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청년패스
평화의 첫걸음
마가 스님이 엮은 만해 한용운 선집
한용운마가
2019.03.02.
가격
7,900
7,900
YES포인트?
0원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변경
배송비?
유료 (도서 15,000원 이상 무료)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엮은이 머리글

Part 1만해의 시

사랑 · 알 수 없어요 · 꽃이 먼저 알아 · 님의 침묵 · 나의 길 · 하나가 되어 주셔요 · 차라리 · 진주 · 행복 · 당신은 · 잠 없는 꿈 · 슬픔의 삼매 · 착인錯認 · 사랑의 존재 · 생명 · 꿈과 근심 · 당신을 보았습니다 · 첫 키쓰 · 님의 얼굴 · 찬송讚頌 · 비밀 · 의심하지 마셔요 · 나룻배와 행인 · 당신이 아니더면 · 사랑의 측량 · 밤은 고요하고 · 포도주 · ‘?’ · 해당화 · 나의 노래 · 복종 · 어느 것이 참이냐 · 금강산 · 자유정조 · 예술가 · 이별은 미의 창조 · 고적한 밤 · 꿈 깨고서 · 길이 막혀 · 나는 잊고저 · 가지 마셔요 · 이별 · 비 · 참아 주셔요 · 정선사의 설법 · 정천한해情天恨海 · 그를 보내며 · 심은 버들 · 후회 · 거짓 이별 · 계월향에게 · 고대苦待 · 나의 꿈 · 비방 · 최초의 님 · 우는 때 · 눈물 · 꿈이라면 · 인과율 · 만족 · 달을 보며 · 떠날 때의 님의 얼굴 · 타고르의 시 ‘GARDENISTO’를 읽고 · 당신의 마음 · 여름 밤이 길어요 · 꽃싸움 · 사랑의 불 · 사랑하는 까닭 · 반비례 · 수繡의 비밀 · 거문고 탈 때 · 쾌락 · ‘사랑’을 사랑하여요 · 요술 · 명상 · 당신 가신 때 · 생의 예술 · 사랑의 끝판 · 두견새 · 참말인가요 · 잠꼬대 · 어데라도 · 오셔요 · 낙원은 가시덤불에서 · 당신의 편지

Part 2만해의 채근담

남을 속이지 말라
조용한 곳에 마음을 두라
스스로 깨우쳐라
어리석지 마라
남 앞에서 칭찬을 하지 마라
참된 용기란?
하늘은 복을 내릴 때 반드시 먼저 화를 주어 경계하게 한다
바쁜 가운데에서도 한가함을 잃지 말고 모자라는 곳에서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덕이 높은 사람은 지극히 평범한 도를 행한다
나쁜 행위를 공격할 때는 지나치게 엄하면 안 된다
깨끗한 것은 항상 더러운 곳에서 나오고 맑은 것은 언제나 어두운 곳에서 생긴다

Part 3조선 독립의 서序

개론
조선 독립선언의 동기
조선 독립선언의 이유
데라우치 조선 총독정책에 대하여
조선 독립의 자신

Part 4청년에게

조선 청년에게
용자勇子가 되라
조선 청년과 수양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우교友交
전문지식을 갖추자

Part 5부록

만해 한용운 연보
己未獨立宣言書
만해 정신에 대하여

저자 소개 2

韓龍雲, 만해, 한유천

승려·시인·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출신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 호적상이름이자 본명은 한정옥이다. 6세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9세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서경』 등을 통달하여 총명한 어린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풍습이 그러함에 따라 14세 향리에서 천안 전씨全氏 전정숙과 일찍 혼인하였으나, 집을 나가 떠돌고 출가하기를 반복했다. 가출하여서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고, 고향 홍성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불교서적을 탐독했다. 21세에 강원도 인제군 설악
승려·시인·독립운동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몰락한 양반 출신의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이며, 용운은 법명, 호적상이름이자 본명은 한정옥이다. 6세 향리의 사숙에서 한문을 배웠고, 9세 『서상기西廂記』를 독파하고, 『통감』『서경』 등을 통달하여 총명한 어린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풍습이 그러함에 따라 14세 향리에서 천안 전씨全氏 전정숙과 일찍 혼인하였으나, 집을 나가 떠돌고 출가하기를 반복했다. 가출하여서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고, 고향 홍성을 떠나 백담사 등을 전전하며 불교서적을 탐독했다. 21세에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백담사 등지를 전전하였고, 이때를 전후해서 세계여행을 계획하였다.

1894년 동학군에 가담하여 투쟁하다 실패했다. 1896년 설악산 오세암에 은거, 수년 간 불경을 공부하는 한편 근대적 교양서적을 읽어 서양의 근대사상을 접했다. 1904년(26세) 설악산 백담사에 들어가 불목하니 노릇을 하다가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27세 백담사에서 김연곡사金蓮谷師에게서 득도. 백담사에서 전영제사全泳濟師에 의하여 수계受戒. 백담사에서 이학암사李鶴庵師에게 『기신론』, 『능엄경』, 『원각경』 등을 수료. 29세 강원도 건봉사에서 수선안거(최초의 禪수업)를 성취하였다.

30세 강원도 유점사에서 서월화사徐月華師에게 『화엄경』을 수학하였고 4월, 일본의 시모노세키, 교토, 도쿄, 닛고 등지를 주유하며 신문물을 시찰하였다. 도쿄 조동종 대학에서 불교와 서양 철학을 청강하였으며, 10월, 건봉사 이학암사에서 『반야경』과 『화엄경』을 수료하였다. 31세에 강원도 표훈사 불교 강사에 취임하였고 1910년(32세) 『조선불교유신론』을 백담사에서 탈고, 1911년(33세) 박한·진진웅·김종래·장금봉 등과 순천 송광사, 동래 범어사에서 승려 궐기대회를 개최하고 한일불교동맹 조약 체결을 분쇄하였다. 1913년(35세) 불교강연회 총재에 취임하였고 『조선불교유신론』을 불교서관에서 발행하였다.

1914년(36세) 『불교대전』을 범어사에서 발행하고 1917년(39세) 『정선강의 채근담』을 신문관에서 발행하였고 항일 투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12월 3일 밤 10시쯤 오세암에서 좌선하던 중 바람에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의정돈석擬情頓釋이 되어 진리를 깨치고, 오도송을 남겼다. 1918년 청년계몽운동지 [유심]지를 창간했다. 1919년(41세) 3.1운동을 주도,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의 자구 수정을 하고 공약삼장을 첨가하였다. 1923(45세) 조선물산장려운동을 적극 지원하였고, 민립대학 설립 운동을 지원하는 강연을 하였다.1924년 불교청년회 회장, 총재를 역임하였다.

1925년(47세) 오세암에서 『님의 침묵』을 탈고하엿다. 1927년(49세) 1월 신간회를 발기하였으며, 5월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겸 경성지회장에 뽑혔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 민중대회를 개최하였다. 1931년(53세) 월간 [불교]지를 인수하였고 청년승려비밀결사 만당卍黨의 영수로 추대되었으며, 1932년(53세) 조선불교 대표인물 투표에서 최고득점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한용운 422표, 방한암 18표, 박한영 13표, 김태흡 8표, 이혼성 6표, 백용성 4표, 송종헌 3표, 백성욱 3표, 3표 이하는 생략. 불교지 93호에 발표됨). 1933(54세) 유숙원씨와 재혼하였고, 이때를 전후하여 『유마힐소설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벽산 스님이 집터를 기증하고, 몇 분의 성금으로 성북동에 심우장尋牛莊을 지었으며, 이때 총독부 돌집을 마주보기 싫다고 북향으로 짓도록 하였다.

1940년(62세) 『불교』지 2월호에 『유마힐소설경』 연재를 시작하였고, 1943년(65세) 조선인 학병의 출정을 반대하였다. 1944년(66세) 6.29 심우장에서 영양실조로 입적하였으며 유해는 미아리 화장장에서 다비한 후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한용운은 불자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민중에게 독립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등 사회 참여가 활발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3·1운동에 가담하고 독립선언서를 공개하여 낭독하는 등의 활동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26년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는데, 기존의 시조 형식을 깬 산문시 형태를 취했으며, 향토적 정서가 묻어나는 언어와 서민적인 시어 활용으로 민중정신을 반영했다. 독립을 향한 열망, 자연 등을 ‘님’으로 표현했고,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화법으로 검열을 피하기도 했다.

한용운의 다른 상품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한 후 속리산 복천암선원을 시작으로 미얀마, 프랑스, 인도에서 수행을 했다. 마음속 근심 걱정을 놓아버리고 ‘지금 이 순간’ 행복할 수 있는 자비명상의 세계로 안내하기 위해 2002년 공주 마곡사에서 ‘자비명상 템플스테이’를 개최하는가 하면,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중앙대학교에서 <내 마음 바로 보기>라는 수업을 맡아 ‘1초 만에 수강신청이 마감되는 스님’으로 유명했다. 최근까지 한국마음치유협회 회장과 동국대학교 정각원 교법사로 있으면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지혜와 사랑을 전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왔다. 현재 (사)자비명상 이사장으로 있으며, 다음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한 후 속리산 복천암선원을 시작으로 미얀마, 프랑스, 인도에서 수행을 했다. 마음속 근심 걱정을 놓아버리고 ‘지금 이 순간’ 행복할 수 있는 자비명상의 세계로 안내하기 위해 2002년 공주 마곡사에서 ‘자비명상 템플스테이’를 개최하는가 하면,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중앙대학교에서 <내 마음 바로 보기>라는 수업을 맡아 ‘1초 만에 수강신청이 마감되는 스님’으로 유명했다. 최근까지 한국마음치유협회 회장과 동국대학교 정각원 교법사로 있으면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지혜와 사랑을 전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왔다.

현재 (사)자비명상 이사장으로 있으며, 다음세대희망본부 불교위원회 대표와 한국명상지도자협회 지도교수를 겸하고 있다. 또한 BBS불교방송 TV <마가 스님의 마음톡, 그래도 괜찮아!> 마음토크 진행자로 시청자들과 함께 웃고, 슬픔을 나누고, 서로를 응원하는 치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음충전』, 『마음을 바꾸는 100일』, 『내 마음 바라보기』, 『알고보면 괜찮은』, 『내 마음 바로보기』, 『내 안에서 찾은 붓다』 등 마음 명상에 관한 책을 다수 펴냈다.

마가의 다른 상품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3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128*188*20mm
ISBN13
9788955968675

책 속으로

사랑의 측량

즐겁고 아름다운 일은 양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사랑은 양이 적을수록 좋은가봐요.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와 두 사람의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양을 알려면 당신과 나의 거리를 측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나의 거리가 멀면 사랑의 양이 많고 거리가 가까우면 사랑의 양이 적을 것입니다.
그런데 적은 사랑은 나를 웃기더니 많은 사랑은 나를 울립니다.
뉘라서 사람이 멀어지면 사랑도 멀어 진다고 하여요.
당신이 가신 뒤로 사랑이 멀어졌으면 날마다 날마다 나를 울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어요. ---「Part 1 만해의 시」중에서

나의 꿈

당신이 맑은 새벽에 나무 그늘 사이에서 산보할 때에 나의 꿈은 작은 별이 되어서 당신의 머리 위에 지키고 있겠습니다.
당신의 여름날에 더위를 못 이기어 낮잠을 자거든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 당신의 주위에 떠돌겠습니다.
당신의 고요한 가을밤에 그윽히 앉아서 글을 볼 때에 나의 꿈은 귀뚜라미가 되어서 책상 밑에서 ‘귀똘귀똘’ 울겠습니다. ---「Part 1 만해의 시」중에서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사리事理를 남의 말에 의하여 깨닫는 자는
깨달음이 있어도 도리어 흐려져서
자기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보다 못하다.
뜻을 밖으로부터 얻는 자는
얻는 것이 있어도 도리어 잃기가 쉬우니
모든 것을 스스로 얻어 충분히 아는 것만 못하다. ---「Part 2 만해의 채근담」중에서

대세에 따르면서도 그것을 올바르게 바꾸는 것

시간의 흐름에 순종하면서도 그 시간을 올바르게 바꾸는 것은
마치 산뜻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뜨거운 더위를 몰아내는 것과 같다.
속세의 한복판에 섞여있으면서도 속세를 벗어나 바르게 사는 것은
마치 있는 듯 없는 듯한 담담한 달빛이 흐르는 구름을 밝게 비추는 것과 같다. ---「Part 2 만해의 채근담」중에서

그러한즉, 금일 청년들은 나처럼 나이 늙고 기력이 쇠진한 뒤에 또다시 나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고 오늘날, 이 당장에서, 일대 각오와 일대 용단을 내려서 전문지식을 연구하여 장래의 우리, 영구의 나를, 좀더 행복스럽게 광영한 사회생활을 하도록 노력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Part 4 청년에게」중에서

출판사 리뷰

역사의 고난과 함께
삶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언제나 내 마음의 평화에서부터 나옵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우리 선조들이 나라를 잃은 슬픔과 절망에 빠지지 않고 밤하늘의 별처럼 찬란히 빛나는 정신을 유지하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용운의 ‘젊은 정신’ 때문이었다. 일제와 일체의 타협을 거부한 그의 불굴의 정신은 무척이나 뜨겁고 올곧았다. 마가 스님은 만해 한용운의 가르침으로 내 밖의 평화가 내 안의 평화에서 시작됨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떤 어려움이더라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며,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늘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했다. 힘 잃고 방황하는 우리 젊은 세대가 이 책을 벗 삼아 소중한 삶을 지키며 내 마음의 평화의 세계로 ‘첫걸음’을 내딛었으면 한다.

만해 정신에 대하여

“혁명가와 선승과 신인의 일체화 ─ 이것이 한용운 선생의 진면목이요, 선생이 지닌 바 이 세 가지 성격은 마치 정삼각형 같아서 어느 것이나 다 다른 양자를 저변으로 한 정점을 이루었으니, 그것들은 각기 독립한 면에서도 후세의 전범이 되었던 것이다.”
-조지훈

“인도에는 간디가 있고 조선에는 만해가 있다.”
-정인보

“투철한 독립투사이자 혁혁한 민족운동가로서, 높은 경지의 선승이자 실천적 종교가로서, 또한 문학사 불멸의 시집 『님의 침묵』의 시인으로서 만해는 민족사 초유의 입체적 성격을 지닌 ‘천석종千石鍾’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해 는 작게 치면 작게 소리가 나지만 크게 치면 칠수록 큰 소리로 울리는 역사의 종, 민족의 종으로서의 상징적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김재홍

“칠천 승려를 합해도 만해 한 사람을 당하지 못한다. 만해 한 사람을 아는 것이 다른 사람 만 명을 아는 것보다 낫다.”
-홍명희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어두운 시대에서 홀로 진리를 간직했던 갈릴레오의 생애를 그린 연극에서 영웅을 필요로 하는 시대는 불행하다. 그러나 영웅을 낳지 못하는 시대는 더욱 불행하다”고 말한다. 갈릴레오가 당시의 시대에서 얼마나 현실적인 세력일 수 있었는지 나는 잘 모르지만, 영웅을 현실의 세력에 현실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규정해 보자. 그러면 義士의 시대는 영웅의 시대보다 조금 더 불행한 시대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 말할 수 있다. 의인을 낳지 못하는 시대는 더욱 불행하다고, 또 의인다운 시인일 망정 시인만을 가진 시대는 그보다 더 불행하다고. 한용운은 이러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跋詩에서 “여러분이 나의 詩를 읽을 때에 나를 슬퍼하고 스스로를 슬퍼할 줄을 압니다”라고 한 것이다. 그는 계속하여 말하기를, 그의 자손의 시대에 있어서 그의 시를 읽는 것이 늦은 봄의 꽃수풀에 앉아서 마른 국화를 비벼서 코에 대는 것과 같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불행의 종말을 예상하고 그 종말과 더불어 그의 시가, 지난 계절의 꽃이 될 것을 바랐다.
그러나 우리는 늦은 봄의 꽃수풀에 있는가?
한용운의 시는 우리 현대사의 초반뿐만 아니라 오늘의 시대까지를 포함한 [궁핍한 시대]에서 아직껏 가장 대표적인 국화꽃으로 남아 있다.
-김우창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7,900
1 7,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