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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집 소년 7
작가의 말 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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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갓 열두 살이 되었을 무렵 신도심 개발 초기에 수도다방이라는 간판을 달고 다방을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우리 다방집 옆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 주변에 다른 다방들이 우후죽순 생긴 것이 문제였다.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에서 읽은 바로는, 경상북도만 해도 1982년부터 지금까지 한 해에 250개씩 다방이 새로 생겼다고 하는데 경상남도 D시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여름방학 동안 나는 레지 아가씨 한 명 없이 장사를 하게 된 다방집 도련님이 된지라 어쩔 도리 없이 틈만 나면 “조군아!” 하고 나를 부르는 손님들의 담배 심부름을 했고, 커피 잔이 쌓이면 열심히 설거지를 했다. 양손에 주부습진까지 생겨 상당히 우울했지만, 그렇다고 다방집 도련님 주제에 이런저런 사정을 어디다 대놓고 얘기할 형편은 아니었다. --- p.8
불을 모두 끄면 지하실이라 완전히 깜깜해질 것 같지만 비상구를 알리는 비상등은 항상 켜져 있었다. 그 덕에 홀 천장 네 군데에 조악하지만 그래도 나름 구라파의 위엄이 묻어나는 샹들리에 조명등이 빛났다. 그런 샹들리에를 바라보며 혼자 잠을 청하노라면 유럽 귀족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마침내 다방집 내실에서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얌전히 들려오면 나는 주방 옆 내실 쪽 벽에 달려 있는 삼성 이코노 컬러 TV를 조심스럽게 켰다. 다방집에서 사는 것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비디오나 컬러 TV, 전자오락기와 같은 신문물을 남보다 빨리 접하게 되는 장점도 있었다. 그 시간에는 AFKN을 주로 본다. [투나잇 쇼]나 [데이비드 레터맨 쇼] 같은 건 전혀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다. 또 내가 좋아하는 마돈나나 그녀의 라이벌인 신디 로퍼,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 유리스믹스의 뮤직비디오 클립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 p.13 마돈나를 닮은 미스 나 누나가 처음 우리 다방집 내실에서 짐을 풀고 엄마와 같이 자며 숙식까지 해결하기로 했을 때, 설레어서 그랬는지 비몽사몽간에 몽정까지 했다. 꿈속에서 나는 평소처럼 내실 쪽방의 내 책상 백열등 스탠드 아래에서 수학 공부를 하다가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끝나자 다방집 1층 현관문 셔터를 내리려고 내실을 거쳐 다방 주방으로 나왔다. 당연히 홀에 있어야 할 엄마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마돈나의 “라이크 어 버진”이 흐르고 마돈나의 공연 복장을 연상시키는 검은 망사로 된 아주 섹시한 옷을 입은 미스 나 누나가 주방 앞 테이블에 다리를 꼬고 앉아 고혹적인 모습으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 p.39 엄마는 9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낮에 종철이 패거리에게 맞았던 온몸 이곳저곳이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손거울로 얼굴을 보니 코는 아까보다 더 부어 있었고 턱밑은 땅바닥에 처박히며 긁힌 상처로 쉽사리 나을 것 같지 않았다. 오늘 상처 난 내 얼굴을 알아봐준 사람은 결국 담뱃가게 아저씨를 포함해 한 사람도 없었다. 역시 모두들 사는 게 바쁜 것이다. 어쨌든, 이 얼굴로 과연 결혼식을 할 수 있을까? 거참! 스스로를 한심해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방집 홀 어딘가에서 또 큰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미스 나 누나가 헐레벌떡 내실 옆 쪽방에 있는 나를 찾았다. 미스 나 누나는 상당히 어두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 p.2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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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폐적이자 무정부주의적 공간인 동시에 소년이 성장하는 공간, 다방집
이 소설의 주된 공간인 다방집은 성재와 그의 엄마가 삶을 살아가는 곳이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차를 파는 곳이다. 1980년대의 다방은 서양의 카페처럼 커피 한 잔 놓고 담소와 휴식을 취하는 달콤한 공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접대 여성들이 웃음과 애교를 팔고 심지어 일부에서는 ‘티켓’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히 성매매가 이루어지던 퇴폐의 온상이기도 했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지하 다방집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성재 엄마 이화순 여사가 곧잘 법을 어기며 돈을 버는 퇴폐적 공간이면서, 성재가 다방에 배달되는 5대 일간지를 탐독하고 새벽까지 컬러TV로 AFKN을 시청하고, VHS 비디오로 다양한 영화들을 보며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학교 교육에서 배울 수 없었던 지식과 통찰력을 습득하며 성장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결국 다방집은 폭력적인 국가주의를 주입하는 학교를 대신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질문을 통해 성재가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야 하는 아이러니의 공간이다. 오히려 성재가 다니는, 비평준화 지역에서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이 모인 남녀공학 고등학교는 학생들의 사소한 지각에도 뺨을 때리는 등의 폭력을 일상적으로 행사하는 국가 권위를 상징하는 폭력적 공간이자 성적에 따른 분명한 계급이 존재하는 곳으로 묘사된다. 로봇 집사 바봇의 일대기를 담은 정창영 작가의 전작 『바봇』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 역시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신박한 이야기지만, 한 단계 나아가는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다뤘다는 점에서 성장소설로도 구분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