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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 일본조선침략
박해순
나녹 2019.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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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4
일러두기 9
침략일지 13
서론 18

제1부 1894년 6월, 조선 무력침략
1장 염탐·첩보
1. 조선 염탐 : 뱃길, 도로, 쌀 창고, 병력 상황 43
2. 첩보 속의 침략 경로 : 7시간 안에 경성 공략 지도 작성 49
2장 참모본부,혼성여단편성
1. 혼성여단, 1894년 5월31일 출병 확정 57
2. 참모본부 첩보원, 밀명으로 움직이다 60
3. 혼성여단 파병과 배치 계획 63
4. 일본, 대원군을 떠보다 67
5. 출병의 핑계와 청국 군대의 축출 70
3장 ‘특전사’육전대,무력침략의선봉
1. 조선출병, 치밀하게 준비하다 75
2. 오토리 게이스케, 무력 침략의 거간꾼 79
3. 육전대, 경성을 장악하다 84
4. 일본정부, 언론에 재갈을 물리다 93
4장 혼성여단,침략준비완료
1. 대본영, 일본 황궁 안에 차린 전쟁 실행 기구 98
2. 일본정부, 해상수송을 위한 민간의 선박 차출 100
3. 즉각 파병 가능한 제5사단 편성 105
4. 제5사단 편성의 실체 107
5장 혼성여단선발대에무너진조선
1. 혼성여단 선발대, 남산 무력 장악 124
2. 혼성여단, 경성 무력 점령 134
6장 혼성여단,거듭되는침략
1. 혼성여단 제11연대 경성과 인천에 군 진지 확보 141
2. 일본 군사외교관, 강대국과의 분란 최소화 147
3. 혼성여단 제21연대 속속 들어오다 150
4. 인천상륙 뒤 군대 재배치 155
5. 통신과 급보를 위한 전신선 가설 159

제2부 1894년 7월, 조선을 장악하다
1장 일본,무력으로국정장악
1. 일본의 조선 지배를 위한 위장된 개혁 167
2. 일본에 야합한 조선인 179
2장 조선왕궁점령계획
1. 조선왕궁 점령 계획 보류 182
2. 교활한 조선공사 오토리 게이스케 189
3장 조선왕생포작전
1. 계획된 조선왕궁 침입 205
2. 1894년 7월23일, 조선왕궁 점령 215
3. 황량한 조선왕궁, 인적 끊긴 거리 234
4. 텅 빈 고종의 밥상 235
5. 일본 참모본부의 특명, “조선에서 해결하라, 모든 것을……” 238

제3부 조선 침략의 선봉에 선 두 인물
1장 동아시아침략구상:가와카미소로쿠
1. 기밀을 끝까지 사수하라 249
2. 가와카미 소로쿠, 일본군의 역사를 바꾸다 254
3. 가와카미 소로쿠의 은밀한 첩보활동 256
4. 민간인을 위장한 첩보요원 258
5. 1894년 일본군의 편제 현황 261
2장 자나깨나조선지배:오카모토류노스케
1. 조선의 저승사자 270
2. 일류군인에서 대륙의 낭인까지 277

제4부 조선 침략의 구실
1장 신의선물,동학농민전쟁
1. ‘동학당의 난’ 287
2. 헛발질한 조선과 청국 291
2장 김옥균과박영효
1. 김옥균의 죽음, 철저히 활용하다 297
2. 박영효의 두 얼굴 309

제5부 일본의 오랜 꿈, 조선 침략
1장 씨앗을뿌린자
1. 사토 노부히로, 제국을 꿈꾸다 318
2. 요시다 쇼인, 조선 침략의 정신적 지주 323
2장 뿌리를뻗은자
1. 사다 하쿠보, 정한론 330
2. 후쿠자와 유키치, 전쟁 선동 335
3. 오카쿠라 텐신, 조선은 일본 땅 339

주 343
그림출처 358
참고문헌 363
찾아보기 365

저자 소개 1

한일관계연구가, 전문번역가. 단국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졸업. 동대학원 수료. 우리문화연구소와 공주민속극박물관 학예연구원, 공주아시아1인극제 실행위원, 군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을 지냈다. 주요 번역서로는 『성과 미디어』(동문선, 1996), 『뇌내혁명2』(사람과 책, 1996), 『춤추는 무당과 춤안추는 무당』(한울, 2000), 『공자의 식탁』(2002, 뿌리와이파리), 『일본군 위안부 문제』(동문선, 2008), 『군대와 성폭력』(선인, 2012), 『근대 동아시아 속의 류큐병합』(2019 근간) 등 다수의 책이 있다. 이 책은 일제가 왜곡, 은폐한 조선무력침략기록에 대한 추적이고
한일관계연구가, 전문번역가. 단국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졸업. 동대학원 수료. 우리문화연구소와 공주민속극박물관 학예연구원, 공주아시아1인극제 실행위원, 군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을 지냈다. 주요 번역서로는 『성과 미디어』(동문선, 1996), 『뇌내혁명2』(사람과 책, 1996), 『춤추는 무당과 춤안추는 무당』(한울, 2000), 『공자의 식탁』(2002, 뿌리와이파리), 『일본군 위안부 문제』(동문선, 2008), 『군대와 성폭력』(선인, 2012), 『근대 동아시아 속의 류큐병합』(2019 근간) 등 다수의 책이 있다. 이 책은 일제가 왜곡, 은폐한 조선무력침략기록에 대한 추적이고 고발이다. 왜곡된 역사를 밝히는 일은 지금이 때라고 생각한다. 은폐된 역사 기록을 추적하는 일을 이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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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64쪽 | 148*210*30mm
ISBN13
9788994940830

출판사 리뷰

이 책은 1894년 6월 조선이 일본에 무력 점령을 당한 증거다. 이때의 무력침략은 일본군에 의한 동학농민군의 철저하고 무자비한 토벌과 몰살, 1895년 우리에게 을미사변으로 포장, 왜곡되어 알려진 ‘조선왕비살륙’으로 이어졌고, 러일전쟁 직후의 을사늑약까지 예고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 침략을 극비에 붙이고 은밀히 감춰놓은 채 역사의 진실을 추궁할 때마다 은폐, 왜곡하면서도 자기들끼리는 자랑스런 침략사로 기록해 둔 ‘일본의 조선침략 기록’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일본의 역사진실 감추기

일본은 1894년 6월 ‘조선 무력침략’을 철저히 금기의 영역으로 묶어버렸다.

조선왕실을 겁박해 무력으로 침묵을 강요했다. 일본국민에게는 추한 것은 감추고, 행위 당사자들은 은밀하게 자랑하며 즐겼다. 조선 침략의 첫걸음부터 진실을 삭제하고, 왜곡했다. 조선의 역사 한 부분이 기록에서 사라졌다. 일본은 침략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기들에게 어울리는 기록은 살을 덧붙여 미화하고, 부끄러운 행위는 감추는 일에 진력했다.

이 책은 역사기록 편찬 작업 단계부터 사실의 진상을 서술한 다음 기밀에 해당하는 사항은 삭제하고 수정해 공식 간행물로 기탄없이 사실의 진상을 적어 연구 자료로 활용하게 했던 그들이 남긴 비밀전쟁 기록을 찾아 정리했다.
일본 육군성 참모본부 관계문서 「메이지35년(1902) 5월 기(起) 부장회의 제1호 비(秘)」에 수록된 ‘일청전사 제1, 제2편 진달(進達)에 관해 부장회의에서 한 마디 하다’는 일본의 역사 진실 감추기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1, 기성의 제1종 초안은 기탄없이 사실의 진상을 그대로 적어 육군용 병가(兵家)의 연구자료로 제공한다. 2, 한성(漢城, 서울)을 포위해 조선정부를 힘으로 협박한 전말을 상세하게 서술하는 것이 불후의 통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개전 전에 있었던 내부의 이견을 서술하게 되면 사람들로 하여금 원수(元首, 천황)의 문무를 통일하는 대권을 의심하게 만든다. 특히 선전조칙에 모순될 염려가 있다.”

1904년 2월 ‘일러전사편찬강령’〔참모본부, 「日露戰史編纂綱領」(明治39年) 방위연구소도서관 소장〕을 정해 편찬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 강령의 6항에 해당하는 다음 내용은 역사기록에서 기밀에 해당하는 사항이 삭제되고 사건이 은폐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6. 편찬사업을 2기로 나누어 제1기에는 사고(史稿)를 편찬하고, 제2기에는 전사(戰史)를 수정한다. 사고는 전사의 초안이 된다. 정확하게 사실의 진상을 서술하여 전사의 체제를 갖추도록 하고……기밀사항을 삭제함으로써 본래의 전사를 수정하여 이를 공식 간행하는 것으로 한다.”

일본의 조선침략과 관련된 기록을 좇아가다 보면 조선의 자주권도 그들의 무력침략의 전말도 사실에 근거해 정확히 밝히지 않은 가운데 서술된 기록을 거듭 만나게 된다. 기록과 소문, 사실과 일설의 경계가 모호해져 하나의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여러 기록을 교차해서 보지 않으면 실체에 접근하지 못할 때가 많다. 국가 간에 오간 공식 외교문서, 일본의 육군성·해군성과 참모본부의 보고서, 훈령서, 해당 당사자가 남긴 기록, 연구자의 기록을 한 광주리에 넣어 퍼즐을 맞추다 보면 실체가 본모습을 드러낼 때도 있다. 이 책을 쓰며 ‘사실의 진상을 바로 써 병가의 연구자료로 제공되고 있는’ 제1종 사료를 비롯해 그들이 당시 남겨놓은 기록에서 의문을 풀 단초를 찾을 수 있었다.

「쓰쿠바함의 조선국 첩보 보고서」(1894년)

1893년 12월 일본이 조선의 정보와 첩보 수집을 위해 연습함 쓰쿠바와 경비함 오시마를 조선 인천항으로 파견했다. 이때 조선에 파견되어 이듬해인 1894년 3월말까지 첩보활동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 이 보고서다. 쓰쿠바함의 해군대원들이 조사한 조선국에 관한 군사정찰 보고, 첩보활동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이 때 작성된 첩보 내용 중 「인천·경성 간 도로시찰 보고」는 인천에서 경성에 이르는 육로와 수로의 상황, 빠른 길, 남대문을 넘어 한양도성으로 들어가는 방법까지 얼마나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는지를 살폈다. 7시간이면 경성 공략이 가능한 지도가 작성되어 그해 6월 일본의 조선 무력침략에 적극 활용되었다.

『일청전사강의적요록(日??史講義摘要?)』

다니 히사오(谷壽夫, 1882~1947)가 육군대학교에서 1924년 제3학년 전공과목 강의교재로 사용한 『일청전사강의적요록』은 일본의 전사편찬 제4기에 해당하는 1915년 이후 비밀전사(秘密戰史) 편찬에 중점을 두었던 시기에 쓰였다.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에서는 이 자료를 후일의 군사전략 연구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일본방위연구소 전사부 제2전사 연구실장인 쓰카모토 다카히코(塚本隆彦)는 참모본부 제4부가 육군대학교 전사교관(戰史敎官)인 다니 히사오의 강의적요록 제1권을 기초로, 「일러전쟁에서 우리 제국의 개전 준비 진상」을 편집했다고 쓰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기초로 활용한 자료가 『일청전사강의적요록』이다. 원제목은 「청일전쟁에서 우리 제국의 개전 준비 실정(實情)」이다. 참모본부에서 중요 기밀자료로 특별 관리하며 오랫동안 공개하지 않은 자료다. 본서는 특별하게 관리하여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웠던 이 자료를 찾아내 그를 토대로 집필했다.

일본의 조선무력 점령

6월5일 대본영이 설치되기 이전 5월31일에 혼성여단의 출병이 확정되었다. 1894년 일본이 얼마나 철저하게 조선침탈을 준비했는지 일본의 문헌기록 그대로를 따라갔다.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에 있는 육군성의 청일전쟁 자료 가운데에는 「명령훈령, 1894년 6월~1895년 6월」의 6월1일자 ‘육해군에 명령하달’이라는 훈령은 발 빠르게 전쟁으로 향해가는 일본의 첫걸음이 일찍 시작되었음을 말해준다. 6월2일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 외무차관 하야시 타다스, 참모차장 가와카미 소로쿠는 외상의 관저에서 조선파병에 관한 군사적, 외교적 책략을 협의했다. 이때 “일본 필승을 위해 병력 6천~7천의 1개 사단을 보낼 계획을 변경해서 먼저 혼성여단을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본서에서는 세 사람이 남긴 기록을 서로 교차하여 살피고 있다.

일본이 대본영을 설치하고 혼성여단을 파병하기 전에 조선국 특명전권공사 오토리 게이스케를 특파하여 육전대와 함께 경성을 장악하기까지의 전말, 육전대의 실체, 연합해군 육전대의 편제 등 그들의 기록을 통해 이 육전대 자체가 불법한 조선침략임을 밝혔다.
『혼성제9여단 제5사단 보고』 ‘혼성여단 참모보고 제1호’, 『이치노헤 장군(一??軍)』, 『일청전쟁 사진첩(日?????帖)』을 토대로 삼아, 기선 제압을 위한 혼성여단 선발대의 출발, 함께 파견된 군사외교 장교의 활동에 대해 다루었다. 우에하라 유사쿠, 후쿠시마 야스마사, 아오키 노부즈미 등 군사외교 장교들의 임무는 외국주재 공사관과 협의를 통해 분란을 최소화하는데 있었다.

일본이 남긴 기록에서 1894년 6월29일 경성과 인천 사이의 병력 배치도를 찾아내 무력점거 상태임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 그리고 일본공사관 서기관 스기무라 후카시가 남긴 『메이지 이십칠팔년 재한고심록』,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가 회고록 형식으로 쓴 외교기록 『건건록』, 『유취전기 대일본사(類聚?記大日本史)』 등 일본이 남긴 기록을 통해 일본의 무력 점령 아래 가해졌던 조선정부에 대한 내정 압박, 조선왕궁 점령의 실체를 밝히고 확인하는데 집중했다. 7월23일 조선왕궁 점령은 철저히 계획, 실행, 은폐된 것이었음을 당시 상황에 대해 기록해놓은 자료를 통해 그들의 속살을 파헤치고 있다.

조선 침략의 선봉에 선 인물

조선침략의 중추기관인 일본 참모본부의 역할과 참모차장 가와카미 소로쿠(川上操六, 1848~1899) 휘하의 1894년 무렵 참모본부 내의 첩보활동에 대해 다루었다. 당대 최고의 인재로 구성된 참모본부는 최고 정예요원을 정보장교로 선발해 유럽을 비롯해 러시아, 중국, 조선, 기타 외국으로 파견해 첩보를 수집했다. 세계 각지로 파견된 정보장교의 정보력을 바탕으로 당시부터 청나라와 전쟁한다면 승리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은밀하게 첩보요원들이 곳곳에서 활약했음을 엿보게 해준다.

한편 지은이는 이 책에서 학계에 알려져 있지 않은 『오카모토 류노스케 논책(岡本柳之助 論策)』을 소개하고 ‘사설 공사(私設公使)’로 표현될 만큼 집요하게 조선을 보호국화하는데 온힘을 쏟았던 오카모토 류노스케(岡本柳之助, 1852~1912)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부록에 실린 「오카모토 류노스케 소전」을 읽으면서, 그가 강화도조약 때부터 지속적으로 동양정책과 조선에 대한 정책을 쏟아낸 인물이며, 얼마나 조선 침략에 심혈을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활약했는지를 보여주려 했다. 또 1894년 조선 무력침략과 1895년 을미사변을 주도한 주동자로 그의 드러나지 않은 이면에 주목했다. 일본의 조선 무력침략에 대한 연구에서 오카모토 류노스케는 빠져서는 안 되는 인물로 생각하며 더 깊은 연구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선 침략의 구실

이 책에서는 조선의 내란을 활용해 침략의 구실로 삼은 ‘동학난’과 김옥균의 죽음을 일본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했는지를 일본이 남긴 기록으로 여과 없이 적고 있다. 조선 무력침략의 핵심인물 중 한 명인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는 『건건록』에서 “일청 양국의 외교관계를 일변시켜 세계에서 일본을 동양의 우등국으로 인식하기에 이르게 된 것도 그 근본원인은 청한 양국 정부가 이 동학당의 반란에 대한 내치, 외교 루트를 잘못 찾은 데 있었다.”며 일본 외교역사의 제1장에 두어야 한다고 자랑하고 있다.

역사 속의 사건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긴 시간에 걸친 사소한 요인이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다. 사적, 공적, 개별과 집단, 불만과 침묵했던 행동이 서로 뒤엉켜 덩어리를 이루다 작은 불씨 하나가 기폭제가 되어 커다란 사건으로 번진다. 청국, 조선, 일본 삼국 간에 발생했던 별개의 가깝거나 먼 원인과 사건이 각기 다른 에너지를 갖고 수면의 위아래로 오르내리다 일본의 조선 침략 열망이 조선의 혼란을 틈타 무력 침탈로 강행되었다. 일본인들이 끊임없이 주장하는 것처럼 청일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외교분쟁이 된 김옥균의 죽음이나 동학농민전쟁 때문이 아니라 일본의 해외정벌, 조선 무력침략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여기에 일본에 협조하며 일신의 영달을 추구했던 부패한 조선의 관리가 기름을 더했다.

일본의 오랜 꿈, 조선침략

일본이 조선을 지배해야 한다는 인식이 얼마나 일찍부터 뿌리내려 넓고 깊게 확대되어 있었는지 살피기 위해 노골적으로 조선침략을 말한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가 남긴 기록을 따라갔다. 사토 노부히로(佐藤信淵, 1769~1850)의 『우내혼동비책』(1823년)은 ‘세계 정복을 꾀하는 비밀스러운 책략’이라는 의미의 책이다. “이 책은 일본인이 읽되 외국인에게 보여주어야 말아야 한다.”는 말이 전해주듯 일본의 우월성, 세계정복론, 아시아와 조선 침략방법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도자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 메이지유신 초기 외무성에서 일관되게 조선 침략을 주장했던 사다 하쿠보(佐田白茅, 1833~1907). 메이지 초기부터 집요하게 국가의 침략전쟁을 선동하고 후원했던 후쿠자와 유키치(福?諭吉, 1835~1901).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4년 미국에서 일본의 문화를 서양에 알리고 이해시킨다는 목적으로 쓴 『일본의 각성』에서 “우리의 적대국이 조선반도를 점령하게 되면 쉽게 일본으로 진격할 수 있다. 조선은 늘 날카로운 비수처럼 일본의 심장을 향해 뻗어있어서다.”고 했던, 근대 일본미술에 크게 영향을 미친 인물이 오카쿠라 텐신(岡倉天心, 1863~1913)을 추적했다.

위에 거론한 일본의 사상가일 뿐 아니라 메이지 시대를 전후한 일본인의 의식 속에, 조선은 일본의 영토를 보전해주고 불안을 제거해주는 든든한 울타리로 반드시 일본의 지배 아래 두어야 한다는 대조선인식이 얼마나 넓고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했다.

끝없이 되살아나는 정한론

일본은 메이지 초기, 아니 그 이전부터 꾸준히 조선을 공격하고 토벌해 일본의 지배 아래에 두어야 한다고 해 왔다. 정치적으로는 서구 열강의 압력과 내부의 혼란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상적으로는 조선에 대한 뿌리 깊은 멸시관이 존재해 조선과의 외교적 갈등 없이도 자연스럽게 정한론이 논의되었다.

1868년 일본은 왕정복고 세력에 의한 혁명의 성공으로 도쿠가와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 중심의 근대국가 메이지정권을 수립했다. 봉건체제를 해체하고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 발전이 미약했던 메이지정부는 유신 직후부터 조선 침략을 말하고 있었다. 일본 국내의 사회개혁을 위한 민중봉기의 위협과 정치적 현안에 대한 대처를 해외 침략정책으로 일관했다. 1872년부터 1879년에 걸쳐 이루어진 류큐[琉球]왕국의 병합, 그 사이에 일어난 1873년 정한론 정변, 1874년 대만출병, 1875년 강화도조약, 1894년 조선 무력침략과 청일전쟁, 1895년 조선의 왕비살륙, 1904년 러일전쟁 등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류큐왕국, 대만, 조선이 병합되었다. 뒤를 이어 일본은 동아시아의 제국을 구축해 여러 나라를 그들의 세력권 안에 넣는 전쟁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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