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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케이팝을 퀴어링하기_연혜원
1장 세대론으로 읽는 케이팝의 퀴어니스_스큅, 마노 2장 케이팝, 게이팝의 디바니스_상근 3장 ‘남성 아이돌을 사랑하는 레즈비언’을 위한 변론: 레즈비언 커뮤니티 안에서 경계받는 '지극히 레즈비언적인' 욕망에 대하여_권지미 4장 ‘당사자됨’을 구성하기: BL, 환상, 욕망_김효진 5장 팬픽션 퀴어바디즘: 퀴어문화의 다양한 체위_윤소희 6장 Twilight Zone: 여돌 팬픽에서의 사랑이라는 세계관-내가 매혹당한 이야기들, 그 찬란함을 목격한 자의 증언_조우리 7장 남성 아이돌 알페스 문화 속의 트랜스혐오: ‘트랜스적인’ 세계 속의 아이러니한 ‘트랜스혐오’에 대하여_권지미 8장 전형적이지 않은 여자 가수들의 계보: 톰보이, 걸크러시 그리고 여덕의 퀴어링_한채윤 9장 여성-퀴어 페미니스트가 걸그룹을 사랑하는 법_아밀 10장 케이팝의 젠더퀴어한 미학_연혜원 11장 몸과 젠더 사이의 틈새로 연대하기: 아이돌이 수행하는 트랜스 페미니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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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이지 않은 생산자와 윤리적이려고 노력할지언정 윤리보다는 욕망이 중요한 소비자가 만들어내는 급진적인 세계를 두고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모든 창작물은 정치적으로 올바를 때만 가치가 있는 걸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문화를 향유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를 향유하는 일이 항상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유희 자체가 문화를 향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퀴어인 향유자들에게만 유독 정치적 올바름과 윤리의 잣대를 들이밀면서 그들이 향유하는 방식을 공격하는 것은 주변화되어 있는 문화 향유 방식에 대한 검열과 반발심에 가깝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본래 10대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이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무해한 유성애적 콘텐츠로서 마초성을 소거했던 남성 아이돌의 이미지가 퀴어에게는 좀더 자기 자신을 투영해볼 수 있는 이미지로 다가갔던 것이다. 더불어 자연스러운 만남부터 연애, 결혼, 출산 등을 통한 정상가족 구성에 이르는 이성애 규범적인 ‘정상성’ 서사를 이루지 못하고 생애주기의 단절을 경험하게 되는 퀴어에게 케이팝 아이돌의 영원히 성장하지 않는 듯한 이미지, 음울한 현실에서 초탈하거나 혹은 세상과의 불화를 극적으로 노래하는 화법은 강한 이입 요소로 작용했다.” --- p.40 “다른 문화에서는 보기 힘든 암시적인 재현의 확인, 수용감, 유대감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케이팝은 해외 퀴어들에게 현지의 주류문화와 타 하위문화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인 문화였던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케이팝은 젠더 측면에서 소수자 문화로 독해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종적 측면에서도 소수자 문화에 속하며, 시스젠더 헤테로-백인-남성성 중심의 서구권 팝에 대항할 대안적 대중문화로 곧잘 인식된다. 즉, 케이팝의 대안성에 대한 기대는 성정체성과 성지향성을 넘어 해외 팬덤 전반이 공유하는 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p.60-61 “게이 디바 소비에서 주목할 만한 면은 ‘남성이 여성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본인의 페르소나로 취해 ‘남성이 여성스럽게 행동한다’는 것을 당당하게 자신의 것으로 가져와 젠더균열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별이분법과 여성혐오가 주류가 된 사회에서 ‘남자애가 계집애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언제나 남성에게 모욕이 되는 말이었으나, 게이 디바 소비는 ‘내가 계집애 같은 게 어때서?’라는 구호를 던지기 때문이다.” --- p.85 “더 중성적이고 무성적인 느낌 혹은 여성적인 느낌을 주는 몇 멤버들을 레즈비언 부치 등으로 해석하면서 일명 ‘부치 착즙’을 하곤 했는데, 그들도 분명 그 멤버들이 사회적으로 남성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레즈비언으로서 자신의 욕망을 투영해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었다. 가상적 이미지를 사랑하고, 소비하며 위안받는 것. 이는 1990년대 팬픽이반들의 모습과도 굉장히 유사했다.” --- p.96 “케이팝 남성 아이돌의 남성성, 퀴어함, 게이 같은 모습, 부치니스 등을 가지고 노는 것은 레즈비언 실천이다. 게이가 케이팝 여성 아이돌의 여성성, 디바니스 등을 가지고 노는 것이 게이다운 것과 결국 마찬가지다. 퀴어한 남성 아이돌이 젠더 경계를 흐리는 실천을 할 때, 그것은 레즈비언 부치와 펨이 기존의 젠더 경계를 흐리는 실천을 하는 것과 상당히 유사하며, 이러한 유사성을 가지고 노는 것은 ‘퀴어함’이라는 큰 틀 안에서 우리를 연대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될 수 있다.” --- p.103 “‘존잘’과 ‘소비러’의 관계, 혹은 ‘존잘’과 ‘존잘’ 간의 관계 등은 모두 ‘버추얼 레즈비언’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것들이 많다. 또한 꼭 ‘존잘’들이 만들어낸 어떤 매개체가 없더라도, 팬덤 내에서 팬들이 서로 관계 맺고 아이돌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며 우애가 깊어지는 모습은 ‘버추얼 레즈비언’적일 때가 많다.” --- p.110 “특정한 콘텐츠나 표현에서 소수자를 표상할 때, ‘당사자성’의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실제 현실과는 구분되는 표상과 환상에서 ‘당사자성’을 고려한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하며, 그로 인한 문제점은 무엇일까. 이런 문제들을 생각할 때 작가와 독자 대부분이 여성이면서 남성 캐릭터의 동성애를 그려내는 BL 장르는 매우 흥미로운 참조점을 제공한다.” --- p.122 “유독 퀴어팬덤은 남성 아이돌 팬덤 내에서 그 세력이 큰데, 이는 자신들의 이상형 혹은 이상향이었던 부치의 형상이 남성 아이돌 멤버 가운데 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유력하며, 퀴어팬덤의 결집된 모습을 보고 찾아온 또 다른 퀴어들이 모여 그 몸집을 불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 남성 아이돌 팬덤 내의 퀴어팬덤이 퀴어페스의 주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된다.” --- p.159 “자신과 주변의 인식에 비해 사회 전반의 인식이 느린 것에 괴리감을 느끼는 경험은 퀴어 정체성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것이다. 서사 속에서는 그 인식을 단숨에 확장시킬 수 있다. 이야기 속에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세계를 앞당길 수 있다. 이것이 퀴어페스가 퀴어들에게 가지는 가장 큰 의의라고 할 수 있다.” --- p.184 “퀴어페스가 꼭 정치여야 할 필요도 없다. ‘올타임으로 무브먼트하는 무지개 꿘충’일 수는 없지 않나. ……퀴어들이 욕망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실패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누군가와의 대화가 뇌리에 깊이 남는다. 실패의 경험이 많아진다는 것은, 즉 시도 자체가 많아진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그런 식으로 커뮤니티 모두의 스펙트럼과 활동 영역이 넓어진다. 쫄지 말고 이야기하라. 누군가는 반드시 ‘하트’를 눌러줄 것이다.” --- pp.184-185 “그 어떤 팬도 자신의 스타가 상처받길 원하지 않는다. 스타가 고통스럽기를 원한다면 그건 팬으로서의 욕구가 아니다. 오히려 스타가 행복하길 바라며 스타가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비판하는 것조차 산업 안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팬의 슬픈 딜레마다. 나는 아무리 현실이 추악한 것이라도 해도, 그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찬란함을 증언하고 싶었다.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무대 위에 서는 것을 택한 여성들을 사랑했다. 그들이 덜 아프고 더 얻기를 원했고, 내가 쓴 팬픽 속 그들에게 준 이야기들이 바로 나의 사랑이다. 그 사랑이 그들과 나를, 우리를 지킬 거라고 믿는다.” --- pp.204-205 “다양한 표현 양식을 가진 레즈비언 혹은 부치 롤모델이 너무나도 부족하기 때문에 남성 아이돌에게 레즈비언적인 면모를 ‘착즙’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럽다. 퀴어한 남성 아이돌이 젠더 경계를 흐리는 실천을 할 때, 그것은 레즈비언 부치와 펨이 기존의 젠더 경계를 흐리는 실천을 하는 것과 상당히 유사하며, 이러한 유사성을 가지고 노는 것은 ‘퀴어함’이라는 큰 틀 안에서 우리를 연대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될 수 있다. 남성 아이돌에게 ‘감히’ 레즈비언의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레즈비언의 서사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풍부하게 만드는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 pp.216-217 “TS와 여성기 연성, 임출육과 오메가버스 등은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의 욕망에 (아슬아슬하게나마) 복무하기 때문에 용서받으면서, (솔직히 기존에 있는 알페스 연성보다 훨씬 정치적으로 덜 ‘빻을’ 때도 많은) 퀴어페스가 후려쳐지는 것은 그저 그것이 트랜스젠더퀴어의 욕망에 더 적극적으로 복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미 이 알페스 세계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트랜스적이었으며, 트랜스적인 창작물로 무척 많았고, 그 사실을 주 소비자로 치부되는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사실 모든 것은 이미 굉장히 트랜스적이었다.” --- p.231 “사람들은 엠버의 50대를 상상하지 못한다. 지금 있는 그대로, 그렇게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가수로 활동하는 모습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래서 계속 묻는다. 사실은 너에게도 숨겨진 여성스러움이 있는 거지? 대체 언제쯤이면 그걸 드러낼 거야? 그리곤 계속 걱정한다. 설마 동성애자는 아니지?” --- p.249 “보이시함 자체가 매력인 게 아니라 성별이분법에 뿌리를 둔 성별 고정관념이 강력한 사회에서 여성이 전형적인 여성성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매력적인 것이다. ……톰보이를 사랑하는 팬덤 역시 이성애의 흉내가 아니다. 그렇다고 나의 ‘최애’가 반드시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무성애자, 트랜스젠더일 필요는 없다. 애당초 그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니까. ……우리가 퀴어링을 멈추지 않을 때,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도 조금은 더 변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덕질을 멈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p.263 “어느 모로 보나 아이돌의 상업적 성공에도 팬 스스로의 안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팬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자신이 퀴어로서 그 아이돌을 사랑하고 있으며, 아이돌의 음악과 무대 덕분에 자신과 자기 주변의 퀴어들이 스스로를 긍정하고 삶을 살아갈 원동력을 얻고 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즉, 사랑의 진실을 말하고, 그로써 자기 자신과 아이돌 모두를 존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돌이 거기에 명확하게 화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 진실을 존중하고 그로써 스스로를 존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 스스로의 상품성을 훼손할 용기마저 내는 것이다.” --- pp.296-297 “이화여대 시위 현장에서 그 노래가 울려퍼졌을 때, 이대생들뿐만이 아니라 이제까지 〈다시 만난 세계〉를 꿈과 도전과 투쟁과 연대와 성장에 관한 노래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자각했고, 그것이 단지 개인의 사적인 경험이 아니라 수많은 소녀들과 연결된 공통의 경험이었음을 인지했고, 그 거대한 자각의 순간을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했고, 그것을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다시 만난 세계〉는 퀴어 축제를 비롯한 여성 및 소수자들의 수많은 시위와 집회 현장에서 불리는 새 시대의 민중가요가 되었고, 소녀시대를 언급할 때마다 ‘척수반사적’으로 남성 팬만 호명하던 언론마저도 더 이상 이 큰 흐름을 무시하기 어렵게 되었다.” --- pp.307-308 “여성 아이돌의 노동과 성을 착취하려 하는 이 산업의 기제는 힘이 세고 끈질기기에, 우리의 진심들을 게걸스럽게 포획해 이윤으로 산출하거나 아예 배제하곤 한다. 하지만 그에 맞서는 우리의 이야기들이 모여서 또 우리의 문화를 만들고 반향을 일으킨다면, 수많은 〈다시 만난 세계〉들이 생겨나 그 안에서 아이돌과 팬이 서로를 초대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 p.310 “마마무의 멤버 문별은 첫 솔로곡 〈Eclipse〉에서 본격적으로 남성성을 퍼포먼스의 전면에 내세운다.17 남성 아이돌들의 전유물과 같은 바지 제복을 입고 나와 남성의 또 다른 전유물인 ‘너를 구해준다’는 서사로 남자 아이돌에 가까운 댄스 퍼포먼스를 펼친다. 이때 남자 아이돌과 같은 퍼포먼스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소위 말하는 ‘꾸러기’ 표정이다.” --- p.333 “젠더퀴어들의 정체화 과정은 프린스를 찾아 삶이 완성되는 과정보다 끊임없는 성장서사와 더 많은 교집합을 가진다. 성별이분법적인 사회가 알아주지 못하는 논바이너리한 젠더정체성을 깨닫고, 소수자성을 기반으로 한 연대를 통해 사회적인 고립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은 흡사 케이팝 소년들의 성장서사와 유사하다. 이미지와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세계관이 가진 서사, 정체화 서사의 유사함으로도 퀴어 정체성은 스스로를 투영할 수 있는 틈새를 발견해낼 수 있다.” --- p.340 “전 지구적으로 케이팝의 신체가 전복적 젠더 이미지로 대두되고 있는 현실에서 다시금 은폐되는 것은 케이팝이 보여주지 않는 다양한 신체다. 미디어에서 특정한 신체의 크기, 모양과 굴곡의 정도, 그리고 체중이 퀴어한 표상의 척도가 될수록 다양한 퀴어의 신체는 지워진다. 어떤 젠더정체성도 대명사가 아니다. 정체성에 걸맞은 몸과 옷차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케이팝의 몸이 ‘젠더리스’하다며 퀴어한 몸이라고 간편하게 이상화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 p.351 “아이돌 멤버가 모두 이성애자라고 해서 해당 팀의 문화가 이성애 규범적인가는 별개로 논할 문제이듯, 구성원 중 한두 명이 퀴어라고 해서 팀 자체가 퀴어한가, 퀴어인 아이돌이 몇 명 있다고 해서 아이돌 문화가 퀴어해지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 p.358 “〈너나 해〉 무대가 퀴어하다면 그것은 AOA가 기존의 이미지, 공연 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슈트를 차용하는데, 이때 보깅 무대를 통해 슈트가 유일한 가능성, 확실한 돌파구로 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치마 대신 바지 정장이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나는 유일한 돌파구로 상정된다면 그것은 기존의 이원 젠더 체제를 계속해서 반복할 뿐이다.” --- p.377 “비트랜스 중심의 아이돌 문화에서 트랜스페미니즘의 가능성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 문화에 등장하는 드랙, 트랜스젠더퀴어는 단발성 등장이 아니라 한국 대중문화와 아이돌 문화의 역사와 긴밀히 연결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한다.” --- p.3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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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과 팬덤의 퀴어니스
2018년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에서는 퀴어퍼레이드를 앞두고 퀴어들을 대상으로 ‘프라이드 송’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1위부터 36위까지 케이팝 아이돌 음악이 랭크된 것이다(참고로 전체 차트에 오른 1,600곡 중 1,400곡 이상이 케이팝 아이돌 음악이었고 세계적 프라이드 송인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는 50위였다고 한다). 심지어 이 차트에서 1위를 한 곡은 대중가요 차트에서 단 한 번도 상위에 올라본 적이 없는 NCT U(엔시티 유)의 [Baby Don’t Stop]이었고, 4위에 오른 곡은 역시 마찬가지로 대중가요 차트에서 상위에 진입해본 적이 없는 이달의 소녀의 멤버 츄(Chuu)의 [Heart Attack]이었다. 유달리 퀴어 사이에서 케이팝이 인기가 있고, 케이팝 안에서도 ‘일반’ 대중과는 다른 선호가 나타난 것이다(이러한 경향성은 2021년인 지금도 비슷하다). 한편 케이팝 아이돌 음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이자 산업이 된 지 오래고, 아이돌 산업이 팬덤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성장한 산업인만큼 팬덤 자체에 대한 분석과 팬덤 내의 하위문화에 대한 관심 역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다. 하지만 아이돌 케이팝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해온 퀴어팬덤은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사뭇 다른 이유와 방식으로 아이돌 케이팝을 선호하고 향유하는 퀴어팬덤 문화를 중심으로, 전복과 교란의 장이자 혐오와 연대가 경합하는 현장인 지금 여기의 퀴어문화를 기록했다. 2020년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진행된 ‘2020 퀴어돌로지’ 세미나에서 출발한 이 책의 저자들 대부분이 이 세계 바깥의 ‘외부인’이 아니라 이 문화를 적극적으로 향유해온 이들이며, 퀴어 페미니스트들이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퀴어 혹은 퀴어함과 케이팝의 만남은 최근의 급작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 아이돌의 효시로 볼 수 있는 H.O.T.와 젝스키스 등 1세대 아이돌이 등장했을 때부터 케이팝은 퀴어팬덤을 통해 퀴어링되고 있었다. ‘팬코스(팬코스프레, 팬코스튬플레이의 준말로 팬들이 아이돌의 스타일과 패션, 춤, 말투와 호칭까지 모방하는 것)’와 한때 ‘사회적 문제 현상’으로까지 취급되었던 ‘팬픽이반(동성애 기반의 팬픽을 향유하며 동성애를 접하고, 실천하던 청소년들을 집단으로서 지칭하는 용어)’들은 그 대표적 증거이며, 이 팬코스와 팬픽이반을 가장 적극적으로 향유했던 사람들은 당대의 레즈비언들이었다. 아이돌 1세대에서 퀴어팬덤이 적극적으로 발굴해낸 케이팝의 퀴어니스는 이후 아이돌 3~4세대에 이르러 케이팝 자체가 퀴어니스를 탑재하는 흐름으로 이어지는 한편(단적으로 드랙과 보깅을 케이팝 아이돌 무대에서 보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퀴어팬덤 역시 ‘알페스’, ‘연성’ 등을 비롯한 팬덤 내 퀴어적 하위문화를 적극적으로 퀴어적으로 해석하고 향유해왔으며, 이제는 팬덤 내 퀴어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퀴어팬덤의 이름으로 퀴어문화축제 등에 후원을 하고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등 가시화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이돌 세대론을 중심으로 케이팝의 퀴어니스를 분석한 이 책의 1장은 특히 케이팝이 애초에 “한국 대중문화 내 마초성이 소거된 ‘비남성성’의 지대”였기 때문에 퀴어들이 케이팝에 빠져들었다는 점을 큰 전제로 두는데, 본래 10대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이 안전함을 느낄 수 있도록 무해한 유성애적 콘텐츠로서 마초성을 소거했던 남성 아이돌의 이미지가 퀴어에게 좀더 자기 자신을 투영해볼 수 있는 이미지로 다가갔으며, 이에 더해 아이돌의 성장하지 않는 듯한 소년/소녀적 이미지 등이 이성애 규범적 ‘정상성’에서 이탈된 퀴어들에게 강한 이입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레즈비언들은 팬픽과 팬코를 중심으로 남성 아이돌을 전유하고, 게이들은 여성 아이돌 솔로 및 그룹을 게이 아이콘으로 추앙하곤 했다(그 형식은 바뀌어왔을지언정 이는 면면히 이어져온 흐름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케이팝 아이돌 음악은 적극적으로 퀴어 미학을 흡수하고, 나아가 케이팝 내 팬덤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흐름과 더불어 일어난 퀴어팬덤의 가시화로 인해 케이팝 아이돌은 퀴어 친화적이고 젠더리스 혹은 젠더교란적인 결과물들을 내놓기에 이른다. 이 책의 1장은 케이팝의 퀴어니스를 시기적으로 살피고 나아가 이것이 국내와 해외의 퀴어 팬덤과 어떤 관계를 맺어오며 진화해왔는가를 살피고 있으며 10장은 케이팝이 그 자체로도 퀴어해진 지금의 젠더교란적 모습을 그 미학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독해해낸다. 전복과 교란: 퀴어라는 괴상한 렌즈로 보는 세계 케이팝 아이돌은 한국의 대중문화 가운데 그 자체로 가장 퀴어한 장르 중 하나이고, 그 장르를 함께 만들어내고 있는 팬덤의 문화 역시 더없이 퀴어하며, 퀴어팬덤의 역사는 케이팝 아이돌의 시작부터 함께해왔다. 그러면서도 이 아이돌을 둘러싼 퀴어한 세계의 안팎에서는 강력한 성별이분법과 퀴어혐오가 함께 작동해왔다. ‘칼머리’의 ‘팬픽이반’들은 레즈비언 사회와 규범 사회 모두에서 이중적 멸시와 탄압을 받았고, 1990대 말부터 2000년대 초에 정점을 찍었으며 퍼포먼스를 하는 멤버과 의상을 담당하는 스태프로 이루어진 팀이 한때 1,5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팬코스는 사멸했다. 이때 “팬픽이나 알페스 역시 ‘아이돌의 이미지 메이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규제당하기 일쑤였고, 퀴어들의 케이팝 소비는 한층 더 음지화된 경향을 띠게”(44~45쪽) 되었던 흐름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 케이팝 아이돌 자체가 퀴어니스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물을 내보이고 있는 지금에도, 퀴어 팬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아이돌을 응원하면 팬덤 내에서는 그것을 저지하려는 흐름이 존재하며, 퀴어팬덤이 팬덤의 이름에 ‘퀴어’를 붙였다는 것만으로도 팬덤 내에서 사이버불링이 일어나기도 한다(NCT의 퀴어팬덤인 NCT QUEER의 경우 2019년 퀴어문화축제에 깃발을 들고 행진을 했을 뿐인데도 당일 트위터 ‘실시간트렌드’에 이름이 오르고, 팬덤 내에서 심한 사이버불링에 시달렸다). 이뿐만 아니라 ‘여돌여덕(여성 아이돌을 사랑하는 여성 팬)’을 두고는 왜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냐고 묻고, 남성 아이돌을 좋아하는 레즈비언을 두고는 왜 레즈비언이 남자를 좋아하느냐고 묻고, 여성 아이돌을 좋아하는 게이를 두고는 왜 게이가 여자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톰보이 스타일의 여성 가수가 그 스타일을 버리지 않으면 그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해 꼬치꼬치 물어대고(남자친구는 언제 사귈 건지? 치마를 입을 생각은 없는지?),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면 ‘걸크러시’와 ‘보이시함’ 이외의 언어로 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강력한 성별이분법과 퀴어혐오가 작동하는 사회는 단지 취향의 문제에도 개입하며 다양한 욕망의 발화를 막으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어떤 문화를 가지고 노는 자들은 언제나 그렇듯 제멋대로 문화의 생산물을 자기들 뜻대로 가지고 놀며 나아가 그것을 전복하고 새로운 생산물과 관계를 생산해내며, 그러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게이들은 여성 아이돌의 춤을 추고, 아이돌의 팬들은 실시간으로 온라인을 통해 ‘연성’을 하며 논다. 퀴어 팬들은 아이돌을 퀴어 그 자체로 전유하며 사랑하기도 하고, 삭제당할 장면인 것을 알면서도 콘서트장에서 무지개 깃발을 흔들며 환호한다. 《퀴어돌로지》가 기록해내는 케이팝 아이돌을 가지고 노는 퀴어들의 놀이와 그 놀이들이 벌어지는 장에 대한 분석은 이미 그 자체로 성별이분법, 퀴어혐오적, 트랜스혐오적 시각에 맞서고 그것을 뒤집는 시도이기도 하다. 2장에서는 게이 클럽 씬을 중심으로 게이들이 여성 아이돌을 어떻게 페르소나로서 소비하고 전유하는지 그 젠더교란적 장을 기록하고, 3장에서는 ‘남성 아이돌을 사랑하는 레즈비언’들 이 어떻게 남성 아이돌을 부치로 ‘착즙’하는지를 기록하며, 특히 레즈비언 사회 내에서조차 ‘진짜 레즈비언’이 아니라는 의심과 혐오를 받아야 하는 ‘그런’ 레즈비언들의 그것이 강력한 레즈비언적 실천임을 밝혀낸다. 남성 아이돌을 사랑하는 레즈비언을 둘러싼 오래된 이중적 혐오(레즈비언 사회 내에서의 혐오-“남성 아이돌을 좋아하다니, 너는 진정한 레즈비언이 아니야!”-와 남성 아이돌을 사랑하는 비퀴어 여성들의 혐오-“우리 오빠를 감히 레즈비언으로 취급하다니”-)를 지적하며 이를 비판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나아가 4장에서는 팬픽을 비롯한 알페스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 장르인 보이스러브(BL)물을 중심으로 당사자됨을 둘러싼 현실과 환상과 표상의 관계를 논하는데, 이는 창작자와 향유자 모두가 대부분 여성인 장르인 BL에 대해 그것이 남성 간의 성애를 다루는 장르이며 여성 캐릭터를 배제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흐름을 비판적으로 톺아보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특히 아이돌 팬덤(특히 퀴어팬덤)의 중요한 하위문화 중 한 축인 알페스를 비판하는 흐름(이 역시 주로 여성들이 창작하고 향유하는 장르이며, 남성 간의 성애를 중심으로 삼고, 나아가 실존인물을 그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을 바라볼 때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아마도, 이곳에서 가장 급진적일 문학장(場): 팬픽, 알페스, 퀴어페스 이 책은 케이팝 아이돌을 둘러싼 퀴어한 하위문화의 현장을 직접적으로 소개하고 특히 이러한 하위문화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콘텐츠이자 핵심이기도 한 알페스(RPS, real person slash, 실존인물 간 연애를 픽션으로 묘사하는 모든 문화적 허용을 총칭하는 말) 역시 중요한 장으로 다룬다. 알페스는 주로 실존하는 남성(남성 아이돌 등)들을 동성애적 관계로 묘사하며, 여성 팬들이 창작하고 즐기는 문화로 특히 알페스의 핵심적 장르인 팬픽은 섹슈얼리티를 가장 집중적, 급진적으로 다루는 장르이다. 그렇기에 그곳은 언제나 정상성에 얽매이지 않는 욕망들이 들끓는 장이고, 그렇기에 “트위터상의 아이돌 팬픽장은 아마 국내에서 퀴어 저자와 퀴어 독자가 가장 활발하게 소통하는 문학장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16쪽) 아닌 것이다. 알페스는 비퀴어 여성들이 가장 큰 향유층을 이루고 있는 장르이면서도 퀴어팬덤이 케이팝과 깊은 친화성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팬덤 문화이며, 2017년 이후에는 알페스 내에 ‘퀴어페스(퀴어와 알페스를 합친 말로, 알페스 내 등장인물을 더 직접적으로 퀴어 정체성을 지닌 인물로 묘사하는 알페스 내 퀴어서사물이며 주로 퀴어 당사자들이 창작하고 향유하는 것으로 추정한다)’라는 흐름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알페스는 그것을 향유하는 자가 퀴어 정체성을 가진 자이든 아니든 애초에 트랜스하고 퀴어한 세계다. 알페서(알페스를 향유하는 사람들)들은 아이돌의 특정 행동과 발언(1차 떡밥)을 가지고 관계성을 상상하고 찾아내며 온갖 변주를 통해 놀고(가령 트위터에서 ‘썰’을 풀어 서사를 만들고, 투표를 하고, 밸런스 게임을 하는 등) 나아가 이 1차 떡밥에 향유자들이 덧붙인 ‘2차 떡밥’으로 그 세계를 무한히 확장해나간다. 이러한 알페스 안에서 동성애 서사는 기본값이며, 그 서사 속에 등장하는 ‘실존인물’은 대학생이 되기도, 직업인이 되기도, 성별이 바뀌기도, 동물이 되기도 하는 트랜스적 속성을 지녔다. 나아가 이 팬덤 내의 알페서들은 직접 ‘멤버놀이’를 하는 등 아이돌이라는 실존인물에서 벗어나 아예 새로운 관계성을 만들어 놀기도 한다. 비퀴어 여성들이 중심이 되는 장이지만, 알페스를 향유하며 즐기는 순간 그 역시 ‘뼈테로(뼛속까지 헤테로인 사람)’일 수는 없는 세계인 셈이다. 특히 이 책의 5장은 남성 아이돌 팬덤을 중심으로 알페서들이 어떤 놀이를 하며 노는지, 그리고 그 놀이와 놀이를 둘러싼 관계가 얼마나 퀴어한지(현실 세계의 레즈비언 사회보다도 더 레즈비언적인)를 상세히 기록해두고 있으며 나아가 퀴어페스에 대한 직접적 소개도 충실히 곁들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퀴어함이 기본값인 세계 속에서 역설적으로 퀴어혐오가 발생한다. “우리 오빠는 헤테로이지만 알페스 서사 속에서만 게이다!” “남돌에 레즈 비비지 말라” “여성서사를 퀴어페스가 빼앗아갔다”며 해당 남성 아이돌을 레즈비언으로 ‘착즙’하거나 트랜스젠더로 묘사하는 등의 퀴어페스 서사에 대해서는 혐오적 반응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 5장과 7장은 퀴어함을 향유하며 즐기면서도 막상 성별이분법적 구도 속에서의 제한된 욕망만을 허용하는 팬덤 내의 퀴어혐오적 흐름을 비판적으로 짚어내고, 단지 그저 서로의 욕망과 ‘캐해석’과 ‘연성’을 존중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를 반문하며, 팬픽적 허용의 틀을 넓히자고 제언한다. 또한 다양한 표현 양식을 가진 레즈비언 혹은 부치 롤모델이 너무나도 부족한 상황에서 남성 아이돌에게 레즈비언적인 면보를 ‘착즙’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며 남성 아이돌에게 레즈비언의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레즈비언의 서사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풍부하게 만드는 일일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나아가 알페스/퀴어페스가 퀴어서사가 너무도 드문 한국에서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정체화에 도움이 되는 서사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덕질이라는 퀴어링 : 아이돌을 퀴어링하고 세상을 퀴어링하다 이 책은 아이돌의 소비자이자 수용자이자 아이돌 문화의 또다른 생산자이기도 한 팬덤과 팬 자체를 아이돌 산업의 중요한 축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취한다. 특히 아이돌을 둘러싼 팬덤/퀴어팬덤의 작업들 가운데 우리가 주목할 부분 가운데 하나는, 언뜻 성별이분법적 구도에 충실히 복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첨단의 대중문화를 이들이 적극적으로 퀴어하게 해석해내고 끝내 그 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만다는 점이다. 비게퍼(비즈니스 게이 퍼포먼스)나 퀴어베이팅(queerbaiting, 퀴어적 암시를 소비자를 유인하는 수단으로만 이용하고 그치는 행태)이 좋지 않은 행태일 수 있으나, 이것이 계속 생산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아이돌 산업이 퀴어한 것이 팔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반증이며,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팬덤 내에서는 아이돌의 표현 및 발화와 아이돌 산업을 페미니즘적으로 재해석하고 때로는 비판하는 페미니즘 실천들이 활발해지기 시작”(13쪽)했고, 퀴어 운동 또한 힘을 얻게 되며 퀴어팬덤이 팬덤 내에서 가시화되는 성과를 얻게 되기도 한다. 여기에 팬덤이 케이팝 산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3.5~4세대 아이돌 이후의 흐름은 팬덤 내 페미니즘적 실천과 퀴어팬덤의 존재를 인식한 퀴어 친화적이고 젠더리스한, 인권 감수성을 의식했음이 드러나는 결과물을 내놓기에 이르렀다(1장 참조). 이렇듯 이 책은 팬덤을 단순히 아티스트를 응원하는 세력이라기보다 아티스트의 작업물에 대한 해석과 비평을 공유하고 산업에 영향을 끼치는 해석공동체이자 아이돌 산업을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로 그 위치를 만들어가고, 그렇기에 팬덤 문화를 비롯해 팬덤 혹은 팬 그 자체를 기록의 대상으로 삼으며 케이팝 자체의 퀴어함과 함께 케이팝 아이돌 팬덤의 퀴어함을 함께 분석해냈다. 가령 여성 아이돌 혹은 가수를 사랑하는 여성 팬, 즉 ‘여덕’의 존재는 그 자체로 이미 성별이분법의 렌즈가 고착된 사회에서 퀴어한 존재들이다(“왜 여자가 여자를 좋아해?”). 8장은 전형적이지 않은 여성 가수의 계보를 짚어가는데, 전형성을 벗어난 여성 가수들을 걸크러시(쎈 언니)와 보이시함으로만 납작하게 일축하며 이선희의 ‘언니부대’로부터 이어진 여덕의 존재를 성별이분법적으로 분석하는 데(남자 같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맞서며, 그 전형성을 거부하는 가수를 사랑하는 여덕의 마음을 통해 덕질이라는 퀴어링을 논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여덕들은 걸그룹의 현실(혹독한 체증 관리, 외모 평가 등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산업)을 인지하고 있으며 사랑하는 나의 아이돌이 처한 부당한 현실에 같은 여성으로서 공감하면서도, 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런 이유로 여덕, 특히 그가 페미니스트일 경우 “페미니스트라면 여성 아이돌을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 “너희들이 여성 인권 다 망친다”는 식의 공격까지 받기에 이른다. 이 책은 6장은 그럼에도, 그 추악한 현실 속에서도 “분명히 존재하는 찬란함을 증언”한다.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무대 위에 서는 여성들을 사랑”해온 그 기록은 특히 남성 아이돌의 팬픽과는 다른 맥락을 지닌 여성 아이돌의 팬픽을 살피며, 바로 그 속에서 바로 그 여덕들의 마음을 발견해낸다. 나아가 9장은 여성-퀴어-페미니스트인 여덕의 복잡한 마음을 풀어놓으며 아이돌의 소비자이자 그 역시 상품이며 생산자인, 무엇보다 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팬의 자리와 그러한 팬과 아이돌의 관계를 아이돌 산업의 구조 속에서 짚어낸다. 팬이라면 응당 아이돌의 성공과 안위를 위해야 한다는 명분하에 팬덤 내에서 페미니즘적 비판을 제기하는 자는 ‘까빠(팬인 척 하면서 아이돌을 까내리는 짓을 하는 사람)’가 되어 비난당하고, 퀴어팬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면 그것이 아이돌에게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나대지 말라고 제재를 가하는 것이 지금 현재 팬덤이 지닌 일반적 보수성이다. 하지만 이 장은 팬 역시 아이돌과 마찬가지로 기획사의 상품이며 착취되고 있다는 점을 짚으며 아이돌과 팬 모두가 스스로를 상품화하는 아이돌 산업 기제를 벗어나거나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언급한다. 가령 퀴어팬은 팬덤 내의 규율 때문에 사이버불링을 비롯한 집단적 린치까지 각오하면서도 콘서트장에서 무지개 깃발을 흔든다. 자신이 퀴어로서 그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의 무대 덕분에 퀴어들이 삶의 원동력을 얻는다는 것을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돌은 자신의 상품성을 훼손할 각오로 그에 응답하기도 한다. 또한 성별이분법을 전제하고 기획된 여성 아이돌에 대안적 의미를 부여하는 퀴어들의 실천들(레즈비언이 여성 아이돌을 사랑한다고 선언하거나 퀴어들이 그들의 무대를 모방하며 새로운 문화적 생산을 이루어내는 행위 등)이 모여 새로운 장의 가능성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3~40대 남성 팬인 ‘삼촌팬’을 겨냥해 기획된 걸그룹 소녀시대의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는 생산자(기획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그 노래를 듣고 자란 여성 청년, 퀴어들의 ‘민중가요’가 되었고 소녀시대 당사자들 역시 이러한 흐름에 영광을 표했던 장면은 바로 그 가능성을 분명히 우리가 목격했던 순간이었다(소녀시대의 티파니는 2021년 LGBTQ+ 커뮤니티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 책은 아이돌이라는 장르를 경유해 젠더퀴어적 인식론을 제시하며 아이돌을 넘어선 우리의 세계를 퀴어링하는 데로 나아간다. “팬덤은 케이팝 아이돌 기획을 가능하게 해주는 자본의 공급처이자, 지지 공동체이고, 따라서 아이돌이 전적으로 팬덤을 대상으로 기획된다는 사실”(319쪽), 즉 “아이돌은 언제나 팬덤과의 관계 속에서 구성”(319쪽)되기 때문에 10-20대 여성들이 팬덤을 구성하는 핵심 수요자들이라는 점은 남성 중심적인 성별 이분법적 서사나 이미지가 아닌 시도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즉, “케이팝은 자신의 소비자들에게 말 그대로 ‘팔리는’ 젠더 이미지를 생산해내고 아이돌은 이를 캐릭터처럼 수행해낸다”(318쪽). 특히 이 책의 10장은 아이돌 산업 내 아이돌과 팬덤의 관계를 바탕에 두고, 이분법적 젠더 표현을 어떻게 흐리면서 다양한 젠더 스펙트럼을 구현해내는지 뮤직비디오들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다만 오히려 ‘마른 몸’이라는 이미지 등으로 ‘젠더리스’라는 이미지를 제한하며 성별이분법을 고착화화는 부분은 비판적으로 바라보는데, 나아가 11장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트렌스젠더퀴어 인식론을 개입시켜 케이팝 아이돌의 작업을 분석해내는 시도를 꾀한다. 트랜스젠더퀴어 인식론을 기반으로 하는 트랜스페미니즘을 바탕으로, 최근 아이돌팝 안에서 등장했던 퀴어적 요소들(아이돌 무대와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드랙퀸과 보깅 댄스, 퀴어 댄스 팀 등)이 단지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퀴어하다고 해석되는 지점을 경계하며, 보깅과 드랙의 등장이 이항 대립적 구조를 생산하는 차원이 아니라 이것이 왜 반대의 항이어야 하는가를 물으며 연대와 틈새의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작업으로 독해한다. 놀이와 정치, 유희와 올바름 사이에서 모든 것은 정치적이며, 그것은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이 다루는 케이팝 아이돌을 둘러싼 그 세계 역시 너무나 정치적이다. 이것은 욕망이 반드시 정치적 올바름으로 수렴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여성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로 그것은 여성서사가 아니라며 손쉽게 비난할 수 없으며, 여성 아이돌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여성 인권을 망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여러 ‘정치적’ 이유로 가시화되지 않았던 더 많은 욕망과 유희의 경험이 기록되고 발화될수록 더 넓은 정치적 가능성을 논하는 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연대하는 모습도, 퀴어퍼레이드에서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도 우리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운동이다. 하지만 “운동을 하기 위해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이어가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에 가까운 게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유희를 유희로 남겨둘 때, 누구에게나 ‘빻은’ 부분 한두 개씩은 가지고 있다는 걸 인정할 때, 오히려 이 놀이 안에서 다양한 욕망을 계속 누군가 발화할 때 더 넓은 정치적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이 책은 바로 그 가능성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