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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초록, 이 멋진 색이 내 삶의 일상이 된다면
우리 아직은 낯가림하는 사이 ― 친하게 지내볼래? 식물이 원래 이렇게 예뻤나? * 들일까, 말까? * 제 이상형 아니, 현실형 식물은요 * 안녕, 극락조화! * 널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 이제 좀 사람 사는 집 같네! * 물만 먹어도 살 수 있어 부럽다 * 우리, 산책할까? * 그땐 그랬지 좀 친해지고 자신감도 얻은 시기 ― 식구를 늘려볼까? 우리 애가 잘 자라고 있나요? * 아침이 기다려질 줄이야! * 새식구 추가요! * 떠나자, 다육이의 세계로! * 동고동락하며 돈독해진 우리 * 넌 이름이 뭐니? * 액자 대신 식물을 걸어요 *엄마 생각이 나서 * 장바구니에 추가되었습니다 * 사진 좀 찍는사람들 사이에서는 식물이 필수라던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 좌절 ― 내 마음과 네 마음이 같지 않을 때 그때 그때 달라요 * 대파를 심어보자 * 내 마음과 네 마음이 같지 않을 때 * 오래 함께하고 싶었는데 * 손이 덜 간다는 것에 대하여 * 넌 정말 알 수 없구나 * 내려놓으면 더 잘 살 수 있을까? 185 * 너의 속도를 존중하지 못해서 미안해 * 좋은 말로 할 때 잘해줄 걸 * 근사하지 않아도 훌륭해 식물과 성장하는 중 ― 믿고 기다리며 책임질게 나 자신, 오늘도 수고 많았다 * 꽃의 세계에 발을 들이다 * 트리만으론 2퍼센트 부족해! * 꽃과 더 오래 함께하고 싶어서 * 여행 중에도 온통 네 생각뿐 * 부케를 이제야 알았어요 * 너희들이 있어 계절이 반가워 * 공기를 깨끗하게 해준다고? * 내 새끼들 잘 있었어? * 식물에 대해서는 신중해지려고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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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극락조화가 나를 환영해주는 듯하다. 덕분에 마음이 안정된다. 진이 빠진 날도 현관문이 열리면서 극락조화가 시야에 들어온 순간, 퍽퍽했던 마음이 몽글몽글 채워지곤 했다. “왔어? 냉장고에 있는 초코바 먹고 기운 내!”라고 위로해주는 듯하다. 밖에서 돌아온 나를 맞이해주는 극락조화에게서 어릴 적 나를 맞아주던 엄마가 보인다.
극락조화가 오로지 성장하는 데만 온 힘을 쏟을 수 있도록 햇볕, 공기, 물을 비롯한 생육 환경을 부족함 없이 챙겨야겠다. 동시에 지금 잘 하고 있는지 점검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관리 상태를 돌아볼 계획이다. 그러면 극락조화도 나의 믿음과 응원을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말처럼 극락조화와 나 사이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유대감이 끈끈해져서 돌보고 돌봄을 받는 관계에서 소울 메이트로 발전할 수 있다고 기대해본다. “우리 극락조화는 보호자의 믿음을 먹으며 잘 자라고 있어요.” 줄기가 자라고 이파리가 펴지는 과정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런데 속도가 이전에 비해 상당히 더뎠다. ‘시간이 흐르면 알아서 잘 펴지겠거니’하며 기다리다 4주가 지났다. 전보다 이파리가 느슨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펼쳐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았다. ‘내가 나서야겠다’며 둘둘 말린 이파리에 손을 댔다. 그러자 이파리가 ‘스윽’하며 찢어졌다. 바로 후회가 밀려왔다. 극락조화는 자신만의 속도로 잘 자라고 있는데 왜 쓸데없이 도와주겠다고 나서서 일을 그르쳤을까. 정말 미안했다. 만약 사람이었다면 ‘지금 내 속도대로 하고 있으니 괜찮다.’며 극구 거절했을 텐데. 식물처럼 사람도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간다. 그걸 최근에야 깨달았고 내 삶에 적용시키는 연습을 하고 있다. 식물과 함께 지낼수록 식물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가 진지해진 걸 매 순간 느낀다. 화분이든 흙이든 한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서 사는 모습이 대견하다. 그래서 길 가다 보게 되는 식물을 허투루 지나치지 못한다. 길에서 친구를 만나면 속 깊은 대화는 나누지 못해도 가벼운 인사와 안부를 전하는 것처럼 생김새를 유심히 관찰하고 지금처럼 앞으로도 무탈하게 잘 자라기를 마음속으로 바란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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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일상에는 언제나 초록이 있다
식물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나는 식물을 잘 몰라, 식물 물주는 거 너무 귀찮아, 금방 죽일 것 같아 등등 많은 이들이 식물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감을 갖고 있다. 멀게만 느껴지는 식물. 그러나 우리는 식물을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식물이 많은 가장 대표적인 장소는 아마도 카페일 것이다. SNS에서 유명한 카페들의 인테리어를 보면 식물이 멋들어지게 자리를 잡고 있다.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문자메시지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세먼지가 우리 삶을 위협하면서 식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가 높아졌다. 스투키, 이레카야자, 수염틸라드시아 등 공기정화식물을 찾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런 실용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식물은 우리 삶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오픈을 축하하기 위한 화분,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화환, 사랑을 고백할 때 빠질 수 없는 꽃다발. 행복한 순간, 위로가 필요한 순간, 가슴이 갑갑한 그 순간에도 식물은 우리 곁에 있다. 초록, 이 멋진 색이 내 삶의 일상이 된다면 꽃집에서 바로 데려온 화분은 초록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노란 잎, 마른 줄기, 퍽퍽한 흙은 찾아볼 수 없다. 그 싱그러움을 잘 유지하려 아낌없이 물을 주니 금세 시들어버린다. 마음을 다했는데 씁쓸한 결말을 맞이하니 속상하고 분하다. 이번에는 기필코 잘 길러보리라 다짐하며 신경을 더 썼다. 그러나 노란 잎이 생기고 말라버렸다. 실수투성이의 식물 초보자. 이는 『오늘부터 식물을 키웁니다』작가의 이야기다. 부담스럽고 귀찮고 두려운 대상이었던 식물이 관심과 애정의 대상으로 바뀌는 과정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식물은 반려동물처럼 산책을 할 수도, 안고 뒹굴 수도 없다. 무심하게 방 한 구석을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작가는 무심한 듯 보이는 식물을 키우며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만났다. 좋아하는 친구와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를 고민한 어린 시절, 목련 나무 교정길을 걸으며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서로를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했던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작은 오해를 풀기 위해 작은 꽃다발을 슬며시 내민다. 크고 높은 나무를 보면 끝없는 사랑으로 나를 지켜주는 부모님이 떠오른다.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순간에는 늘 식물과 꽃이 있다. 식물을 길렀을 뿐인데 행복이 자라고 있다 식물을 키우며 삶을 만난다. 늘 좋은 일만 가득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살다 보면 당연히 좌절할 일도 만난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하며 자책을 한다. 며칠을 끙끙 앓고 나서 ‘그래 다시 한 번 시작하자’ 하는 마음을 먹고 아주 조금씩 앞을 향해 나아가다보면 어느새 목적지 앞에 도착하기도 한다. 작은 잎이 조금씩 자라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늘 푸르게 자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시들어가는 식물에 좌절하면 그 식물과의 만남은 거기서 끝난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정성을 쏟으면 잘라낸 가지 위로 새싹이 돋아난다. 가로 세로 고작 한 뼘밖에 되지 않는 자그마한 화분에서 새 잎을 틔우고 제자리를 지키며 충실하게 살아가는 식물의 모습을 통해 삶의 혜안을 얻기도 했다. |