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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여는글 콘비프 샌드위치 / 전쟁과 불안한 해방 / 죽음의 거리의 네오르네상스 암울한 추함 / 가족 / 도뤼스 아저씨 / 후견인을 찾아서 마음의 위안 / 학교, 종교 그리고 배움 / 바깥세상의 발견 십대 / 정처 없이 떠도는 배 / 아우데 스한스 홍등가의 예술가 / 모성애 / 1960년대 / 결혼의 위기 이혼 / B.를 위한 이샤의 일기 / 병치레 / 일 중독자와 출세 슬픔을 돈으로 달래다 / 트레이사로 돌아가다 / 추모 힘겨운 결정 / 열한 개의 봉분 |
Berthe Meij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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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른쪽에 전쟁 전에 내가 부모님과 조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33번지 집이 있다. 문득 머릿속에 섬광처럼 프랑크 가족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느 일요일 오후, 우리 집 거실에서 찰스턴 춤을 추는 모습이었다. 전쟁이 시작된 첫 해의 일이었고 아마도 그 가족은 우리 엄마의 생일파티에 초대되었던 것 같다. 햇빛 따사로운 노동절의 여름 드레스가 기억났다. 사람들은 계속 밝고 행복한 생각만 하면서 애써 전쟁에 대한 관심을 억누르려 했다. 그 장면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과거의 기억 때문에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린 건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더는 운전을 할 수가 없어 보도에 차를 세웠다.
화가 난 경찰 한 명이 창을 두드리기에 눈물을 흘리며 창문을 내렸다. “뭐 하시는 겁니까? 길가에 차를 세우시면 안 됩니다. 무슨 일입니까? 그렇게 운전하시면 안 되죠. 괜찮습니까?” 경찰이 말했다. 그러는 동안에 여경 한 명이 다가왔다. 여경은 나더러 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그렇게 운전하시면 안 됩니다.” 여경이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그렇게 젊은 사람들에게 나에게 그곳이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슬픈 장소라는 걸 어떻게 설명하랴. 경찰들이 곁에 있으니 그나마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울음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너무 당황했네요. 자세한 이야기를 해도 무슨 소린지 모를 거예요. 아마 이해 못할 거예요.” 나는 몬테소리 학교의 외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안네를 알았지요. 안네는 나와 같은 수용소에 있었어요. 전쟁이 나기 전에 나와 내 가족은 이 거리에 살았어요. 하지만 다 죽었지. 그냥 그런 것들이 갑자기 북받쳐서 그랬지만 이젠 괜찮아요.” 다소 당황한 듯하면서도 눈에 띄게 친절해진 경찰들은 내가 그곳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었다. ---p.18 우리가 함께 또는 각자 했던 일들 중 하나는 빅토리 광장 근처 지역처럼 우리가 ‘그곳’이라고 부르는 장소들을 말없이 거니는 일이었다. 서로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상대가 그렇게 외롭게 떠돌아왔음을 알았다. 둘이 함께 메르베데 광장을 가로지르던 날, 이샤에게 프랑크 일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프랑크 가족이 살았던 37번가의 집을 보여주고, 프랑크 씨와 우리 아버지 사이의 우정을 통해 내 어린 시절의 삶이 그 가족과 어떻게 뒤얽혔는지 들려주었다. 두 가장은 전쟁이 일어난 첫해에 길 건너 이웃집 뒷방에서 만났다. 유대인 이발사인 그 집 주인은 전쟁 중에 생업이 금지된 후로 줄곧 그곳에서 고객들의 머리카락을 몰래 잘라주었다. 그리고 안네 프랑크는 유대인 학교에서 내 사촌언니 난네와 같은 반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나의 옛 유모는 두 가장이 주고받은 대화가 희망과 두려움, 그러니까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희망과 앞으로 닥쳐올 일에 대한 두려움 사이를 오갔다고 말해주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코트 위에 그 유명한 노란별을 단 채 표시된 구역 근처를 배회해야 했다. 내가 겨우 세 살인가 네 살 때 우리 부모님과 안네와 마르고 자매와 함께 미용사를 찾아가던 일과 안네가 우리 동네의 몬테소리 학교에 다녔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p.23 안네 프랑크 재단 직원 두 명이 정말 궁금해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안네와 마르고가 사망했을 당시의 수용소 사정은 어땠죠?” 그 사람들이 그런 내용을 물으리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그 질문은 뜻밖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물론 그 시기에 대해 재미있는 일화들을 꺼내 놓을 수도 있었다. 그 여직원들의 말에 의하면 안네와 마르고의 마지막 몇 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줄 만큼 젊은 노인이 별로 없다고 했다. 따라서 그들의 문서 자료에는 공백이 있었다. 더욱이 내 기억에도 역시 상징적이기도 하거니와 말 그대로의 블랙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내 과거의 오물 구덩이를 폭로해야만 하는 걸까? 그런 의문을 품은 다음에는 급격히 말이 없어지거나 심장이 두근거리고 대개는 목에 뭐가 걸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절대 믿을 수조차 없는 사건들이 벌어졌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여직원들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용기를 내려고 했지만 선뜻 엄두가 나질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어느 누구도 그 일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았기에 누군가, 예를 들면 어떤 증인이 나서서 보완 설명을 해줘야 할 때였다. 어쨌든 나는 그 시기에 대해서라면 내 평생을 망치고도 남을 만큼 잘 기억하고 있다. 물론 여직원들도 정황을 막연하게 알고는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묻지도 않았을 테니까. 나는 그들에게 경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그다지 유쾌한 내용은 아니랍니다. 혹시 중간에 말이 막히더라도 이해해주세요.” ---p.29 “눈 좀 떠 봐라.” 초조하게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학교 복도의 얼음장 같은 화강암 바닥에 누워 끔찍한 두려움을 느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역사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에게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고 있었다. 절멸이라든가 살해, 가스 처형 같은 말을 듣는 순간 그대로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상상 속에서 몇 년만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의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두려움 때문에 심장이 세차게 고동치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현기증을 느끼다가 기절했다. 그래서 복도의 차가운 바닥에 눕혀졌던 것이다. 교장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에게 혹시 의사를 불러야 할지 묻는 말이 들렸다. 선생님은 나를 최대한 빨리 집으로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는 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테니까. 그 사이에 역사 수업은 끝났다. 선생님이 적나라한 정보까지 줘가며 가르치려던 것을 내가 직접 경험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걸까? 전쟁 동안에 그 사람들은 대체 어디 있었단 말인가? 나와 고아원의 다른 아이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정말로 모른단 말인가? ---p.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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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안네 프랑크와 함께 살았던 유대인 소녀 베르테가 밝히는 충격의 증언들 “살아남는 게 내 삶의 유일한 목표였다.” 시체 더미에서 살아남은 소녀의 충격적인 고백 전쟁, 재해, 테러, 홍수 등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을 떠올리고 기록하는 일에 몰려든다. 그러기도 잠시, 모두들 그곳을 털고 일어나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쉽게 털고 일어날 수가 없다. 오히려 남은 자리에서 빙글빙글 제자리를 돌며 떠난 사람들의 몫까지 기억을 떠올리고 또 떠올리게 된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 듯, 컴퍼스의 중심점이 한 지점에 꽂히듯, 그날 그 자리에 자신의 중심이 콕 찍혀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폭력과 상처가 가진 비극성이다. “대개는 반쪽 고아 또는 완벽한 고아가 되었거나 전쟁 피해자가 된 어린 생존자들에게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가? 전쟁의 상처로 자식에게 평범한 어린 시절은커녕 제대로 키울 능력도 없게 된 부모를 둔 아이들에게 종전 후 어떤 일이 닥쳤을지 궁금해 한 사람이 있기는 했을까? 이따금 안네 프랑크가 생각난다. 안네가 나처럼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 p. 9 책 『굿바이, 안네』(이덴슬리벨)에서는 집단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저자가 전쟁의 상흔을 가진 채 살아온 이야기를 담았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전의 책들이 그 사건에 집중한 데 반해 이 책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 피해자들이 어떤 심정으로 살아가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홀로코스트는 인류가 생긴 이래 최고로 잔인한 만행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20세기 중반부터 수많은 이야기의 주제가 되었다. 이 책 역시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소녀의 회상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형식적으로도 이 책은 소설과 회고록의 경계를 넘나든다. 어린 시절의 따뜻했던 추억과 강제수용소에서의 암울했던 기억, 고아원에서의 생활, 십대가 되어서 겪은 정체성의 혼란 등 전쟁이 끝난 이후 자신의 삶에 대해 담담히 적어 내려간다. 만약 안네 프랑크가 끝까지 살아남았다면 일기의 내용은 회의적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베르겐 벨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소녀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집단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생존자들 중 하나인 이 아이는 살아남는 기적을 경험하지만 홀로 외롭게 살아가야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집단수용소 신드롬’으로 불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해 소녀는 어릴 적 기억을 잃었고 수용소를 떠올리는 이미지만 보아도 혼절을 했다. 살아남은 소녀는 이제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고 60년이 지난 지금에야 사람들에게 묻는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저자는 스스로 이 책을 『안네의 일기』 속편이라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남긴 고통의 상징이랄 수 있는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미완의 작품이기에 지금까지도 물론 속편은 없다. 저자는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공동체 구역에서 안네 프랑크와 함께 자라났고, 베르겐 벨젠에서의 암흑 같은 시간도 함께 보냈다. 따라서 그 후 30년 가까이 전문적인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그녀야말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살아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물론 역사에서 가정법은 의미가 없지만 이 책은 안네가 살아남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상상하며 읽으면 더욱 다양한 의미로 다가갈 것이다. 전쟁이 불러온 폭력과 억압, 광적인 인종차별주의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전쟁 후의 삶까지도 품으려는 의도로 쓰인 이 책 『굿바이, 안네』을 통해 저자 내면의 혼란을 그대로 기술하며 전쟁의 잔혹성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아픔을 지우기 위해선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소중한 이들과 인류 동포들이 우리가 겉으로는 씩씩하게 보일지라도 전쟁에서 결코 승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해해주길 바라서이다. 심지어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말이다.” - p. 12 매주 수요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기 위한 모임이 개최된다. 할머니들에겐 그 자리에 서있는 것조차 상처일 텐데 대체 무엇이 고된 몸을 이끌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곳을 찾게 하는 것일까? 이 책에서는 전쟁의 상처에는 유효기간이 없다고 말한다.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넘었고 사과와 보상, 추모의 분위기가 조성되어도 저자 베르테 메이에르는 용서와 화해는 없으며, 적어도 피해자들에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슬픔이 그들 내면에 가득한 것이다. 저자는 이를 세상에 알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삶의 이해를 넓혀주고자 난생처음으로 전쟁 이후에 살아오며 겪은 힘겨운 투쟁에 얽힌 이야기를 남김없이 털어놓는다. 전쟁 후 60년이 지나서야 마침내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이야기할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이 죽는 날까지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 말한다. 아픔을 지우기 위해서는 60년도 짧은 시간인 것이다. 그녀의 이러한 고백은 집단학살의 공포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에게 지혜와 통찰력 그리고 위안을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