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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판 서문
서문 1 각양각색의 사물 혼종적 인공물 / 혼종적 텍스트 / 혼종적 실천 / 혼종적 인간 2 각양각색의 용어 모방과 전유 / 포용과 협상 / 혼합, 혼합주의, 혼종성 / 논쟁적인 개념들 / 문화 번역 / 크레올화 3 각양각색의 상황 평등과 불평등 / 전유의 전통 / 메트로폴리스와 경계 지역 / 문화로서의 계급 4 각양각색의 반응 외래 문화의 유행 / 저항 / 문화적 정화 / 문화적 분리 / 적응 / 순환성 / 번역가 5 각양각색의 결과 문화적 균질화 / 반-전지구화 / 문화적 양층언어 / 세계의 크레올화 해제: 문화 혼종성과 현실의 곤경 (이택광) 미주 찾아보기 |
Peter Bur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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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더 빈번해지고 강렬해지는 가지각색의 문화적 만남들로 특징지을 수 있는 우리 시대에, 문화 혼종성이란 주제에 대한 몰두는 자연스럽다. 문화적 전지구화의 결과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여전히 논쟁 중이다. 뒤에서 논의할 가능한 한 가지 시나리오는 문화적 균질화(cultural homogenization)이지만, 어떤 학자들은 이와 반대로 이질화(heterogenization)의 시나리오를 제안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이 (특히 장기적인 결과를 분석할 경우에) 갖는 장점이 무엇이든지 간에,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이 어떤 종류의 혼합체, 즉 경제적 전지구화에 의해 촉진되는 동시에 그 전지구화를 촉진하는 혼종화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브라질 축구는 국제 공식 규정을 준수하는 동시에 매우 독특한 브라질만의 경기 양식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혼종화에 대한 보다 가벼운 사례다. 1938년에 질베르투 프레이리는 다음과 같은 관찰기를 썼다. "브라질 물라토들은 축구에 곡선을 도입함으로써 그것을 탈-유럽화했다. […] 우리는 공과 함께 춤춘다." 1930년대의 탁월한 선수 도밍고스 다 기아는 인터뷰에서 "내가 발명한 짧은 드리블은 삼바의 한 종류인 미우징요를 모방한 것이다"라고 말하여 이러한 해석이 사실임을 보여줬다. 문화적 전지구화가 축구에도 영향을 미치고 브라질 선수들이 여러 유럽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늘날, 유럽인이 브라질 스타일을 모방하고 브라질인이 유럽인 코치의 지도를 받으면서, 이런 독특한 브라질 스타일 혹은 라틴 스타일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러하다면, 이 역시 또 다른 혼종화의 사례가 될 것이다. 코카콜라의 경우를 보면, 북미 브랜드와의 경쟁 속에서 페루의 잉카콜라와 같은 지역적 브랜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트리니다드 등지에서는 자주 콜라를 럼이나 브랜디와 같은 지역의 술과 섞어 마신다. 콜라는 새로운 기능을 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중국 사람들은 콜라를 데워서 약으로 마신다. 멕시코에 거주하는 인도인들에 관한 신문 보도에 따르면 그들은 펩시콜라를 자신들의 종교 의식에 통합했다고 한다. 외부의 사상이나 산물에 유독 포용적인 문화가 있는가 하면, 어떤 문화는 이상할 정도로 저항적인데, 이는 아프리카의 다음 두 사례가 잘 보여준다. (앞서 이야기한 치누아 아체베를 포함하여) 여러 저명한 아프리카인 소설가를 배출한 나이지리아의 이그보족은 브라질인과 일본인처럼 낯선 것에 대해 환영하는 태도로 유명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케냐 서부의 파코트족은 변화에 대한 저항과 자신들의 전통에 대한 애착으로 악명 높다.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어느 문화가 가장 파코트족과 유사한지 질문해보는 것은 유익한 일일 것이다. 소설의 경우, 밀란 쿤데라의 최근 인터뷰는 보다 폭넓은 어떤 경향을 제시한다(나는 브라질 신문에 번역되어 실린 이 인터뷰를 우연히 읽었다). 쿤데라는 1968년 이전까지 프라하에서 살며 체코 대중을 주요 독자로 여기며 체코어로 글을 썼다. 그가 인터뷰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그는 지금 파리에 살며 프랑스어로 글을 쓸 뿐만 아니라 전세계 대중을 주요 독자로 여기며 글을 쓴다. 내가 아는 한 아직까지는 자세히 혹은 깊게 분석된 적은 없지만, 지역 대중보다 전지구적 대중을 우선시할 경우 작품은 모든 면에서 중요한 변화를 겪는다. 쿤데라의 소설은 1968년 이후 분명히 바뀌었다. 예전보다 덜 사회적이고 더욱 형이상학적으로 변했으며 지역적 참조가 줄어든 반면에, 인간의 조건에 대한 고찰은 증가했다 나는 스웨덴 인류학자 울프 한네르와 다른 이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우리가 지금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 질서가 창발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고 제안하려 한다. 이는 전지구적 문화의 질서인 동시에, (지역유형 이론가인 칼 폰 쉬도브의 의견이 옳다면) 서로 다른 지역 환경에 적응함으로써 빠르게 다양화될 수도 있는 질서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혼종적 형태들이 반드시 균질적인 전지구적 문화의 형성을 위한 단계인 것은 아니다. […]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문화들에 대한 분석은, 새로운 질서의 탄생과 새로운 지역유형의 형성, 새로운 형태의 결정화, 문화의 재배치, '세계의 크레올화'를 예견하고 있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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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 질서가 창발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
피터 버크가 말하는 전지구화 시대를 정의하는 핵심 키워드, 문화 혼종성의 모든 것! 우리 시대는 갈수록 더 빈번해지고 강렬해지는 가지각색의 문화적 만남들로 특징지을 수 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과거 주한 미군과 서구 문화 수용을 둘러싼 논쟁에서부터 최근 국회위원이 된 이자스민과 미셸 카투이라 이주노조 위원장 입국 거부 사태를 둘러싼 설왕설래까지, 문화적 만남과 충돌은 지금 여기 한국에서도 오랜 기간 동안 첨예한 주제였던 것이다. 우리가 반대하든 찬성하든, 이제 전지구화 시대에 따른 문화 혼종화의 경향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영국의 저명한 문화사학자 피터 버크의 책 『문화 혼종성-뒤섞이고 유동하는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가이드』는 이 시대의 필수적인 키워드인 문화 혼종성이란 무엇인가를 다룬 입문서이다. 그는 폭넓고도 생생한 시선과 풍부한 역사적?이론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 매력적이고 논쟁적인 현상을 사례에서부터 과정, 실천, 이론, 결과에 이르기까지 깊이 있게 탐구한다. 그야말로 문화 혼종성을 둘러싼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혼종화에 대한 편협한 비판과 무턱댄 낙관을 넘어선 피터 버크의 논의는 다문화주의 논쟁이 뜨거운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의미 있는 시점을 제시한다. 혼종화의 영역: 문학에서 정치까지, 중세부터 현대까지 피터 버크는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종화의 다양한 현상들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밀란 쿤데라나 마르케스의 소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나 인도의 발리우드 영화 산업, 재즈?보사노바?플라맹코 락 등의 음악 장르 같은 사례에서부터 기독교와 토착 종교의 결합이나 서구 정치 제도에 대한 모방과 변형에 이르는 다양한 혼종적 양상을 살펴보는 것이다. 또한 그는 근현대의 사례에 그치지 않고, 혼종화의 역사적 기원까지 파고든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 국가 사이의, 혹은 중세나 르네상스 시기의 문화 전파와 교류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문화 혼종화가 근현대에 시작된 현상이라기보다는 오래 전부터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역사적 과정임을 밝힌다. 외래 문명에 대응하는 다양한 반응들 논의의 바탕을 이루는 한 축이 풍부한 사례라면 다른 한 축은 수용자들의 다양한 반응이다. 외래 문화의 도입은 다양한 반응을 불러왔다. 가장 극단적인 두 반응은 서양 문명에 대한 전적인 '수용'과 무조건적인 '배척'이다. 일본이 서구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전자의 사례라면, 한국의 쇄국 정책은 후자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다양한 대응들이 존재한다. 이미 정착한 외래 문화를 다시 뿌리 뽑으려 하는 '정화', 무차별적인 수용과 거부 모두 터무니없으며 필요한 부분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분리', 외래 문화의 필요한 부분을 전유하여 자신들에 문화에 맞게 변형시키는 '적응', 이러한 적응을 거친 것이 다시 원래 문화권으로 재수출되는 경우인 '순환' 등이 그것이다. 피터 버크는 '어떤 반응은 긍정적이고 어떤 반응은 부정적이다'라는 식의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 반응을 보여주는 사례와 결과들을 풍부하게 제시한다. 그리고 이렇게 '초연'한 거리를 두고 지켜봄으로써, 이러한 반응이 가져오는 효과를 더욱 명징하게 드러낸다. 혼종화의 세계를 맞이하며 또한 피터 버크는 페르낭 브로델, 아널드 토인비, 레비-스트로스, 호미 바바, 에드워드 사이드, 네스토르 칸클리니 등등의 다양한 사상가들의 혼종성에 대한 사유를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시각을 구성해나간다. 그는 기본적으로 문화 혼종화의 흐름을 막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전지구화가 문화의 '균질화'를 불러온다는 혼종화 비판자들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반박하고, 혼종화의 사례와 분석들이 "새로운 질서의 탄생과 새로운 지역유형의 형성, 새로운 형태의 결정화, 문화의 재배치, 세계의 크레올화를 예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문화주의라는 뜨거운 감자 한편 문화평론가 이택광의 해제는 피터 버크의 논의를 확장하여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되어가고 있는 '다문화주의' 논쟁을 되짚어본다. 그는 먼저 다문화주의를 옹호하는 찰스 테일러의 논의를 살펴본다. 그리고 슬라보이 지젝의 논의를 빌려 다문화주의가 오히려 세계화의 국면을 통해 발생하는 다양한 민족적 갈등을 보편성이라는 화합의 기표로 '억압'한다고 비판한다. 즉 다문화주의가 타자에 대한 '배제'를 '거리두기'로 바꾸는 전략에 지나지 않음에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의 대안인 것처럼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택광의 해제는 피터 버크의 논의와 한국적 상황을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이를 넘어서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다문화주의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는 비판적 시선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