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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들어가는 말 1. 궁중 목장, 전생서 사람들의 살아가는 법 시골 선비, 드디어 전생서주부가 되다 전생서 근무자들 전생서 내부 사람들 간의 마찰 2. 경아전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권세가 집안의 당색과 부침에 따라 움직이는 경아전 선택하는 겸인, 경아전 서리직을 두고 충돌하는 겸인들 경아전의 위세, 호가호위 3. 경아전과 중앙관료의 네트워크 분석 겸인으로서의 경아전: 경아전의 시각 경아전으로서의 겸인: 권력가가 바라보는 겸인, 경아전 당파 간의 경제 이권 쟁탈전 4. 조선의 행정체제와 인적 네트워크 네트워크의 증가와 다양성 양반층의 확대와 당파 나오는 말 주석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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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석을 맞이하러 갔던 우장치가 같이 서울로 올라올 때 동행하면서 전생서제조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알려 주었다. “전생서제조는 공조판서 이문원 대감입니다. 이 대감은 상의원, 선공감, 전생서 등 세 관청의 제조를 겸직으로 맡고 계시니 임금께서 중히 생각하는 사람이지요.” 우장치의 생각은 이문원은 정조가 귀중하게 생각하는 인재이기에 공조판서뿐 아니라 상의원, 선공감, 전생서 등 세 관청의 제조를 맡겼다는 것이었다. 정국이 돌아가는 사정을 깊이는 알 수 없더라도 중앙관청 서리들의 정보망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 p.34~35 영조의 하교에서 언급하고 있던 것처럼 무관, 음관을 막론하고 이서들까지도 당파를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당파는 학문적인 차이나 학맥을 잇는 데서 그치지 않았고, 정치적 행위는 물론이고 행정적 운용, 경제적 관계 등 조선 사회의 체제 전체가 당색을 빼놓고는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즉 관료들뿐 아니라 그와 유대 관계 혹은 친분 관계를 가졌던 겸인, 그리고 이런 재상가의 겸인들이 경아전으로 근무했던 중앙관청 모두가 각각의 당색이 드러나서, 어떤 관청은 소론, 어떤 관청은 노론 등등의 말이 돌 정도였다. --- p.73~74 또 경아전에는 궐원이 자주 생겼고 그런 기회를 통해 겸인이라는 신분을 거쳐 경아전으로 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앞서 황윤석이 근무했던 전생서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생서 아전 중 다수가 판서 홍양호의 겸종이었던 점은 궐원이 생길 때마다 자신의 겸종으로 차출할 수 있는 법 규정 때문에 가능했다. 양란 이후 모자란 중앙관청 이서들을 빨리 충원해서 행정력을 원활히 하려는 의도로 시작된 법이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특정 재상, 권력가의 사람으로 여러 관청을 장악함으로써 그 영향력을 키우고 경제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커졌다. --- p.114 이미 종부시 근무 때부터 여러 사건에 얽혀 있던 종친가, 재상가의 겸종들이 또 사복시의 서리로 와 있었다는 사실은 그 겸종들이 각 관청에서 사건을 일으켜서 쫓겨나도 다른 관청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주공의 권세와 영향력으로 가능했고, 그 겸종들은 마치 호가호위를 하는 것처럼 특권을 누렸다. 반면 이들을 상대하고 중앙관청의 행정업무를 끌어가야 했던 실무급 관직자들은 상급자인 제조와 이들의 겸인 서리들 중간에서 처신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 p.145 겸인 개개인은 주공가의 권력 부침에 따라 불안정한 신분이었고, 어떤 당파가 권력을 잡느냐에 따라서도 겸인들의 위치는 불안했다. 하지만 겸인 신분은 자의적인 선택이었고, 주공가와의 결별, 혹은 다른 주공의 겸인으로 옮기는 것 또한 겸인의 선택이었다. 불안정한 상황의 대비책으로 경아전 자리의 유지 전략은 치열했다. 더 풍족하고 권력 있는 관청의 서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주공을 동원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모함이나 사기, 위조 등 각종 비법을 동원하여 쫓아낸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 p.177~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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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양반이나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양반과 선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양반들의 삶뿐만 아니라, 상인과 농민들의 삶도 함께 바라봐야만 한다. 그런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국가 기록에서는 이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개인의 일기나 서간집 등 다양한 사적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일기나 서간집을 남긴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는 있지만, 상인이 남긴 일기도 있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이 남긴 마을의 이야기도 있어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주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생활사총서는 이처럼 조선의 변두리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들을 따라서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람들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중앙관청들은 새로운 수장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앙관청의 수장들은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기에 흔히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라고 불리고는 한다. 그리고 어공들은 부임하고 나면 흔히들 부처를 장악하기 위해 자기 사람을 심는다. 이렇게 심어진 사람들은 실세라고 불리기 마련이며, 실무자들인 ‘늘공’(늘상 공무원)들은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이러한 세태는 조선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시대의 고위 관료들은 새로운 부처에 부임하고 나면 자기의 겸인들을 그 부처의 경아전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겸인, 경아전 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여태껏 조선시대의 겸인, 경아전 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같은 국가 중심의 역사와는 달리 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잘 기록되지 않았던 탓도 있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한 사람의 일기가 있다. 바로 황윤석의 『이재난고』다. 그리고 유재건이라는 인물은 중인층 이하 인물들의 이야기를 엮어 『이향견문록』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런 기록들과 함께 조선시대 경아전들의 모습을 그려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시대 중앙관청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