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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전통생활사 총서

책소개

목차

책머리에 4
들어가는 말 10

1. 조선시대 문무 인식과 무과의 성립 13

조선 전기의 문무 인식 15
조선 후기 문무 이해와 문무일치론 21
조선 초 무과 창설과 시험 규정 27
『경국대전』의 무과 시행 절차 31

2. 교육기관을 통한 무관 만들기 37

조선 전기 훈련원과 무관 양성 39
조선 후기의 무학과 능마아청 44

3. 무과의 종류와 과목 53

무과의 종류 55
무과의 절차 70
무과와 각종 시취의 과목 73

4. 조선 무인의 무과 준비 85

16세기 후반 이순신 사례 87
18세기 후반 노상추 사례 92

나오는 말 169
주석 175
참고문헌 179

저자 소개 2

국방대학교 군사전략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국방대학교 교수 임용 이후 전근대 한국전쟁사, 한국군사사상, 군사제도사 등 분야에서 『조선후기의 전술』(2016), 『연병지남: 북방의 기병을 막을 조선의 비책』(2017), 『조선후기 도성방어체계와 경기도』(2018), 『한국군사사 7』(공저, 2012), 『동아시아의 근세』(역서, 2018)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 논문을 발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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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생활사총서'는 한국 전통시대의 다양한 역사적 현장과 인물 속에 숨어 있는 사례들을 하나하나 발굴하여 재구성해 소개한다. 당시 사람들의 일상 속을 세밀하게 파악해서 그간 덜 알려져 있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소재를 대중에게 흥미롭게 전달한다. 특히 중앙정부 중심의 자료가 아닌 민간에서 생산한 기록물을 통해 재현하는 만큼 각 지역의 살아있는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매년 해당 분야 전문가를 집필자로 선정하였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원고의 완성도를 높였다. 본 총서를 통해 생활사, 미시사, 신문화사의 붐이 다시 일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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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2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140*200*12mm
ISBN13
9791166843655

책 속으로

위와 같이 정조는 기본적으로 문과 무를 동일하게 인식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실용의 가치가 있는 무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정조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무예가 뛰어난 오늘날 평안도 지역인 서북(西北) 지역민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고자 하였다.
--- p.25

임진왜란 직전인 1583년 함경도의 6진 지역을 공격한 여진족의 니탕개(泥湯介)의 난을 계기로 병조 판서 이이(李珥)는 필요한 무인을 확보하기 위해 무과의 선발 인원을 크게 확대하고 비정기 시험인 각종 별시(別試)의 시행 횟수도 늘리기 시작하였다. 무과 선발 인원을 크게 늘리고 각종 별시를 자주 시행하는 추세는 16세기 말 임진왜란 기간 및 17세기 초 광해군 대에도 대외적인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해 계속 유지되었다. 조선 후기 무과의 폐단으로 지적되는 이른바 만과(萬科)의 출현이 그것이다.
--- p.44

이순신 집안이 그의 외가가 있는 아산으로 이주한 것도 그가 무관으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이순신의 부친인 이정이 처가가 있는 아산으로 이주한 것은 처가의 전장(田莊)이 있는 곳으로 당시 아산은 궁벽한 시골이어서 제대로 된 사족 사회가 형성되지 못한 곳으로 유교적 영향력이 타 지역에 비해 높지 않은 곳이었다. 대신 무예를 익히는 데에는 유리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 p.89

일화는 유교의 기본적 예절인 혼정신성의 의미, 즉 밤에는 부모의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이른 아침에는 부모의 밤새 안부를 묻는 것조차 모르는 무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무사 3인이 무과 회시의 강경에서 엉터리 답변을 늘어놓는 다음의 사례는 당시 무인의 학문적 수준의 일단을 보여 준다.
--- p.124

정약용의 무과 개선안은 기존의 무예 과목에 강서 과목을 대폭 추가한 것이었다. 강서 과목은 반드시 ‘무(武)’와 관련된 내용을 위주로 변형하여 시험하려 하였다. 이는 무과 응시자가 무예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을 검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술·전략을 충분히 이해하여 실제로 국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조치였다. 그는 무과 응시자의 선정과 급제자의 선발및 관직 진출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식년시’로 통합하였다. 관직의 수에 비례하여 급제자와 응시자의 수를 제한하여 유능한 지방 사족 내지 양인에게도 관직 진출과 고위 공직에 임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보장해 주려 하였다.

--- p.167

출판사 리뷰

※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양반이나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양반과 선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양반들의 삶뿐만 아니라, 상인과 농민들의 삶도 함께 바라봐야만 한다. 또 양반들의 삶 역시도, 중앙정치에서의 활동만으로는 충분히 이야기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국가가 편찬한 관찬 기록에서는 이들의 일상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개인의 일기나 서간집 등 다양한 사적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일기나 서간집을 남긴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는 있지만, 그러한 식자층이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면서 주변의 이야기도 남겨 왔기에, 우리는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주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생활사총서는 이처럼 조선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들을 따라서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람들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군사주의적 전통에 바탕을 두었던 일본이 군인 우위의 정치문화를 만들어 결국 동아시아 침략과 패망으로 귀결된 것과 달리 조선 후기 문무겸비 무인의 전통이 남아 있던 우리나라가 비록 잠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지만 끝내 해방과 번영을 달성한 것은 단순히 특정 지도자나 계층, 외국 등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칼 찬 선비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문인의 존재와 함께 무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도 단순히 문인과 대립되는 존재 또는 상하, 선후 관계 등으로 이해하기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지만 기본적으로 ‘문무겸비의 실천적 지성을 추구했던 지성인’의 또다른 모습으로 그리는 것이 어떤가 감히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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