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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책머리에 1 글을 시작하며 2 조부 때 영양 일대로 옮겨 오다 3 유학 경전을 배우며 성장하다 4 장계향에게서 남자현을 엿보다 5 19세에 김영주와 혼인하다 6 남편 김영주, 의병으로 스러지다 7 의병전쟁을 지원하다 8 1917년, 아들을 만주로 보내다 9 드디어 만주로 향하다 10 서간도 독립운동 중심부에 첫발을 디디다 11 무너진 독립군기지 재건에 힘쓰다 12 정의부에서 핵심인물로 활약하다 만주 곳곳에 독립의 정신을 심다 조선혁명자후원회 중앙위원이 되다 무장활동을 펼치다 13 단지 혈서로 독립을 청원하다 14 무토를 처단하러 길을 떠나다 15 옥중 단식으로 마지막 불꽃을 태우다 16 그를 기리고 기억한 역사 17 한국 근대의 여걸! 남자현 남자현 지사 연보 참고문헌 부록(「나의 生涯」)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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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려 낸 남자현의 삶과 투쟁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남자현의 출생지, 기독교 수용 시기, 사이토 총독 암살을 위한 국내 잠입 시기 세 가지가 큰 쟁점이 되어 왔다. 지은이는 우선 남자현의 아버지 남정한에 관한 분석으로 출생지에 관한 논란을 단번에 종식시킨다. 남정한이 지은 스승에 대한 제문을 발굴함으로써 엇갈리는 구술 증언을 뛰어넘어 조부 대 이미 안동에서 영양으로 이주해 왔음을 입증한 것이다. 사료마다 차이를 보이는 기독교 수용 시기와 국내 잠입시기의 경우, 각각의 사료를 면밀히 분석하여 가장 합리적이고 타당한 시기를 도출하여 제시했다. 서로군정서 활동과 같이 구체적인 활약상을 보여 주는 사료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경우에는, 허은·지복영 등 같은 시기 만주에서 활약한 여성들의 생애를 추적, 유추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그의 치열한 활약을 생생하게 추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통 여성에서 근대 여성으로 발돋움하기까지 지은이는 남자현의 가장 큰 특징으로 유교적 미덕을 충실히 따른 전통 여성인 동시에 계몽주의적 근대 여성이었다는 점을 꼽았다. 이는 그의 투쟁이 분명하게 ‘사생취의(捨生取義)’라는 전기의병의 유교적 정신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남자현은 남편이 전사한 뒤 홀로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셔 효부상을 받았고, 시모상을 마치며 며느리로서 도리를 끝낸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무토 전권대사 암살 시도와 관련된 보도에도 남자현이 전사한 남편의 옷을 지니고 다니며 그의 대의를 이어 투쟁해 왔음이 나타나 있을 정도다. 그러나 동시에 망명 전후 시기 기독교를 수용하며 여성교육과 계몽에 앞장섰고, 복벽주의가 아닌 공화주의를 지향한 근대 여성으로 거듭난 점 또한 확인된다. 여성으로서 사회생활의 제약이 많았던 시기, 더욱이 그 가운데서도 남성 중심이었던 정의부에서 후방 지원뿐만 아니라 직접 무기를 들고 현장에서 활약했다는 대목은 남자현의 치열한 투쟁사뿐만 아니라 차후 이루어진 사상적 변화 양상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믿음과 정신으로 이루어 낸 독립을 기리다 민족과 나라의 존망 앞에서 남자현은 언제나 거침없었다. 수십 년에 걸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 힘을 다해 항일투쟁으로 일관했다. 망명하는 길에도 3·1운동에 참가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을 펼치며 식민지 통치와 억압을 강화하여 독립이 요원한 듯하던 1930년대에 순국하였으나, 그는 유언으로 독립축하금을 남기며 마지막까지 광복과 독립에 대한 믿음과 의기를 굳게 지켰다. 다가오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기에 앞서, 고난과 희생을 감수하며 상당한 역할을 해냈음에도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조명이 절실하다. 남자현이 굳게 지켜 온 독립의 정신을 되새기는 일은 그 귀중한 시발점이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