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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설을 번역하다, 그를 사랑하다!
소설은 한국의 발자크라 불리는 이형우와 주인공 ‘나’가 내몽골 국경지대를 여행하는 풍경으로 시작한다. 변방을 지키는 해방군 같은 차림으로 국경지대를 여행하는 두 사람은 일 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내몽골 초지를 걷는다. 여기, 사람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한 들판을 걸으면서도 그는 서울에 두고 온 자신의 아내를 떠올리곤 할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추리였다. 그는 지갑 안에 항상 자신의 아내 사진을 끼워 넣고 다녔는데, 그의 아내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미모를 지닌 여자였다. 다만 그의 아내는 내가 읽어 대는 난해한 서적을 전혀 읽지 않는 눈치였고, 복잡한 가치관을 상당히 혐오하는 현실적인 여인 같았다. 그가 1년에 서너 차례씩 나를 찾아 중화인민공화국 땅을 밟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모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나와 여행을 하면서도 꾸준히 서울로 전화를 했고, 어제 베이징 호텔 로비에서는 내가 보는 앞에서 손으로 편지를 써서 국제 우편함에 넣었다. 그 순간 나는 아내의 충복으로 길들여진 듯한 내 영혼의 동반자의 행동에 치를 떨었다. 그는 그러니까 자기 아내의 노예였고, 나는 그러니까 그의 노예였다. _본문 10쪽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지식인 작가 이형우와 티엔(天)을 내세워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는 이 소설은 언뜻 사랑 이야기로 읽히지만 초강대국으로 성장한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를 소설적 구조로 내밀하게 그려냈다. 또 중국 문단과 학계의 분위기가 이야기 속에 녹아 있어 짐작만 하던 이웃의 대국 중국의 사회 풍광을 엿볼 수 있다. 이형우의 작품을 번역해 행상인처럼 짊어지고 중국 전역의 출판사를 이 잡듯 뒤지고 다니다 보면, 그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마오쩌둥 주석의 어록을 제대로 공부해서 그 어록에 바탕을 두고 함축성 있게 번역하시오.” 인문학이나 출판사의 노선에 따라 달랐지만, 아직도 마오쩌둥 주석의 어록은 현대판 철학의 사자성어였다. 그러나 노장사상을 바탕으로 고전 방식 사자성어로 압축한다면 모를까, 현대판 사자성어로 압축하면 사상이 약간씩 바뀌고 말았다.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노트북을 끼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이다. 출판사의 편집인들 옆에 딱 붙어 앉아 어딘가 끼어 있는 마오쩌둥 주석의 어록을 집어내야 했다. 그 작업을 하지 않으면 이형우의 작품은 중국 상흔문학(문화대혁명의 아픔을 묘사한 일군의 작품)처럼 변형되어 버렸다. _본문 59쪽 소설의 주인공 ‘나’는 스승이자 홀로 흠모하는 이형우의 작품을 벌써 열 권째 중국어로 번역해 출간했지만 단 한 권도 팔리지 않았다. 다만 한국재단에서 출판 비용과 번역료를 보내주어 나도 저자 이형우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내면의 자존심은 화석화되고 있었다. 나는 만리장성을 쌓느라 15년간 집으로 가지 못하고 찹쌀풀을 이겨 화강암과 화강암 사이에 붙였던 3천 년 전의 노예를 눈앞에 떠올리곤 한다. 새까만 어둠 속에 빠져든 화강암을 쓰다듬으면서 걷고 있는데 3천 년 전의 노예가 소리치는 비명이 들렸다. 나는 노예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었습니다. 만리장성을 쌓아야 하니까요. 나는 노예입니다. 나는 화강암에 찹쌀풀을 끼얹어 돌과 돌 사이에 풀을 붙일 때마다 피멍이 든 내 손바닥을 화강암에 찍어요. 나는 노예입니다. 단단한 돌을 어깨에 메고 빠다링(八達嶺, 만리장성이 있는 베이징 외곽의 산) 정상에 오를 때마다 가슴 뿌듯해지는 희열을 느낍니다. 나는 노예입니다. 돌과 돌 사이에 내 마음을 새겨야겠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예입니다. 노예의 운명에 자존이란 없습니다. 노예의 운명에 쾌락이란 있을 수가 없지요. 노예는 다만 돌과 돌 사이의 틈을 메꾸어 만리장성을 쌓는 데 행복을 느껴야 한다는 숙명을 타고 났습니다. 나는 자존심이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나는 행복한 노예입니다. 만리장성을 쌓았던 3천 년 전의 노예와 대화를 하며 화강암을 어루만졌다. _본문 161쪽 이형우를 바라보는 나를 중국 작가 티엔이 보고 있다. 그는 나에게 프러포즈를 한다. 자신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이면 베이징역사박물관에 이형우의 작품을 진열해 준다고, 만리장성 지하에 이형우의 작품을 묻겠다고, 나중에는 자신의 텍스트와 혼합하자고 한다. 티엔에게는 별 관심이 없지만 이형우의 전 작품을 중국에 출간하고 세계 출판시장에서 날개를 달 수 있도록 해준다는 티엔의 이야기에 나는 고대 중국 여인 왕소군 같은 희생을 하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늘 정중동하며 정중동을 요구하는 이형우의 태도는 결국 나를 주저앉힌다. 자전이라는 트릭? 허구와 실제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설 ‘자신이 번역한 소설을 쓴 작가를 사랑해 버린 번역가’라는 설정은 평이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소설을 쓴 작가가 실제로 번역가라면? 아마도 독자들은 ‘혹시 자신의 이야기일까?’ 하고 새로운 관심을 보일지 모른다.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저자가 “자전적 소설을 쓰는 척하면서 내가 겪은 세상 이야기를 문장과 문장 사이에 슬슬 끼운”듯 써 내려간 이 소설은 책과 활자의 세상에 빠져 지내는 “나라는 존재가 아홉 대의 노트북을 껴안은 채 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넘나”드는 모습을 중국 학계와 문단의 풍광에 녹여 그려낸다. 책을 읽으면서 그 책의 작가와 번역자가 궁금했던 독자라면 이 소설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완벽한 자전적 글을 쓰는 소설가가 없듯 완전한 허구의 이야기도 없다. 결국 소설 속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아간다. 추천의 글 박명애는 소설가이자 중국의 뛰어난 현대 소설을 한국에 많이 번역하고 소개한 번역 문학가다. 또 한국의 우수 작품들을 중국에 번역해 소개함으로써 문학 수출의 한 전범이 되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 작품은 한·중 문학의 상호 번역이라는 독특한 경지를 적극 일구어 온 저자의 체험이 다채롭게 녹아 있을 뿐더러 중화의 자존심을 지키려 애쓰는 작가 티엔, 한국의 발자크로 불리는 이형우, 노벨문학상을 받은 잉숑 등 캐릭터도 아주 매력적이다. 이 특별한 지중파(知中派) 작가는 문학 교류라는 체험 세계를 통해 때로는 가차 없이 때로는 애정 어린 눈빛으로 오늘날 중국에 내재된 가치의 혼돈을 그린다. _박덕규(소설가, 단국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