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오자
서장(序章): 오기와 문후의 만남 도국(圖國): 부국강병의 길 요적(料敵): 상대를 정확히 파악하라 치병(治兵): 강한 군대를 육성하는 방법 논장(論將): 지휘관의 자질 응변(應變):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라 여사(勵士): 사기는 전투력의 원천 울료자 천관(天官): 전쟁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병담(兵談): 강한 군대를 육성하라 제담(制談): 제도를 잘 정비하라 전위(戰威): 국력의 원천은 국민 공권(攻權): 지휘관의 덕목 수권(守權): 적의 사기를 높여 주지 마라 십이릉(十二陵): 군주가 명심해야 할 열두 가지 무의(武議): 전쟁 수칙 장리(將理): 법 집행을 공명정대하게 하라 원관(原官): 각자의 직분에 충실하게 하라 전권(戰權): 항상 기선을 제압하라 중형령(重刑令): 처벌은 무겁게 오제령(伍制令): 매사에 공동 책임을 지게 하라 분새령(分塞令): 책임 지역을 분명하게 부여하라 속오령(束伍令): 부대는 한 몸처럼 움직이게 하라 경졸령(經卒令): 조직적인 부대 관리 · 늑졸령(勒卒令): 철저한 교육 훈련 장령(將令): 지휘관의 권위 종군령(踵軍令): 병력의 배치와 운용 병교 상(兵敎 上): 교육 훈련 요령 병교 하(兵敎 下): 용병의 원칙 병령 상(兵令 上): 지휘는 일사불란해야 한다 병령 하(兵令 下): 군령은 추상같아야 한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
이른바 잘 다듬어진 군대란 평상시에는 상호 간 예절이 깍듯하고, 일단 움직였다 하면 위풍이 당당해 공격에 당할 상대가 없고, 후퇴하더라도 쫓아올 수 없습니다. 전진과 후퇴에 절도가 있고, 좌우 이동이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면, 설령 부대가 단절되더라도 진열(陣列)을 유지하고, 분산되어 있더라도 대오를 갖춥니다. 또한 상하가 동고동락하고, 생사를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군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 흩어지는 일이 없으며, 전투가 벌어지면 지칠 줄을 모르므로 어디에다 투입해도 천하에 당할 자가 없습니다. 이를 일컬어 ‘부자지간(父子之間)과 같은 군대’라고 합니다.
승리하는 군대는 마치 물과 같습니다. 물이란 본디 약하기 짝이 없지만 계속 부딪치면 언덕도 무너뜨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 까닭은 물의 성질이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한곳에 끊임없이 부딪치기 때문입니다. ---본문 중에서 |
|
“전사자(戰死者)의 집에는 해마다 사람을 보내 그 부모를 위로하고 상급을 내림으로써 국가가 항상 잊지 않고 있다는 뜻을 표하라” 이처럼 ≪오자≫와 ≪울료자≫는 모두 ‘인화(人和)’를 핵심으로 하는 병서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의 연마보다 전쟁에 임하는 인간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중국 전국시대에 쓰인 책들이지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자(吳子)≫ 혹은 ≪오자병법≫은 지금으로부터 약 2300여 년 전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오기(吳起)라는 사람이 저술한 병서다. 비록 ≪손자병법≫에 비하면 정교함이 떨어지고 문체(文體)도 거칠지만, 안목(眼目)이 높으며 인간 통찰(洞察)의 측면에서는 손자보다 오히려 뛰어나 일찍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가령 ≪사기(史記)≫ 열전(列傳)에서 “세상에서 군사를 이야기할 때는 모두가 손자 13편과 오기 병법을 꼽는다”고 한 것이나 ≪한비자(韓非子)≫ <오두(五?)> 편(篇)에서 “손무와 오기의 병서를 집집마다 가지고 있다”고 한 대목은 오자가 이미 오래전부터 손자와 대등하게 평가받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외에도 병가(兵家)를 논할 때 ‘손·오’를 병칭한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오늘날은 ≪손자병법≫이 세계적으로 병서의 경전처럼 성가(聲價)가 높아진 반면 오자는 그 그늘에 가려 이름조차 생소해질 만큼 빛을 잃어버렸다. 이 책은 이러한 왜곡된 인식을 해소하고 오자의 진면목을 이해하는 데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오자와 손자의 병서를 비교해 보면 양자가 모두 전쟁에서의 승리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은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어떻게 이길 것인가 하는 방법론에서는 양자의 관점이 사뭇 다르다. 가장 대조를 이루는 부분은 손자가 주로 전투 현장에서의 효과적인 용병술을 강조한 데 반해 오자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 태세에 역점을 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양자는 상호 보완적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오자가 손자와 대등한 평가를 받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울료자(尉?子)≫는 중국 고대 전국시대 중기인 기원전 4세기경 위(魏)의 울료(尉?)가 쓴 병서라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숱한 고증과 연구를 거쳐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울료자≫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는 엇갈리는 부분이 적지 않다. ≪울료자≫에 관한 논란은 중국 내에서조차 매우 오래전부터 있어 왔고 일부의 문제는 지금까지도 학자들 사이에 논의가 분분하다. 그러나 오늘날 학계의 보편적인 의견은 ≪울료자≫는 전국시대 때 위나라의 울료가 저술한 병서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면 울료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여기에 관해서도 ≪사기≫의 짧은 기록 외에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울료자≫를 보면 법령이나 군령의 지엄함과 제도의 완비, 신상필벌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 자주 등장하는 등 법가(法家)적인 색채가 적지 않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법가에 경도되었다고 하기보다 유가(儒家)와 도가(道家) 심지어 묵가(墨家)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상을 포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