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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들어가는 말 1. 수학修學 과정과 과거 급제 2. 분관分館과 면신례免新禮 3. 승륙陞六, 중견관리로서의 참상관 4. 언관言官과 수령守令의 위치에서 5. 당상관堂上官, 고급 관료의 진출 6. 치사와 관직 제수, 그리고 기로소 입소 참고문헌 |
李根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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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일은 어려서 가학家學으로 학문에 입문하였으며, 당시까지 상주 지역의 학풍을 주도하던 류성룡柳成龍→정경세鄭經世·이준李埈 등으로 이어지는 서애학단의 학문적 풍토 속에서 성장 하였다. 권상일은 7살 때인 1685년(숙종 11)부터 『사략史略』을 시작으로 독서를 하였고, 1691년(숙종 17)에는 사서인 『논어』·『맹자』·『대학大學』·『중용』 등의 읽기를 마쳤다. 권상일은 독서에 더욱 주력하면서 잠자는 것도 먹는 것도 잊고 반복하여 생각하면서 학문의 깊이를 더하였다.
--- p.16~17 면신례와 허참례 등을 마치게 되면서 권상일은 비로소 관원으로 대접을 받으며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권상일이 분관된 승문원은 중국에 보내는 사대문서와 주로 일본에 보내는 교린 문서의 작성을 주관하는 관청이다. 권상일은 허참례를 마친 당일에 숙직하였다. 대개 신입 관원은 주도做度라 하여 20일 동안 숙직을 해야만 했다. 주도는 오랜 기간 직숙直宿해야 하기에 고역일 수 있으나, 관청의 입장에서는 신입 관원이 관청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 과정인 것으로 보인다. 권상일은 주도를 하면서 서리가 전해 준 승문원에 소장된 옛날 사적을 기록한 책을 받아 들고 읽으면서 무료함을 달랬다. --- p.45 권상일은 신임옥사가 마무리된 1722년 12월 13일 부망으로 올라갔는데도 병조좌랑(정5품직)에 낙점되었다. 이때의 정사는 소론 세력 이조참의 이명언李明彦이 독정獨政으로 한 것으로, 당시 소론 세력 일부에서 남인 세력을 포섭하려는 움직임의 연장선상에서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 즉 소론 세력 내 급소急少 계열인 김일경이 심단沈檀을 중심으로 한 남인 세력을 등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런데 이를 둘러싸고 또다시 대립이 발생했다. 급소 계열의 남인 진용에 대해 완소緩少 계열에서는 부정적이었다. 아마도 이 시기 이명언이 독정으로 권상일을 병조좌랑으로 뽑은 것은 남인 세력과 연대를 시도하는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병조좌랑으로 낙점되었던 권상일은 며칠 뒤에 체차遞差되었다. 당시 마침 칙사勅使가 나오게 되어 있어 이에 대한 준비를 해야 했는데, 권상일은 상경하지 않고 계속 상주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 p.70 권상일은 승지로 재직하던 1748년 1월에 치사致仕를 요청하는 상소를 제출하였다. 이때 권상일의 나이가 70세에 이르렀다. 치사란 관리가 관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말하며, 일정한 나이가 되어서 정년으로 관직을 그만두는 경우에도 치사라고 하였다. 대개 70세의 정년이 일반적이었고, 70세가 되어서 관직을 물러나는 경우를 치사로 칭하였다. 70세 치사제도는 1440년(세종 22)에 마련되었다. 단, 모든 관료가 70세가 되면 정년이 되어 일률적으로 관직을 물러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국가의 요긴한 임무를 맡은 자’나 왕의 ‘특지’가 있는 경우에는 치사 되지 않고 계속 관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권상일도 70세 치사 관행에 따라 상소를 제출하였다. --- p.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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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양반이나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양반과 선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양반들의 삶뿐만 아니라, 상인과 농민들의 삶도 함께 바라봐야만 한다. 그런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국가 기록에서는 이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개인의 일기나 서간집 등 다양한 사적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일기나 서간집을 남긴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는 있지만, 상인이 남긴 일기도 있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이 남긴 마을의 이야기도 있어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주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생활사총서는 이처럼 조선의 변두리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들을 따라서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람들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 후기 양반을 향한 오해의 시선 바로잡기 “양반으로 불려지면 이익이 막대하다. 농사, 장사 아니하고, 문사 대강 섭렵하면, 크게 되면 문과 급제, 작게 되면 진사로세.”(『연암집』, 「양반전」 부분) 조선 후기 문신 박지원은 허위의식에 젖은 양반을 문사만 대충 익혀 문과 급제하면 온갖 특혜를 받으며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비판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조선 후기 양반을 어떤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도 여전히 박지원의 작품 수준에서 양반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진 않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청대일기』에 수록된 조선 후기 문신 권상일의 관료적 삶을 오롯하게 들여다본다. 사대부로 살았던 권상일은 그의 일대를 『청대일기』에 세세하게 기록해 두었다. 사대부는 학자적 관료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평상시 사(士)로서 공부하고 연구하며 대부(大夫)가 되어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구현하려는 존재다. 그들은 문무를 겸비하려, 도덕적 인간으로 살아가려 부단히 애썼던 자들이다. 저자는 너무나 성실히 견문을 넓혀 갔고, 순수한 소명 의식을 가슴에 품었던 권상일의 삶을 빌려 조선 후기 양반을 향한 오해의 시선을 하나둘씩 거둬 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