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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
개정증보판
안중근이기웅 편역
열화당 201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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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당 영혼도서관

책소개

목차

증보2판 서문
증보1판 서문
초판 서문

연대기로 보는 안중근, 그리고 그의 시대

동양평화의 교란자 이토를 쓰러뜨리다
피고인 안응칠의 검찰관 신문조서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
안중근 외 세 명의 공판시말서

부록 1?한 영국 신문기자의 안중근 공판 참관기
부록 2?사진으로 보는 안중근의 흔적들
부록 3?안중근의 옥중 유묵

저자 소개 2

安重根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안응칠로 불렸고 해외생활 중에도 이 이름을 많이 사용했다. 6세 때 가족이 황해도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으로 이사했으며, 학문보다 사냥에 뜻이 있어 명사수로 성장했다. 16세 때인 1896년 김아려와 결혼해 이후 2남1녀를 두었고, 이듬해에 천주교에 입교해 세례를 받고 도마(토마스)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27세 때인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들을 모아 국권회복을 도모했다. 이때 돈의학교와 삼흥학교를 세우는 등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평양에서 삼합의라는 광산회사를 설립해 산업 진흥운동에도 매진했다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안응칠로 불렸고 해외생활 중에도 이 이름을 많이 사용했다. 6세 때 가족이 황해도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으로 이사했으며, 학문보다 사냥에 뜻이 있어 명사수로 성장했다. 16세 때인 1896년 김아려와 결혼해 이후 2남1녀를 두었고, 이듬해에 천주교에 입교해 세례를 받고 도마(토마스)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27세 때인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들을 모아 국권회복을 도모했다. 이때 돈의학교와 삼흥학교를 세우는 등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평양에서 삼합의라는 광산회사를 설립해 산업 진흥운동에도 매진했다. 이후 연해주로 가서 의병대열에 참가해 대한의군을 조직하고 무장 항일투쟁에 나셨다. 1909년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동의단지회’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했는데, 이때 이들은 왼손 네 번째 손가락 한 마디를 잘라 태극기에 붉은 피로 ‘大韓獨立’(대한독립)을 새겼다. 그해 10월 26일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조선통감부 초대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1910년 2월 14일 공판에서 사형이 선고되고, 그해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이때 그의 나이 31세였다.

옥중에서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으며, 이 중 『동양평화론』은 형이 집행되면서 미완으로 남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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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역이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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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3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434쪽 | 145*257*30mm
ISBN13
9788930106375

출판사 리뷰

안중근의 ‘말의 전쟁’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꼭 이십 년 전 출간되었던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의 증보 2판으로, 새로운 서문과 몇몇 사진 자료, 그리고 안중근 의사가 뤼순 옥중에서 쓴 유묵(遺墨) 마흔여섯 점을 추가하였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 뤼순 감옥에서의 검찰관 신문조서’ 및 ‘뤼순 법원에서의 공판시말서’라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광범위한 대중과 만나려 한 점에 있다. 안중근의 촌철살인(寸鐵殺人)과도 같은 말 한마디 한마디는 분명 오늘 우리의 삶에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지혜로운 단서를 던져 주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그분의 존재를 역사 속에 박제화한 어떤 상징적인 의미로만 이해해 왔다. 이 책을 다시금 새로이 선보이는 이유는,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 특히 우리 젊은이들과 더불어 안중근의 말씀과 정신을 나누기 위해서이다. 이 책에 담긴 안 의사의 생생한 육성이야말로 우리 젊은이들에게 참다운 미래를 그려 나갈 지남(指南)이 되어 줄 것이다.

이 책을 옮겨 엮은 이기웅 열화당 발행인은 증보 2판 서문에서 “지난 이십 년 동안, 이 눈물겨운 옥중 기록은 약 이만 부 정도가 독자의 손에 전해지면서 사회 문화적으로 우리 국민들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공여했다는 점을 나는 잘 감지해 왔다”면서 “일제 스스로가 자신의 법에 따라 자신의 손으로 엄정하게 기록했다는 ‘뤼순 감옥에서의 검찰관 신문조서’와 ‘뤼순 법원에서의 공판시말서’야말로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일제 침탈의 실상을 우리에게 생생히 증언하는 한편, 일제가 스스로를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역설적인 역사적 기록”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 근현대사 속에서 동양평화의 지혜를 찾으려면 당연히 ‘안중근의 기록’에서요, 우리 민족의 참된 진로를 ‘안중근의 주장’에서 찾아야 한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안중근의 ‘붓글씨 전쟁’

“그분의 말, 글, 글씨에서는 ‘민족의 혼’이 보인다. 보이면서도 번득인다. 번득이면서도 움직인다. 그 움직임에는 각별한 조리와 이치가 있다. 그분의 짧은 인생은 안타깝지만, 그만큼 삶에 밀도가 있고 야무지다. 따라서 그분의 ‘역사의 목숨’은 영원하리라.”
?증보 2판 서문에서

특히 이번 증보 2판에서 추가된 안중근 옥중 유묵과 관련하여 옮겨 엮은이는 안 의사의 글씨를 ‘붓글씨 전쟁’이라고 표현하면서 “붓과 먹과 벼루 그리고 종이가 옥중에 갇힌 안 의사에게는 총이요 칼이었고, 창이요 방패였다. 무기를 들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말의 전쟁, 치열한 글 투쟁의 자취들이었다”라고 말한다. 이 마흔여섯 점의 글씨들은 안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부터 1910년 3월 26일까지 꼭 다섯 달 동안 뤼순 감옥에 있는 동안 씌어진 것들인데, 정확하게는 1910년 2월부터 3월까지 두 달 동안 써서 감옥의 관계자나 재판 관계자와 이웃 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이었다. 붓으로 쓰인 이 문자들은 한국과 일본과 중국이 함께 사용하는 필기 방식으로서, 동아시아의 문자인 한자(漢字)야말로 법정이라는 싸움터에서 벌이는 언설 못지않은, 아니 한 단계 높은 투쟁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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