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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자료 심층연구 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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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머리에

1장 조선시대 청송 지역 달성 서씨 가학의 연원과 전승
머리말 | 달성 서씨의 청송 정착과 퇴계학파와 인적 관계망 구축 | 18~19세기 전반 가문의 보족保族 활동과 심학의 경향성 | 19세기 중반 족적 결속의 강화와 서석화의 퇴계학 집성 | 맺음말

2장 『경설유편』 「대학」 편의 편찬 방식과 의의
머리말 | 「학용의의변」 | 『경설유편』 「대학」 편의 편찬 방식과 의의

3장 16~19세기 영남 퇴계학의 학문관과 성리설 : 서석화의 『경설유편』에 등장하는 이황·이현일·이상정·류치명의 접점과 간극
머리말 | 학문관의 동이同異 | 성리설 비교를 통한 퇴계학과의 접점과 간극 | 맺음말

4장 20세기 퇴계학파 경학의 모색과 퇴영 : 서석화의 『경설유편·맹자』의 경우
문제제기 | 서석화의 학문여정과 『경설유편』의 편찬 | 『경설유편』의 분석 : 「맹자」 편의 경우 | 남는 문제

5장 서석화의 『경설유편』과 중용학
서석화의 『경설유편』과 영남 사선생 | 『경설유편』 소재 사선생 경설의 분포도 | 『청석집』 소재 경설의 분포도 | 서석화 중용학의 특징

6장 조선 후기 퇴계학파의 경학 주석서 편찬 개관 : 『경설유편』에 이르는 길
머리말 | 18세기 편찬서 | 19세기 편찬서 | 20세기 편찬서 | 맺음말

저자 소개 7

李根浩

조선시대사 전공, 충남대학교 국사학과 부교수. 『조선 후기 문신 권상일의 관직 생활』, 『숙종 대 정국 운영과 대외관계』(공저) 등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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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주희의 지행공부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서로 『활산집』 『해동명적』 『간재집』(공역) 『일성록』(공역)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주희 지행공부론에 관한 소고」 「주희의 도덕인식론」 등이 있다.
성균관대학교 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유학과 대학원에서 ‘한국경학(양명학)’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BK21 동아시아 유교문화권 교육연구단에서 박사후연구원을 거쳤으며, 현재는 성신여자대학교 사범대학 한문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논어 입문』, 『전습록: 실천하는 지식인, 개혁을 외치다』, 『강화 양명학 연구서 1, 2, 3』(공저), 『한국유학과 열린 사유』(공저)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제주석을 통해 본 『논어』 경문의 해석학적 이해」, 「유교 경전 교육의 필요성과 새로운 교육방법론 모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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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문학박사.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한국경학학회 회장. 한국경학 및 중국 주자학파와 양명좌파의 경학을 연구하였다. 근래 유교와 불교의 회통적 사유가 『논어』에서 구현된 양상을 연구하였다. 저서로 『조선중기경학사상연구』, 『동아시아의 논어학』, 역서로 『이탁오의 논어평』, 『일본논어해석학』 등이 있으며, 약 7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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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한국국학진흥원 인문융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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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로 본 사족의 의례생활』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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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1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348쪽 | 152*223*30mm
ISBN13
9791167376145

책 속으로

조선의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살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장탄식과 함께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된다. 밖으로는 조선을 침탈하기 위해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었고, 안으로는 무능한 왕과 조정의 대신, 지방의 탐관오리들의 횡포와 학정이 벌어지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대원군과 민비의 권력투쟁으로 인해 국정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지방에는 중앙과 결탁하여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탐학이 자행되고 있었다. 혼란과 절망 속에서 조선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혼란과 절망 앞에서도 조선인들은 시대의 좌절과 모순을 결코 보고만 있지 않았다. 외세의 침탈과 내부의 횡포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서학과 동학의 도로써 집단을 결성하여 저항하는 백성들과, 백성들과는 다른 결로 외세에 저항하고 내부의 무능을 일깨우고자 했던 양반 중심의 의병義兵 집단이 있었다.
생존도, 실존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 같은 시대에도 결국 인간은 삶을 살아간다. 그것이 나 자신만을 위한 생존의 삶일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실존적 삶일지는 자각에 따른 실존적 결단에 달렸을 뿐이다.
--- p.63-64 「『경설유편』 「대학」 편의 편찬 방식과 의의」중에서

서석화(1860~1924)는 19세기 말~20세기 초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유자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민족적 위기가 팽배하던 국권 상실의 시기였다. 그는 쓰러져 가는 조선을 살리기 위하여 새로운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곧 500여 년 동안 수많은 외침에도 조선이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유학의 실천정신이라 여겼다. 이러한 실천 유학의 본질은 곧 영남 퇴계학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 퇴계학의 학문정신을 후대에 남기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소임이라고 자인했다.
제아무리 제국주의와 식민정책이 활개를 치더라도 올곧은 학문관만 보존할 수 있다면, 구국의 실천정신으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이킬 수 있으리라는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서석화는 영남 퇴계학의 정수精髓를 퇴계 이황을 비롯하여 이현일, 이상정, 류치명의 4인으로 지정했고, 이들이 남긴 칠서七書(삼경·사서) 주석을 모아 『경설유편經說類編』을 편찬하였다. 공교롭게도 이현일-이상정-류치명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약 100년 단위의 시간차를 유지하고 있다. 서석화 역시 학봉학파의 일원이어서인지 몰라도, 그는 퇴계학의 계보가 학봉 계열로 계승 발전되어 왔다고 생각했고, 학봉학파에 대한 학문적 자부심 또한 컸던 것으로 보인다.
--- p.107-108 「16~19세기 영남 퇴계학의 학문관과 성리설 : 서석화의 『경설유편』에 등장하는 이황·이현일· 이상정·류치명의 접점과 간극」중에서

퇴계 이황으로부터 갈암 이현일, 대산 이상정, 정재 류치명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자신이 직접 배운 서산 김흥락으로 이어지는 퇴계학파에서도 특히 학봉 김성일 계열에서 계승된 퇴계학파 경학의 일면을 요령껏 수습한 것이다.
비록 그 문제의식의 지평을 확대하거나 창신하려는 시도를 넉넉하게 보여 주지는 못했지만 그가 기획한 의도대로 적어도 “후생들에게 지름길을 알려주어 그 성취하려는 마음을 열어 주는 것”이라는 취지는 달성케 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급변하는 시대의 분위기에 편승하기보다는 차라리 전통의 지평을 고수하면서 다시 밝아질 유교의 문명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 p.219 「20세기 퇴계학파 경학의 모색과 퇴영 : 서석화의 『경설유편·맹자』의 경우」중에서

이상정의 퇴계학과 ‘통간’이라는 학문 방법론으로 무장한 일단의 지식인들이 조선 후기 영남 지역을 수놓게 된다. 이들은 서로 사승 관계로 맺어지면서 수백 년을 면면히 이어오게 된다. 류장원과 류건휴 그리고 류치명 등 전주 류씨 수곡파가 큰 흐름을 이루면서, 그사이 배상열과 최상룡이 나타나 새로운 열기를 불어넣었다. 최상룡은 이상정의 학문을 이은 정종로 문하에서 수학하여 기호학파까지 아우르는 학문적 역량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는 류치명의 학문을 계승한 조독호와 서석화가 영남 경학 연구의 맥을 이어나갔다. 이들의 경학 연구는 주자와 퇴계에 충실했다. 따라서 사서삼경을 연구하면서도 그 중심은 사서에 두었고, 사서 중에서도 주로 『대학』과 『중용』에 집중했다. 주자의 정통주의 그리고 퇴계의 ‘이’와 ‘경’ 중심의 철학, 이를 통해 난세를 극복하고 세상의 중심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도가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상은 쉴 새 없이 변한다. 그 변화의 와중에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 순간의 찰나에 불과한 현재를 놓고 과거와 미래가 충돌한다. 과거가 미래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과거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영남 퇴계학의 강고하면서도 면면한 흐름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 p.339-340 「조선 후기 퇴계학파의 경학 주석서 편찬 개관 : 『경설유편』에 이르는 길」중에서

출판사 리뷰

동학과 서학, 의병과 개화파,
나라를 구하려는 격변의 시기 속 퇴계학의 의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조선은 항상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밖으로는 조선을 침탈하려는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각축을 벌였고, 안에서는 왕과 조정의 무능, 탐관오리의 횡포와 학정으로 나라가 무너지고 있었다.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권력투쟁 역시 국정을 분열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대내외적 혼란은 민중의 삶에 고스란히 반영되었고, 서학 혹은 동학의 도를 바탕으로 의병이 집결하고 있었다. 각자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격변의 시기였다.

서석화의 아버지 서효원은 퇴계학파의 학맥을 잇는 주요한 유학자 정재 류치명의 제자였고, 서석화 역시 학맥을 이어받은 유학자였다. 그의 아버지는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이듬해 류치명의 제자들과 함께 청송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다. 이러한 영향 아래 서석화가 창칼을 들 수 없는 만년의 나이에 『경설유편』은 3·1운동으로 드러낸 독립의 바람에 조응하여 학자의 양심을 드러내는 방법이었다. 그는 조선이 500여 년 동안 수많은 외침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 유학의 실천 정신이라고 여겼고, 그 본질이 영남 퇴계학에 있다고 보았다. 『경설유편』이 주희에서 시작해 류치명으로 끝나는 것은 퇴계학의 학문 정신을 후대에 남겨 다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씨앗이 되길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아무리 제국주의와 식민정책이 활개를 치더라도 나라의 근간이 되는 올곧은 학문관을 보존할 수 있다면, 언젠가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리라고 믿으며 미래를 도모했다.

“진정한 배움은 실천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경설유편』 속 퇴계학과 그 의의


서석화 외에도 유학의 문명이 되살아날 날을 기약하며 후학 양성에 전념했던 유학자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것은 유학이 지닌 실천정신 때문이기도 했다. 퇴계학은 공부한다는 것은 어떤 일을 익혀 실천하는 일로 보았다. 퇴계학에서는 배우는 일과 더불어 생각하는 일까지도 실천으로 인지했다. 이황에게 ‘생각’은 단순히 사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얻는 바가 있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현실과 도덕적 이치에 부합하는지 끊임없이 검토하고 확인하는 것이 진정한 배움이라고 보았다.

서석화 역시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아 유학의 핵심 경전인 사서삼경을 그저 읽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배우고’ 또 ‘생각했다’. 그는 경전을 수신과 함양의 도구로 활용했다. 그는 인의, 천리, 인욕의 의미를 주자의 뜻에 맞게 해석하고 그것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방향을 고민했다. 경제·정치 사상에 관해서는 학문적으로 꼼꼼하게 검토하였고, 이와 함께 경전의 본질을 삶 속에 녹여내는 생활의 철학을 지향했다. 그가 퇴계학의 명맥을 다시 살핀 것은 학문을 올곧게 세우기 위한 학자로서의 의도도 있지만, 자신과 미래 세대를 위한 실천 지침으로서의 목적도 있다.

『경설유편』은 자칫 나라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과거의 학문에 몰두하는 시대착오적인 저작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을 창작한 배경, 저자의 삶, 선인들의 지혜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 등으로 미루어보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길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설유편』은 선인들의 지혜가, 조선이라는 국가가 쌓아온 탄탄한 과거가 위기에 처한 미래를 구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어느 유학자의 분투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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