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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 산행을 시작하며 내 가까이 있는 지리산 닮고 싶은 산, 우러르고 싶은 산 산행의 기록, 유산기 2. 남악으로서의 지리산 위상 3. 같은 산 다른 느낌, 지리산의 형상 성인(聖人)의 품을 지닌 산, 남효온 구도(求道)를 위한 성찰의 산, 조식 사마천의 문장과 두보의 시를 닮은 산, 유몽인 무속의 성지가 된 산, 박여량 천제(天帝)를 닮은 산, 안익제 4. 지리산과 사람, 그리고 산행문화 치자(治者)의 염원을 담은 일월대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이유 산행의 피로를 잊게 하는 것들 유교와 불교의 사이 5. 지리산의 오래된 미래 땅으로 내려온, 지리산 성모 섬진강의 눈물, 하동 악양정 옛 영광을 찾아라, 산청 환아정 전통과 현대의 조화, 남사예담촌 부록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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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직접 산수 자연을 찾아 나서는 건 여전히 쉽지 않거니와, 산수 자연을 찾았어도 이런저런 이유로 인연이 닿지 않아 발길을 되돌려야 할 경우도 허다하다. 이럴 때 옛 선현들은 어찌했던가. 그들은 산수 자연을 찾아갈 수 없을 바에는 그 대상을 내 곁으로 끌어들여서 즐겼다. 산수 자연을 내 집 안으로, 내 방 안으로 혹은 내 마음속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다. 바로 누워서 산수를 노니는, 와유(臥遊)의 방식이다.
--- p.23 위 두 편의 한시는 모두 천왕봉을 두고 읊은 작품으로, 남명의 기상을 드러내는 대표작으로도 유명하다. 덕산에서는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천왕봉이 훤히 올려다보인다. 남명은 매 순간 천왕봉을 보면서 하늘이 울지언정 끄떡도 않는 그 의연함을 배우고, 나아가 이 세상의 커다란 울림이 되고 싶었다. 어떤 어려움에도 큰선비의 책임과 지조를 내려놓지 않는, 그러면서도 세상과 융합된 삶을 살고자 하였다. 우뚝하니 솟아 한순간도 이고 있는 하늘을 내려놓지 않으면서도, 하늘과 자연과의 일치를 이루는 천왕봉의 강인함과 변함없는 자세를 견지하려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곧 천도(天道)에 다가가 있는 천왕봉을 통해 자신을 그 경지로까지 끌어올리려 하였다. 남명에게 있어 천왕봉은 자신이 도달해야 할, 추구해야 할 구도의 극치이자 닮고자 한 목표였다. 그래서 쉼 없는 노력을 통해 언젠간 그 이상을 이루리라 염원하였다. --- p.55 지리산 천왕봉의 영웅 기상이 없어져서 지금 이 시대는 오랑캐가 날뛰는 세상이 되었고, 그래서 천왕봉이 예전의 그 우뚝한 기상을 회복하기를 염원하고 있다. 지리산 천왕봉은 곧 우리나라의 상징이고, 우리 임금을 표상하기 때문이다. 천왕봉의 기상이 쇠퇴하여 국력이 약해졌고, 나아가 나라가 침략당하는 수난을 겪고 군주가 억압과 멸시를 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안팎의 위기에서 나라를 보존하고 자존감을 높이는 것은 지리산 천왕봉이 그 영험한 빛을 회복하는 길이며, 그래야만 이 땅에도 안정된 세상이 열린다고 희망하였다. 그래서 이 나라와 이 땅을 다스리는 임금의 강건함을 축원하였고, 대대손손 이 나라를 영원하게 해 달라 염원하였다. --- p.82 가마를 타고 오르면 편할 듯도 하나,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다. 그 좁은 산길에서 타고 오는 가마가 편할 리 있었겠는가. 조위한도 불일암을 오르는 가파른 비탈길을 가마를 타고 올랐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가마를 짊어진 승려의 헐떡이는 숨소리는 쇠를 단련하는 듯 거칠고, 등에는 진땀이 흥건하였다. 다섯 걸음, 열 걸음마다 어깨를 바꾸고 위치를 옮겼다.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며, 오른쪽으로 기울기도 하고 왼쪽으로 기우뚱거리기도 하였다. 가마를 타고 있는 괴로움도 가마를 멘 고통 못지않았다”라고 하였다. --- p.114 회계산과 경호강이 빈 누대를 감싸고 계축년의 봄 그 상사일이 돌아왔도다. 안개 낀 대 그림자 세연지에 아른대고 비 온 뒤 난초 향은 술잔 속에 더하네. 거위 끌고 떠나가니 갈매기 날아오고 도사 상봉 어려우니 나그네 찾아오네. 만약에 시인이 그림으로 묘사한다면 영화연간 수재들의 풍류 못지않으리. 稽山鏡水繞空臺 (계산경수요공대) 癸丑春兼上巳回 (계축춘겸상사회) 竹影抱烟侵洗硯 (죽영포연침세연) 蘭香經雨?行盃 (난향경우읍행배) 籠鵝已去沙鷗至 (농아이거사구지) 道士難逢洞客來 (도사난봉동객래) 若使詩人摸繪素 (약사시인모회소) 風流不借永和才 (풍류불차영화재) --- p.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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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양반이나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양반과 선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양반들의 삶뿐만 아니라, 상인과 농민들의 삶도 함께 바라봐야만 한다. 그런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국가 기록에서는 이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개인의 일기나 서간집 등 다양한 사적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일기나 서간집을 남긴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는 있지만, 상인이 남긴 일기도 있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이 남긴 마을의 이야기도 있어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주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생활사총서는 이처럼 조선의 변두리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들을 따라서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람들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리산 내 가까이 있는 명산.” 지리산은 민족의 영산이자 대한민국 5대 명산 중 하나로 등산깨나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은 정복해야 할 산으로 손꼽힌다. 산악인이 아니더라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에는 어느 때고 많은 사람이 몰린다. 이같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데에는 다양한 등산로를 비롯해, 도전의식을 일으키는 험준한 산세와 뛰어난 자연경관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고많은 산 중에서도 지리산이 으뜸인 것은 우리나라 여러 산 중에서도 인간의 삶과 밀접히 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리산 유람의 여정이며 애정은 오늘날 산을 오르는 사람들뿐 아니라 옛 선현들의 유람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은 명산에 대한 숭배와 외경을 다양한 방식의 문학적 상상력으로 표출해 왔는데, 유람록은 그중 가장 대표적인 유형이다.” 지리산 유람록은 100여 편 정도가 남아 있다. 지리산을 오른 학자들은 진주, 산청, 하동, 함양, 단성, 덕산, 합천 등 지리산 권역의 지식인들이 7할에서 8할이다. 저자 강정화 교수는 지리산 유람록과 유산시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선현의 유산(遊山)과 산행문화, 거기에서 볼 수 있는 지리산 인식을 살펴보고 산과 인간, 문학의 관계를 조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