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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도덕경』과 그리스도교의 창조적 만남을 시도하며 (상권: 도경 1-37장) 제1장 도道와 하나님 제2장 상대적 세계와 성인聖人의 길 -무위無爲의 길, 아가페의 길 제3장 성인聖人의 리더십 -허심실복虛心實腹과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세계 제4장 화광동진和光同塵과 성육신成肉身 제5장 천지와 성인은 외식外飾하지 않는다 제6장 곡신불사谷神不死의 세계와 마리아의 잉태 제7장 천장지구天長地久와 영원한 십자가 제8장 상선약수上善若水와 예수의 길 제9장 공수신퇴功遂身退와 세례 요한 제10장 장이부재長而不宰와 지도자의 덕망 제11장 무無의 쓰임새와 비움의 영성 제12장 오감五感과 영성靈性 제13장 총욕약경寵辱若驚과 고난의 영성 제14장 이夷 희希 미微의 도道와 성령 하나님 제15장 탁이정濁以靜과 맑히는 영성 제16장 허정虛靜의 세계와 십자가의 영성 제17장 태상太上 부지유지不知有之와 은총의 지도력 제18장 대도폐大道廢 유인의有仁義와 하늘의 성령의 법 제19장 절성기지絶聖棄智와 동심童心의 세계 제20장 절학무우絶學無憂와 머리 둘 곳이 없는 인자人子 제21장 공덕지용孔德之容과 거룩한 영성聖靈을 좇는 길 제22장 곡즉전曲則全과 신에게로 향하는 온전한 사랑의 짓 제23장 희언자연希言自然과 텔레이오이 제24장 여식췌행餘食贅行이니 자랑하지 말지라 제25장 도법자연道法自然과 인간의 길 제26장 중정重靜의 도리와 십자가의 길 제27장 구인구물救人救物과 인생의 묘미 제28장 대제불할大帝不割과 통나무 예수 제29장 천하신기天下神器와 성도聖徒의 길 제30장 부도조이不道早已와 끝나지 않는 도, 사랑 제31장 병자불상지기兵者不祥之器와 평화의 왕 그리스도 제32장 도상무명道常無名과 통나무 지도력 제33장 자지자명自知者明과 불사不死의 길 제34장 대도大道와 우주적 그리스도 제35장 집대상執大象과 십자가 제36장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과 온유한 자의 복 제37장 도상무위道常無爲와 거듭난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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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를 도라고 하면 영원한 도가 아니다. 이 말은 역설(逆說) 중의 역설(力說)이다. ... 도를 둘러싼 온갖 형용사를 거부한다는 뜻이다. ... 하나님을 도에 비유할 수 있느냐 하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도는 동양사상에서 최고의 존재론적 가치에 부여하는 대명사이기 때문에, ... 이러한 표현 방식을 그리스도인은 겸허히 경청할 필요가 있다.” (본문 17-18쪽)
2.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무위로 일을 처리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행한다. ... 『도덕경』에서 성인은 30여회에 걸쳐서 등장하는 중요한 개념으로서 인간적 판단을 넘어선 수준 높은 경지의 모범을 보여준다. 그 대표적인 행동지침을 일러 무위(無爲)라고 한다. 무위는 『도덕경』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도덕경』이 이상으로 삼는 세계가 ‘무위자연’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본문 27쪽) 3. “성인의 다스림(리더십)은 그 마음을 비우게 하고(虛其心), 그 배를 채우게 하며(實其腹) ... 참으로 놀라운 역설이다.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운다 함은 『도덕경』식의 철저한 안민 사상이다.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우는 예를 성서에서도 보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약성서]에 나타난 ‘오병이어(五餠二魚)’(마태 14:13-21)의 기적이다. ... 기적이 발현되는 순간은 언제나 마음을 비우는 그 순간부터다. 기적은 나눔에서 시작된다.” (본문 33-34쪽). 4. “도는 비워서 쓰임이 있다(道?而用之). 도의 길은 비움에 있다. 그러기에 쓰고 써도 다함이 없다(或不盈). 성서에서 그리스도가 만물의 으뜸이 된 이유도 비움에 있다(골로새서 1:15-18). 티끌과 하나 되는 ‘화광동진(和光同塵)’ 이것을 예수로 비유하자면 성육신(成肉身)의 길이다.”(본문 37-41쪽). 5. “천지가 장구한 까닭이 ‘자기를 드러내지 않음(不自生)’에 있듯이 십자가와 부활이 영구한 까닭도 자기부정에 있었다는 점을 깊이 숙고해 볼 가치가 있다.”(본문 57쪽). 6. “가장 훌륭한 것은 물과 같다(上善若水).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해 주면서도 다투지 않고, 뭇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 물의 길이 예수의 길에 비유될 수 있다함은 무엇인가? 『도덕경』에서는 만물에 대한 물의 유익함과 다투지 않는 평화, 그리고 겸허의 세 가지 특징 때문이다.”(본문 59-60쪽) 7. “혼백이 ‘하나(一)’를 품고 그 하나를 떠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氣)를 전일하게 하고 더 없이 부드럽게 하여(專氣致柔) 능히 갓난아기 같을 수 있겠는가? ... ‘하나(一)’는 사람의 진리다. 동양적 사고에서 ‘하나’는 천지인을 내포한다. 예수의 표현 속에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요한10:30). 이는 곧 ‘하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비는 염원하고도 상통한다.”(본문 73-75쪽) 8.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으로 모이는데, 그 바퀴통의 텅 빔으로 인해(當其無) 수레로서의 쓰임새가 있다(有車之用). ... 이는 물질적 존재의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텅 빈 ‘무(無)’의 세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무의 쓰임새’라고 말하게 된다. 도의 세계는 이처럼 가시적인 세계 보다는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무의 세계에 더 주목하게 된다. 이것을 행위의 세계와 연관 지으면 ‘무위’의 세계가 된다. 예수에게 비유하자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제물로 주려 한 것(마태 20:28)이다.”(본문 83-85쪽) 9. “비움의 지극함에 이르고(致虛極) 고요함을 돈독히 지켜라(守靜篤). ... 노자는 비움(虛)을 끝까지 몰고 가라고 한다. 그리스도교에서 비움의 극치는 십자가다. 그러므로 노자의 대표적인 사상 가운데 하나인 ‘비움과 고요함’인 ‘허정(虛靜)’은 예수에게서 ‘십자가의 영성’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고요함을 지키는(守靜) 것은 ‘겟세마네의 기도’에 비유 될 수 있다. 옳고 그른 이치를 깨닫기 위해 하늘에 뜻을 묻는 태도다.”(본문 113-115쪽) 10. “거룩하다는 생각을 끊고 지혜롭다는 생각을 버려라(絶聖棄智). 백성의 이로움이 백배나 더하리라(民利百倍). ... 이는 통치자가 거룩하다 의롭다 하는 등의 인위적인 모습을 버리고 통치에 임하는 지도자의 희생적인 노력을 뜻한다. 예수 정신에 비유하면 ‘절성기지’는 자신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사는 길이다.”(본문 133-134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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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노자의 ‘도’ 개념이 천지와 우주 만물의 작용에 비유 될 때, 그것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노자에게서 ‘무위’는 일체의 인위적이고 가식적인 ‘망령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러함’이다. 천지 만물이 스스로 그러한 원리에 따라 작용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노자는 말한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人法地),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地法天), 하늘은 도를 본받고(天法道)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道法自然).’(노자 25장)고 노자는 말한다. 이러한 ‘스스로 그러함’의 원리를 기독교에 굳이 적용해 본다면, ‘하나님의 자기 변용’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스피노자가 범신론을 말했지만 ‘스스로 그러함’은 기독교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여호와’에 비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의 모습은 ‘하나님의 얼굴’과 같은 표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자의 ‘도’ 개념이 기독교의 ‘로고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로고스’는 요한복음에 의하면 ‘말씀’이기도 하고 ‘하나님’이기도 하며 동시에 ‘예수’를 뜻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노자의 ‘도’가 기독교에서는 ‘로고스’로 비유될 수 있는 이유는 두 개념 모두 천지와 우주 만물의 작용 원리로 각각 생각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도’와 ‘로고스’의 관점에서 노자와 예수의 사상은 우주론과 창조의 원리에 대한 비교가 가능하다. 이러한 도와 로고스의 개념이 본서를 통하여 잘 비교 사상적 입장에서 전개되고 있다.
둘째, 정치적 측면에서 볼 때, 노자와 예수의 사상은 모두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 평화주의 사상가들이라는 점이다. 평화주의는 전쟁 반대와 같은 소극적 의미의 평화도 있지만 이웃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가는 적극적 의미의 평화도 있다. 노자와 예수는 그러한 적극적인 평화에서도 상통한다.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노자 8장)를 말하면서 남을 이롭게 하고 낮은 곳을 향하는 겸허한 물처럼 다투지 않고(不爭) 살아가는 도의 원리를 말하고 있다면, 예수는 스스로 겸허한 삶을 살면서 십자가 처형에 이르기까지 낮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 식탁을 나누면서 평화의 길을 제시했다. 또한 노자는 ‘소국과민(小國寡民)’(노자 80장)을 주장하면서 나라와 백성의 크기와 범위를 작게 하여 정복과 영토 확장의 야욕을 버리라고 한다. 제국주의적 발상을 버리라는 것이다. 예수 당시의 로마제국이나 춘추전국 당시의 전쟁을 통한 영토의 확장에 대한 일대 경종이다. 뿐만 아니라 ‘약팽소선(若烹小鮮)’(노자 60장)이라는 노자의 비유처럼 큰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작은 고기를 가만히 굽듯이 백성에게 간섭하거나 과중한 세금을 물리는 등의 억압정치를 하지 말라는 교훈도 있다. 예수도 당시의 로마 폭정에 대해 저항하면서 민중을 괴롭히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대해서도 비판을 거두지 않았다. 이것은 모두 평화를 위한 삶의 여정이었다. 이 같은 평화 개념이 노자의 많은 본문과 성서에 나타난 예수의 정신 속에서 많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셋째, 노자와 예수의 처세술이다. 노자는 ‘부드러움(柔)’을 중시했고 예수도 온유와 겸손을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다. 노자와 예수는 스스로 자기 비움의 삶을 살았고, 가식적인 인위적 행위를 배척하며, 소박한 무위의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노자의 기본 정신인 ‘무위자연’의 삶을 가능하게 해 주는 기초는 ‘허정(虛靜)’ 사상이다. 이것은 ‘비움을 끝까지 몰고 가고(致虛極), 고요함을 돈독하게 지키라(守靜篤)’(노자 16장)는 교훈에서도 알 수 있다. 욕심을 내려놓고 고요한 삶을 즐기는 것이 영생과 부활의 길에 동참하는 것이다. 예수로 말하면 이것은 ‘십자가의 영성’에 해당한다. 노자의 부드러움과 약함은 강하고 단단한 것을 이긴다(柔弱勝剛强)(노자 36장). 마치 예수의 ‘약함’이 결국은 강하고 단단한 로마의 군인정신세계를 원수를 사랑하는 아가페 정신으로 ‘이긴’셈이다. 이 같은 겸손과 온유의 삶의 방식은 노자와 예수의 품격을 대변해 주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이처럼 노자의 철학은 춘추전국시대의 혼란기에 생겨나서 공자를 중심으로 하는 유가(儒家) 사상에 못지않은 중국의 양대 사상을 형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철학과 함께 서양 정신세계의 양대 기둥이 되고 있는 기독교 정신과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화가 가능하다. 노자는 당시 사회의 질서가 무너져 내리고 있을 때, 헛된 욕망을 버리고 ‘스스로 그러함’의 도의 원리를 따라 소박하고 검소하게 사는 것을 중시했던 것처럼, 예수도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지 말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겸손하게 사랑과 평화의 삶을 살 것을 강조한 것과 구조적인 유사성을 지닌다. 이상과 같은 몇 가지 기준을 따라 본서는 ‘열린’ 대화적 입장에서 도덕경과 예수의 복음서는 시대와 공간을 넘어 우리와 만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