동한 미래 전망을 거부하고 있다. 작가는 일상생활의 파편이나 예술의 가치가 아니라, 더 깊고 어두운 절망의 심연 속으로 하강하고 있다.『언더 더 씨』에서 확인할 수 있는 파국적 세계 인식과 무기력한 일상성이야말로, 문학이 직조할 수 있는 대항적 정념의 토대가 된다. 강동수 작가의 신작 일곱 편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한국사회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란, 새로운 저항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반어적 감수성(sensibility) 그 자체이다. 그것은 폐허를 견디는 공통 감각이며, 언더 더 씨……, 그 슬픔의 심해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마음의 촛불이다.” (박형준, 해설 「폐허를 사는 힘」중에서) ‘소설의 바다’를 항해하는 호밀밭 소설선, 각기 다른 ‘사연의 고고학’을 꿈꾸며 강동수 작가의 『언더 더 씨』는 소설의 바다로 향하는 호밀밭출판사의 세 번째 소설선이다.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는 한국 소설의 사회적 상상력을 탐구한다. 또한 문학과 예술의 미적 형식을 타고 넘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흔적을 새롭게 탐사하는 서사적 항해를 꿈꾼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아파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또 때로는 서로를 보듬으며, 난파한 세상 속으로 함께 나아가는 문학적 모험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호밀밭의 소설은 미지의 세계를 발명하는 낯선 이야기의 조타수가 되기보다는, 우리가 상실한 생의 가치와 존재 방식을 집요하게 되물으며, 동시에 우리 삶에 필요한 따뜻한 자원을 발굴하는 ‘사연의 고고학자’가 되고자 한다. 소설이라는 사회적 의사소통 방식은 분명 오래된 것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 삶과 공동체의 가치를 새롭게 정초할 수 있는 ‘여전한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소설의 바다’로 나아가려는 이유이다. - 호밀밭 문학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