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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전혜은, 루인
1. 장애와 퀴어의 교차성을 사유하기 / 전혜은 2. 젠더로 경합하고 불화하는 정치학 :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 그리고 퀴어 연구의 이론사를 개괄하기 / 루인 3. ‘아픈 사람’ 정체성 / 전혜은 4. 죽음을 가로지르기 : 트랜스젠더퀴어, 범주, 그리고 자기 서사 / 루인 5. 게이라는 게 이쪽이라는 뜻이야? / 도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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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집은 다양한 주제를 나란히 옆에 놓으면서 교차성에 대한 사유를 더욱 깊고 넓게 확장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첫 번째로 만나볼 전혜은의 글 '장애와 퀴어의 교차성을 사유하기'는 퀴어와 장애가 별개의 범주 내지 영역이라는 인식에 도전하면서 퀴어 관점에서 장애를, 장애 관점에서 퀴어를 다시 사유하여 퀴어와 장애를 둘러싼 담론 지형을 교차적으로 다시 짠다. 먼저 퀴어와 장애를 반목시키는 주요인으로 ‘병리화’를 지목하여 병리화의 특성과 작동 방식을 해부한다. 병리화의 낙인에 맞서 퀴어와 장애의 연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상성’을 해체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전혜은은 퀴어와 장애가 어떻게 복잡하게 얽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정상성의 해체가 어느 한쪽 분야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 다음엔 퀴어와 장애가 맞물리는 수많은 사안 중 특히 섹슈얼리티와 에이섹슈얼리티에 초점을 맞춰 정상성을 해체하는 논의를 정리한다. 섹슈얼리티와 에이섹슈얼리티에 대한 퀴어 이론의 성과는 병리적으로만 이해되었던 장애인의 성적인 삶을 재정립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퀴어 이론이 그간 발전시켜온 섹슈얼리티-에이섹슈얼리티 논의를 장애 관점에서 재구성했을 때 얼마나 풍성하고 복잡한 다른 이야기가, 어떤 다른 가능성과 대안이 나오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루인의 글 '젠더로 경합하고 불화하는 정치학: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 그리고 퀴어 연구의 이론사를 개괄하기'는 페미니즘, 퀴어 연구, 트랜스 연구의 관계를 탐색하면서 전혜은의 논의를 이어간다. 페미니즘, 퀴어 연구, 트랜스 연구는 종종 별개의 역사적 사건으로, 서로 반목할 뿐인 정치학으로 인식된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에서 생물학적 여성을 강조하고 오직 여성만 챙긴다는 논의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루인은 페미니즘, 퀴어 연구, 트랜스 연구의 역사적 결절점을 살피며 세 정치학이 젠더 개념을 중심으로 첨예한 갈등 관계를 형성하고 마치 서로 배타적 관계를 구성하는 것 같으면서도 긴밀하고 또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왔음을 논증한다. 이 작업은 오늘날 여성 범주를 둘러싼 논쟁에 개입하는 작업이며 여성 범주의 복잡성을 다시 설명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첫 두 편의 글이 교차성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면 다음 세 편의 글은 교차성 논의의 핵심인 정체성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정체성을 둘러싼 다양한 질문은 이 책의 핵심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전혜은의 글 '‘아픈 사람’ 정체성'은 “‘아픈 사람’을 정체성으로 사유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을 통해 비장애인도 장애인도 아닌 아픈 사람의 경계적 경험을 고찰하고, 아픈 사람의 특수한 체현을 계속해서 부인하는 이분법적 가치 체계를 문제 삼는다. 이 작업을 위해 먼저 아픈 사람과 ‘장애인’ 정체성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살펴보고, 아픈 사람이라는 이름이 왜 필요한지 검토한다. 그 다음엔 정체성에 관한 급진적 논의를 발전시켜온 퀴어 이론으로부터 이론적 자원을 끌어와 ‘아픈 사람’이라는 이름을 정체성으로 사유할 방법을 모색한다. 마지막으로 ‘아픈 사람’을 정체성으로 사유할 때 그러한 사유가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 그리고 인식론적 차원에서 어떤 함의와 가치, 잠재력을 갖는지를 논한다. 루인의 글 '죽음을 가로지르기: 트랜스젠더퀴어, 범주, 그리고 자기 서사'는 트랜스젠더퀴어의 죽음을 재현하는 방식을 통해 트랜스젠더퀴어가 이 사회에서 탄생되는 방식을 탐문한다. 보통의 부고는 한 사람의 전 생애를 다시 돌아보며 그 사람의 삶을 되새기는 작업이지만 트랜스젠더퀴어의 죽음은 그 사람의 범주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기능한다. 한 사람의 삶의 많은 부분이 트랜스젠더퀴어라는 정체성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수렴되고 트랜스라는 정체성으로 수렴할 수 없는 삶은 삭제된다. 이런 식의 재현은 한 사람의 삶을 특정 정체성 범주로 박제시키고 그리하여 정체성 범주를 알면 마치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알게 되었다는 식의 문제를 일으킨다. 루인은 죽음을 통해 트랜스젠더퀴어를 애도하는 과정에서 트랜스젠더퀴어(혹은 다른 많은 성적소수자)의 삶을 정체성으로 수렴시키는 방식의 서술이 결국 트랜스의 삶의 복잡성을 단순하게 만들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삭제시킨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글은 트랜스를 비롯한 다양한 퀴어가 자신의 생애를 기술할 때, 특정 정체성 범주로 전생애를 환원시키지 않는 방법을 모색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도균의 글 '게이라는 게 이쪽이라는 뜻이야?'는 본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이쪽 사람들’이라는 개념을 탐색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성소수자를 명명하는 언어는 매일 같이 새롭게 생겨나고, `로맨틱/~섹슈얼/~젠더’라는 도식적 형태로 성정체성을 분류하는 것이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정체성을 사유하는 방식까지 도식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 도균은 기존의 범주로 충분히 설명하고 담을 수 없는 ‘이쪽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트랜스젠더퀴어이자 성노동자인 본인의 경험과 정체성에 대한 사유를 엮어 짠다. 정체성과 정체화를 수많은 도식과 구분 중 자신에게 딱 맞는 무언가를 찾는 것으로 이해하는 현재 상황에서 도균의 글은 정체성 및 정체화 과정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는 명징한 정체성 범주 명명이 없으면 자신의 존재를 사유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다는 통념을 문제시하는 중요한 질문인 동시에, 정체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급진적으로 재사유하는 작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