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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문
서장 제자백가란 무엇인가 1. 제자백가의 분류 2. 새로운 출토자료의 발견 3. 사상가의 탄생 4. 황금기와 그 종언 5. 시대정신 1장_노자, 무위無爲의 철학자 1. 『노자』의 수수께끼 2. '도'의 사상 3. 『태일생수』 와 '도' 2장_장자, 혼돈混沌의 마술사 1. 생애와 텍스트 2. 세계의 정체 3. 혼돈의 세계를 살다 3장_양주, 역사부정의 쾌락주의자 1. 전국시대의 유행사상 2. 이기와 쾌락의 논리 3. 역사지상주의에 대한 도전 4장_공자, 천명天命을 받은 적이 없는 성인 1. 좌절의 인생 2. 예학의 실상 3. 야망의 끝 4. 『논어』와 일본인 5장_맹자, 실패한 혁명가 1. 천하 편력 2. 왕도정치 3. 성선설 4. 역성혁명설 5. 맹자와 자사학파 6장_묵자, 겸애의 전사 1. 묵자의 시대 2. 학단과 거자 3. 십론의 형성 4. 그 뒤의 묵가집단 7장_혜시, 상대적 비판의 파괴자 1. '역물'의 논리 2. 세계재구축의 사상 3. 정치가로서의 혜시 8장_공손룡, 최후의 고대논리학자 1. 명가의 발생 2. 『공손룡자』의 논리 3. 공손룡의 전체상 9장_추연, 우주론적 정치사상가 1. 그 사고법과 목적 2. 오덕종시설 3. 대지리설 10장_손자, 중국 병학의 최고봉 1. 『손자』의 작자는 누구인가 2. 손자병법의 특색 3. 그 현대적 의의 11장_한비자, 법가사상의 귀공자 1. 비운의 생애 2. 법치란 무엇인가 3. 형명참동술 4. 법술사상의 모순 옮긴이의 말 |
Asano Yuichi ,あさの ゆういち,淺野 裕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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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장주가 부정하려 해오던 모든 것이 양날의 검이 되어 그 자신을 공격한다. 그는 이 깨달음의 좁은 길에서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이때 장주의 사색은 사상을 부정하려는 사상의 숙명인 자기붕괴를 맞는다.
여기에 이르러 장주는, 대립자의 존재를 전제로 한 이의적二義的 존재, 반대자로서의 위험한 존립을 벗어나 “홀로 천지의 정신과 왕래하고 만물을 거만하게 흘겨보지 않으며 시비를 따지지 않고 세속과 산다(『장자』 「천하」)”고 말하고 있듯이, 어떠한 것도 업신여기지 않고 어떠한 것도 부정하지 않으며 세속과 섞여 묵묵히 살게 된다. “혼돈씨의 재주混沌氏之術(『장자』 「천지」)”를 부려 기성 판단의 틀을 깨트리며 사색의 여행을 계속한 장주는, 빈손으로 원래 살던 세계로 되돌아갔다. 본래 인간은 말라비틀어진 이름을 역사책에 남기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곤충이 자신의 유체를 표본실에 전시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듯이. 인간은 자신에 대한 미래의 평가를 미리 인생에 끼워 넣어 살 수 없으며, 현실에서 진 인생의 부채를 후세의 평가로 상쇄할 수도 없다. 자신이 떠맡을 수 있는 것은 실제로 자기가 살았던 인생뿐이며 사후의 평가를 받아서 그것을 자기 인생에 편입할 수는 없다. 이 간단하고 분명한 사실에 눈을 떠서 역사를 위해 사는 짓을 그만두라. 지금 여기에 있는 한순간의 인생을 나를 위해서만 살아라. ---p.110 중에서 따라서 맹자가 펴는 논리에는 도중에 커다란 비약이 있으며, 거의 꿈같은 이야기라고밖에 할 수 없다. 실제로 전국시대를 통일한 인물은 진왕秦王 정政(뒤의 진시황제)이며, 그는 법술사상을 채용해 왕도정치의 정반대를 실행함으로써 통일을 달성했던 것이다. 맹자의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간 셈이다. 그 뒤 2300년의 중국 역사에서도 맹자가 말한 식으로 천하를 통일했던 왕조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예뿐만 아니라, 맹자는 교묘한 비유나 일순간의 기백으로 상대를 압도하고 타인을 논파하는 재주가 뛰어났다. 확실히 선동가로서의 재능은 풍부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론술은 그때그때 상대를 설복시키는 승리를 거둘 수는 있어도, 실제로 사회를 변혁하고 역사를 움직여 가는 현실적 승리를 획득할 수는 없다. ---p.141 중에서 그렇다면, ‘협서의 율’에 의한 사상탄압이 시작된 뒤 묵가에게는, 모든 사상활동을 중지하고 보신을 도모하거나, 아니면 사형·멸족滅族·강제노역을 각오하고서 계속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는 두 가지 길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셈이 된다. 광적일 정도로 과격함을 자랑하던 전국시대 묵자들의 체질로 보았을 때, 분명 묵자들은 사상의 포기를 부끄럽게 여기고서 용감히 후자의 길을 선택했음에 틀림없다. 진 제국이 수립되고 나서 묵가집단이 갑자기 자취를 감춘 이유는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한대의 수많은 자료에도, 거자가 통솔하는 묵가집단의 존재는 물론, 단 한 명의 묵자의 존재마저도 맥이 끊어져 언급되는 일이 없다. 전한 무제 시대에 쓰인 『회남자淮南子』 등에는 묵가사상으로 볼 수 있는 요소가 분명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문헌상으로만 계승된 단순한 지식으로서의 묵가사상에 불과하다. 진 제국이 멸망하고 한 제국이 수립되었을 때, ‘세상의 저명한 학파’이자 ‘천하를 가득 채웠다’라고까지 일컬어지던 묵가와 묵자墨者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 사이는 채 20년이 되지 않았다. --pp.175~176 중에서 「천하」편의 작자는 혜시의 현지賢智주의의 대해 “천지의 도道로 혜시의 재능을 본다면, 한 마리의 모기나 등에가 애쓰는 것과 같”고, “안타깝구나! 혜시처럼 재능 있는 자가 함부로 날뛰다 도를 얻지 못했으니”라고 비판한다. 설령 혜시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것은 한 마리의 모기나 등에가 열심히 날아다니는 것과 같은 것으로, 개인적 현지로 만물을 일일이 구명해 세계 전체를 제멋대로 바꿔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한 교만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직 “최고가 되려는 마음을 품은” 혜시에게, 세계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대상이자, 자기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였다. “천지는 아마 장대하리니”라는 것은, 천지가 장대하다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재능을 떨칠 수 있는 영광의 무대에 나아가려는 혜시 자신에게 장대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p.190~191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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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어쩌면 내가 꿈꾸는 대로 될지도 모른다. 제가백가는 그렇게 믿고 사색에 정열을 기울이고 천하를 종횡무진 누볐다. 그들이 그린 궤적은 우리에게 자유로운 발상으로 미래를 구상할 가능성을, 2천 몇 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자백가, 철학의 가장 빛나는 시대 제자백가가 활동한 춘추전국시대는 주 왕실이 통제력을 완전히 잃어 유력 제후들이 패권을 목표로 서로 다투는 전란의 시대였다. 힘과 힘이 서로 부딪히는 분열상태 속에서 사상가는 천하는 어떻게 통일되어야 하는가, 국가를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을 테마로 사색을 거듭하며 다양한 사상을 낳았다. 기존 체제가 날로 붕괴해감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은 전혀 보이지 않는 혼란상태. 일반 민중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난처한 시대였지만, 사상가에게는 절호의 찬스가 도래한 시대이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해낸 구상대로 세계가 통일될 수도 있다. 나의 사상이 지상에서 실현될 수도 있다.’ 그러한 가능성이 현실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꿈이 사상가의 용기를 북돋웠고, 그들로 하여금 방대한 사색과 저술 및 정열적인 유세 활동으로 나아가게 했다. 위魏나라 혜왕惠王은 유세하러 온 맹자에게 “선생께서는 천리 길을 멀다 여기지 않고 오셨다(『맹자』 「양혜왕상梁惠王上」편)”고 말을 건네고 있는데, 이렇게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시대가 사상가의 정열을 받쳐주고 있었다. 한 권으로 읽는 제자백가 이 책은 제자백가 가운데 열한 사람의 사상가를 골라, 도가(3인)·유가(2인)·묵가·명가(2인)·음양가·병가·법가의 순서로 학파별로 정리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편집되어 있다. 그리고 그 동안 같은 주제를 다룬 책에서 그다지 언급이 없던 양주(위아설과 쾌락주의), 혜시(역물십사), 공손룡(개념실재론), 추연(오덕종시설과 대지리설) 등의 학설에 대한 소개는 이 책이 가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신불해·신도·상앙·관자 등에 대해서도 간략한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새로운 출토자료로 다시 밝힌 제자백가의 최신판 이 책의 저자인 아사노 유이치는 20세기 초 제국대학 시절부터 중국사상사와 일본사상사 연구 분야에서 우수한 성과를 낳아온 도호쿠 대학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했다. 도호쿠 대학의 학풍은 교토대학과 함께 청대 고증학의 유풍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이 책의 저자인 아사노 유이치도 이러한 학풍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저자는 일본의 중국고전학 연구의 한 정점을 이룩한 일련의 성과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1970년대 이후 새로운 출토자료(新出土資料)가 발견됨으로써 의고파 선학들의 통설과 정설을 더 이상 고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1990년대 곽점초간과 상박초간의 발견은, 이들 의고파의 연구방법론 자체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이를테면, 「대학」편과 「중용」편이 들어 있는 『예기』 자체에 대해 그 대부분의 편을 진한秦漢 유가의 저작으로 여겨왔으나, 곽점초간에서 『예기』 「치의」편이 발견됨으로써 의고파의 학설은 더 이상 설자리를 잃게 된다. 그리고 마왕퇴 전한묘에서 출토된 『오행편』에 대해 일본과 중국의 많은 학자들은 『순자』의 영향을 지적하며 전국시대 말기 또는 진대秦代나 한초漢初라는 주장을 했지만, 전국 중기인 기원전 300년경의 곽점초묘에서 『오행편』이 발견됨으로써 이들의 주장은 곧바로 분쇄되고 말았다. 1993년 10월 곽점초간이 발견되었고, 1998년 5월에 중국의 문물출판사文物出版社에서는 『곽점초묘죽간』이라는 서명으로 그것을 간행했다. 그 해 6월 이 자료가 일본에 수입되자, 이 책의 저자를 비롯해 유아사 구니히로(湯淺邦弘), 다케다 겐지(竹田健二), 후쿠다 데쓰유키(福田哲之), 스가모토 히로쓰구(菅本大二) 등 다섯 사람은 그 해 가을 ‘곽점초간연구회郭店楚簡硏究會’를 발족해 문헌해독 작업에 착수한다. 아사노의 이 『제자백가』도 본래 그러한 연구 활동의 성과물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새로운 연구 성과를 반영해 『태일생수』와 『노자』의 관계에 관해 설명하거나 맹자와 자사학파의 관련성 등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고대중국사상사를 둘러싼 연구 상황이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제자백가, 사상의 황금시대 제자諸子는, 세계의 있어야 할 모습과 국가의 바람직한 통치방법, 이상적 인간상 등에 대해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제출했다. 그들은 문인을 이끌고 각지를 유세했으며 가는 곳의 군주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받아들이라고 변론활동을 펼쳤다. 당연히 다른 학파끼리 여기저기서 마주치는 상황이 되었고, 가는 곳마다 논쟁쳀 전개되었다. 그러한 논쟁과정에서 이질적인 사상끼리 서로 자극이 되어 상대로부터 새로운 요소를 받아들이면서 각각의 학파는 사색을 더욱 깊게 해나갔다. ‘세계가 어쩌면 내가 꿈꾸는 대로 될지도 모른다.’ 제가백가는 그렇게 믿고 사색에 정열을 기울이고 천하를 종횡무진 누볐다. 그들이 그린 궤적은 우리에게 자유로운 발상으로 미래를 구상할 가능성을, 2천 몇 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