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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전통생활사 총서

책소개

목차

책머리에

1. 조선 불교의 공간과 주체: 사찰과 승려
2. 선과 교학의 공존과 승려 교육 과정
3. 삼문 수행체계의 성립과 염불문의 확산
4. 유불 교류의 양상과 시대의 접점
5. 산사에서의 신앙과 승려의 일상

주석

저자 소개 2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대학 인도철학불교학과에서 수학하며 중국 송대 화엄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한국사상사학회·불교학연구회 연구이사를 역임했고,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임제법통과 교학전통』(2010), 『Glocal History of Korean Buddhism』(2014), 『토픽한국사 12』(2016), 『韓國佛敎史』(2017, 일본 춘추사) 등이 있으며, 『조계고승전』(2020)을 함께 번역했다. 『신앙과 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대학 인도철학불교학과에서 수학하며 중국 송대 화엄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한국사상사학회·불교학연구회 연구이사를 역임했고,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임제법통과 교학전통』(2010), 『Glocal History of Korean Buddhism』(2014), 『토픽한국사 12』(2016), 『韓國佛敎史』(2017, 일본 춘추사) 등이 있으며, 『조계고승전』(2020)을 함께 번역했다.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전통의 흐름』(2007), 『테마 한국불교(1~10)』(2013~2021), 『The State, Religion, and Thinkers in Korean Buddhism』(2014), 『East Asian Buddhism and Modern Buddhist Studies』(2017) 등을 비롯해 스무 권이 넘는 불교학술서를 기획하고 함께 펴냈다.

이 밖에도 「동아시아 근대불교 연구의 특성과 오리엔탈리즘의 투영」, 「역사학에서 본 한국불교사 연구 100년」, 「동아시아의 징관 화엄 계승과 그 역사적 전개」, 「조선 불교, 고려 불교의 단절인가 연속인가?」, “Formation of a Chos?n Buddhist Tradition: Dharma Lineage and the Monastic Curriculum from a Synchronic and a Diachronic Perspective”, “Buddhism and the Afterlife in the Late Joseon Dynasty: Leading Souls to the Afterlife in a Confucian Society” 등 50여 편이 넘는 학술논문을 발표했다.

대원불교문화상 대상·선리연구원 학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조선시대 불교를 동아시아의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근대불교에도 관심을 두고 연구를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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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생활사총서'는 한국 전통시대의 다양한 역사적 현장과 인물 속에 숨어 있는 사례들을 하나하나 발굴하여 재구성해 소개한다. 당시 사람들의 일상 속을 세밀하게 파악해서 그간 덜 알려져 있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소재를 대중에게 흥미롭게 전달한다. 특히 중앙정부 중심의 자료가 아닌 민간에서 생산한 기록물을 통해 재현하는 만큼 각 지역의 살아있는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매년 해당 분야 전문가를 집필자로 선정하였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원고의 완성도를 높였다. 본 총서를 통해 생활사, 미시사, 신문화사의 붐이 다시 일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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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2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140*200*11mm
ISBN13
9791166843808

책 속으로

세종 대에도 앞서 태종 때 단행된 불교 정책의 기조가 그대로 이어졌다. 1424년(세종 6)에는 기존의 7개 종파를 선종과 교종의 양종으로 통합했고, 선종과 교종에 각각 18개씩 총 36개의 사찰이 국가의 승정 체제 안에 편제되었다. 선교양종 36사는 태종 대의 242사처럼 군현을 대표하는 사찰이 아닌, 훨씬 더 넓은 광역의 도 단위로 지정되었다. 이 중 서울과 개성 및 경기도 일원의 17개 사사를 포함해 20개 이상이 왕실과 직접 관련된 사찰이었다. 공인된 36사에는 소속 승려와 소유 토지의 규모가 정해졌는데, 4월 5일의 『세종실록』 기사에 따르면 선교양종 36사에 배정된 승려 수는 선종 1,950명, 교종 1,800명, 합쳐서 3,750명이었다. 또 허용된 사사전은 선종 4,200여 결, 교종 3,700결을 합쳐 7,900여 결이었다. 이는 태종 대에 242사에 속한 전지가 11,000여 결이었던 것에 비해 3,000결 이상 줄어든 수치였다. 이때 36사에는 150결에서 500결까지의 토지가 차등적으로 지급되었고 태종 때와 마찬가지로 승려 수는 2결당 1명꼴이었다.
--- p.24~25

여기서 휴정이 선교일치의 대의와 선교겸수의 필요성에 공감했음을 볼 수 있다. 다만 선승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그가 선을 교보다 우위에 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휴정이 제시한 선교겸수와 간화선 선양이라는 수행방식은 그만의 독창적인 방안은 아니었고, 고려 후기의 보조 지눌에게까지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지눌은 종밀이 주창한 선교일치론의 영향을 받아 돈오점수(頓悟漸修), 그리고 선정(禪定)과 지혜를 함께 닦는 정혜쌍수(定慧雙修)를 행했다. 또 그는 실천성이 강한 당의 이통현(李通玄)의 화엄 교학을 수용했고, 말년에 나온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에서는 간화선을 궁극적 수행법으로 내세웠다. 지눌과 휴정의 간화선 수행 기풍은 시대가 달랐던 만큼 성격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교를 입문으로 삼아 선과 교를 함께 행한 뒤에 간화선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진다.
--- p.56

삼문의 한 축이 된 염불문은 유심정토와 자성미타로 상징되는 염불선 수행방식, 그리고 서방 극락정토를 상정한 염불 신앙을 모두 포괄한 것이었다. 이는 선 수행을 하는 승려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을 동시에 고려한 방안이었고 그렇기에 그 문호는 점차 넓어졌다. 조선 후기의 승려들은 선과 교, 그리고 염불 중에서 하나 이상의 전문분야를 가졌고, 교학을 수행의 입문으로 삼고 만년에 염불에 전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염불문 성립 이후 정토 관련 서적이 다수 간행되었고 신앙은 물론 의례와 문학 등에서 많은 수요가 창출되었다. 이를 반영하여 사찰계에서도 염불계의 비중이 제일 컸고, 19세기에는 만일염불회가 전국적으로 성행했다. 또 극락정토의 실재 여부나 왕생의 기준을 다룬 논의도 나왔는데, 염불 외에 선행과 도덕도 정토로 가는 유력한 방안으로 떠올랐다. 이제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극락정토로의 왕생을 꿈꾸는 종교적 바람, 그리고 마음을 깨치는 선 수행으로서 염불선이 동시에 추구되었고, 이제 염불문을 통한 깨달음과 정토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 p.100~101

불교계가 시대적 영향을 받으며 공존을 추구해 갔음은 많은 사례를 통해 볼 수 있는데, 유학자와 같은 시대정신을 공유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18세기의 교학 종장 연담 유일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중시하던 대의명분과 중화 정통주의를 내세웠고, 그렇기에 그는 유학자들로부터 ‘충의의 대장부’, ‘겉은 승려이지만 속은 유학자’라는 평을 들었다. 그는 더 나아가 당시 유학자들의 불교 인식에 문제가 많음을 지적하며 비판했다. 유일은 당·송 이후 중국의 이름난 유학자들이 불교를 깊이 이해하여 유교와 불교가 근본에서 일치함을 알았고 승려들과도 이치와 심성에 관해 논의했음을 언급했다. 성리학의 체계를 세운 주희도 선승의 영향으로 심법의 요체를 깨달았고 불교에서 배운 바가 적지 않았다고 보았다. 이에 비해 조선의 유학자들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과거 시험 공부에만 치중하여 실천궁행의 공부가 부족하며, 허무하다는 이유로 불교에 대해 비판만을 일삼는다고 지적했다.
--- p.126

19세기에는 세도정치가 전개되면서 각지에서 민란이 발생하고 정치·사회적 혼란이 커졌으며, 각 지역의 사찰에는 양반 토호의 사적인 침탈도 가중되었다. 반대로 왕실이 후원하는 불사와 법회, 불서 간행은 이어졌고 왕실의 원당 사찰에는 잡역 면제 등의 특혜가 주어졌다. 내우외환의 시기에 왕실은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법회를 종종 열었고 국왕과 왕실의 원당이 여러 곳에 세워졌다. 세도가나 정부 고관의 불교 후원 사례도 많이 확인되는데, 대표적 세도가인 안동 김씨의 경우는 여주 신륵사神勒寺에서 불사를 크게 일으켰다. 이처럼 19세기에는 국왕과 왕실부터 서민까지 종교적 기원에 힘입어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 내야만 했다. 불교와 같은 전통 종교는 물론 동학을 비롯한 신흥 민족종교가 다수 생겨났고, 또 정부의 탄압을 이겨 낸 천주교와 새로 들어온 개신교도 19세기 말부터 종교의 각축전에 뛰어들면서, 불교는 전통과 근대 사이에서 오가며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했다.

--- p.146~147

출판사 리뷰

※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양반이나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양반과 선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양반들의 삶뿐만 아니라, 상인과 농민들의 삶도 함께 바라봐야만 한다. 또 양반들의 삶 역시도, 중앙정치에서의 활동만으로는 충분히 이야기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국가가 편찬한 관찬 기록에서는 이들의 일상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개인의 일기나 서간집 등 다양한 사적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일기나 서간집을 남긴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는 있지만, 그러한 식자층이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면서 주변의 이야기도 남겨 왔기에, 우리는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주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생활사총서는 이처럼 조선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들을 따라서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람들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불교는 억불 정책과 유교적 공간 질서의 재편에도 불구하고 산사를 중심으로 신앙 및 의례를 정립했다. 태종의 불교 억압 정책으로 평지 사찰이 소멸하고 사찰의 경제 기반이 약화되었으나 산사는 불교 신앙과 수행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 지속되어 온 것이다. 산사에서는 유학자들과 승려들 간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산사가 학문적 담론의 장으로도 기능했다. 한편 당시 조선시대에는 시왕 신앙, 지장 신앙, 염불 신앙 등의 내세 신앙이 있었고, 수륙재와 우란분재 같은 의례는 현세와 내세의 구원을 위한 종교적 실천으로 민간에서 널리 시행되었다. “산사에는 왕실 구성원은 물론 양반부터 천민에 이르는 여러 계급의 사람들이 와서 다양한 불교 신앙을 염원했으며, 수륙재, 예수재, 사십구재 등 다양한 불교 재회와 법회가 사찰에서 열렸다.” 이 책을 통해 조선 불교가 유교적 사회 구조 속에서도 내세 신앙과 융합적 수행 방식을 통해 종교적·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대중과 승려 모두에게 중요한 종교적 역할을 수행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선과 교학의 공존과 승려 교육 과정, 선, 교, 염불을 함께 추구하는 삼문 수행체계, 산사에서의 신앙과 승려의 일상에 대해서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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