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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왈 예수 가라사대 하
예수와 만나는 도경
이명권
열린서원 201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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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하권: 덕경, 38-81장)

제38장 상덕부덕上德不德 : 높은 덕은 덕을 내세우지 않는다
제39장 일一과 하나님
제40장 되돌아가는 도道와 하늘나라虛靜로 간 예수
제41장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고明道若昧, 은밀한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
제42장 도가 만물을 낳듯, 하나님도 만물을 낳고
제43장 ‘지유至柔’와 로마를 정복한 예수의 온유溫柔
제44장 지족知足과‘ 천하보다 귀한 생명’
제45장 도의 진면목과 맑고 고요한淸靜 평화의 혁명
제46장 군마를 되돌려 평화의 밭을 갈게 하라
제47장 천도와 하나님의 얼굴
제48장 무위와 십자가
제49장 무심無心과 아가페
제50장 생사를 넘어선 자유의 도
제51장 왜 도인가?
제52장 천하의 어머니인 도를 간직하고 수양하라
제53장 대도大道와 하나님의 정치학
제54장 잘 세우고 잘 껴안는 사랑의 통치
제55장 두터운 덕을 지닌 자, 그 부드러움의 미학
제56장 ‘현동玄同’과 예수의 성육신
제57장 바름의 정치와 하나님의 나라
제58장 행복과 불행의 변증법, 그 초월의 미학
제59장 아낌의 철학
제60장 생선을 굽듯 나라를 다스리는 도의 통치
제61장 자신을 낮출수록 커지는 나라
제62장 노자의 도와“ 죄인을 구하러 왔다”는 예수의 도
제63장 원한은 덕으로 갚고, 큰일은 작은 일부터
제64장 무욕의 발길로 천리를 가다
제65장 대순大順, 곧 하나님의 품속에 이르는 길
제66장 바다가 시내의 왕이 될 수 있는 까닭, 그 겸손과 포용의 미학
제67장 노자가 아낀 세 가지 보물
제68장 다투지 않고‘ 하늘의 뜻을 따르는配天’덕
제69장 반전反戰 평화사상, 그 자비의 병법
제70장 ‘피갈회옥’과 나사렛 예수
제71장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진실
제72장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겸손과 관용의 통치
제73장 하늘의 그물은 넓어도 잃어버림이 없다
제74장 함부로 죽이지 마라
제75장 백성이 굶주리게 되는 까닭은?
제76장 부드러움, 그 생명의 미학
제77장 하늘의 도와 사람의 도
제78장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넋들을 기리며
제79장 하늘은 착한 사람과 함께 한다
제80장 ‘소국과민’의 평화로운 세상
제81장 다시‘ 하늘’에 도를 묻는다

저자 소개 1

연세대학교신학과를 졸업하였고, 감리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마쳤다.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미국 [크리스천헤럴드]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관동대학교에서 ‘종교간의 대화’를 강의하였고, 그 후 중국 길림사범대학교에서 중국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길림대학 중국철학과에서 노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길림사범대학교에서 교환교수로 재직하였고, 동 대학 동아시아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코리안아쉬람 대표이며, 서울신학대학교에서 동양사상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길사에서 나온 『우파니샤드』와
연세대학교신학과를 졸업하였고, 감리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마쳤다.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미국 [크리스천헤럴드]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관동대학교에서 ‘종교간의 대화’를 강의하였고, 그 후 중국 길림사범대학교에서 중국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길림대학 중국철학과에서 노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길림사범대학교에서 교환교수로 재직하였고, 동 대학 동아시아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코리안아쉬람 대표이며, 서울신학대학교에서 동양사상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길사에서 나온 『우파니샤드』와 『베다』를 비롯하여 『비움과 나눔의 영성』, 『예수 노자를 만나다』, 『예수 석가를 만나다』, 『공자와 예수에게 길을 묻다』, 『무함마드, 예수, 그리고 이슬람』, 『암베드카르와 현대인도 불교』, 『오늘날 우리에게 해탈은 무엇인가?』(공저), 『사람의 종교, 종교의 사람』(공저), 『종말론』(공저), 『통일시대로 가는 평화의 길』(공저), 『평화와 통일』(공저) 등이 있다.

역서로는 웨슬리 아리아라자의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을 위한 영성』, 마하트마 간디의 『간디 명상록』, 마틴 루터 킹의 『마틴 루터 킹』, 디완찬드 아히르의 『암베드카르』, 세샤기리 라오의 『간디와 비교종교』, 한스 큉의 『위대한 그리스도 사상가들』(공역), 『우리 인간의 종교들』(공역)이 있다.

논문으로는 <기독교의 자유론과 인도철학의 해탈론 비교연구>(석사논문), <마가 이적설화의 정치적 해석>(석사논문), <‘풍류’ 개념의 한중비교연구>(석사논문), <암베드카르와 현대 인도불교>(종교학박사학위 논문), <노자와 세계 성현들과의 대화 - 노자의 도 개념을 중심으로>(중국철학박사논문)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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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0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221쪽 | 152*225*20mm
ISBN13
9791195636464

책 속으로

1. 제38장: 상덕부덕(上德不德): 높은 덕은 덕을 내세우지 않는다.

"높은 덕은 덕을 내세우지 않는다."(上德不德)

이 한마디에 우리는 행위의 완전함이란 무엇인가를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어쩌면 덕행을 강조해 오던 우리가, 아니 덕을 지키지 못하여 안절부절 하면서 낮은 수준에 살던 우리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노자의 위대성은 철저한 우상타파에 있다. 그 점에서 예수와 맥을 같이 한다. "오른 손이 하는 행위를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던 예수의 가르침도 바로 같은 맥락이라는 뜻이다. 덕을 행했다고 해서 덕을 내세우지 않으므로 덕이 있다(是以有德)고 노자는 말한다.

2. 제39장 일(一)과 하나님

1) 일(一), 즉 도(道)를 얻을 때

자고이래 일(一, 道)을 얻은 것은 (다음과 같으니), 하늘이 일(一)을 얻어서 맑아지고, 땅은 일(一)을 얻어서 안정되며, 신은 일(一)을 얻어서 영험하게 되고, 계곡은 일(一)을 얻어서 차오르며, 만물은 일(一)을 얻어서 생장하고, 후왕(侯王)은 일(一)을 얻어서 천하의 준칙이 된다.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正.

『노자』에서 일(一)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 될 수 있는데, 우선 만물을 생장시키고 만물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도(道)로 해석되고, 또 하나는 원시적(原始的)인 혼돈(混沌) 미분(未分) 상태의 기(氣)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런데 39장의 이 본문에서는 ‘도’로 해석 된다. 도의 성격을 말해주는『노자』14장에서는 ‘합하여 하나로 여겨지는 것’(混而爲一)을 도라고 표현하고 있다. 세계 만물이 혼돈스럽게 움직이고 돌아가는 것 같지만 결국 ‘하나’의 원리로 귀결되는 것으로서의 ‘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형(高亨)에 따르면, 『노자』에서 일(一)은 세 가지의 뜻이 있다. 첫째, 신체(身)를 지칭 할 때의 일(一)이다. 이는 『노자』10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혼백이 하나를 품고’(載營魄抱一)라고 할 때의 일이다. 둘째, 우주의 본원으로서 음양이 배합된 상태의 대극(大極)을 뜻한다. 이는 42장에서 나오는바 ‘도가 일(一)을 낳고(道生一) 할 때의 일(一)이다. 셋째, 도(道)로서의 일(一)이다. 본 39장에서의 일(一)은 도의 또 다른 별명이다.

3. 제40장 되돌아가는 도(道)와 하늘나라(虛靜)로 간 예수

1) 도의 움직임과 쓰임새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며,
유약한 것은 도의 쓰임새다.

反者道之動, 弱者道之用.

노자는 일관되게 상대적 세계와 절대의 세계를 동시에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변화무쌍한 상대적 세계와 그 이면에 끊임없이 영속적으로 흐르는 ‘변화의 항상성(恒常性)’이라는 절대의 보편적 우주법칙을 도로서 일관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도의 흐름이 곧, ‘반자(反者)’라고 표현되고 있다. ‘반자’라는 것은 ‘되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왕필이 본문을 해석하며 말하듯이, “높음은 낮음을 토대로 삼고, 귀한 것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유(有)는 무(無)를 쓰임으로 삼으니, 이것이 반대 되는 것이다. 매사에 무를 파악해서 이용하면, 사물에 막힘이 없이 통하게 되므로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물론 노자가 『도덕경』2장이나 39장에서 표현 한바와 같은 상대적 세계의 진리를 말한바와 같은 맥락이다. 사실 ‘돌아 감(反)’이야말로, 전체 세계 현상의 주요한 움직임이다. 사시사철이 계속해서 돌아감과 같다.

4. 노자 제 42장. 도가 만물을 낳듯, 하나님도 만물을 낳고

1) 도의 변증법적 전개 과정

도는 일을 낳고, 일은 이를 낳고, 이는 삼을 낳고, 삼은 만물을 낳는다.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노자는 우주의 근원인 도에서 일(一)이라는 ‘하나’의 원기(元氣)가 발생 하였다고 말한다. 이어서 이 ‘하나’에서 다시 ‘둘’ 곧 음양(陰陽)이라는 ‘이(二)’가 생성되어 나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음양이라는 ‘둘’에서 만물의 전개는 끝나지 않고, 다시 ‘셋’이라는 ‘삼(三)’으로서의 음양 합일의 ‘화(和)’가 발생하였고, 그 화합으로서의 ‘삼(三)’에서 만물이 생성되어 나왔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도에서 비롯되는 만물의 우주전개 과정을 변증법적으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렇게 우주 만물의 근원인 도에서 출발한 일과 이와 삼의 전개 과정 끝에 생산된 만물은 이미 그 속에 음을 지니고 있고, 동시에 양을 껴안고 있다. 이러한 음양의 결합으로써 이루어진 만물은 그 속에 이미 텅 빈 기운으로서의 충기(?氣)가 있기 때문에 화합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이 조화롭게 생장 발전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도의 원리인 무(無)로써의 충기가 다시 한 번 중요한 것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5. 제 43장 ‘지유(至柔)’와 로마를 정복한 예수의 온유(溫柔)

천하에서 가장 유연한 것이 가장 단단한 것을 지배하고
형체가 없는 무(無)는 틈이 없어도 들어가니
나는 이로써 무위가 유익하다는 것을 안다.
말없는 가르침과 무위의 유익함을 천하에 행하는 자가 드물다.

天下之至柔, 馳騁天下之至堅,
無有入無閒, 吾是以知無爲之有益.
不言之敎, 無爲之益, 天下希及之.

노자의 사상체계 가운데 가장 중시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유(柔)’로서의 ‘부드러움’이다. 이는 곧, 유연하고 유약함으로 설명되기도 하는데, 노자가 앞선 본문에서 ‘부드럽고 약한 것이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고 했던 바와 연결되는 이야기다. 특히 본문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至柔)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은 도(道)의 모습이 그러하다는 것으로, 인간이 감각으로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연함을 말한다. 그러한 유연성은 마치 기마수가 말 등에 올라타서 강하고 힘세게 달리는 말을 조종(馳騁)할 수 있는 이치와 같다. 그것은 비단 말(馬) 뿐이 아니라, 천하에 그 어떤 강하고 견고한 것(至堅)이라 할지라도 부드럽고 유연함 앞에는 당할 자가 없다는 뜻이다. 아무리 강한 철도 부드러운 물에 부식이 되고, 단단한 다이아몬드도 그 속에 기(氣)가 내포되어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가장 단단한 것’(至堅)이라는 뜻은 감각적 경험 세계의 모든 내용물을 포함한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첫째, 노자의 ‘도’ 개념이 천지와 우주 만물의 작용에 비유 될 때, 그것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노자에게서 ‘무위’는 일체의 인위적이고 가식적인 ‘망령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그러함’이다. 천지 만물이 스스로 그러한 원리에 따라 작용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노자는 말한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人法地),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地法天), 하늘은 도를 본받고(天法道)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道法自然).’(노자 25장)고 노자는 말한다. 이러한 ‘스스로 그러함’의 원리를 기독교에 굳이 적용해 본다면, ‘하나님의 자기 변용’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스피노자가 범신론을 말했지만 ‘스스로 그러함’은 기독교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여호와’에 비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의 모습은 ‘하나님의 얼굴’과 같은 표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자의 ‘도’ 개념이 기독교의 ‘로고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로고스’는 요한복음에 의하면 ‘말씀’이기도 하고 ‘하나님’이기도 하며 동시에 ‘예수’를 뜻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노자의 ‘도’가 기독교에서는 ‘로고스’로 비유될 수 있는 이유는 두 개념 모두 천지와 우주 만물의 작용 원리로 각각 생각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도’와 ‘로고스’의 관점에서 노자와 예수의 사상은 우주론과 창조의 원리에 대한 비교가 가능하다. 이러한 도와 로고스의 개념이 본서를 통하여 잘 비교 사상적 입장에서 전개되고 있다.

둘째, 정치적 측면에서 볼 때, 노자와 예수의 사상은 모두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 평화주의 사상가들이라는 점이다. 평화주의는 전쟁 반대와 같은 소극적 의미의 평화도 있지만 이웃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가는 적극적 의미의 평화도 있다. 노자와 예수는 그러한 적극적인 평화에서도 상통한다.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노자 8장)를 말하면서 남을 이롭게 하고 낮은 곳을 향하는 겸허한 물처럼 다투지 않고(不爭) 살아가는 도의 원리를 말하고 있다면, 예수는 스스로 겸허한 삶을 살면서 십자가 처형에 이르기까지 낮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 식탁을 나누면서 평화의 길을 제시했다. 또한 노자는 ‘소국과민(小國寡民)’(노자 80장)을 주장하면서 나라와 백성의 크기와 범위를 작게 하여 정복과 영토 확장의 야욕을 버리라고 한다. 제국주의적 발상을 버리라는 것이다. 예수 당시의 로마제국이나 춘추전국 당시의 전쟁을 통한 영토의 확장에 대한 일대 경종이다. 뿐만 아니라 ‘약팽소선(若烹小鮮)’(노자 60장)이라는 노자의 비유처럼 큰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작은 고기를 가만히 굽듯이 백성에게 간섭하거나 과중한 세금을 물리는 등의 억압정치를 하지 말라는 교훈도 있다. 예수도 당시의 로마 폭정에 대해 저항하면서 민중을 괴롭히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대해서도 비판을 거두지 않았다. 이것은 모두 평화를 위한 삶의 여정이었다. 이 같은 평화 개념이 노자의 많은 본문과 성서에 나타난 예수의 정신 속에서 많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셋째, 노자와 예수의 처세술이다. 노자는 ‘부드러움(柔)’을 중시했고 예수도 온유와 겸손을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다. 노자와 예수는 스스로 자기 비움의 삶을 살았고, 가식적인 인위적 행위를 배척하며, 소박한 무위의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노자의 기본 정신인 ‘무위자연’의 삶을 가능하게 해 주는 기초는 ‘허정(虛靜)’ 사상이다. 이것은 ‘비움을 끝까지 몰고 가고(致虛極), 고요함을 돈독하게 지키라(守靜篤)’(노자 16장)는 교훈에서도 알 수 있다. 욕심을 내려놓고 고요한 삶을 즐기는 것이 영생과 부활의 길에 동참하는 것이다. 예수로 말하면 이것은 ‘십자가의 영성’에 해당한다. 노자의 부드러움과 약함은 강하고 단단한 것을 이긴다(柔弱勝剛强)(노자 36장). 마치 예수의 ‘약함’이 결국은 강하고 단단한 로마의 군인정신세계를 원수를 사랑하는 아가페 정신으로 ‘이긴’셈이다. 이 같은 겸손과 온유의 삶의 방식은 노자와 예수의 품격을 대변해 주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이처럼 노자의 철학은 춘추전국시대의 혼란기에 생겨나서 공자를 중심으로 하는 유가(儒家) 사상에 못지않은 중국의 양대 사상을 형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철학과 함께 서양 정신세계의 양대 기둥이 되고 있는 기독교 정신과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화가 가능하다. 노자는 당시 사회의 질서가 무너져 내리고 있을 때, 헛된 욕망을 버리고 ‘스스로 그러함’의 도의 원리를 따라 소박하고 검소하게 사는 것을 중시했던 것처럼, 예수도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지 말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겸손하게 사랑과 평화의 삶을 살 것을 강조한 것과 구조적인 유사성을 지닌다. 이상과 같은 몇 가지 기준을 따라 본서는 ‘열린’ 대화적 입장에서 도덕경과 예수의 복음서는 시대와 공간을 넘어 우리와 만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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