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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인도불교 Ⅰ. 불교 여명기의 흐름 불교 탄생의 배경 001 인더스 문명의 발생과 아리안족의 침입 002 도시 국가의 발달과 신흥 사문의 형성 003 윤회?해탈에 대한 브라만교와 불교의 관점 차이 004 육사외도의 등장과 그 사상적 특징 Ⅱ. 붓다의 등장과 불교의 성립 붓다의 생애와 불교 005 가비라국 왕자, 붓다의 탄생 006 왕국에서의 생활과 사문유관 007 붓다의 출가와 고행 008 붓다의 깨달음 009 가르침의 전개와 교단의 형성 010 붓다가 처음으로 설한 가르침 011 계율의 성립과 10대 제자 012 복제를 통해 본 중도의 유연함 013 세계 종교 최초로 여성 성직자를 허용한 불교 014 오법을 제기한 제바달다의 소요 015 붓다의 열반과 엄격주의의 승리 016 마하가섭이 주도한 1차 결집 017 마하가섭과 아난의 관계 Ⅲ. 불교의 발전과 역류의 발생 부파불교의 시작 018 확대되는 불교에서 발생한 균열 019 아소카 왕의 인도 통일과 불교 진흥 020 스무 개의 부파로 재분열하는 불교 Ⅳ. 쉬운 불교에 대한 민중의 요구 대승불교의 등장 021 경전의 문자화와 대승불교의 등장 022 붓다에 대한 그리움이 반영된 대승불교 023 불탑을 중심으로 붓다를 생각한 사람들 024 불상을 통해서 붓다를 보려는 사람들 025 진리 자체로 붓다를 이해하는 사람들 026 용수의 공 사상과 이를 따르는 이들 027 세친의 인식론과 이를 따르는 이들 028 아트만에 대한 요구와 붓다의 가능성 Ⅴ. 인도불교의 몰락과 부활 밀교의 등장부터 신불교 운동까지 029 붓다가 완성이 아니라 시작인 밀교 030 힌두교와 이슬람에 무너지는 불교 031 티베트로의 이동과 새롭게 일어서는 불교 중국불교 Ⅰ. 중국으로 들어오는 불교 초전기의 불교 032 실크로드 개척과 함께 시작된 불교의 전파 033 중앙아시아로의 불교 전래 034 중국으로의 불교 전래 035 중국 최초의 사찰 백마사와 『사십이장경』 036 외국인 승려의 입국과 경전의 번역 037 유목민의 중국 정복과 불교의 확대 Ⅱ. 중국을 정복하는 불교 위진남북조의 불교 038 인도적인 도안과 중국적인 구마라집 039 여산 혜원과 개인적인 강남불교 040 황제와 붓다가 동일시되는 강북불교 041 경전 목록과 계통의 정리 042 인도에 대한 동경과 구법 여행 Ⅲ. 중국식으로 변모하는 불교 수?당의 불교 043 세계제국의 성립과 발전하는 중국 044 수 문제와 중국적인 최초의 불교, 천태종 045 세계 최강국 당과 종남산의 불교 046 중국 최고의 진정한 세계인, 현장 047 민중에게 다가서는 중국불교 048 중국 유일의 여성 황제와 용문석굴 049 화엄 사상, 진정한 통합을 말하다 050 달마의 중국 도착과 선에 대한 갈망 051 경제적 안정과 남방문화의 역습 052 밀교의 발전과 사상의 정체 053 안사의 난, 남종선을 꽃피게 하다 054 가장 중국적이지만 주류는 아닌 선종 055 신유교의 맹아와 불교의 대응 056 회창법난으로 표면화된 불교의 문제점 Ⅳ. 무너지는 불교와 중국 송?원?명?청의 불교 057 관료제 사회의 만개와 제도화되는 선종 058 남송 시대와 한족의 불교에 대한 비판 059 세계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과 티베트불교 060 거대제국 속 또 다른 세계인의 등장 061 중국의 일부가 된 불교 062 유교의 옷을 입은 불교 063 출가하는 황제, 무너지는 중국 한국불교 Ⅰ. 불교의 유입과 삼국의 발전 삼국 시대 064 한반도로 전래된 불교 065 불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고구려와 백제 066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불교를 수용한 신라 067 불교를 통해 고대 국가의 초석을 확립하다 068 정반왕과 마야 부인이 다스리는 나라 069 미륵 신앙을 바탕으로 백제 부흥을 열망하다 070 화랑도에 결합된 미륵 신앙과 원광의 세속오계 071 신라불교의 토대를 마련한 자장 072 김춘추의 등장과 출렁이는 불교 Ⅱ. 화려하게 꽃피는 불교 통일신라 시대의 불교 073 신라불교의 아웃사이더들, 새로운 시대를 열다 074 화쟁 사상으로 분열과 갈등을 해결하려 한 원효 075 계몽을 통해 개혁을 실천한 의상 076 나라를 수호하고 흩어진 민심을 통합하다 077 중국불교의 꽃이 된 신라의 왕자들 078 중국에서 지장보살로 칭송받은 김지장 079 동아시아를 넘어서는 신라인들 080 불국토를 통해 대통합을 실천하다 Ⅲ. 신라불교의 새로운 흐름 선종의 발달과 후삼국 시대 081 산중 사찰과 선 수행, 선종이 발달하다 082 구산선문의 발달과 신라에서 고려로의 전환 083 후삼국, 미륵을 깨어나게 하다 Ⅳ. 고려불교의 변화와 흐름 고려 시대의 불교 084 불교를 국교로 삼은 나라, 고려 085 승과 제도의 시행과 불교 종파의 통합 086 팔만대장경의 판각과 의천의 교장 간행 087 지눌, 교학을 포함한 선종을 천명하다 088 혼란의 시대에 불교를 기록한 일연 089 선종을 중심으로 자정 노력이 이루어지다 090 꺼져 가는 불교 부흥의 등불과 고려 Ⅴ. 억눌린 불교와 민중의 염원 조선 시대의 불교 091 불교 교단의 통폐합과 사찰 수의 축소 092 성리학의 비판에 직면한 불교 093 한글 창제에 힘을 모은 왕실과 승려 094 『경국대전』이 결정한 조선불교의 그늘 095 문정왕후의 불교 후원과 허응 보우의 불교 중흥 096 국가의 위기 속에서 타오르는 불교 097 통제되지 않는 국가와 불교의 발전 098 초의와 추사, 차와 불교를 논하다 099 구한말의 불교와 불교로 모인 지식인들 100 일제강점기 불교의 명암과 조계종의 성립 찾아보기 |
一雨 玆玄,일우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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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용 컴퓨터는 담을 수 있는 용량에 한계가 있지만, 익스플로러를 통해서 인터넷에 접속하면, 유한을 넘어 무한과 조우하게 된다. 이와 같은 것을 브라만교에서는 아트만(我)과 브라흐만(梵)의 결합, 즉 ‘범아일여(梵我一如)’라고 한다. 개별적 존재인 아트만과 창조주인 브라흐만이 하나가 되면 변화와 유한성에 속박된 아트만은 무한 불변의 자유로 거듭나게 된다. 이것이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해탈이고, 그 대상은 끊임없이 돌고 도는 반복의 수레바퀴, 즉 윤회이다. 이것이 우파니샤드의 종교?철학이 주장한 결론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창조주로서의 신’이라는 대전제를 필수로 한다. 결국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면 이 주장은 오류에 빠지게 되고, 논리 구조 전체가 무너지게 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사실 신의 존재는 유사 이래로 신앙과 믿음으로 용인될 뿐, 증명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불교는 이러한 관점에서 검증 불가능한 신의 존재를 배제한다. 그렇게 되면 아트만도, 브라흐만도, 범아일여의 구조도 성립될 수 없다.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안아트만, 즉 ‘변화하는 실체’이다. 그리고 이 변화를 깨닫게 되면 인간은 바람처럼 완전한 자유를 증득하게 된다고 본다.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과 브라만교의 해탈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셈이다. - 003. 윤회·해탈에 대한 브라만교와 불교의 관점 차이(30~31쪽) 마하가섭이 교단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 것은, 사리불과 목건련을 따르던 왕사성 출신의 승려들이 마찬가지로 왕사성 인근 출신이었던 마하가섭을 암묵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마가승기율(摩訶僧?律)』 권32에는 마하가섭이 붓다의 가르침을 정리하는 1차 결집을 주도할 때, 중앙에 붓다의 자리를 꾸미고 그 좌우로 사리불과 목건련의 자리를 상징적으로 배치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마하가섭이 사리불과 목건련의 지지 세력을 끌어안고서 불교 교단의 리더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 015. 붓다의 열반과 엄격주의의 승리(87~88쪽) 부파불교의 성립과 발전은 불교 내부에서의 경쟁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서 불교는 점차 세밀해지고 어려워진다. 불교학이 발전할수록 점점 더 작은 개념 차이에 천착하게 되고, 이것이 학문의 주류가 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부파불교가 계속해서 발전하게 되자, 승려들은 점점 더 민중의 생활과 유리된다. 이때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후 전법(傳法)에 나선 까닭은 민중을 위한 교화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종교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나기에 이른다. 이들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 대승불교운동이다. - 020. 스무 개의 부파로 재분열하는 불교(116쪽) 중국불교 초기에 경전을 번역한 승려인 안세고(安世高)의 ‘안’은 안식국(安息國), 즉 파르티아를 의미한다. 안세고는 안식국 출신의 세고라는 승려인 셈이다. 또 다른 초기 승려인 지루가참(支婁迦懺)은 월지국(月支國), 즉 쿠샨 왕국 사람이다. 이외에도 지금의 동투르키스탄에 있었던 강거국(康居國) 출신인 강맹상(康孟詳)이나 강승회(康僧會)도 있다. 그리고 인도 출신의 승려는 천축(天竺)의 ‘축’ 자를 넣어서 표시하였다. 축법란이나 축삭불(竺朔佛)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 때에 따라서는 붓다를 의미하는 ‘불(佛)’을 넣기도 했는데, 불도징(佛圖澄)과 같은 경우이다. 이런 방식을 보면, 중국에서는 초기부터 불교에 대한 중국문화적인 판단이 존재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 036. 외국인 승려의 입국과 경전의 번역(192~193쪽) 법과가 도인통으로 있었던 기간은 396년부터 398년까지인데, 『위서』 권114 「석노지」에는 이 기간 중에 법과가 했다는 놀라운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태조는 불교를 좋아하는 군주이니, 황제는 곧 현재의 붓다이다. 그러므로 사문은 마땅히 예를 다하여야 한다.”라는 구절이다. 그 밖에도 “사람들에게 도를 넓히는 자는 군주이다. 나는 황제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라, 붓다에게 절을 올리는 것이다.”라는 내용도 있다. 이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강남에서는 혜원이 『사문불경왕자론』을 전개하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상당히 대조적인 일이다. 강북의 불교는 강남과 같은 주체적인 교단 운영을 포기하고 정권에 예속되어 보호를 받는 안전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 040. 황제와 붓다가 동일시되는 강북불교(220쪽) 삼계교는 자기희생을 통한 신앙 공동체와 같은 집단으로 전란기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이후 수?당의 통일제국이 들어서면서 이러한 구호 활동은 국가 체제에 대한 반감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탄압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또한 삼계교를 제외한 모든 종파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는 비판은 중국불교 내에서도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당의 중기에 들어오면서 삼계교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도 공자의 유가와 경쟁하던 묵가가 있었다. 묵가 역시 개인보다는 집단과 가난한 민중을 위한 행보를 하였다. 그 결과 전란기인 전국 시대에는 유가를 압박할 정도로 유행했지만, 진?한의 통일제국 시대에 들어오면서 국가의 탄압 속에 사라지게 된다. 오늘날에는 종교의 구호 활동을 국가에서 권장하지만, 왕조 사회에서는 집권층을 위협하는 행동으로 인식되기 쉬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삼계교는 중국인들이 경험하였던 묵가적인 문제 의식과 요구가 위진남북조의 혼란기에 불교적으로 재발현된 것이라고 하겠다. - 047. 민중에게 다가서는 중국불교(264~265쪽) 인도의 바라문교나 힌두교는 모두 세속적인 종교이다. 그렇다 보니 통과의례가 발전해 있다. 유교 역시 예의라는 관점에서 통과의례가 고도로 발전되어 있다. 이는 오경(五經) 속의 『예기』나 신유교의 『주자가례』 등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불교에 불교만의 통과의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불교 시대에도 통과의례와 관련해서는 계속해서 유교적인 가치가 활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유교는 통과의례와 관련, 계속해서 민중과 관계를 맺으며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불교가 약화될 때 유교가 다시금 부활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배경이 된다. - 055. 신유교의 맹아와 불교의 대응(304쪽) 중국불교가 더 이상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 에너지가 신유교로 넘어 갔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는 중국불교 내부에서 추동 에너지가 부족했다는 점이며, 둘째는 양명학이 선종을 대체함으로써 선종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동아시아불교의 종언’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명말의 4대 고승은 새로운 에너지를 추동해 내는 인물이라기보다는 기존의 가치들을 종합 지양하는 인물들이었다. 시대에 맞게 변화를 이끌어 내면서 사회를 계몽해 나가기에는 당시 중국불교가 너무 허약해져 있었던 것이다. - 062. 유교의 옷을 입은 불교(348쪽) 그런데 『삼국사기』의 권4 「신라본기」 등에 따르면, 진평왕의 이름은 백정(白淨)이고 부인은 마야 부인이다. 백정은 석가모니의 아버지인 정반(淨飯)의 다른 이름이다. 즉 진평왕 부부의 이름은 석가모니의 부모인 정반왕과 마야 부인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삼국유사』의 권3 「황룡사 구층목탑」에 따르면, 신라 왕족은 석가모니와 같은 인도의 찰제리 종족, 즉 크샤트리아 계급이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왕권신수설과 같은 측면에서, 신라 왕가의 불교화를 붓다와의 연관성 속에 배치하여 불교적인 정통성과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라 왕가가 석가족의 이름을 빌려 쓰고, 브라만과 함께 인도를 통치하는 최상위 계급인 크샤트리아에 신라 왕가를 관련지음으로써 신라는 왕권을 안정시키고 국가 발전을 도모하려는 시도를 했던 것이다. 이처럼 신라 왕족이 석가모니의 씨족이라는 사상을 ‘석가진종설(釋迦眞種說)’이라고 한다. - 068. 정반왕과 마야 부인이 다스리는 나라(380~381쪽) 중국은 전통적으로 농경을 중심으로 한 문화였기 때문에 봄의 파종과 가을의 추수를 매 우 중요시했다. 따라서 춘추, 즉 봄과 가을이라는 세월의 흐름을 대변하는 측면이 역사라는 의미를 띠게 되었고, 인간의 나이 역시 춘추라고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춘추’는 국가의 역사를 뜻하는 동시에 개인의 역사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는 것이다. 또한 『춘추』는 유교의 다섯 경서인 『시경』, 『서경』, 『역경(주역)』, 『예기』와 더불어 오경(五經)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대표적인 유교 경전이 김춘추의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김춘추의 백부의 이름은 용수로, 인도 중관학파의 시조인 용수보살을 의미하는 대단히 불교적인 이름이다. 그런데 한 세대 아래의 춘추는 완전히 유교적인 이름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매우 크다. 이를 통해 진평왕과 선덕여왕 대의 불교 발전이, 오히려 불교에 대한 일부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다. - 072. 김춘추의 등장과 출렁이는 불교(400~401쪽) 물론 불교 안에는 선발주자인 귀족적인 교종과 후발로서의 평민적인 선종의 대립양상이 존재했다. 이 중 새로운 왕조의 창업 군주인 왕건이 ‘누구나 자신의 마음만 밝히면 붓다가 될 수 있다’는 인간 평등을 주장한 선종에 경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선종에서 자신의 마음을 밝혀 붓다가 되는 것처럼, 왕족이 아닌 왕건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창업군주가 되는 것을 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선종은 왕건의 군주로서의 당위성을 확립하기 유리한 이념을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 084. 불교를 국교로 삼은 나라, 고려(472쪽) 불교가 조선 시대 동안 정책적으로 탄압받았지만 현재까지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종교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이 시기 불교의 몰락이 국가의 탄압 때문에 이루어진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당시 불교의 몰락에는 외부적인 충격 이외에도 불교 내적인 요인 역시 존재하는 것이다. 그 가장 큰 원인은 불교가 민중과 유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불교가 전래된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불교는 왕과 귀족들의 경제적인 후원 등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천 년이 넘게 지속되자 불교는 점점 더 민중과 동떨어지게 된다. 만일 당시 불교가 민중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면, 위정자의 입장에서도 불교를 좌지우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 091. 불교 교단의 통폐합과 사찰 수의 축소(516쪽) 승군의 임진왜란 참전은 이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일본은 불교가 강한 국가였기 때문에 승군이 참전하지 않았을 때는 상대적으로 사찰을 파괴하지 않았다. 그러나 승군이 강력한 적으로 대두하면서부터는 무차별적인 사찰 파괴가 단행되게 된다. 또 임진왜란 이후 조선 조정은 승려들을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을 축조 및 관리하는 데 이용한다. 이외에도 전쟁 과정에서 보여 준 승려들의 전투 능력은 조선 정부로 하여금 승려들이 위험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로 인해 이들의 힘을 빼기 위한 방법으로 승려들은 국가 재건과 관련된 강제노역 등에 무차별적으로 동원되었다. 즉 승군은 조선을 위해서 싸웠지만 조선은 그 후로도 성리학만의 나라였던 것이다. - 096. 국가의 위기 속에서 타오르는 불교(540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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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까지
100가지 핵심 장면으로 간추린 2,600년 불교사 『자현 스님이 들려주는 불교사 100장면』은 인도에서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100가지 핵심 장면을 통해 불교가 어떻게 발생해서 어떻게 전래되고, 또 각각의 나라에서 어떻게 변화, 전개되었는지를 서술한다. 그동안의 불교사 관련 도서는 인도나 중국, 혹은 한국 등 한 나라를 중심으로 전문적인 내용을 담아 이해하기 힘들거나 지나치게 많은 나라를 한 권에 다루느라 독자들이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만을 선별하여 쉽게 소개한다. 그래서 불교의 발생지 인도, 그리고 우리나라에 불교를 전파하고 영향을 주고받은 중국, 그리고 한국의 불교사를 차례로 서술한다. 불교가 인도를 거쳐 중국, 한국으로 전파된 것과 같은 흐름으로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100가지 핵심 장면들은 우선 국가별로, 그리고 시대별로 배열되어 있지만, 엄격히 말해 시간 순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역사 공부를 할 때 특정한 시기에 일어난 ‘사건을 아는’ 데 주의를 기울인다면 이 책은 ‘흐름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특정 사건을 나열하기보다는 어떤 상황이 배경이 되어 인물이나 사상이 대두하게 되는지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그러다 보니 전쟁이나 반란 등으로 나라가 혼란한 시기에는 정토 사상이나 미륵 사상과 같은, 현실을 넘어 이상세계를 찾아가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법칙’을 찾을 수 있기도 하지만, 지역적·시대적 상황에 따라 동일한 현상의 배경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가령 비슷한 시기에 중국과 한국에서 ‘상호평등과 대화합’을 말하는 화엄종이 지배 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한 이유를 비교해 보면, 중국의 경우에는 측천무후라는 여성 황제의 즉위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의 경우에는 삼국 통일 이후 어지러운 나라를 하나로 엮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하였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의 연관성에 주목한 서술을 읽다 보면 낱낱으로 분절되어 있는 ‘장면’을 읽으면서도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역사와 문화, 사상이 한 권에 어우러진 불교 종합 교양서 우리나라에서 박사 학위가 가장 많은 사람, 그리고 아직 출판하지 않은 원고가 노트북에 가득한 저자로도 알려져 있는 자현 스님을 흔히 ‘전방위 지식인’이라고 칭한다. 저자가 받은 박사 학위도 철학, 미술사학, 역사교육 등 한 분야에 국한되어 있지 않으며, 그동안 발간한 저서 역시도 철학적, 역사적, 문화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폭넓은 시각으로 불교를 다루어 왔다. 이 책도 그동안 발간된 저자의 책과 마찬가지로 폭넓은 시각을 바탕으로 ‘불교사’를 소개한다. 그래서 ‘불교의 역사’라는 한정된 주제를 설명하면서도 그 안에는 그 나라의 문화적 배경이나 사상사, 그리고 주변국의 상황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그동안의 불교사나 불교 사상을 다루는 책들이 단편적이었다면 이 책은 총체적으로, 전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이런 총체적인 시각이야말로 이후 세부적인 파악의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글의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20여 개의 도표와 우리에게 낯설 수 있는 지역을 친절하게 집어 보여 주는 13개의 지도, 그리고 ‘베다와 카스트’ ‘자이나교’ ‘팔경계’ ‘불교정화운동’과 같은 본문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한 기사와 ‘인도의 사찰과 한국의 사찰의 차이점’ ‘중국 역사에서 장안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와 같은 문화적 측면을 소개하는 “더 알아보기” 등을 통해 인도와 중국, 그리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은 불교에 대한 공부는 물론, 동아시아사를 공부하는 훌륭한 종합 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