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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글
서론 생명과학의 꿈과 한계 제1장 신체를 개조하면 행복해진다? - 치료를 넘어선 강화 제2장 이상적인 아이를 선택할 수 있다면 - 출생 전 진단과 선택 임신 제3장 생명을 개조해도 괜찮을까? - iPS 세포와 재생 의료의 꿈 제4장 ‘멋진 신세계’로는 가고 싶지 않다? - 어느 작가가 그린 미래 예상도 제5장 ‘생명은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이라는 말의 의미 ? 마이클 샌델이 묻다 제6장 작은 생명을 받아들이는 방식 - 중절과 생명의 시작에 관한 논의 제7장 유대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 - 뇌사에 드러나는 사생관 결론 개별적 생명과 유대 속 생명 마치는 글 주요 참고 문헌 |
Susumu Shimazono,しまぞの すすむ,島園 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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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만들어도 괜찮을까?’라는 물음에 답하려면 문화의 차이를 염두에 둔 새로운 방식의 철학적 고찰이 이루어져야 한다. --- p.7
라엘이나 실버가 상상한 미래 사회에서는 소질이 더 뛰어난 것을 취사선택하고 그것을 더욱 키워나가고자 한다. 이를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러한 과정에서 반드시 무언가가 누락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p.20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아이가 약물을 복용하고 있으며 부모도 이를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약물을 사용하면 어떤 종류의 사회 적응력이 생긴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어른이 정한 특정 사회 규범에 따르도록 아이의 성격을 약으로 ‘고치는’ 것이다. 이것은 과연 ‘치료’일까. ‘더 바람직한 아이’를 꿈꾸는 사회가 도달할 미래는 어떠한 모습일까. --- p.39 이것은 자신들이 하는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심하지 않고 인간의 욕구가 만들어낸 경제적 이익만을 좇아서 의료와 생명과학을 발전시키는 행위다.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바람인 ‘생명 연장의 꿈’에는 이러한 단면이 숨어 있다. --- p.43 이런 식으로 생명의 존재 방식을 선택하는 일, 즉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고르는 행위는 특정 종의 유전적 특질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머지않아 인류라는 종으로서의 존재 방식 자체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 p.64 과거든 현재든 우생학의 바탕에는 장애를 가진 인간은 없는 편이 낫다, 다시 말해 사회에 짐이 될 만한 인간의 존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상이 깔려 있다. 물론 질병이나 장애를 낫게 해서 고통과 괴로움을 없애주는 치료 목적의 의학 및 의료의 발전은 필요하다. 하지만 발전이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 일부를 배제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 p.67 만약 재생 의료가 이런 흐름으로 진행된다면 인간의 신체 기능을 돌릴 뿐 아니라 인간을 ‘고쳐서 새롭게 만드는’ 단계까지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iPS 세포 같은 만능 세포를 이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유전자를 재조합하는 단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처럼 재생 의료는 ‘인간 개조’라 불리는 지점까지 발을 들인 상태다. --- p.73 여전히 초점은 ‘생명의 시작을 파괴해도 괜찮은가’라는 문제에 맞춰져 있다. 생명 윤리의 문제를 고찰하는 사고의 기본 틀이 생명의 시작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서구의 기독교적 윤리관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능 세포와 재생 의료를 둘러싼 윤리적 과제의 본질은 그것과는 다른 부분에도 있다. 바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문제다. --- p.94 《멋진 신세계》라는 작품의 밑바탕에는 전체주의가 생명과학, 심리학, 정신의학이라는 과학과 결합해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고 인간의 존재 방식 자체를 바꿀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 p.112 하지만 오늘날에는 각 문화의 차이를 고려하는 동시에 인류의 공동 기반이 되어줄 윤리성을 찾아내야 한다. 차이를 무시한 채 공통의 규범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다름을 중시하고 때로는 도저히 합의할 수 없는 면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면서도 제어장치가 되어줄 윤리적 사고방식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 p.116 《멋진 신세계》에서는 독재자가 조직적으로 통제해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치료를 넘어서》가 그리는 미래에서는 개인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자유경쟁 원리를 바탕으로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라 행동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단인 생명공학의 힘이 커지면서 결과적으로 자유를 잃고 만다. --- p.126 요즘은 ‘자기 책임’이라는 말도 빈번하게 쓰인다. 타고난 신체적 조건이나 환경까지도 당사자나 부모가 직접 선택하게 된다면 타자의 고통과 고민에 공감하고 서로 도우려는 적극적 마음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 p.134 생명공학과 관련된 생명 윤리나 가치관을 둘러싼 논의의 바탕에는 서구의 종교와 문화에서 비롯한 전제가 깊이 깔려 있다. ‘인간의 존엄’이나 ‘고귀한 생명’이라는 말에는 기독교 문화와 고대 그리스 이후의 서양 철학적 사고방식, 윤리관, 사생관 등이 빈틈없이 자리하고 있어 그 틀을 벗어나 논의하기는 쉽지 않다. --- p.142 이처럼 사생관이나 사물·생명·마음을 대하는 가치관에는 인류 전체에 보편적으로 통하는 요소도 있지만 동시에 각 문화나 사회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점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면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윤리적 과제를 다룰 때는 각각의 문화나 사상에 뿌리내린 사생관을 신중하게 되묻고 사회 전체가 의식을 공유해서 깊은 논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 p.182 《나라야마 부시코》는 마을과 가족이 지닌 생명의 한계를 존중하기 위해 때때로 개체의 생명을 내다 버리기도 하는 세계를 그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삶 속에서 오린과 다쓰헤이가 서로의 개별적 생명을 존중해나가는 방식을 인상 깊게 그려낸 작품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생명의 한계를 깨닫게 해주며, 그러한 자각을 통해 사람이 유대 속 생명과 개별적 생명 모두를 깊이 자각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다. --- p.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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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 발전은 어디로 향하는가?
줄기세포, 유전자 가위, 게놈 프로젝트...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상징하는 이런 말들을 들으면 ‘이제 인류가 모든 난치병에서 자유로워질 날이 멀지 않았구나’라는 벅찬 희망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그렇게까지 해도 괜찮을까’라는 위태로움을 느끼는 묘한 딜레마에 빠진다. 최근 중국에서 세계 최초로 ‘유전자 편집’을 거친 아이를 출산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중국에서 시도된 일종의 ‘맞춤 아기(designer baby)’ 탄생에 대해 세계 각국은 중국이 생명과학에 대한 국제 합의를 깼다며 비난했다. 하지만 우리가 기후변화 협약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자본주의 시장경제 논리 앞에서 어떠한 윤리적·정치적 합의도 맥을 못 추는데 과연 생명과학에 대한 국제 합의인들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 어느 선에서 제어하지 않으면, 시장의 논리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맞물리면서 합의의 둑은 무너지고 생명과학은 ‘치료’의 영역을 넘어 건강한 신체를 더욱 뛰어나게 만드는 ‘강화’의 영역으로 빠르게 넘쳐흐를 것이다. 노화를 되돌리고, 신체의 일부를 교체하고, 태어날 아기를 선별하거나 부모가 원하는 대로 편집하고, 유전자를 조작하는 등 ‘강화’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생명과학의 발전은 인간을 더욱 행복한 세상으로 이끌까, 아니면 경제력의 차이가 그 사람의 태생적 능력이나 신체적 조건마저 정해버리는 끔찍한 세상으로 이끌까? 인간의 존재 방식을 바꾸어놓을 생명과학의 발전 생명을 ‘개조하거나 만들어도’ 괜찮은지 과학자들에게 물으면, 과학자들은 그에 대답하는 것은 자신들의 역할이 아니며 사회가 결정할 문제라고 답한다. 맞다. 과학자들은 과학의 발전에 최선을 다해 매진할 뿐, 그러한 발전의 결과를 어떤 방향으로 어디까지 허용할지 결정하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다. 앞으로 예견되는 생명과학의 발전은 그것이 상업화되었을 때 인간의 존재방식 자체를 바꾸어놓을 만한 파급력을 갖고 있다. 결국 ‘인간으로서 더 나은 존재 방식’이 무엇인지 제대로 고민하지 않으면, 우리는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는 생명과학의 폭주 속에서 끔찍한 세상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회가 올바른 결정을 하도록 이끌어줄 학문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이 철학이라고 말한다. 이때의 철학은 좁은 의미의 서양 철학이 아닌, 사회와 인간의 바탕을 이루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되물으며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보게 하는 사유로서의 철학이다. ‘생명을 만들어도 괜찮을까’라는 물음은 그리 간단한 질문이 아니며, 질문 그 자체가 무겁고 다양한 학문 영역에 얽혀 있어 자칫 길을 잘못 들게 될 수도 있다. 오랜 세월 동서양의 다양한 사생관에 천착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생명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가치관을 균형 있게 다루면서 우리를 생명윤리에 대한 깊은 사유의 길로 이끈다.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는 더 깊은 차원의 생명윤리 이 책에서 저자는 먼저 생명과학의 현재와 그 가능성을 살펴본다. 배아 줄기세포(ES 세포), 유도 만능 줄기세포(iPS 세포), 출생 전 진단, 선택 임신, 유전자 조작 등 일반인들이 막연히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정확한 내용을 잘 모르고 있는 생명과학을 쉬운 말로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이 생명과학의 현재와 그 미래 가능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일본의 소설 《나라야마 부시코》,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 미국 대통령 생명윤리위원회의 《치료를 넘어서》 보고서, 마이클 샌델 교수의 물음 등을 통해 생명윤리와 종교·문화의 상관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생명윤리의 논점에서 벗어나 생명을 바라보는 ‘문화의 차이’를 인식하고 서로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좀 더 깊은 차원의 생명윤리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렇게 해서 ‘생명을 만들어도 괜찮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인류 공통의 가치에 기초한 답을 찾았을 때, 비로소 생명과학의 발전은 우리 인간이 더 나은 존재방식으로 나아가도록 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만의 문화를 반영한 생명윤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 책은 동서양의 생명윤리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지만, 일본인 저자이다 보니 동양의 경우 일본의 생명윤리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한계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책은 우리에게 큰 숙제를 던져주는 책이기도 하다. 우리만의 문화가 깊이 반영된 생명윤리가 활발하게 논의된 적이 있었던가? 그런 논의나 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황우석 사태를 경험하면서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나 연구과정에서의 윤리는 사회적으로 큰 화두가 된 적이 있었으나, 생명과학 그 자체에 대한 논의는 아직 미진해 보인다. 논의가 되더라도 주로 서구의 기도교적 관점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질 뿐, 우리 고유의 문화적 차이를 깊이 반영하고 고민하는 차원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는 듯하다. 앞으로 생명과학이 더욱 더 발전함에 따라 생명윤리에 관한 국제적 논의는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생명윤리에 관한 인류 공통의 가치 기반을 찾는 국제적인 토론과 대화에 참여하여 우리의 목소리를 내려면, 먼저 우리만의 문화를 반영한 생명윤리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이 그러한 논의를 촉발하는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