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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들어가는 말: 모임과 계 그리고 경주의 이야기 아마? 곗돈!: 계와 동아리, 그리고 동계 어울려 서로 함께하는 사람들 경주와 경주 사람들, 그리고 경주의 마을 1. 활 쏘는 마을, 방어리의 사계와 동계 전쟁과 평화, 두 번의 전쟁과 동계 전통은 만들어지지 않고 발견된다 무관, 혹은 무부들, 활 쏘는 사람들 무부들의 의리 혼사와 상사를 돕는 의리 공공기물, 공유자산 운영 약속과 신뢰의 원칙 2. 활을 내려놓고 붓을 든 사람들 선비들의 신의를 위한 연대 의리 계승과 신의 약속 ‘대기근’, 참혹하고 안타까워라 갈등과 화해, 그리고 지속 동전, 상평통보와 일상생활 갈고닦아 옛것을 잇다 3. 나무 심는 마을, 갓뒤마을 숲이 품은 이야기 숲이 많은 경주 논호쑤와 말림갓 나무를 함께 심는 마을 나무를 심은 사람들 갓뒤마을 동계의 서로 돕기 계원의 남다른 협동 4. 말림갓을 지키는 사람들 말림갓을 위한 모두의 다짐 숲을 다투는 사람들 풍수, 마을 사람들의 마음 치유 미워하고 사랑하는 약속 마을의 짐이 된 말림갓 멈추지 않는 말림갓 가꾸기 나오는 말: 마을, 계, 그리고 우리의 유산 경주 이조리 동계 정이어라, 화해하며 함께한다 마을 가꾸기와 새마을 운동 동계, 새마을, 그리고 인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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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상동계에서 정리한 계의 내력과 관련한 내용에는 상동계의 출발이 사계에 있다는 사실과 계를 창립한 배경이 나와 있다. 내용은 맥락을 살펴서 풀어 설명할 수 있다. 방어리를 중심으로 인근의 여러 마을에 거주하던 양반들이 1592년과 1636년(인조 14)에 있었던 일본, 청나라와의 전쟁 뒤에 지역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 계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전쟁 때문에 무너진 마을의 질서를 계원들과 함께 바로잡기로 결의한 의미를 강조했다.
--- p.34~35 문장의 뒷부분에 이미 있던 계를 새롭게 만들었다는 언급은 있지만, 그것이 사계라고 밝히지는 않고 200년이라는 시간을 강조했다. 이즈음 무부들이 과거를 위해 활쏘기 연습을 하는 사계를 만들었다는 서사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중요한 사실은 성리학자로 이름 높은 남구명이 낡은 모임을 새롭게 윤색했다는 점에 있었다. 동계의 전통을 성리학에서 찾고, 이 시점에 동계의 자부심을 발판으로 여느 다른 마을의 그것과는 수준이 훨씬 높다는 의미에서 ‘상동계’로 승격했다. 바로 전통의 발견이고 그 중심 가치는 남구명이 강조한 계원 사이의 ‘신의’였다. --- p.71 동천이 가지는 의미가 중요하므로 경주의 유력 인사들은 강의 제방을 돌로 튼튼히 쌓는 정성을 기울였다. 이곳에 5리, 즉 거의 2킬로에 이르는 긴 거리에 나무를 심고는 그 의미를 ‘비보’로 부여했다. 비보는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걱정 없는 삶을 살기를 소망하는 풍수지리에서 나온 말이다. 인간을 둘러싼 자연 중 부족한 부분을 감싸고 채워 준다는 의미에서 비보이며, 이것을 위한 숲으로 비보림을 조성하였다. --- p.107 마을 사람들도 서로 미워하면서 사랑한다. 마치 가족이 그러하듯이 같은 공간에 함께 살면서 그야말로 “지지고 볶고” 어울려 살아간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그것은 함께 만들어 가고 많은 시간 동안 전해진 오래된 깨달음, 오랜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족과 같은 천륜이 아닌 마을과 같은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을 묶는 풍속이 그것이다. 경주의 갓뒤마을 사람들도 동계를 만들어 나누었던 지혜가 있었다. 숲이 마을에 주는 호혜의 가치와 이것을 향하는 사람들의 협동, 그리고 그 약속이었다. --- p.148~149 조선시대 농촌에서 공동의 이익을 위해 협동하면서 호혜의 지속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동계와 유사한 지식을 한국의 농촌 개발 원조를 받는 지구 남반구 사회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아시아의 ‘하크’, 아프리카의 ‘우분투’, 남아메리카의 ‘수막 카우사이’와 같은 지구 남반구 지역 토착 지식의 사례가 그것이다. 이는 한국의 토착 가치가 지구와 인류의 문화와 연대, 혹은 비교 가능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렇기에 국제개발로서 수원국 농촌개발 사업에 착수하기에 앞서 인문학 관점에서 토착 지식에 관한 관심을 기울이려는 노력은 한국 토착문화의 가치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 p.181 |
※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양반이나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양반과 선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양반들의 삶뿐만 아니라, 상인과 농민들의 삶도 함께 바라봐야만 한다. 그런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국가 기록에서는 이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개인의 일기나 서간집 등 다양한 사적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일기나 서간집을 남긴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는 있지만, 상인이 남긴 일기도 있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이 남긴 마을의 이야기도 있어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주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생활사총서는 이처럼 조선의 변두리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들을 따라서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람들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사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지금도 일부 지방에서는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사회는 마을과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한양을 제외하면 외부인들의 왕래는 극히 적었고, 마을 사람들은 마을 안에서 서로 협조하고 부대끼며 평생을 살아가야만 했다. 따라서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살펴보는 일은 곧 조선시대의 일상을 살펴보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이 책은 그러한 조선시대 마을의 일상을 살펴보고자 한 책이다. 특히 이 책은 조선시대 마을 사람들이 서로 협조하기 위해 구성한 동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지금의 우리에게 계모임은 목돈을 타기 위한 모임으로 널리 생각되고 있지만, 사실 전통적 협동조직체인 계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었고 현재도 그러한 계들은 마을에서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동계란 마을 사람들이 조직한 것으로 함께 살아가는 마을을 가꾸거나 서로 돕는 일이 있을 때 돕는 모임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수준으로 행정체제가 발전하지는 못했던 조선시대에는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도움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고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 도우며 살고자 했다. 이러한 조선시대 마을의 모습은 우리에게 조선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잘 보여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