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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서장. 고려-회화로 보는 고려 여성의 얼굴 초상화 두 점으로 남은 고려시대 여성 1장. 조선 전기-유교의 이름 아래 가려지는 여성들 1. 유폐되는 여인들 : 유교적 가부장제와 조선 여성의 형상 2. 점차 사라져가는 여인의 얼굴 : 초상화 봉안 풍습의 쇠퇴 3. 미인도는 왜 남겨두었을까? : 도덕적 매뉴얼과 미인도의 미학 4. 가부장적 미덕을 강요하다 : 설교의 수단으로 그려진 여성 그림 5. 숨기지 못한 남성 욕망의 흔적들 : 계회도에 그려진 계집종과 기녀 2장. 조선 후기-남성의 시선으로 그려진 여성의 세속 1. 본격화하는 가부장제 : 여성 형상에 변화를 가져온 요인들 2. 절개를 위해 신체를 희생하다 : 《동국신속삼강행실도》의 열녀 형상 3. 효 권하는 사회 : 양로연도와 경수연도 4. 잘난 남자의 부록으로 그려지다 : 회혼례도와 평생도 5. 국가와 가족의 경제를 떠받치는 손 : 경직도와 속화에 표현된 여성의 노동 6. 여자를 엿보고 여자 때문에 싸우고 : 가부장제의 성적 욕망과 여성 형상 3장. 길들여지지 않는 여성주체 1. 열녀와 절개의 이면 : 가부장제에 대한 적응과 반발 2. 절로 향하는 여자들 : 신앙적 주체로서의 여성 3. 쾌락은 감금되지 않는다 : 쾌락적 주체로서의 여성 형상 맺음말 ‘주체’로서의 조선 여성 |
姜明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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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梁)나라 여자 고행이 남편이 죽은 뒤 개가하지 않자 양나라 왕이 정식으로 폐백을 보내며 첩으로 들이려 했다. 이에 고행은 일부종사의 의리를 말하며 자기 코를 잘라버린다.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으로 인해 개가를 강요받으니 제 스스로 개가의 근거가 되는 아름다운 몸의 일부를 아예 없앤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 《삼강행실도》 열녀편은 이처럼 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성적 종속성을 스스로 자기 신체 일부 또는 전체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지켜내야 함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 희생을 통해 성적 종속성을 관철해야만 윤리적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반복적으로 역설한 것이다. ---pp. 82~83.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는 가부장제 윤리로 인해 조선 후기에도 양로연은 계속 설행되었다. 하지만 양로연을 그린 그림인 양로연도에서 여성 형상이 온전히 살아남았던 것은 아니다. …… 이 세 점의 그림은 모두 양로연을 그린 것이지만 여성 노인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또 각 그림마다 양로연을 베푸는 내력이 길게 붙어 있지만, 그 어디에도 여성 노인을 초청했다는 언급은 없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이라고는 그저 춤을 추기 위해 동원된, 전각 안의 기녀들뿐이다. 한 가지, 여성에 관한 언급을 찾을 수는 있다. 환아정에서 양로연을 열었을 때 참여하지 못하는 사족 여성들에게 주육 등을 보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성을 배려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곧 애초 여성을 연회에 초청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조선 전기의 양로연도와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조선 전기만 해도 여성 사족 역시 연회에서 상을 받았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양로연이라는 공식 연회를 즐기는 주체가 오직 남성으로만 제한된 것이다. 여성이 연회에서 사라진 것, 그리하여 양로연도에서도 여성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유교적 가부장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여성의 지위가 천천히 저락해갔음을 보여준다. ---pp. 151, 155. 신윤복의〈미인도〉가 전신(傳神)의 경지, 곧 그림으로 그려진 그 사람의 얼과 마음을 보는 사람도 느끼도록 하는 수준에 이른 것은 신윤복의 빼어난 천품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성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관찰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예컨대 앞서 간단히 살폈던 〈연당의 여인〉에서도 신윤복은 여인의 일상적 삶의 한 장면을 놓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또 그의 다른 작품인 〈기다림〉 등에서도 신윤복은 여인의 심리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드러낸다. 바로 이런 섬세한 관찰력이 〈미인도〉의 높은 완성도를 가능케 했으리라 여겨지는 것이다. …… 그런데 여성을 특화하는 것, 그것도 아름다운 여성을 특화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미인도의 감상자는 대개 남성이다. 따라서 그것은 여전히 남성적 욕망의 대상이고, 이는 곧 성욕의 대상이라는 뜻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성욕의 미적 표현이다. 신윤복을 비롯한 다양한 미인도의 작자들 역시 가부장제의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뜻이다.---pp. 265. 춘화의 제재인 ‘성관계’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이니, 여성이 등장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당연하다. 주목할 것은 춘화의 성관계에서 남성과 여성은 대등한 관계로 만난다는 사실이다. 춘화에서 여성은 이 관계에서 성적 대상이 아니라 성적 욕망의 주체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 〈열락(悅樂)〉의 여자는 모로 누워 있다. 그 뒤에서 남자가 오른손으로 여자의 몸을 괴고 왼손은 여자 뒤쪽에 손을 넣고 있다. 여자의 좁고 짧은 저고리는 둥글고 큰 젖가슴을 윗부분만 겨우 가린다. 여자의 배를 보니, 앞으로 볼록 튀어나와 있다. 임신 중인 것이다. 남자는 여자가 임신 중일 때도 성욕을 억누를 수 없다. 하여, 노랗게 봄꽃이 핀 날 아내와 정사를 벌인다. 치마끈은 풀렸고 여자의 성기가 약간 보인다. 주목할 것은 여자의 표정이다. 가는 눈썹, 감은 눈, 꼭 다문 작은 입술이 여자가 지금 성의 열락에 잠겼음을 나타낸다. 여자는 쾌락에 잠겨 있는 중이다. …… 신윤복의 〈열락〉은 바로 여성이 누리는 쾌락의 한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여성은 구비적 상태에서가 아닌 한 성적 열락을 경험하지 못하는, 성적 열락이 존재하지 않는 존재였다. 그러나 춘화는 여성이 성적 열락의 주체임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pp.340~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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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의 시선에 갇힌 조선 여성을 꺼내다
고전 텍스트 해석의 혁명가, 강명관 그림을 통해 조선 여성의 역사를 다시 쓰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일컬어 우리는 한국의 전통미라고 부른다. 그녀의 단아한 미소는 그 자체로 ‘한국 고유의 미’에 대한 자부심을 선사한다. 그러나 ‘누가 왜 이 그림을 그렸는가?’라고 묻는다면 〈미인도〉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달라져야 한다.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고문 속 숨겨진 역사의 장면들을 발굴해내는 고전 텍스트 해석의 혁명가 강명관 교수. 그가 이번에는 조선시대 여성의 시각적 이미지에 주목하여, 이 그림들에 제작 주체인 남성의 욕망과 의도가 투사되고 있음을 밝힌다. 이 책 《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는 여성을 종속되는 존재로 얽매고자 했던 조선시대 유교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그림을 통해 사대부 남성의 이율배반적인 욕망을 관철시키려 했는지, 그 은밀한 역사의 기록을 추적한다. 왜 그림을 통해 조선시대 여성상의 진실을 복원하려 하는가? 화가가 만들어내는 여성의 이미지는 그것이 제작되는 시간과 공간 등 여러 조건들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그림 속에서 묘사되는 대상을 통해 우리는 당대의 정치·경제적 맥락과 권력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남성으로만 구성된 화원이라는 예술 조직과 일부 민가의 남성들에 의해 시각적 이미지가 제작되었던 조선시대라면, 그림 속 여성의 형상은 그 제작 주체인 남성의 욕망과 의도가 온전히 투영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저자는 조선시대 그림 속의 여성 형상에 주목하여 그를 통해 당대 사회의 이데올로기와 체제의 조건들을 밝혀내고자 한다. 150여 점의 그림 속에서 여성이라는 대상 위에 베일처럼 드리우고 있는 사대부 남성의 시선과 욕망들을 읽어내고, 그것을 걷어냈을 때 마치 풍경처럼 숨어 있던 조선 여성의 진짜 모습을 복원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 건국 이후 남성-양반은 성리학에 입각한 유교적 가부장제를 진리로 믿었다. 유교적 가부장제는 여성은 남성의 이익을 위해 남성에게 일방적으로 종속되는 존재라 주장하고, 거기에 맞는 여성의 성역할을 제작하여 여성의 대뇌에 주입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상당 부분 성공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머릿속에 아직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여성상’은 바로 유교적 가부장제의 결과물인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조선시대 회화와 소수의 판화를 제재로 삼아, 남성-양반의 진리로 믿었던 유교적 가부장제에 의해 여성의 시각적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졌던가를 밝히고자 한다.” - ‘책머리에’ 중에서. 포토몽타주로 재구성한 조선 여성의 얼굴, 그리고 일상 저자는 조선시대 여성을 그린 모든 그림에는 당대 남성의 욕망과 여성에 대한 인식이 묻어 있으며, 사회를 지배하는 의식과 무의식이 그러한 그림을 제작하는 추동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욕망과 시선, 인식의 역사라고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각종 연회 그림, 다양한 미인도, 《삼강행실도》 판화 등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시대와 그 저변의 권력 관계를 읽어낼 수 있는 텍스트 역할을 한다. 이에 저자는 기록되지 않았던 조선 여성의 역사를 그림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읽어내고 다시 써 내려간다. 그림들을 모아 오리고 다시 붙이듯, 포토몽타주 방식을 통해 그림 속에 갇혀 있던 여성의 진짜 얼굴을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 사대부의 시선 아래, 여성이라는 ‘풍경’ 이 책의 1장에서는 조선 전기, 남성-양반 사대부에 의해 유교적 가부장제로 구체화된 성리학이라는 국가 이데올로기가 회화의 여성 형상에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살핀다. 유교적 가부장제는 여성을 속박된 존재로서, 오직 가정 안에서 가사노동과 육아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 전기 여성관이 가장 투철하게 적용된 그림 《삼강행실도》 열녀도 속 여성들은 자신의 신체와 생명을 스스로 버린다. 잔혹하게도 남성에 대한 성적 종속성을 스스로 내재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이에 반해 양로연도는 경로 관념 안에서 ‘어머니로서의 여성’을 그려내는데, 어머니 혹은 성적 종속물로 분열되어 있는 당대 여성상을 여실히 드러낸다. 사대부 남성의 시선에 가두어진 여성들 2장에서는 조선 후기 그림 속에서 변화한 여성 형상을 논한다. 17세기를 거쳐 유교적 가부장제가 정착되면서 그림 속 여성의 삶은 더욱 고단해진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 속 열녀도는 전란 속 죽음을 통해 절개를 지킨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가부장제의 성적 종속을 스스로 주체화한 여성이 대거 출현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경로잔치를 기록한 경수연도에도,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례도에도 여성은 남성의 생애에 부기된 존재로서 마치 장식이나 풍경처럼 남성의 주변부에 머문다. 그러나 유교적 엄숙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자신의 성적 욕망을 포기할 수 없었던 남성의 시선은 조선 후기에 행상, 주모, 무당, 기녀 등 주변부 여성들을 제재로 삼은 속화를 통해 은밀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남성-양반의 이율배반적인 욕망은 미인도라는 미적 표현물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제작되었다. 기방(妓房)이라는 공간을 통해 기녀의 예능노동이 더욱 활발하게 소비되고, 이에 따라 화폭의 전면에 중심 제재로 여성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조선 여성, 화폭의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옮겨 가다 그러나 저자는 그림 속에 갇힌 여성들이 늘 종속적이고 억압당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3장에서 다루는 다양한 회화들, 특히 조선 후기 속화들을 살펴보면 유교적 가부장제는 자신이 원하는 여성상을 일거에 완벽하게 만들어내지는 못했음이 드러난다. 유교적 가부장제는 여성에게서 사유와 행위의 주체성을 박탈해 나갔고, 그러한 공작은 매우 완만한 속도로 진행되었다. 이에 여성은 순응하는 존재였지만, 한편으로는 반발하거나 저항하기도 했다. 그림 속에 투영된 당대의 이데올로기는 끊임없이 그들의 ‘여성성’을 만들어나갔지만, 이는 여성이라는 주체와 지속적으로 길항(拮抗)하는 관계에 있었다는 것이 바로 저자의 결론이다. 치열한 싸움은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조선시대 회화에 또다시 반영되었다. 그중 가장 강력한 ‘여성주체’는 조선 후기 급속히 퍼져나간 춘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그림에서 여성은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주체였다. 유교적 이데올로기는 여성에게서 ‘쾌락으로서의 성’을 박탈하려 했지만, 춘화 속 여성은 그 쾌락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성적 주체였다. 유교 이데올로기라는 강력한 지배체제조차도 인간으로서 자연히 지니게 되는 성적 욕망까지는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