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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미시사: 일기를 통해 본 조선시대 전쟁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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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자료 심층연구 총서

책소개

목차

책머리에

1장 『계암일록』에 나타난 17세기 초반 별역 문제

머리말 | 광해군 연간 재정 부담 증가와 별역 발생 | 인조 연간 별역 징수 지속과 변화 양상 | 맺음말

2장 김종의 『임진일록』을 통해 본 피란 생활과 의병 활동 김경태

머리말 | 피란의 시작 | 강화도에서의 활동 | 새로운 의병진의 모색 | 맺음말

3장 17세기 전쟁과 혼인과 거주 방식의 변화 김정운

전쟁과 일상의 변화 | 성행하는 혼인 | 간략해진 절차 | 친족 조직의 등장 | 변화의 의미

4장 1593년 조선 조정의 명군지휘부 접촉과 일본군 공세 논의

머리말 | 평양 수복 이후 조선 조정의 명군지휘부 접촉 노력 | 경략 송응창의 조선 조정 인식과 기본 책략 | 맺음말

5장 『임진일록』을 통해 본 전쟁 중 민간의 정보 수집과 교류 양상

머리말 | 전쟁 발생 초기 피난 과정 속의 정보 전달 | 민간의 전쟁 상황 파악과 명군 관련 정보의 전달 | 맺음말

저자 소개 6

공주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조교수. 동국대학교에서 「조선후기 황해도 상정법(詳定法) 시행과 지방재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선후기 재정사와 역사지리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논저로 「17세기 전반 황해도 공납제 변화와 별수미(別收米) 시행」 「역사지리정보시스템(HGIS)을 활용한 조선후기 군현도로 복원 : 여지도서 황해도 도로조를 중심으로」 「조선 후기 도서 지역에 대한 행정 편제 변화 : 서남해안 도서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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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 역사교육과 부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임진전쟁기 강화교섭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허세와 타협 -임진왜란을 둘러싼 삼국의 협상-』 등의 저서와 『편역 사대문궤』 등의 역서가 있으며, 「동경대학(東京大學) 사료편찬소(史料編纂所) 소장 「사료고본(史料稿本)」의 임진왜란 초기 서술에 대한 비판적 검토」 「임진왜란기 조선의 이미지에 대한 인식과 그 변화」 「2000년대 이후 임진왜란 연구의 새로운 경향과 과제」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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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사학과 연구교수. 경북대학교에서 「17~18세기 경상도 북부지역 사족의 친족관계 연구」 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저로 『도동서원·무성서원』 등이 있다. 논문으로 「17세기 경상도 사족의 혼례 방식」 「노상추 일가의 의례 활동과 친족 관계」 「이익(李瀷)과 영남지역 학자의 교유」 「17세기 초반의 대구와 사대부 손처눌(孫處訥, 1553~1634)의 다면적 위상」 「조정(趙靖, 1555~1636)의 일기를 통해 본 전쟁 속 일상과 가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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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대학교 사학과 조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임진전쟁기 柳成龍의 군사·외교활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섬호집』, 『사대문궤』 등을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번역했으며, 「1598년 조선 조정의 명군지휘부 접촉과 전쟁국면 調整」, 「인조반정 이후 朝廷 構成과 광해군대 평가작업」, 「광해군대 廢母論의 전개과정」 등 선조·광해·인조대를 대상으로 논문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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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자대학교 사학과 조교수. 가톨릭대학교에서 「조선초기의 對外征伐과 對明意識」,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조선시대 사료 기반 역사콘텐츠의 현대적 재현과 제작」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벌과 사대』 『고려에서 조선으로』(공저) 『한국사, 한 걸음 더』(공저) 등의 저서가 있으며, 「연산군 대 대외정벌 추진 과정을 통해서 본 외교 역량의 약화」 「서울史의 경계 확장과 역사적 소재의 활용 -단종·연산군을 중심으로-」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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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한국국학진흥원 인문융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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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로 본 사족의 의례생활』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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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1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152*223*20mm
ISBN13
9791167375032

책 속으로

선조 25년(1592, 임진) 발발한 왜란倭亂은 조선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었다. 7년여 간의 전쟁은 조선에 회복하기 힘든 인적·물적 피해를 주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커다란 후유증이 남았다. 조선의 위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왜란을 전후로 하여 성장한 여진의 누르하치[奴兒哈赤] 세력이 어느새 명明을 위협할 정도로까지 성장하였고, 조선은 국가 재건에도 힘에 부치던 상황에서 북방 여진의 위협까지 방비해야만 하였다. 정유재란을 끝으로 물러난 일본의 재침 우려도 끊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17세기 초반 동북아시아의 국제적 혼란 속에 조선은 계속된 위기를 겪었고, 그만큼 군사·외교 비용의 부담을 안아야 했다. 외부 세력의 위협에 맞서서 국방비 지출이 늘어났으며, 중국 사신의 잦은 방문은 조선의 재정이 회복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여기에 내부적으로는 왜란으로 파괴된 국가 기반 시설의 재건이라는 막대한 재정 수요도 있었다. 결국 정해진 세액 범위에서는 이 비용을 모두 감당하기가 어려웠으며, 정규세가 아닌 일종의 ‘임시세’ 형태의 비정규세를 만들어 재정을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1 이러한 비정규세 문제는 일반적인 부세 운영에 위반이 되는 요인이었으므로 상례적으로 받는 세목인 ‘상세常稅’에 대비되어, 명분이 없는 추가 부세라는 의미와 함께 ‘별역別役’이라고 불렸다.
--- p.11~12

임진왜란 발발 후 강화에는 피란민뿐 아니라 관군과 의병들도 가득 모여 있었다. 이곳은 해로를 통해 비교적 안전하게 오갈 수 있는 지역이었고, 행재소와 다른 지역을 이어 주는 핵심적인 위치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의병의 창의 과정도 특징적이었다. 다른 지역의 의병장들이 여성과 노약자들을 산속으로 피신시킨 후에 장정 위주로 구성되고, 유격전 위주로 활동했던 데 반해, 강화에서는 의병을 결성하는 장소가 비교적 안전했고 모인 이들이 많았기에 의병의 규모도 비교적 컸다. 그리고 이들 다수의 병력이 선박을 이용해 이동하여 군사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김종의 기록을 통해 강화에 주둔한 의병진의 특징적인 모습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 p.83~84

유학은 군주의 덕으로 감화시키는 정치를 이상적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군주의 덕이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는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궁중 속에서 아무리 덕이 있는 군주가 있다고 한들 이것이 어떤 유위有爲한 정치를 통해 드러나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그 군주가 덕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홍범연의』에서는 군주의 덕은 제도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를 위하여 왕후, 세자, 직관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먼저 천자뿐만 아니라 왕후 또한 국가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존재임을 말한다.
--- p.96~97

전쟁이 끝났지만 사람들의 삶은 더욱 불안해졌다. 들으니 근래에 혼인을 하는 집이 매우 많아졌다고 하였다. 이것은 처녀들을 잡아서 심양으로 보낸다는 소문이 파다하였기 때문이다. 1637년 당시 조정에는 청나라 사신이 와서 머물고 있었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향화인을 쇄환하는 일과 한인(명나라 사람)을 잡아 보내는 일 등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이 요구한 것 가운데 재상의 딸을 청나라로 데려가서 혼인을 하겠다는 것과 처녀를 뽑아 가서 시녀로 삼겠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35 이것은 조선 사회에 충격적인 일이었다. 서울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사대부부터 서민들까지 청나라에 딸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서둘러 혼인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 p.112

전쟁을 겪은 이들에게 가족과 친족은 어떤 의미로 남게 되었을까. 힘든 시간을 함께 겪어내면서 전쟁 이전과 비교해서 가족의 의미는 더욱 각별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친족이 전란을 겪으면서 세상을 떠난 경우도 있고, 흩어져 생사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나면서 이들에게 친족은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남은 이들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결속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었다. 이 시기에 성회姓會나 문회門會, 화수회花樹會와 같은 조직이 나타난다.
--- p.128

일반적으로 전쟁과 같은 복잡한 상황에서는 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소문이 쉽게 유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에 관한 정보를 구하게 된다. 설령 정확하지 않거나 허황된 내용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이 과도하게 집중되면 필요 이상의 위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 정보 혹은 소문이다. 이는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던 상황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다.

임진전쟁처럼 개전부터 조선이 위기에 빠졌던 경우 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소문이 광범위하게 유포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어 왔다. 그런데 『임진일록』이나 『쇄미록』 등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는 성급한 일반화로 볼 수 있다. 개인 기록을 통해서 보았을 때, 전쟁 관련 정보를 쉽게 구하기 어려운 지방에 있었던 인물들이 상당히 정확한 전쟁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지방에 있는 사대부들이 한양이나 평양, 조선군이나 명군, 일본군 등의 동정을 비교적 신속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도 확인 가능하다. 전쟁 중에도 조선의 정보 유통망이나 전달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라 판단한다.

--- p.208~209

출판사 리뷰

전쟁은 어떻게 백성들의 삶을 바꾸었는가
-전쟁으로 인한 조세 부담과 혼인?가족 관계의 변화

전쟁을 치르기 위한 기본이자 필수 요소는 바로 군량과 군수품이다. 조선 역시 전쟁이라는 비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정규 세목 이외에 추가적인 비정규 세목을 만들어 세수를 늘렸다. 조선 시대의 크나큰 전쟁들이 국토를 황폐화하고 대규모 인명 피해까지 남긴 것을 고려하면, 백성들은 이중의 부담을 짊어졌던 셈이다. 게다가 전쟁 후 복구 비용, 그리고 전쟁 후에 증가한 외교 비용 역시 별도의 세목으로 추가 징수하여 충당하였고 이러한 추가 징수는 수십 년이나 이어졌다. 이처럼 전쟁은 백성들을 궁핍하게 만들었고 사회에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이러한 불안은 이른 혼인으로 이어졌다. 특히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는 재상의 딸을 데려가 혼인을 시키고 조선의 처녀를 청나라에 시녀로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이는 조선 사회에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한양은 물론 각 지역의 사대부부터 서민들까지 청나라에 딸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혼인을 서둘렀다. 게다가 전쟁으로 생활이 불안정해지자 서로의 삶을 지탱해줄 가족을 우선하는 가치관이 널리 퍼졌으며, 그 결과 혼인 연령은 계속해서 낮아졌고 혼인 절차도 점점 간소화되었다. 이는 이후의 혼례 문화 전반에도 영향을 남길 정도의 커다란 변화였다.

백성은 어떻게 전쟁에 대처하였는가
-사대부와 백성들의 의병 활동, 전쟁 정보의 수집

임진왜란 당시 패전보가 연이어 도착하자 사대부와 백성들은 서둘러 피란을 가는 한편, 그곳에서 생활을 수습하고 백성들의 힘을 모아 전열을 정비해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다. 지역 사대부는 의병 결성과 운용 과정에 의견을 보태었는데, 전황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많은 의병장이 전사하여 그렇게 병력을 모집하고 이끌 사람이 줄어들자 사대부들도 의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처럼 전쟁 시기에는 각자의 역할에 구애받지 않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란을 간 관료부터 백성까지 힘을 합쳤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이러한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전황에 관한 정보가 지역까지 공유되었던 덕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전쟁처럼 체제가 흔들리는 위기 상황에서는 정확하지 않거나 거짓된 정보가 사람들을 홀리는 경우가 많은데, 전쟁을 치른 개인들의 기록과 실제 역사를 비교해보면 놀랍게도 조선에서는 그러한 불상사가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지역 사대부들도 한양이나 평양의 정보, 조선군·명군·일본군의 동정을 신속하게 파악하였으며, 이는 촘촘하게 구성된 사대부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가능했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기존의 정보 전달 체계가 무너지지 않았고, 그 덕분에 지역 백성들도 전쟁의 상황을 파악하며 피란을 가거나 의병을 조직하는 등 전쟁에 주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전쟁 미시사』는 전쟁을 치르는 백성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한편, 전쟁이 사람들의 일상에 깊은 상처와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남긴다는 사실을 부각한다. 조선은 여러 차례 전쟁을 겪으며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큰 인적·물적 피해를 입었고, 나라 전체가 전쟁 후유증에 시달렸다. 전쟁을 극복한 사람들의 기록은 다시는 이 땅에서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 한편, 전쟁을 이겨낸 우리 백성들의 기상을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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