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망각기계 FORGETTING MACHINES
노순택 사진집
노순택
청어람미디어 2012.05.03.
베스트
사진 top100 12주
가격
40,000
5 38,000
YES포인트?
400원 (1%)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상세 이미지

책소개

목차

망각기계Forgetting Machines -노순택
망각기계로 죽다, 망각기계로 살다 -김현호
We, Forgetting Machines -Kim Hyunho
나는 살아있는 너, 너 또한 죽은 나 -다나베 아츠미ㆍ노순택

저자 소개 1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대학원에서 사진학을 공부했다. 세상 돌아가는 온갖 문제에 관심을 품어왔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전쟁과 분단이 낳은 부조리한 사회적 풍경에 주목해왔다. 2004년 <분단의 향기>를 시작으로 <얄읏한 공>(2006)·<붉은틀>(2007)·<비상국가>(2008)·<좋은살인>(2010)·<망각기계>(2012)·<시켜서 춘 춤>(2016)·<핏빛파란>(2018)·<검은깃털>(2022) 등의 국내외 개인전을 열었고, 같은 이름의 사진집을 펴냈다. 동강사진상(2012)·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2014)·구본주예술상(2016)을 받았다. 도시를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대학원에서 사진학을 공부했다. 세상 돌아가는 온갖 문제에 관심을 품어왔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전쟁과 분단이 낳은 부조리한 사회적 풍경에 주목해왔다. 2004년 <분단의 향기>를 시작으로 <얄읏한 공>(2006)·<붉은틀>(2007)·<비상국가>(2008)·<좋은살인>(2010)·<망각기계>(2012)·<시켜서 춘 춤>(2016)·<핏빛파란>(2018)·<검은깃털>(2022) 등의 국내외 개인전을 열었고, 같은 이름의 사진집을 펴냈다. 동강사진상(2012)·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2014)·구본주예술상(2016)을 받았다.
도시를 떠나 섬으로 이주한 뒤, 바닷가로 쓸려 온 잔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노순택의 다른 상품

관련 분류

카테고리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5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225*280*20mm
ISBN13
9788997162222

책 속으로

안전한 곳의 우리는 사진 속 피사체가 겪는 참혹한 일들이 우리의 삶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도무지 상상하지 못한다. 사실 그들의 현실에서 우리를 도망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값싼 눈물과 분노다. 우리는 참혹한 현실에 화를 내고, 그들의 삶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린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말로 우리는 우리의 양심을 위무하고, 현실에서 등을 돌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광주가 재현되는 방식 역시 대개 그런 식이었다. 대부분의 사진과 영화, 소설에서 잔혹한 계엄군과 인간미 넘치는 시민군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우리가 보기 원하는 광주의 기억은 과잉 재현되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은폐되었다. 우리는 죽어가는 순박한 시민군과 착한 유가족을 위해 눈물을 흘렸고, 먹먹한 마음을 안고 영화관 밖으로 나와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사실 우리의 분노와 눈물은 광주의 역사를 대면하는 공포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광주의 학살과 그 해부학적 참상에 깊숙하게 들어가는 대신, ‘적당히 참아낼 수 있는 정도’의 기억을 선택한다. 즉 이것들은 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로 만든다든가, 광주에서 죽은 ‘영령’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가 가능했다는 식으로 ‘봉합’하는 것들이다. 광주를 그렇게 규정한 후에 우리는 일상으로 도망갈 수 있는 것이다.---p.195

그의 이러한 질문들로 인해 우리는 사진을 통해 과거를 서술하고 역사를 기록한다는 식의 통념에 대해 다시 사유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것은 지금도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근대 다큐멘터리 사진의 신화에 대해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 성찰은 필연적으로 윤리적 물음을 내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예술의 재현은 가능한가?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은 옳은가? 사진은 과연 기억을 위한 기계인가? 망각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철 지난 질문을 던지면서도 미적 긴장감을 놓지 않는 사진가는 한국에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따라서 노순택이 도달한 곳은 한국 사진의 어떤 최대치 중 하나다. 하지만 물론 이것은 사진 속 망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문제다. 서늘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망자들은 사진의 운명과는 관계없이 아마도 영원히 평안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죽음이 일어났던 공간은 기념물이 될 것이고, 살아있는 자들은 망자를 등에 업고 자신의 목청을 높일 것이다. 졸지에 민주화의 영령이 되어버린 망자들은 과연 이런 일들을 즐거워하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정녕 지옥의 풍경이 아니겠는가.---p.199

모르겠습니다. 제가 광주작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실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오월의 죽음을 영웅적이고, 사회적이며, 역사적인 맥락의 죽음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나의 죽음이건, 남의 죽음이건, 죽음은 결국 우리 모두를 엄습하고야 마는 잿빛 내일이 아닐까요. 죽음 앞에서 우리는 이토록 초라한데, 학살자들마저 죽음 앞에선 무기력한데, 우리는 왜 이러고 있는가, 이런 자괴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죽음 앞에 모두가 무기력하다는 사실이, 타인의 죽음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핑계가 될 수는 없겠지요. 슬라보예 지젝이 이런 말을 했더군요. “아무도 피할 수 없는, 빠르건 느리건 결국 우리에게 도달하는 유일한 편지, 우리들 각자를 결코 틀릴 수 없는 수신인으로 발송되는 편지, 그것은 죽음이다. 우리는 이 편지가 우리를 찾아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한에서만, 산다고 말할 수 있다.” 아직 그 편지를 받지 않은 자들의 의무 같은 것이, 그 편지를 먼저 받은 사람들, 어쩌면 내가 받아야 할 편지를 대신 받은 건지도 모르는 이들에 대한 기억과 사고가 아닐까 싶습니다.---p.215

하지만, 그런 어설픈 알리바이가 나중의 작업, 예컨대 책을 출판하거나 이른바 ‘화이트 큐브’에 전시하는 일에 ‘선의’를 부여하는 건 아닐 겁니다. 저는 사진에 선의가 있는가 없는가를 판가름할 잣대는 없다고 봅니다. 사진은 결국 맥락에 의존하는 텍스트일 뿐이고, 어느 맥락에 사진을 놓을 것인가, 어느 맥락으로 사진을 읽을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 것이지요. 사진은 결코 착한 매체가 아닙니다. 어떤 ‘선의’도 쉽게 ‘악의’로 변질시킬 수 있고, ‘악의’마저 ‘선의’로 포장할 수 있는 교묘한 매체이지요. 하지만 그 선악의 판단 기준은 사진 그 자체가 아니라, 사진이 놓인 맥락일 수밖에 없습니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사진가는 카메라 뒤에 숨은 채 비겁하게 셔터를 누르고, 사악하게 조형성을 추구합니다. 이 ‘비겁하고’, ‘사악한’ 과정은 대단한 윤리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진이 생산되는 지극히 기계적인 과정일 뿐입니다. 사진을 찍지 않는다면 모를까, 찍기로 판단했다면 그 물리적이고 조형적인 과정을 피할 수 없지요. 중요한 지점은 생산된 사진이 어떻게 사용되는가의 문제인데, 안타깝게도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최초의 맥락 이후 사진은 부유합니다. 선의의 맥락에 놓였던 사진도 그와 무관한 맥락에 놓일 수 있고, 심지어 악의를 위해 봉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사진의 함정이라 부를 수도 있고, 반대로 가능성이라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사진 자체에 선의를 판가름할 잣대가 내재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야말로, 타인의 고통을 담는 사진의 생산과 사용에 관한 중단 없는 사고의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p.217-218

출판사 리뷰

대체 이 사진집은 무엇인가

이 책은 80년 5월 광주의 기록사진집이 아니다. 광주에서 죽은 이들과 그 유족들의 남겨진 삶을 보여주는 서글픈 사진을 담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우리 사회가 ‘민주화 유공자’를 푸대접한다고 고발하거나, 가해자의 기세등등함을 보여주며 그들을 다시 법정에 세우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르포르타주도 아니다. 이 사진집에 담겨 있는 것은 망월동 구묘역에 놓여 있는 낡은 영정사진들과, 거리에 나와서 팻말을 들고 악을 쓰는 사람들, 묘비에 참배하는 정치인들과 풀밭에 놓여 있는 꽃, 손으로 깎아 만든 돌부처와 오래된 건물의 내부 같은 것들이다. 이를 담은 사진들은 하나같이 괴이하다. 사람들은 괴로워 보이고 어딘가 뒤틀려 보인다.

노순택은 지금 여기, 우리 사회에서 80년 5월 광주의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는 망월동 구묘역에 놓여 있는 영정사진들이 비바람에 바스러지고 ‘늙어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 추모 행사에 몰려드는 정치인들과 묘비를 붙잡고 울음을 터트리는 유족들, 그들을 집요하게 찍는 사진기자들, 어느새 그날의 죽음이 ‘민주화를 위한 거룩한 희생’으로 대접받고 있는 모습을 냉정하고 건조한 카메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광주의 기억은 실로 다양한 용도로 우리 사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광주의 기억은, 이것으로 정말 충분한 것일까

과거란 참으로 먹먹하고 거대한 시공간이어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한국의 과거를 영광스럽게만 재구성한다면, 도저히 재현될 수 없는 역사의 순간들이 있다. 예를 들면 80년 5월, 광주라는 특정한 시공간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그러하다. 한국의 현대사를 ‘선진국을 향하는 위대한 도정’ 같은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광주에서 벌어졌던 일을 도대체 속 시원히 설명할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진국이 되기 위해 사람을 죽일 필요까지는 없고,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선진국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광주에서 벌어진 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민주화를 위한 항쟁이었는가, 아니면 북한의 사주를 받은 일부 공산주의자들에게 촉발된 우발적인 폭동이었는가. 혹은 국가가 국민에게 가한 부당하고 일방적인 학살이었는가, 아니면 단지 ‘불미스러운 사고’였는가. 광주는 권력이 바뀔 때마다 다르게 기억되었고 ‘공식 기억’이 되지 못한 기억들은 망각될 것을 강요받았다. 결국 기억한다는 것은 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은 광주에 대한 기억의 싸움은 ‘공식적으로’ 끝난 것처럼 보인다.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가 되었고, 정치인들은 매년 망월동에서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것인가. 죽임을 당한 이들에게 ‘민주화의 투사’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으로 광주는 과연 종결될 수 있는 것인가. 사실 우리가 광주를 기억한다고 말하는 행위는, 광주에서 벌어졌던 죽음의 참혹함을 산 자를 위한 기념비로 바꾸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과연 광주의 기억은 이것으로 충분한가. 죽음은 충분히 위로받은 것인가. 아마도 노순택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사진의 구조를 탐색하는 나직하고 무거운 질문들

노순택의 사진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순수 사진’의 계보에 속하지도 않고, 다큐멘터리 사진의 분류에 거하지도 않는다. 일반적인 의미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이 사진의 유족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아물지 않은 슬픔을 찍으려 했을 것이다. 아니면 하다못해 묘역의 관리 상태를 고발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희생당한 이들을 국가와 사회가 과연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이런 사진들이 던지는 질문은 매우 정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은 오히려 탈정치적이다. 질문들의 답이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답이 정해져 있는 어떤 질문도 예술이 아니다.

하지만 노순택의 사진들은, 단순하고 건조하게 광주의 기억이 만들어내는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사진은 강력한 기억의 수단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망각의 기계다. 이 사진들은 우리로 하여금 사진을 통해 과거를 서술하고 역사를 기록한다는 식의 통념에 대해 다시 사유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지금도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근대 다큐멘터리 사진의 신화에 대해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것을 포함한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예술의 재현은 가능한가?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은 옳은가? 이런 꽉 막힌 질문을 던지면서도 미적 긴장감을 놓지 않는 작가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국 사진사에는 아직 없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노순택이 개인적으로 이루어낼 성취는, 곧 한국 사진이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성취이기도 하다.

리뷰/한줄평1

리뷰

8.0 리뷰 총점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