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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5
들어가는 말 10 1. 역관 집안에서 나온 천문학자 19 역학에서 천문학으로 전향 21 18세기 연행과 서양 천문학 지식의 전래 32 2. 엘리트 코스 43 완천(完薦)과 음양과(陰陽科) 45 삼력관과 겸교수 58 3. 천문학의 ‘업(業)’과 ‘학(學)’ 67 천문학의 ‘업(業)’ 69 천문학의 ‘학(學)’ 91 4. 천문학과 술수 지식 129 정조 9년 3월의 정감록 사건과 문광도 가족 131 천문의 또 다른 이름, 참위 139 나오는 말 147 주석 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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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도는 남평(南平) 출신인데, 동[중국]에서 다시 또 동[조선]으로 전해진 서적을 얻어 문을 닫고 정밀히 생각하여, 행성의 궤도와 운행에서부터 일월식과 행성의 능범, 한 줌 산가지로 계산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홀로 터득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동에서 다시 동으로 전해진 서적’이란 청을 거쳐 조선으로 전래된 한역 서양 천문서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묘표에는 자연히 죽은 이에 대한 칭송이 담기기 마련이니, 당시의 독보적이었던 문광도의 학문 수준을 높이 평가하여 ‘홀로 터득(獨得)’한 것이라고 쓴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혹은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서양 천문학 지식을 문광도 ‘혼자서만 유일하게 알고 있었다’라는 의미도 될 수 있다.
--- p.31 관상감 생도가 되기 위해서는 완천의 절차 거쳐야 했다. 관상감에 입속(入屬)하기 위해서는 우선 천거(薦擧), 즉 추천을 받아야 했는데, 천거된다고 해서 모두 입속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정해진 심사 과정을 통과해야 관상감에 입속할 수 있었다. 이를 일러 완천이라고 했다. 조선 후기 관상감의 완천자 명부로는 『삼력청완천록(三曆廳完薦錄)』, 『본청완천안(本廳完薦案)』, 『삼력청완천안(三曆廳完薦案)』 등이 있다. 이들을 통해서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말까지 관상감에 입속한 1,200여 명의 완천자를 확인할 수 있다. --- p.44 매일 밤 천문 현상을 관측 및 기록하는 일이 관상감 천문학 분과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였다면, 역서(曆書)를 편찬 및 간행하고 배포하는 일은 관상감 천문학 분과의 업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업무였다. 일반적으로 전통사회의 역서나 역법(曆法)이라고 하면, 당시의 달력 그 자체나 달력을 만드는 법이 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의 시간을 밝혀 백성들의 생활에 쓸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역(曆)이라고 하는데, ‘하늘의 시간을 밝힌다’라는 것의 실질적인 의미는 ‘자연으로부터 시간을 취한다’는 것이다. 1년 12달, 1일 24시간과 같은 시간 개념은 자연(천체 운행)에서부터 나온 것이지만 사실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룩한 문명 속에서 존재하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 p.89 마테오 리치의 『기하원본』이 『원론』의 완역본은 아니지만, 중국과 조선에 서양 수학을 처음으로 전래한 의미 있는 수학서라고 할 수 있다. 비단 ‘처음 전래했다’는 의미만 갖는 것은 아니고, 전통적인 수리관(數理觀)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수리관을 제시했다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 p.96 다음 날 영조는 문광도를 불러 몇 가지 계산 시험을 보았다. 산법(算法)을 잘 아는지 시험 삼아 계산해 보라는 영조의 물음에 문광도는 현장에 있던 죽궤(竹?)를 가리키며 시험 삼아 계산해 보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문광도가 계산을 모두 마치자 이어서 영조는 방문의 네 모퉁이를 계산해 보라고 하였고, 문광도는 이 역시 계산하였다. 매우 짧은 만남과 대화였지만 영조는 문광도에 대한 인상이 깊었던 것 같다. 문광도의 실력을 안국빈과 비교해 묻는 영조에게 김태서는 안국빈도 많이 알긴 하지만 문광도만 못하다고 했고, 이이서 홍봉한은 현재 산법에 밝은 자로는 문광도와 홍양해가 있다고 하면서 홍양해가 홍계백의 아들이고 문광도가 홍양해에게서 배웠다는 이야기를 영조에게 해 주었다. --- p.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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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양반이나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양반과 선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양반들의 삶뿐만 아니라, 상인과 농민들의 삶도 함께 바라봐야만 한다. 또 양반들의 삶 역시도, 중앙정치에서의 활동만으로는 충분히 이야기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국가가 편찬한 관찬 기록에서는 이들의 일상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개인의 일기나 서간집 등 다양한 사적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일기나 서간집을 남긴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는 있지만, 그러한 식자층이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면서 주변의 이야기도 남겨 왔기에, 우리는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주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생활사총서는 이처럼 조선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들을 따라서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람들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18세기 중반 관상감으로 활동했던 천문학자 문광도의 행적을 통해 조선시대의 천문학 교육과 천문 지식의 전승에 대해 살핀다. 당시 조선의 사대부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공통으로 향유되던 흔치 않은 문화 가운데 있었는데, 사대부들은 천문 지식을 향유하기 위해, 민간에서는 날씨와 점후를 예측하기 위해 생산, 유통, 소비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주로 문광도와 그의 집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그 주된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즉, 문광도는 관상감의 엘리트 관원으로 조선의 승진 체계 및 관상감 내부의 교육 체계 등 전반적인 영역을 살피는 데 참고할 수 있는 인물이며, 다양한 양반과 수학, 그리고 천문학을 교류했던 인물이고, 또한 그의 집안의 일부 사람들이 민간 천문 지식을 통해 민간 봉기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민간 천문학과의 연관이 있는 매우 특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조선의 천문학 체계와 학습 방법 전반, 왕실에서 천문학을 어떻게 대했는지, 천문학에 대해 어떠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천문학을 대하는 조선 백성들의 문화는 어떠했는지 등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