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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4
들어가는 말 11 1. 조선 서원의 탄생 19 2. 서원관의 변화: ‘과업지소(科業之所)’에서 ‘도학지소(道學之所)’로 27 과거 공부의 명소가 된 16세기 소수서원과 주세붕의 서원관 29 조선 서원의 강학 이념을 확립한 이황의 서원관 33 3. 유학의 교육 원리가 철저히 구현된 서원의 교육 공간 39 서원은 왜 경치 좋은 곳에 있을까? 41 서원의 공간 구성에 반영된 교육 원리 47 4. ‘관계의 교육학’을 실현하기 위한 서원의 공부법 63 몸과 마음의 소통을 위한 공부법 65 지식 전수와 의례의 통합 69 ‘호혜적 관계’를 위한 공부법 74 5. 서원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교육 활동과 유생들의 하루 일과 85 서원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교육 활동 87 ‘거재’의 절차와 유생의 하루 일과 90 ‘거접’의 절차와 유생의 하루 일과 99 6. ‘과업’과 ‘도학’의 조화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소수서원 107 16세기 소수서원의 특권적 지위와 교육의 관학적 성격 112 17세기 과업에 대한 비판과 ‘파격’ 논쟁 120 18세기 도학서원으로의 정착과 교육 과정의 변화 128 19세기, 시험을 통해 시험의 폐해를 가르치다 146 7. 학규에서는 과업을 금했으나 현실에서는 병행한 석실서원의 일화 155 과업을 엄격히 금지한 석실서원 학규와 ‘실심·체행’의 강학 이념 157 공부의 네 가지 등급과 ‘유학의 적’으로 규정된 ‘과업’ 174 어느 해 과거시험이 있던 날, 석실서원에 홀로 남겨진 스승 김창협 181 나오는 말 193 참고문헌 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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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과업을 준비하는 관학의 보조 기구이자 제왕학과 치용론의 관점에서 서원을 이해했던 주세붕의 서원관을 거쳐 이황에 의해 도학서원으로서의 강학 이념이 확립되면서 조선 서원에는 ‘관계의 교육학’을 실현하기 위한 교육 제도가 차츰 정착되어 갔다. 여기서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 몸과 마음의 전인적 수양을 위한 관계의 교육학이 철저하게 구현된 교육 환경으로서 서원의 교육 공간을 살펴보고자 한다.
--- p.41 지식과 덕성의 결합을 위한 서원의 또 다른 공부법으로는 매일 학습의 과정에 수반되었던 ‘강학 의례’를 들 수 있다. 이는 서원교육의 가치와 덕목을 체험적으로 학습시키기 위한 장치의 하나였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옛날의 이른바 학교는 예(禮)를 익히고 악(樂)을 익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예도 무너지고 악도 무너져서 학교의 교육은 독서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라며 ‘예악’을 상실한 당시 교육을 비판한 바 있다. 독서를 통한 ‘지식 전수’와 ‘예악’을 통한 전인적 성장은 예부터 유학 교육의 두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원에서는 비록 ‘악’ 교육은 사라졌지만 독서를 통한 지식의 전수와 의례를 통한 교육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 p.69~70 서원에서 이루어진 교육 활동은 크게 ‘도학’을 목적으로 한 활동과 ‘과업’을 목적으로 한 활동으로 나눌 수 있다. 앞의 4장에서 소개한 강회와 통독, 강학 의례 등은 모두 ‘도학’에 해당하는 교육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서원에서는 ‘도학’ 외에 2장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과업’(과거 공부)을 위한 교육도 병행하였다. 도학을 목적으로 한 교육 활동으로는 거재(居齋), 강회(講會), 통독(通讀)이, 과거 대비를 목적으로 한 교육 활동으로는 거접(居接), 순제(旬製 혹은 旬題), 백일장이 있었다. 거접, 백일장, 순제에서는 ‘과거 대비’라는 목적하에, 과거시험 과목 중 제술 과목에 해당하는 ‘시(詩)?부(賦)?의(疑)?의(義)?책(策)’의 답안 작성 훈련과 평가가 이루어졌다. 거재, 통독, 강회에서는 ‘도학의 탐구와 실천’을 목적으로 개별 독서 및 일종의 집단 세미나에 해당하는 강회, 통독이 병행되었다. --- p.87~88 소수서원에서 과거 중심 교육 방식에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초반 무렵이었다. 17세기 초 풍기군수 이준, 원장 곽진 등은 과거 공부에 치중되어 있던 당시 소수서원의 교육 방식에 심각한 우려와 비판을 드러내며, 소수서원을 도학을 강명하는 서원 본래의 교육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특히 풍기군수 이준은 과거에 응시할 유생들을 깨우치기 위해 「유부거사자문(諭赴擧士子文)」이라는 글을 지어 과거 응시자의 올바른 자세를 가르침으로써 과거에 대한 적극적 대응 방식을 펼치는 한편, 서원에서의 과거 공부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은근히 피력하였다. --- p.121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학업성취’라는 편협한 기준만 강조하는 만연한 사회적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 사회, 특히 학부모들은 학생들을 21세기에 대비시키기 위해 전인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막연히 인식하면서도, 실제로는 전인교육보다 학업성취와 입시경쟁, 직업적 성공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전 세계의 ‘학교 변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세계적인 학자들 사이에서 혁신학교는 ‘극심한 학업 경쟁과 전인교육이라는 목표 사이에서 긴장을 다루는 학교’로 표현되기도 한다. --- p.193~1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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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양반이나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양반과 선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양반들의 삶뿐만 아니라, 상인과 농민들의 삶도 함께 바라봐야만 한다. 또 양반들의 삶 역시도, 중앙정치에서의 활동만으로는 충분히 이야기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국가가 편찬한 관찬 기록에서는 이들의 일상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개인의 일기나 서간집 등 다양한 사적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일기나 서간집을 남긴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는 있지만, 그러한 식자층이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면서 주변의 이야기도 남겨 왔기에, 우리는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주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생활사총서는 이처럼 조선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들을 따라서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람들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폐단 가운데 하나로서 서원을 접한 현대인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서원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갖곤 한다. 특히나 입시 위주의 공부를 하며 ‘단골 문제’만 파악한 학생일수록 서원에 대해서는 그 폐단에 대해서만 알게 되는 경향이 짙은 듯하다. 그러나 그러한 편견이나 인식과는 달리 서원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선정될 만큼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문제는 그 인식의 괴리가 바로 서원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에서 기인한다는 것이고, 그 단편적인 인식이 또한 제한적인 제도적 교육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점이다. 반면 서원이 가졌던 교육의 문화와 방향은 오늘날에도 그 교훈이 매우 의미가 있을 만큼 효과적이고 뛰어나다. 이 책은 이런 면에서 우리가 자부심을 가질 만한 소중한 문화와 교육의 가치를 재고하도록 돕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