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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부 성별교란자의 여행 어느 성별교란자의 탄생 빨간 하트와 파란 하트의 비밀 성별교란자의 좌충우돌 성장기 형과 아저씨에게 쉼을 권하는 거리 할아버지의 술맛 아이쿠, 여잔 줄 몰랐어요 우리들의 슬픈 탈코르셋 화장실에서 난 숨을 참는다 성별교란이든, 성별비순응이든 2부 싸우자는 예쁜 말 첨부터 싸울 생각은 없었어 친구에게 필요한 건 오기였다 종묘회사를 닮은 인권단체 섹스토이로도 싸울 수 있다 우린 춤추면서 싸우지, 그게 퀴어야 경찰서 앞에 무지개가 뜨다 비온 뒤에 무지개가 뜰 테니까 마포 성소수자 현수막 문구 샅바싸움 동료 시민, 앨라이가 되자 퀴어 아카이브 만들기 추모의 힘으로 싸운다는 건 성소수자의 나이 듦 싸우자는 예쁜 말 괜찮아요. 당신이 당신이어도 3부 전환해야 하는 건 당신입니다 동성애자도 실연하면 슬픈가요? 불편과 불행을 구분해주세요 동성애를 인정하면 수간도 인정될까 걱정하는 이들을 위해 이성애자를 정중히 사양할까요? 탈이성애자협회가 없는 이유 왜 ‘알몸 축제’를 하냐고 묻는 분들에게 연인이 나의 사망신고서를 작성할 권리 에이즈에 걸려 죽는 줄만 알았지 남녀가 손잡으면 임신됩니다 검출되지 않으면 전염되지 않는다 당신의 쉬운 그 한마디 테스토스테론은 죄가 없다 스포츠의 공정성을 해치는 시스젠더들 ‘생물학적 여성’만 입장 가능한 세상은 나는 노력하지 않을 거예요 전환해야 하는 건 당신입니다 4부 퀴어하게 세상 읽기 아담과 이브의 배꼽 정치와 종교의 분리는 중요하다 호기심이란 단어에 속지 마라 사람을 살릴 능력이 당신에게 있다면 역차별은 없다, 성차별은 있다 ‘여교사 대책’이라는 함정 혐오에 웃으면서 화내기 호모사피엔스와 호모섹슈얼 신이 허락하고 인간이 금지한 사랑 왜 결혼을 독점합니까? 혈연가족의 비밀 노년 담론을 이끌 새로운 주체 누가 정자에게 총을 쥐여주었는가 누구나 급할 땐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세상 《백범일지》에 남은 동성애 나쁜 남자와 사랑에 빠질 자유와 성적자기결정권 신과 맞짱을 뜬 릴리스처럼 5부 나는 행복하니까 당신도 행복하길 남들 사는 대로 남다르게 살기로 했다 어느 스님의 사랑 이야기 우리, 서로 자기 마음만 책임져요 우리 귀엽게 늙어가자 장미소년, 우리 끈질기게 행복하자 고양이 비욘드의 가르침 만약 용기를 글로 전할 수 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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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하이힐, 화장, 긴 머리 등을 거부하는 것을 탈코르셋이라한다면, 청소년기는 제외한다고 쳐도 나는 1990년대부터 탈코르셋을 했다. 나와 같은 사람들, 소위 레즈비언 부치들로 범위를 넓히면 탈코르셋의 역사를 더 오래전의 과거로 끌어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부치를 탈코르셋의 선두주자로 쳐주는 경우를 아직 본 적 없다. 이 좋은 걸 부치들만 하고 살았냐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레즈비언 부치들은 바로 그 특징인 화장 안 함, 바지 입음, 머리 짧음 때문에 감히 남자를 흉내 내는 건방진 여자로 찍히는 괴로운 시간을 견뎌왔다. 역사가 이러한데 부치의 탈코르셋을 ‘냄져가 여자들을 위한 강의를 하냐’라는 말로 조롱하다니.
---「우리들의 슬픈 탈코르셋」중에서 ‘논바이너리’라고 하면 여성도 남성도 아니라는 의미이니 그 사람은 분명 외모가 ‘중성적’일 거라고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지정성별 여성이 치마 입고 화장한 채 논바이너리라고 밝히면 “네가 무슨 논바이너리냐, 여자로 꾸미고 다니면서”라고 면박을 주고, 지정성별 남성이 화장하고 논바이너리라고 성별 정체성을 밝히면 “트랜스젠더인데 어려운 말 괜히 쓰는 거 아냐?”라고 반문하는 경우가 많다. 논바이너리용 의상이란 게 따로 있지 않다. 모든 의상은 원래 성별과 상관이 없다(없어야 한다). 또한 성별 정체성도 어떤 정해진 방식으로 표현되어야만 하는 게 아니다. 머리 모양과 의상 등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은 개인적인 선호와 취향, 그리고 개성의 영역이다 만약 어느 트랜스젠더 여성이 화장과 치마를 선호한다면 그것 역시 개인의 선택이고 자기만의 표현 방식이다. 문제는 전혀 선호하지 않음에도 화장하고 치마를 입지 않으면 여성임을 부정당하는 일을 너무 많이 겪어서 어쩔 수 없이 치장을 하게 되는 현실이다. 시스젠더인 나도 사람들에게 하도 여자답지 않다는 말을 듣다 보니 여자로 보이기 위해 애쓴 적이 있는데 트랜스젠더는 오죽하랴. 그런데 ‘여자로 보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성별교란이든, 성별비순응이든」중에서 퀴어문화축제의 정신이 무엇일까. 퀴어퍼레이드는 무엇을 위해 열리는 걸까. 2000년에 50여 명으로 시작했던 퀴어퍼레이드였지만, 단지 참가자가 많아지고 규모가 커지는 것만이 퀴어퍼레이드의 목표일 수는 없다. 우리는 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이 세상의 그 어떤 시선과 압력에도 불구하고 광장에 모이고, 거리를 누비고, 서로의 존재를 축하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그 자체로서 얼마나큰 저항인지를 표현하고 느껴왔다. 나는 이토록 선명한 방식의투쟁을 사랑한다. 우리는 차별과 혐오에 상처받고 슬프고 화도 나겠지만, 광장으로 나와 춤을 출 것이다. 그것이 가장 강력한 저항, 절대 길들여지지 않을 퀴어라고 생각하니까. ---「우린 춤추면서 싸우지, 그게 퀴어야」중에서 지금까지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인터뷰를 해왔다. 언론사 기자부터, 과제로 발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논문을 쓰겠다는 대학원생 등 만난 사람은 다양하지만 마지막 질문은 거의 비슷하다. 동성애자로서 이 사회의 주류 구성원들에게, 이성애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냐고. 나는 성소수자를 이해하고 존중해달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이 질문은 3인칭이 아니라 1인칭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그들의 삶이 아니라 그들과 연결된 내 삶에 대한 이야기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부디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문제로 생각해보시라는 겁니다. 그들을 어떻게 볼 것이냐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나의 절친한 친구가, 나와 죽이 잘 맞는 직장 동료가 동성애자라면, 트랜스젠더라면 나는 그들의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동료로서 그리고 이웃으로서 어떻게 할지 말이죠. 그리고 내가 살아갈 이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정말 동성애 혐오가 강력해서 동성애자라면 돌을 던지는 사회가살고 싶은 사회인지. 그렇게 사람이 사람을 따돌리고 괴롭혀서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도록 만드는 세상에서 살고 싶으신지. 그들의, 성소수자만의 인권 문제가 아니라 나의, 우리 모두의 인권 문제로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 ---「동료 시민, 앨라이가 되자」중에서 여성 동성애자가 자신의 몸 자체를 긍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면, 남성 동성애자는 자신을 이미 타락한 존재, 악의 씨앗처럼 여기는 경우가 흔했다. 평소에 발랄하게 잘 웃던 20대 게이는 내 손을 붙잡고 펑펑 울면서 말했다. 어머니가 어릴 때 자기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고,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이 한이 되어서 자신은 여자와 사귀지 못하는 게이가 된 것 같다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게이가 되었다는 자책과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있겠는가. 이런 이유로 동성애자가 되는 거라면 이 세상엔 지금보다 훨씬 더 동성애자가 많아야 한다.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레즈비언이 되고, 냉정한 어머니 때문에 게이가 된다면 말이다. 우리는 비슷한 배경에서 자랐지만 이성애자로 살고 있는 많은 사람을 알고 있다. 이성애자들은 그 누구도 가정폭력이 없어서 이성애자가 되었다거나, 부모님이 안 계셨지만 이성애자가 되는 데 성공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회에선 동성애자는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 동성애자가 될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적인 이유를. ---「괜찮아요, 당신이 당신이어도」중에서 동성애자든 트랜스젠더든 성소수자의 삶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거나 그렇다는 확신에 찬 분들을 만날 때면 나는 말한다. “불행한 게 아니라 불편한 거예요.” 불행하다고 지적하면 그 책임은 온전히 당사자에게 있는 것 같지만 불편함에 주목하면 달라진다. 만약 어떤 건물에 계단만 있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다면 이건 불편한 일이다. 휠체어 탄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휠체어도 다닐 수 없게 만든 설계자들 잘못이다. 이런 현실을 두고 장애인의 삶은 불행하다고 말한다면 책임회피일 뿐이다. ---「불편과 불행을 구분해주세요」중에서 에이즈의 원인은 동성애라고 말하는 것은, 개신교 목사들이 주도해서 열렸던 2021년 광복절 집회 이후 코로나가 확산되었을 때 감염 원인을 ‘신앙심’이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헛소리다. 학교에서 코로나에 감염되었다고 해서 감염 원인이 ‘공부’라고 하진 않으며, 코로나 예방을 위해 교회와 학교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어디서 무얼 하든 마스크를 올바르게 쓰고 손을 깨끗이 씻자고 강조한다. 이런 상식적인 판단을 왜 에이즈와 동성애에 대해서만 하지 않는 것일까. 이성 간 성행위에 의한 HIV 감염 사례를 두고 언론에서 ‘이성애를 하다가 그만 에이즈에 걸려…’라는 식으로 언급하는 걸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동성 간 성행위는 콘돔 미착용이 아니라 동성애 자체가 마치 바이러스를 생산해내는 양 다룬다. 하지만 바이러스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바이러스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를 구분할까? 궁금해하기라도 할까? ---「남녀가 손잡으면 임신됩니다」중에서 처음엔 기쁜 마음으로 핀란드 관련 기사를 찾아보다가 수도 없이 반복되는 ‘선언만 하면’이란 문구에 점점 가슴이 답답해졌다. 종국엔 눈물이 터져서 책상에서 한참을 울었다. 누가 보면 이상하게 볼 일이다. 누가 죽은 것도 아니고 혐오 발언이 들어간 것도 아닌 기사를 읽고 울다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속상했다. 핀란드의 변화는 ‘선언만 하면’ 된다는 것에 핵심이 있지 않다. 기존의 법에서 명시한 성별 정정의 조건 중 반드시 생식기 제거 수술을 받고 전문가의 의학적·정신과적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는 조항을 삭제하기로 했으니, 이 법 개정은 지금까지 사회가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다루면서 사람들을 어떻게 억압하고 차별해왔는지에 대한 반성의 결과다. 애초에 성별은 다 선언이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의사가 부모에게 선언한다. 부모는 주변 친지들에게 선언한다. 처음부터 타인의 ‘선언’으로 할당된 성별을 보다 명확하게 본인의 선언으로 등록하는 것이 뭐가 문제겠는가. 자기 삶의 전문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타인이 내게 한 선언을 내가 나에 대해 하는 선언으로 바꾸는 일일 뿐이다. ---「당신의 쉬운 그 한마디」중에서 이런 상상을 한번 해보자. 당신의 옆집에 어린 자녀를 둔 부부가 이사를 왔다. 새로운 이웃은 자신들을 소개하며 8살이 된 딸 하나를 뒀다고 말한다. 며칠 뒤 당신은 우연히 놀이터 옆을 지나다가 며칠 전에 소개받았던 옆집 부부의 아이를 만났다.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이가 문득 “저는 남자예요”라고 말한다. 그때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사람들은 양미간을 찌푸리며 8살은 너무 어린 나이고 아직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기엔 미숙하다고 의심할 것이다. 다른 문제가 있어서 착각하게 되었을 거라고 걱정한다. 만약 그 아이가 “저는 여자예요”라고 말했다면 어떨까. “너는 아직 자신의 성별에 확신을 갖기엔 어린 나이란다. 커서 다시 생각해보렴”이라고 할까? 아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8살쯤 되면 자신의 성별을 또박또박 말할 때라며 당연하게 여긴다. 결국 중요한 건 처음부터 나이가 아니었다. 우리는 사회가 정해놓은 성별대로, 내가 기대하고 있는 대로 말하는지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눌 뿐이다. 흔히 트랜스젠더를 두고 성을 ‘전환’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입장에서는 자신의 그 무엇도 전환하지 않았다. 어쩌면 너무나도 지독하리만큼 자신을 속이지 않고, 자신의 성별대로 살고자 한 사람이다. 2살 때부터, 8살 때부터 자신의 성별이 무엇인지를 본인은 알고 있었다. 다만 10살, 20살, 30살이 될 때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성별에 대한 당신들의 인식을 바꾸어달라고 말하는 것이 어려웠을 뿐이다. 성공적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은 성별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 이웃과 직장 동료들의 인식이다. ---「전환해야 하는 건 당신입니다」중에서 나는 행복이란 말을 자주 쓰는 편이지만, 낭만적으로 포장하고 싶기 때문은 아니다. 사실 삶은 대체로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저 가끔, 행복한 순간이 찾아올 뿐이다. 그러니까, 그래서 말이다. 우리는 더욱더 그 행복한 순간을 누리는 것을 망설이지 않아야 한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길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들이 말하는 기준에 맞춰 살지 않으면 불행할 거라 겁주는 이들에게 속지 않아야 한다. 지금 삶이 힘든 건 남자답지 못해서, 여자답지 못해서라고 말하는 이들, 이성애를 하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이들과 타협할 필요가 없다. 살아남자.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자로서 끝까지 살아남자. 우리, 행복하자. 끈질기게 행복하자. ---「장미소년, 우리 끝까지 행복하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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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는 세상에 맞서다
1997년, 우체부가 던진 하이텔 소식지가 한채윤에게 운명처럼 날아든다. 무심하게 펼쳐본 책자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조그마한 글자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하이텔 동성애자 인권모임-또하나의사랑 sg172.’ 평생 여자와 사랑하고 헤어진 것은 자신뿐인 줄 알았던 그는 그날 이후 PC통신 단말기만 붙들고 지내며 세상에는 수많은 성소수자가 있음을, 또한 그만큼 성소수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길로 또하나의사랑 모임의 대표가 되어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한복판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가 활동을 시작한 90년대는 동성애자라는 말 대신 ‘호모’, ‘변태’, ‘정신병자’ 같은 멸칭이 만연한 시대였다. 남들과, 아니 이성애자와 다른 사랑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존재를 지워버리는 시대였다. 동성을 사랑하는 것은 어딘가 잘못된 나 혼자뿐이라며 고립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1998년에 최초의 성소수자 잡지 《버디》를 창간하고 사람들 앞에 커밍아웃하고 나서서 ‘동성애 바로 알기’ 강연을 시작한다. 모두들 ‘시기상조’라며 말렸지만, 한채윤은 오지 않는 ‘적절한 때’를 기다리기보다 늘 지금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2001년부터는 서울퀴어문화축제 기획을 시작해 2015년 서울광장에서의 퀴어퍼레이드를 이뤄내고, 2002년에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를 설립해 성소수자의 역사를 기록하는 퀴어아카이브 ‘퀴어락’, 성별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 없는 상담을 제공하는 ‘별의별상담연구소’,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등 여러 성소수자 인권단체를 인큐베이팅했으며,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도 앞장서 왔다. 2014년부터는 차별 없는 기부 문화를 만들고 성소수자 인권 증진에 앞장서는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 활동하면서 ‘성소수자의 나이 듦’에 관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한채윤의 활동은 국가가 국민의 삶을 보장해준다는 명언 ‘요람부터 무덤까지’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성별대로 살고 싶다는 트랜스젠더의 선언을, 서로 사랑하고 돌보며 해로하고 싶다는 동성애자의 외침을 묵살하며 역설적으로 그들의 삶을 지우는 국가와 사회 대신, 스스로 발 벗고 나서서 성소수자의 삶 모든 순간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고, 외치고, 길을 만든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눈을 감는 날까지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전환해야 하는 건 당신입니다” 차별과 혐오에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혐오가 전략이 되고 신념이 폭력이 되는 현실에서, 여전한 사랑으로 오늘을 지키”는 한채윤은 길고 지난한 싸움일수록 웃으면서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수없이 혐오 발언을 마주하더라도 그때마다 불끈 분노가 치솟지만, 능청스럽게 다가가 씽긋 웃으며 상대의 말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만든다.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한 뒤로 수백 차례 강연을 다닌 한채윤은 자신이 마주한 혐오와 차별의 순간을 들려주며, 우리에게 이에 맞설 웃음과 힘을 준다. ‘동성애를 인정하면 수간이나 근친상간도 인정될까’ 걱정하는 이들에게는 ‘수간’과 ‘근친상간’은 이성애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지적하고, ‘동성애자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면 동성애자가 될 것’을 우려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이성애자를 믿으라고, 동성애자가 차별받는 세상임에도 동성애자가 이성애자가 되지 않듯 이성애자가 느닷없이 동성애자가 되는 일도 없을 거라고 되레 이성애자를 격려한다. ‘선언만 하면 성별을 바꿔 준다’는 트랜스젠더 혐오에는 ‘성별이란 애초에 의사, 부모, 국가의 선언일 뿐’이라며 말을 그대로 돌려주기도 한다. 또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대부분 ‘이성애(와 시스젠더)를 빼놓고’ 이야기하면서 작동하므로, ‘이성애와 다른 사랑은 모두 동등한 사랑’이라고 관점을 전환하는 것만으로 대부분 넘어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성소수자는 힘들고 불행할 것이라는 연민 어린 말을 거부하며, 혐오와 편견이 지겨울 정도로 불편할 뿐이라고 되받아친다. 성소수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바꾸어야 할 것은 자신의 정체성이 아니라 성소수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수많은 ‘당신’들의 인식임을 힘주어 말한다. 우리는 다른 이의 사랑을 편견 없이 존중할 용기를, 잘못 없는 사랑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용기를 가질 수 있다. 만약 용기를 글로 전할 수 있다면, 이 지면을 빌려 이 땅의 모든 ‘윤희’와 ‘새봄’에게 용기를 보내고 싶다. 내가 잘못하지 않은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을 용기를, 다른 이의 사랑을 존중할 용기를,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비난하지 않고 바라볼 용기를. _본문 중에서 한채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라고 말한다. 나와는 다른 타인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할 수 있는 용기를, 잘못 없는 자신의 사랑과 정체성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용기를 갖자고 강조한다. 우리가 자신의 사랑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타인의 사랑도 소중한 것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그러니 이성애와 동성애, 양성애, 무성애, 그리고 무수한 사랑을 ‘성’에 매몰되지 않고 ‘사랑’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고작 성별쯤은 뛰어넘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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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색이 한 자루에 든 색연필을 들고 한채윤의 글을 읽었다. 입을 다물지 못했다가 키득키득 웃었다가 눈물이 핑 돌아 천장을 바라보길 반복했다. 몰랐던 게 너무 많아 밑줄을 그어댔더니 책이 온통 무지개가 되었다. 그중 기억하고 싶은 단 하나의 문장을 고르라면 이것이다. “나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것은 진심을 다한 사랑 이야기. 온통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기에 자기다움을 치열하게 탐구할 수밖에 없었던 한채윤은 세상의 규범에 맞지 않았기에 세상의 질서를 끝없이 의심하고 사유했다. 그리고 자신처럼 사랑을 숨기고 존재를 유폐시켜야 했던 이들을 기어이 만나고 연결해 ‘커다란 햇빛 울타리’를 만들고 그 힘으로 마침내 광장을 열어냈다. 이 책은 무지개를 만나려면 비를 견뎌야 하고, 함께 맞는 비만큼 아름다운 축제는 없다는 걸 보여주는 뜨거운 사랑과 연대의 기록이다. - 홍은전 (인권 기록활동가, 『그냥, 사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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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아직도 이러고 있느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난 30년 동안, 한채윤은 그 말을 몇 번이나 들었을까? 말 같지도 않은 그런 질문을 평생 들어왔을 그 마음을, 우리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혐오가 전략이 되고 신념이 폭력이 되는 현실에서, 어떻게 그는 여전한 사랑으로 오늘을 지키며 사는 걸까? 여기 이 책 속에, 그의 답이 있다. 그의 문장들을 곱씹으며 읽고 나니, 언젠가 한채윤이 춤추러 오라고 신명나게 외치는 때가 오리라 예감한다. 그러면 나도 가야지, 가서 함께 춤춰야지. 당신이 어떤 몸을 가졌든 누구와 사랑하든, 한채윤은 당신도 역시 환대할 것이다. 그러니 같이 가자, 같이 춤추자. - 김비 (트랜스젠더 작가, 『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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