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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자료 심층연구 총서

책소개

목차

책머리에

1장 20세기 초반 사립 보문의숙 교과서 소고 : 경상북도 혁신유생들의 교육구국운동을 중심으로

서론 | 보문의숙 설립의 역사적 배경 | 보문의숙의 설립 과정 | 보문의숙의 학제와 교육과정, 교과서 | 보문의숙 역사 교과서, 개화기 도서 출판 | 정리 등

2장 봉경 이원영 목사의 삶과 목회에 대한 연구 : 그에게 미친 퇴계학의 영향과 연관하여

목회자도 유학자도 꼭 기억해야 할 이름, 봉경 이원영 목사 | 유교에서 기독교로 : 이원영의 생애와 삶의 주요 궤적 | 이원영 목사의 삶과 목회에 드러나는 퇴계학의 영향 | 맺는말 : 다시 봉경 이원영 목사를 그리워하며

3장 예안 유생 이원영의 기독교 수용과 섬촌교회 설립 의미 : 『섬촌교회당설립일기』를 중심으로

머리말 |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 기독교가 뿌리 내리는 과정 | 예안 3·1운동과 이원영의 기독교 수용 | 섬촌교회 설립 : 『섬촌교회당설립일기』 | 섬촌교회 설립의 의미 | 맺음말

4장 봉경 이원영 목사의 종교관과 설교에 나타난 유교와 기독교의 만남

머리말 : 이원영의 선비기독교 | 일제강점기 이원영의 종교관 | 이원영의 설교에 나타난 한국 유교의 기독교적 재전유 양상 | 맺음말 : 퇴계의 유교에서 이원영의 기독교로

5장 봉경 이원영의 생애와 민족운동

머리말 | 원촌에서 태어나다 | 신학문을 수용하다 | 1910년대 중반 교유 관계 | 1919년 예안 3·1운동 주도 | 기독교 수용과 민족운동 | 해방 후에도 계속된 종교적·민족적 양심

저자 소개 5

林熙國

임희국은 스위스 바젤대학교 신학대학에서 블룸하르트(아들) 연구로 1994년 박사학위(Dr.theol)를 받았다. 그는 1995년부터 2019년까지 영남신학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교회사 분야 교수로 일했다. 한국교회 역사현장(영남 지역)을 답사하며 연구를 진행한 그는 미시사(micro history)와 구술사(oral history) 연구방법을 개척했다. 이 연구는 전 세계 그리스도교에서 한국 장로교회의 정체성과 특성을 찾는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승리자의 역사, 거대담론의 역사, 서양 중심, 남성 중심, 엘리트 중심, 기득권층 중심으로 전해오는 역사서술을 비판적으로
임희국은 스위스 바젤대학교 신학대학에서 블룸하르트(아들) 연구로 1994년 박사학위(Dr.theol)를 받았다. 그는 1995년부터 2019년까지 영남신학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교회사 분야 교수로 일했다. 한국교회 역사현장(영남 지역)을 답사하며 연구를 진행한 그는 미시사(micro history)와 구술사(oral history) 연구방법을 개척했다. 이 연구는 전 세계 그리스도교에서 한국 장로교회의 정체성과 특성을 찾는 작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승리자의 역사, 거대담론의 역사, 서양 중심, 남성 중심, 엘리트 중심, 기득권층 중심으로 전해오는 역사서술을 비판적으로 검토했고 이와 함께 역사연구의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연구방법을 존중했다. 이것은 일반 역사학계의 최근 연구담론과 소통하는 작업이었다. 이러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역사현장에서 진행된 연구는 블룸하르트 연구의 후속작업 25년이었다.

미시사와 구술사 관련 연구 결과물로는 『여교역자로 살다: 여성 교역자 12인의 삶과 목회이야기』, 『여교역자 입을 열다: 여성 교역자 11인의 삶과 목회이야기』, 『강원도 장로교회 강원동노회 60년: 생명의 땅 새 창조를 향하여』, 『평양노회 100년사: 떠나온 평양 다가온 평화통일』(공저), 『선비목사 이원영』(수정증보판), 『하늘의 뜻 땅에 심는 성내교회(풍기) 100년』, 『김수만 장로, 절면서 열 교회를 세우다』, 『이원영 목사 유고설교』 외에 다수의 단행본이 있다.

주요 저서로는 『공감, 교회역사 공부: 아래로부터의 역사인식, 미시사, 지역교회사』, 『한국장로교회 130년: 기다림과 서두름의 역사』, Legacy and Portrait of Early Church History in Korea: Scholar Minister Yi Won-Young과, “Jesus ist Sieger!” bei Chr. Fr. Blumhardt: Keim einer kosmischen Christologi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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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요한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성균관대학교에서 유교철학으로 석사 학위(M.A.)를 받았고, 미국 보스턴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신일교회 담임목사로 목회하고 있다. 저서로는 『코로나19 시대의 기독교 신앙?위협과 그 대응』, 『복음이란 무엇인가』, 『신학자가 풀어 쓴 유교 이야기』, 『흐름으로 보는 서양사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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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경상북도 북부지역 장로교 조사(교역자), 장로 권수백權秀伯의 사역(1902~1941)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 3·1만세운동 경상북도 북부지역 책임연구자를 지내며 「경상북도 북부지역 3·1만세운동 ?지역 교회를 중심으로-」를 저술하였다. 경안노회 역사위원으로 지역교회사에 관심을 갖고 「근대 기독교와 신문화의 요람, 목성산자락」, 『안동교회 111년사』(공저) 등을 집필했다.
백제의 역사가 감도는 한강과 풍납토성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에서 한국유교와 예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태동고전연구소, 실시학사 경학연구회, 삼례역락 등에서 경학과 예학을 공부했다.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교수다. 여러 대학에서 종교학, 동양문화, 문화콘텐츠, 신화,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 대해서 강의했으며, 이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한다. 저술로는 『다산 정약용의 의례이론』 『제사와 제례문화』 『유교와 종교학』 『한국유학사상사대계-종교사상편』 『역주
백제의 역사가 감도는 한강과 풍납토성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에서 한국유교와 예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태동고전연구소, 실시학사 경학연구회, 삼례역락 등에서 경학과 예학을 공부했다.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교수다. 여러 대학에서 종교학, 동양문화, 문화콘텐츠, 신화,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 대해서 강의했으며, 이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한다. 저술로는 『다산 정약용의 의례이론』 『제사와 제례문화』 『유교와 종교학』 『한국유학사상사대계-종교사상편』 『역주 국조전례고』 『역주 시경강의』 『정본 주자어류소분』 등이 있으며, 만화평론가로서 『만화, 생사의 미궁을 열다』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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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였고,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 이어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서 학예연구부장을 지내고, 현재 안동대학교 사학과 조교수로 있다. 대표 논저로「시대를 뛰어넘은 평민 의병장 신돌석」(독립기념관, 2016),「사적에서 만나는 안동독립운동」(지식산업사, 2013),「신흥무관학교와 안동인」(한국학논총, 2018),「여성독립운동가 南慈賢의 항일투쟁」(한국독립운동사연구, 2018), 「신흥무관학교와 안동인들」, 「문암 손후익의 가계와 유림단 의거」, 『시대를 뛰어넘은 평민 의
안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였고,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 이어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서 학예연구부장을 지내고, 현재 안동대학교 사학과 조교수로 있다. 대표 논저로「시대를 뛰어넘은 평민 의병장 신돌석」(독립기념관, 2016),「사적에서 만나는 안동독립운동」(지식산업사, 2013),「신흥무관학교와 안동인」(한국학논총, 2018),「여성독립운동가 南慈賢의 항일투쟁」(한국독립운동사연구, 2018), 「신흥무관학교와 안동인들」, 「문암 손후익의 가계와 유림단 의거」, 『시대를 뛰어넘은 평민 의병장 신돌석』, 『만주로 간 경북 여성들』, 『한국근대의 여걸 남자현』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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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92쪽 | 530g | 152*223*17mm
ISBN13
9791167372581

책 속으로

보문의숙의 역사 교과서는 20세기 초반 위기를 벗어나려는 대한제국이 채택한 실용주의 부국강병 노선을 엿보게 한다. 즉, 역사 교과서는 문명화를 이룬 서양(유럽, 미국) 근세사 집필에 큰 비중을 두었고, 근세 서양에 대한 인식을 통해 그 문명이 어떤 과정과 방식으로 발전했는지 살피고 파악하게 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역사 교과서는 서양의 여러 나라가 아시아 대륙에서 제국주의 정책노선에 따라 이 대륙을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방면으로 식민지배하(려)는 현실도 직시하게 했다. 따라서 역사 교과서는 서양의 세력, 곧 아시아로 밀고 들어오는 그 힘을 양면적으로 파악하게 했다. 한편으로는 그 문명이 뿜어내는 힘을 배우고 습득해야 하는 점을 가르쳤고,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힘이 발휘하는 제국주의 식민 지배를 경계하도록 가르쳤다.
--- p.48~49

이원영 목사는 항상 의로움을 추구하는 강직한 면을 가졌으면서도 동시에 매우 겸손하고 사랑이 많은 목회자였다. 이원영 목사는 3·1운동 후에 감옥에서 출소하여 기독교인이 된 후부터는 집안의 하인들에게 존댓말을 쓰고 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했다고 한다. 또한 그가 원장으로 경안고등성경학교에서 가르칠 때에도 연령으로 손자뻘 되는 제자들에게도 존댓말로 묻고 대답하곤 했으며 제발 말씀을 낮춰 주시기를 부탁하면 그분 특유의 억양으로 ‘아니오’ 하면서 더욱더 겸손히 대하셨다고 제자들은 기억하고 있다.
--- p.98

이원영은 공정하지 않던 세상에 공정을,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 정의를, 평화롭지 못한 세상에 갈등과 마찰이 없는 평화의 세상을 이루려고 했다. 이것을 이루는 것이 이원영 자신이 아니고, 세상의 그 어떤 사상이나,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면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이원영은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음에도 무기력만 넘쳐나고, 해결해야 할 무거운 짐 앞에서 모두가 길을 찾고 있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길을 찾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자신이 살 길이고 나라가 살 길이고 모두가 살 길이라 생각하고 여기에 겸손하게 응답했다. 이원영은 그 후 하나님의 나라를 허물어뜨리는 가장 근원적인 것이 일제가 강요하는 신사참배라 여기며 이것에 처절하게 저항하였고 끝내는 승리했다. 이원영의 몸은 가둘 수 있었지만, 이원영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신앙은 가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원영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이 땅의 나라를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이라 여기며 일평생 그 길을 갔고, 오늘 우리에게 산 순교자로 남아 있다.
--- p.166

이러한 자세는 사회적 실천 양상에도 반영되었다. 일제강점기의 기독교인들이 대부분 수동적으로 굴복하거나 적극적으로 부역한 반면, 이원영은 유교적 신념에 충실했던 소년기에는 유교적 선비의 절의 정신과 의병 정신의 연장선상에서 적극적인 저항으로 투옥되었으나, 기독교 신앙을 수용한 청년기 이후에는 주변의 외면과 멸시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불의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비타협적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조용히 신앙과 교육에만 몰두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나아가 해방 후에는 교회의 분열 속에서 일제강점기에 순수하게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일제에 타협했던 기독교에 대한 반성을 하면서도 조급한 정죄 대신 넉넉한 포용을 하는 여유와 감화력을 발휘하면서 교회의 반성과 일치를 이끌었다. 이러한 양상 역시 점진적이고 온건한 수양을 강조했던 이황의 수양론과 상통한다.
--- p.226

이원영의 인생 전반부는 전통 유학과 신교육이 교차하는 시간이었고, 그것은 3·1운동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옥중에서 이상동이 전해 준 기독교라는 새로운 문화는 이후 그의 인생 절반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 뿌리내린 유학적 대의大義는 기독교 신앙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일제가 만들어 낸 교육령과 신사참배는 분명 기독교리의 원칙과 민족적 양심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이원영은 그 신념의 길을 충실히 걸었던 인물이다. 그가 뿌리내리고자 했던 기독교 또한 대의大義에 어긋나지 않는 ‘바른 길’이어야 했다.

--- p.280

출판사 리뷰

퇴계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유학자에서
저항적 역사인식을 지닌 기독교인으로 거듭나다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유서 깊은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이원영은 성인이 될 때까지 16년 동안 정통 유학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근대적 교육을 실시하는 보문의숙에 제1회 입학생으로 들어갔다. 보문의숙에서 이원영은 주자학을 기본 바탕으로 하여 서양의 과학기술과 문명, 세계사를 학습하며 저항적 역사 인식을 갖게 된다. 이후 예안에서 벌어진 3·1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고, 감옥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여 교인의 삶을 살 것을 다짐한다. 이처럼 이원영은 전통의 유학, 서양 문명과 세계사, 기독교 등 다양한 사상이 공존하기 시작한 과도기에 여러 분야의 지식을 섭렵했던 지식인이었고, 현실을 입체적이고 정확하게 파악하여 일제의 탄압과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고 확고한 신념을 지닐 수 있었다.

감옥에서 나와 목사가 된 이원영은 한결같이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섬촌교회를 비롯해 여러 기독교 교육기관을 세워 교육사업과 포교에 앞장섰다. 그는 강자와 약자, 차별과 차등, 부림과 억눌림이 없는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굳게 믿었고, 이러한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곧 3·1운동의 민족정신을 완성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모든 인간의 삶은 평등하다는 생각으로 신분 차별과 같은 구습과 전근대적인 문제를 교회와 평등한 교육 기관을 설립하여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는 섬촌교회에 야학을 설립하여 양반, 노비, 여성, 무산자에게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였고, 남녀가 평등하고 신분의 차별이 없는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었다.

퇴계학과 기독교를 접합시킨
이원영 고유의 ‘유교적 기독교관’


이원영의 활동과 그가 지닌 사상은 당대 기독교인 사이에서도 특별한 것이었다. 그는 목사가 되기 이전에 깊이 체득했던 퇴계학의 전통을 바탕으로 기독교를 재전유했다. 그는 기독교를 전파하며 물욕에 굴복하여 불필요하게 사치를 부리거나 성경 공부·봉사 정신·신앙의 자세에 대한 수양을 게을리하는 것을 경계했는데, 이는 불순한 욕망에 물들지 않는 순수한 이치인 ‘이(理)’를 지향하고 경전 공부와 수양의 자세를 강조한 퇴계학의 전통과 맞닿는 것이었다. 또한 죄악의 암흑에서 벗어나 생명이 넘치는 광명한 생활을 견지하는 생활 개선을 강조했는데, 이는 ‘성신의 변화’를 받아들여 죄악된 생활을 버리고 생명의 생활로 나아가고자 하는 퇴계학의 ‘반정’ 사상을 바탕으로 기독교적 중생 개념을 해석한 것이었다. 즉, 그는 퇴계학에서 강조하는 개과천선과 경건함이라는 유교적 수신(修身)을 영적 차원으로 재전유하였다.

이원영은 유교와 기독교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으나 각각이 인간관계의 도덕과 신-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종교로서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이원영이 일제와 타협한 다른 기독교인들과 달랐던 것은 성년이 될 때까지 몸에 익힌 유교적 선비의 절의(節義) 정신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절의 정신을 바탕으로 예안 3·1 운동을 벌인 데 이어 목사가 된 후에도 교육과 신앙에 몰두하며 비타협적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이처럼 봉경 이원영은 안동 지역의 독립운동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기독교를 전파하며 민족의 독립과 전전근대적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는 데 이바지했다. 또한 기독교를 퇴계학적으로 재전유하여 실천적 삶을 이어간 그는 영남지역에서 기독교가 뿌리내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개인의 신념을 지키고 사회적 대의를 추구한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자신을 쇄신하며 불의에 굴하지 않는 삶의 귀감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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